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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18화 (218/541)

수습(4)

낭키아스 출신 관리들을 위해 자리를 만들어야 할 때도 비워뒀고, 칸발리크의 기존 관료들이 아우성칠 때도 비워둘 것을 고집했던 자리가 있다.

내무장관과 전쟁장관. 이 두 자리는 시레문이 죽고 칸발리크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면서 자연스럽게 비었고, 누군가가 임명되기만을 가만히 기다린다.

-울제이는 칸발리크로 들어와 내무장관과 전쟁장관을 겸하라!

칸발리크 정부 내에서 울제이의 지분을 얼마만큼 인정할 것인가. 이를 둘러싸고 루우 테무르와 울제이 간 협상이 오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레센제의 결정이었다.

몽골 본토에 대한 적대를 중단하고 타협하기로 했던 울제이는 개봉의 궁궐로 돌아가 있었다. 서쪽에서 발생한 한족 봉기를 상대하기 위함이었다.

한창 토벌 작전을 짜던 중에, 칸발리크에서 그런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형님도 상당한 수완가시군.”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자, 참모들도 가벼운 웃음을 흘린다. 의도야 뻔하지만 상당히 교묘한 대응책인 것은 틀림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나와 루우 테무르가 동맹을 맺고, 공동의 적인 형님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울제이도 루우 테무르도 예케 몽골 울루스의 ‘카간’ 자리를 목표로 한다. 그리고 마침 카간 자리는 게레센제가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웬만해선 울제이와 루우 테무르의 협력 관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게레센제가 퇴위하고 둘 중 하나가 카간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지.

그렇기에 루우도 울제이에게 ‘내무장관, 아니면 전쟁장관은 어때요?’라는 식으로 협상을 해온 것이다. 자신은 몽골과 카간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게레센제는 발상을 전환해, 오히려 자기 쪽에서 울제이 쪽으로 바싹 파고들었다.

“아예 내무장관과 전쟁장관을 모두 겸하라 하시다니. 그러면 ‘다이온 연방’의 실권 상당 부분은 내 손에 들어오지 않나.”

얼핏 보면 게레센제가 울제이에게 일방적으로 엄청난 양보를 한 것처럼만 보인다. 물론 엄청난 양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게레센제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 있다.

“지금 우리는 형님의 카간 자리를 인정한 것도, 부정한 것도 아닌 상태로 어물쩍 넘어갔지. 하지만 내가 칸발리크의 내무, 전쟁장관 자리를 받아들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확실히 게레센제 칸의 신하가 되시는 겁니다. 카간 자리도, 카간을 선출한 쿠릴타이의 정당성도 인정하시는 셈이 되고요.”

음…… 하면서 울제이는 신음을 흘렸다. 고통스러운 신음은 아니지만, 고민을 담은 신음이었다.

“이제 쿠릴타이의 정당성을 걸고넘어지는 건 불가능하겠지.”

키타이 칸인 자신이 참여하지 못한 건 그저 ‘늦어서’ 정도로 처리될 것이다. 어쨌든 게레센제는 ‘명분’ 하나는 확실히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루우 테무르 황제께선 내무장관이냐, 전쟁장관이냐를 물으셨지 그 둘을 전부 가져도 좋다는 선택지를 제시하진 않으셨습니다.”

“그래. 딱 그 정도가 그 아이가 감당하기에 적절한 수준이었을 거야.”

울제이가 내무장관이나 전쟁장관, 둘 중 하나를 맡는 정도에서 칸발리크 내에 지분을 확보한다.

그러면 루우 테무르는 적절히 울제이를 달래고 견제해가며 몽골 제국의 실권을 장악, 게레센제의 퇴위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형님은 바로 그 점을 찌르고 역공을 가하신 셈이지.”

내무장관과 전쟁장관 둘 다 줘버리면 게레센제에게도 상당한 손해다. 내무성의 경찰, 전쟁성의 군, 둘 다 울제이의 영향 아래로 들어온다.

