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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14화 (214/541)

신 없는 사람들의 교회(8)

지나는 쌍안경에 눈을 대고 멀찍이 떨어진 수용소를 관찰한다. 아직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쌍안경에 눈을 댄 채, 그녀는 물었다.

“국장은 좀 어때?”

그 물음에는 이익서가 답했다.

“그저 계속 잠들어 있어.”

지나는 가만히 쌍안경으로 수용소 관측만을 계속했다. 견하가 잠들고 나서 몇 분 뒤, 이상을 눈치챈 그녀는 일단 견하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안전히 확보되자마자, 견하가 미리 이야기해뒀던 명령과 계획을 밀어붙였다. 상황을 지켜보자는 다른 의견은 그녀 앞에서 철저히 묵살당했다.

“국장의 명령과 계획은 실행되어야 해.”

주문이라도 되는 양 계속 그 말만을 내세우며, 지나는 재연이나 익서보다 앞장서 감찰국 직원들을 지휘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견하가 고려에서 구상만 했던 일들을 현실로 만들었다.

물론 여기엔 조유관이 남기고 간 참모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한 소녀가 이런 성과를 낸 것은 대단한 수완이라 할만하다.

“음.”

짧게 그런 소리를 내뱉는다. 쌍안경은 여전히 눈에서 떼지 않은 채.

익서와 재연은 수용소 쪽에서 뭔가 반응이 왔음을 직감한다.

지나는 쌍안경을 재연에게 넘겼다. 재연도 수용소를 보다가 ‘으음……’하고 신음한 뒤 쌍안경을 익서에게 넘겼다.

익서는 천천히 쌍안경을 눈에 댄다.

멀리 떨어진 곳의 광경이 눈 바로 앞으로 다가온다.

소리 없는 지옥을 관찰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화물’들이 춤을 추듯 비틀대고 있다. 정확히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거지만.

몸 안팎에서 일어나는 변이의 충격이 몸을 강타한다. 그 바람에 무릎을 꿇거나 넘어질 수도 없다.

저 얼굴, 벌어진 입을 보면 상당히 큰 비명을 내지르고 있겠지만, 여기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어떤 남자의 몸이 찢기듯 터져나간다. 아니 터지듯 찢어진다고 해야 하나. 어느 쪽이든 참혹하긴 마찬가지다.

찢어진 틈새를 비집고 파멸인의 하얀 부속지가 솟아난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 남자 하나한테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드넓은 수용소 부지 내 모든 ‘화물’들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익서는 혀를 찼다.

천국도 지옥도 연옥도 환생도 영혼도 없으니 벌을 받진 않겠지만, 그들이 만든 이 광경 자체는 살아있는 한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예감을 느낀다.

이상 현상은 사람들의 변이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봐, 공간이 일그러진다.”

익서는 쌍안경을 다시 지나에게 넘겼지만, 지나는 받지 않았다.

쌍안경으로 보지 않아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이상현상이 수용소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마치 지반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수용소 주변 땅이 움푹 꺼진다. 하지만 지반 침하는 아니다. 이상한 일그러짐은 수용소를 중심으로 하여 거대한 구체처럼 나타났으니까.

그 공간 전체를 거대한 수정구슬 안에 집어넣기라도 한 것처럼, 미묘하게 주변과 어긋나 있다. 시야가 혼란스럽다. 뇌가 그 광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가 하면 어느새 정상적으로 서 있고, 또 이쪽을 향해 바짝 다가서는 듯하다가 한없이 먼 곳의 풍경이 되기도 한다.

“역시 저렇게 한꺼번에 파멸인을 발생시키면 주변의 공간에 이상이 생기는군.”

재연이 그렇게 말하자, 익서는 고개를 저었다.

“저건 파멸인조차 아니야. ‘되다 만’ 무언가지.”