그러나 그 손해는 루우 테무르에게도 무척 의외일 것이다. 그녀는 그 정도로 강한 권력을 쥔 울제이를 상대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으니까.

“나는 나대로 형님이 아니라 루우 테무르를 몰아내고, 그 과정에서 그 아이의 지분을 얻고 형님과 대결한다는 계산을 할 수 있지. 루우 테무르도 그 점은 충분히 느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루우 테무르는 게레센제의 퇴위보다는 먼저 울제이를 상대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울제이와 루우 테무르 사이의 대립이 시작되면, 게레센제는 숨 돌릴 여유를 얻고 차근차근 자기 권력을 강화해나가면 된다.

“받아들이실 겁니까?”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받아들이게 되면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싸움터로 들어가는 거야.”

칸발리크에 있는 네 개의 세력.

기존 관료층의 우두머리, 타이시 볼로드.

낭키아스 세력을 데려온, 카간 게레센제.

고려를 등에 업은, 황제 루우 테무르.

키타이에서 올라온, 칸 울제이.

그 세력들이 동맹과 배신과 온갖 모략을 반복하는 각축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총알도 포탄도 오가지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 정신없는 싸움이 될 거다. 하물며 작은 연회도 전투처럼 치러야 하지. 각오는 되어 있나?”

울제이는 자신의 질문에 의연한 자세와 표정으로 답하는 참모들을 보며, 씩 웃었다.

***

대장이 된 김천열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지나친 초고속 진급이라 한 번은 거절했지만, 두 번째는 피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전쟁성을 거친 게 아니라 태사부에서 직접 내려오는 진급 명령이었으니까.

의도는 짐작이 간다. 조유관을 견제하는 한편으로, 알타이 자유 공화국의 동부를 공격하는 사령관에게 권위를 실어주고 싶었겠지.

이 작전이 태사부에서 눈여겨보는 중요한 작전이라는 메시지도 겸해서.

“하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신속히 공략한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본래 김천열은 겨울이 오기 전에 확실히 승기를 잡을 생각이었다.

겨울에는 월동 장비를 보급하며 버티다가 적어도 내년 중순이 되기 전에는 카라코룸을 공략해야 한다고 여겼다.

겨울이 오기 전에 반란군이 완전히 무너져 카라코룸을 공략할 수 있다면 더욱 좋았을 테고.

예상치 못한 기갑사 전력의 출현. 적은 마구잡이로 끌어모은 군대가 아니라 상당한 규율을 갖추고 있었던 점도 예상외의 일이었다.

수세로 전환해 잠깐 주춤한 사이 겨울이 와 버렸다.

몽골의 겨울은 혹독하다. 물론 고려의 북부지역도 만만치 않지만, 김천열이 느끼기엔 이쪽이 더 심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만약’에 대비해 충분한 월동 장비 생산을 요청해뒀고, 때맞춰서 장병들에게 보급했다는 것이다.

“이래선 차량들은 도무지 쓸 수가 없어.”

추워도 너무 춥다. 전차든 장갑차든 제대로 쓸 수가 없으니 빠르게 찌르고 들어가 적을 붕괴시키는 작전을 구사하는 것도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전방에 적 기갑사 출현!”

“평소처럼 응사한다. 절대로 접근시키지 마라.”

답답한 마음에 전선을 시찰하는 중에, 일선 지휘관들이 기갑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한 번 점검해 볼 기회를 얻었다.

남부 전선에서 조유관이 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포격으로 대응한다.

“회피 기동을 합니다!”

“격파는 우리 목표가 아니다! 접근하지 못하게만 하면 돼!”

이게 기갑사의 골치 아픈 점이다. 기갑사는 그 특유의 작동방식 때문에 차량보다 기후의 영향에서 자유롭다.

귀를 때리는 포성이 몇십 차례 울리고 나면 저들도 물러나기는 한다. 귀중한 기갑사와 이단을 여기서 잃기는 아깝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교전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탐색전. 저쪽은 아군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거나, 포탄을 소모하게끔 하거나, 피로로 인한 사기 저하를 유도하는 걸까?

지금 상황에서 추격은 불가능하다. 계속 이런 무의미한 공방만 주고받을 뿐이다.

“어쨌든 대장 계급을 받았으니 그에 부끄럽지 않은 성과를 올리고 싶었는데 말이지…….”

겨울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장담했던 게 부끄럽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 태사의 질책이 내려오진 않겠지만.

“날씨가 풀릴 때까지는 어떻게 해 볼 방법이 보이질 않아.”

하다못해 적들처럼 ‘기갑사’ 전력이 있다면 좋겠는데.

***

김천열이 자괴감에 쓰디쓴 한숨만 삼키고 있듯이, 동명에 있는 미리안도 자꾸만 ‘차선책’을 써야 하는 상황에 짜증을 내고 있었다.

칸발리크 사태도 해결되고 조유관도 외무장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동명으로 소환했다. 하지만 군은 ‘해외주둔제한법’이 무색하게 몽골 내전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

“일단 개입은 했으니 ‘이제부턴 여러분끼리 알아서 하세요’하고 발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랬다간 양쪽 모두로부터 미움을 사게 될 테니까요.”

각료들 중 류성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맞다. 만약 지금 내전에서 발을 뺐다가 알타이 자유 공화국이 이기기라도 하면, 서쪽에 긴 국경을 마주한 적대국이 들어서는 셈이다.

반대로 현 몽골 제국 정부가 승리한다고 해도, 중간에 배신하고 나간 고려 제국에 감정이 좋을 리 없다. 그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겠지.

“해외 주둔 연장 허가를 계속 내주는 수밖에요.”

울며 겨자 먹기지만.

하다못해 칸발리크에 주둔 중인 배영훈과 기갑사 부대, 견하와 감찰국, 효윤을 동명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어째서인지 지금 루우가 칸발리크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그쪽에서 올라온 보고에 따르면 지금 칸발리크 정계는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루우 혼자 고려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리안의 신경을 긁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그녀는 여전히 고려의 타국 불간섭과 외교적 균형이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목표를 관철하려면 루우보다 영향력이 높아져야 한다. 황제의 권위로도 어쩔 수 없을 만큼 강한 영향력이 있다면, 황제의 고집도 꺾을 수 있다.

하지만 리안이 동명에 틀어박혀 고려 내전의 뒷수습이다, 대공황 대처다 뭐다 하는 사이에 밖으로 나간 루우가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상황.

칸발리크의 구원자가 된 루우. 그녀의 야망을 가로막으려면 그녀보다 더 높은 실적을 거둬야만 한다.

“그렇기에 낭키아스 한족 반군 진압에 지원군을 파견했건만……”

그건 그것대로, 알면서도 함정에 빠져드는 짓이었다.

확실히 리안의 빠른 결단은, 그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높이고 있다.

국위선양.

내전을 이겨내고 대공황마저도 뛰어넘어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고려 제3제국.

그 강한 국력을 타국의 전장에서 아낌없이 선보인다. 저력을 과시한다. 다른 나라들이 우러러보게끔 한다.

이런 사실이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간다. 그 열광의 상징인 태사 미리안, 여당인 제국입헌당의 지지율은 날마다 오른다.

문제는 ‘사건’은 서로 단절된 게 아니라, 하나의 이어지는 ‘맥락’이라는 것.

영향력이 필요한 리안, 지지율을 높이고픈 제국입헌당의 의원들, 국가의 승리에 감정을 이입하고픈 민중, 그런 그들에 편승하려는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모두가 ‘루우가 원하는 바’를 향해 착실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회민주당이나 공산당은 이런 흐름에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권력을 원하는 이는 누구나 최적의 행동을 선택하는 법. 이데올로기는 그다음 문제이거나, 그런 행동을 치장하는 장식물이다.

“……어떤 행동을 해도 고려 제국의 패권 확대와 다이온 연방을 향한 길로만 가고 마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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