익서의 말대로, 수용소의 화물들은 파멸인의 형상을 띠려다 말고 사람으로 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거의 완전히 파멸인이 된 그 육신에서, 다시 사람의 사지를 비롯한 신체기관이 돋아난다.

그러나 그것도 일정 수준에서 멈춘다. 파멸인과 사람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그들의 몰골은 더욱 비참해진다.

아마 고통도 아까보다 더할 것이다.

지나가 손을 들었다. 손가락 끝이 일그러진 공간을 가리킨다.

“시작됐어.”

공간이, 장막을 치듯 검게 물들어 간다.

그 위로 ‘부서진 붉은 존재’의 작은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

이는 유지나, 이익서, 한재연이 관찰하고 있는 수용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칸발리크 동쪽, 고려와의 국경지대에도 두 개, 칸발리크 남쪽의 한적한 시골에도 하나가 있었다.

모두 같은 과정을 거쳐, 같은 결과를 내놓는 중이었다.

이 ‘작업’을 맡은 자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서 상황을 관찰만 하고 있었기에,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다.

모두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지옥에 떨어진 인간들의 무언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군인들과 감찰국 직원들은 관찰된 상황을 성실히, 정기적으로 보고했다. 그 보고는 유지나가 있는 임시 본부로 모여들었다.

“국장은, 이 이후엔 도박이라고 말했지.”

익서가 한숨을 내쉬듯 말하자, 지나는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물러설 수 없으니 적이 물러설 때까지 정면에서 달려드는 거야. 그런데 적이 안 물러나면 충돌해서 둘 다 죽는 거지.”

-파멸인을 조종하는 어떤 의지가 있다.

-그런 의지가 있는 존재라면 자신과 우리 세계의 완전한 붕괴라는 위험은 피할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싸움을 건다. 다 같이 죽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 세계에서 손 떼고 물러날 것인가?

“균형. 세심한 조정. 칸발리크 상공의 저 붉은 존재를 소환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야. 그런데 우리가 그걸 망가뜨린다면, 저쪽도 뭔가 다른 생각을 해봐야한다는 거지.”

“하늘 위의 저 괴물이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지부터가 도박이구만.”

익서는 기지개를 켜다, 두 손으로 뒤통수를 받친다. 의자 위에서 조금 늘어진 자세를 취한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으니, 쓸데없이 긴장한 채로 대기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칸발리크에 드리운 검은 장막처럼, 곳곳에 검은 장막이 드리우고 ‘붉은 존재’의 또 다른 부분들이 모습을 내민다. 한 세상에 같은 존재가 여럿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붉은 존재’에는 위협이 된다…… 그런 계산이었지.”

재연이 견하가 했던 말을 되새겨본다. 익서가 그 말을 받아 잇는다.

“그런 방식으로 이 세상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문제는 그 부담을 우리 세계도 함께 받는다는 거지만.”

그렇기에 저쪽이 물러서거나, 둘 다 죽는 도박이 된다.

세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자꾸만 느릿느릿해져가는 시간을 견디기로 했다.

***

또 다른 이상 현상들이 칸발리크 시내에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몽골군과 경찰의 눈을 피해, 몰래 기도를 드리고 있는 혁세주교 교인들 사이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난다.

가래 끓는 듯한 기묘한 소리를 내더니, 몸 속에서부터 뭔가 두둑 두둑 끊어지는 소리를 연이어 낸다.

그리고 터진다.

사람들은 어째서인지 아무도 그런 이상 현상에 반응하지 않고, 더욱 절실하게 고개를 조아려가며 기도를 드린다.

반쯤은 파멸인, 반쯤은 여전히 사람인 괴물은 부속지를 휘둘러 주변 사람들을 처참하게 짓뭉개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절실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지만 이제 식은땀과 눈물범벅이 되어 있다.

짓뭉개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비명을 참는 것도 아니고, 기도가 비명을 막아주는 것도 아니니까.

결국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도망치는 자가 남아서 기도하는 자를 짓밟고, 결국 둘 다 괴물에게 찢겨 죽는 아비규환.

도시 곳곳에서 비슷한 광경이 반복된다.

길가를 어슬렁거리던 파멸인 하나가 우뚝 멈춘다. 움찔대기 시작하더니 수용소의 괴물들처럼 정상적인 인간의 신체 기관을 뿜어낸다. 그것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수복과 파손을 반복하는 고장 난 기계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변은 하늘에서 일어났다.

박살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각 조각들이 서로의 중력으로 묶여있는 ‘부서진 행성’같은 모양새.

붉은 존재가 정신없이 박동하기 시작한다.

견하는 게레센제와 루우에게 미리 경고를 해뒀고, 두 사람 모두 이런 사태가 일어나리라는 걸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황궁을 비롯해 행정력이 닿는 모든 곳에, ‘건물 안에서 절대로 나오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뒀다.

피눈물 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니, 피 그 자체로 된 비가 내린다.

거대한 암석의 균열 같았던 부분마다 이제는 피가 돋는 상처가 되어, 핏물을 철철 쏟아내기 시작한다.

모든 곳이 끈적한 피로 젖는다.

피비린내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도시 곳곳에 스며든다.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게 끝났다.

마치 캄캄한 방에 전깃불이 들어오듯, 그렇게 갑작스레 도시를 뒤덮은 검은 장막이 사라졌다.

수용소를 뒤덮던 것도 사라졌고, 곳곳에 나타났던 붉은 존재들 역시 없어졌다.

남은 것은 상처 입은 사람들, 죽은 사람과 괴물들의 시체, 망가진 도시뿐이었다.

***

완전히 부서져 버린 붉은 꿈속에서, 견하는 토칸에게 말했다.

“꿈에서 깨면 곧바로 너를 찾아내도록 하지.”

말만 놓고 보면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 같지만, 견하의 말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찾아내서, 이 사태의 책임을 묻고, 죽여버리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이걸로 우리는 동등해졌어.”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토칸은 답했다.

“나를 죽인다고 너와 너의 부하들, 너의 상관, 고려에 묻은 피가 지워지진 않아.”

피는 피로는 씻기지 않는다. 오늘 이후로 견하도, 감찰국도, 고려 제3제국도 어제와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망가져서 폭주하는 열차를 탄 것처럼, 그 길에서 내려올 수도 없을 것이다.

토칸은 그런 저주이자 예언을 남기고 있었다.

견하는 가볍게 코웃음 쳤다.

“우리 중에 손에 피 안 묻힌 사람은 없어.”

“나는 그런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손에 피는 누구나 묻히지. 요즘 같은 시대에 불가피한 이유로 뭔가 죽이게 된 사람은 넘쳐. 하지만 오늘 일은 달라.”

싸움에 임하여 적을 죽인다. 이것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 적이 아닌 자들을 긁어모아 죽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명백한 범죄다.

법적인 문제가 없고, 나라를 구한다거나 세상을 구한다는 명분이 있어도 범죄는 범죄다.

인간에겐 절대로 넘어선 안 되는 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토간의 말에도, 주견하는 비웃음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게 네놈의 또 다른 목적이었나? 네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자기네들과 똑같은 신세로 타락시키자…… 뭐 그런 건가?”

유치하군. 견하는 딱 잘라서 말했다.

“토칸, 네놈은 여전히 나같은 인간과 어떻게 대결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

주견하가 토칸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토칸 역시 주견하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주견하가 속한 세계는 토칸의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누가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고, 누가 더 큰 세력을 모으고, 누가 더 빠르게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는가. 내가 사는 곳은 그런 세계야. 그러니 네놈이 아무리 떠들어봤자, 어딘가에서 사살당한 시체가 된다는 결말은 바꾸지 못해.”

“그럴지도 모르지. 별로 상관은 없지만.”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붉은 공간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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