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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08화 (207/541)

신 없는 사람들의 교회(2)

몽골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깡패’라 불리는 이 혁명가는, 당에서 가라고 하면 어디든 갔다.

이러쿵저러쿵 구시렁거림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불평분자’로 분류되지 않는 건 그만큼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혁명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당에 충성하는 건지 이중첩자는 아닌지 의심스러운 수많은 일선 혁명가 조직에 비집고 들어가, 어떻게든 당의 뜻대로 움직이게끔 한다.

불온한 기색이 감도는 서부 국경으로 넘어가 해외의 동지들과 연락망을 유지하고, 까다롭기 짝이 없는 바라트 공산당과 협상에 나선다.

카라코룸과 칸발리크, 양 정부의 군대가 치열하게 맞서는 전선을 목숨 걸고 가로지르며, 전국을 누빈다.

그런 사람이기에 몇 가지 결함 정도는 당에서도 눈감아 주는 것이다.

물론, 그 재능과 열정을 살려 일을 해야 하지만.

“이번에 고려에서 보내온 제안 때문에 격론이 벌어졌소”

오랜만에 만난 ‘무당’은 그렇게 당의 소식을 전했다.

“‘고려에서 보냈다’면 정확히 누가 보낸 거요, 무당 동무?”

깡패는 되묻는다. 지금 몽골과 고려의 정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냥 두루뭉술하게 ‘고려에서’라고만 하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누가 누구와 손을 잡았고, 누가 누구의 뒷덜미를 노리는가, 이걸 모르면 언제 골목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깡패 동무 같은 사람일수록 그런 문제에는 민감하다.

“일단 제안을 보낸 당사자는 고려의 동지들이요. 허나……”

살짝 말을 끈다. 깡패는 남은 술을 마저 들이켜며 무당을 곁눈질한다. 무당 동무가 이렇게 말을 망설이는 건 드문 일이다.

“그 동지들 요청은 일단 고려의 ‘감찰국장’과 만나 달라는 거요. 그렇다고 본다면 제안 자체는 ‘감찰국’ 쪽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지.”

“내가 고려 쪽 정부조직이 어떻게 잡혀 있는지 잘 몰라서 그런데, 감찰국은 어디 밑에 있소?”

“고려 태사부의 하위 조직으로 정치경찰실이 있소. 감찰국은 그 밑이지.”

“생각해 볼 건 두 가지겠소. 하나는 그 제안이 ‘고려의 태사부’의 의사를 반영했을 수 있다는 것. 즉 고려 태사라는 그 여자가 우리와 뭔가 의논하고 싶어한다는 거라고 생각되오.”

“다른 하나는?”

“왜 내각의 수장인 태사가 ‘외무성’이나 ‘군의 첩보 조직’을 이용해 우리와 접촉하지 않고, 직속 ‘감찰국’을 통했는가 하는 점.”

무당과 깡패, 두 사람은 잠시 말을 멈췄다. 각자 동아시아의 판세를 재검토하고, 고려가 처한 입장을 가늠해본다.

이윽고 무당 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물론 우리가 국가의 승인을 받은 정당은 아니니 외무성을 통하지 않은 건 이해하지만, 군 첩보 조직을 통하지 않은 것도 뭔가 있다…… 고 생각해야 하지 않겠소?”

“외무성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다, 혹은 외무성에 알리고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군의 간섭을 받고 싶지도 않고 군 조직에 알리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을 거요.”

“그렇다면 오로지 태사부만의 생각……?”

“태사의 아주 ‘사적인’ 계획일지도 모르지.”

깡패는 턱수염을 만진다. 흥미가 생기긴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건 위험한 제안이다.

아니 뒤집어 생각해보면 위험하기에 흥미가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높은 위험에는 높은 이익이, 높은 이익에는 높은 위험이 따르는 법.

“고려의 태사가 내민 제안인 만큼, 우리 앞에 막대한 이익을 제시할지도 모르오. 그러나 막상 약속을 이행할 때 외무성이나 군 조직은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라며 반발할 가능성도 적지 않지.”

그러면 태사가 아무리 권력이 강대하다 해도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혹은, 태사 자신이 그걸 구실 삼아 ‘유감이지만 약속은 못 지키겠다’고 말하게 된다든가…….

어느 쪽이든 몽골의 사회주의자들은 실컷 이용만 당하게 되는 셈이다.

깡패의 얼굴에서 탐탁지 않게 여기는 기색을 느꼈는지, 무당이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당 중앙위에는 동무의 우려를 전하는 게 좋겠소?”

도저히 실행 불가능한 임무라 판단했는가 묻는 것이다.

깡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 중앙위가 답답하긴 해도 내가 한 생각쯤은 이미 했겠지. 그래도 한 번 이야기는 들어보라는 뜻 아니겠소?”

세계 혁명, 전 인류의 해방이라는 궁극 목표.

그 과정에서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모두 취한다.

언젠가는 타도해야 할 군주정의 개라 할지라도, 유용하다면 얼마든지 손을 잡는다.

“내가 가서 직접 보고, 그때도 도저히 안 되겠거든 당에 의견을 올리는 게 좋겠지.”

무당도 깡패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럼 부탁하겠소, 동무.”

깡패는 곧바로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위험한 거래일 거라는 깡패와 무당의 추측은 옳았다.

그러나 태사 개인의 의사다, 라는 추측은 틀렸다.

회담 제의는 전적으로 감찰국장 주견하의 의지였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동부 전선을 통과, 고려의 국경 부근에서 공산당, 사회민주당 동지들과 만날 때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회담장인 낡은 게르 안. 익숙한 얼굴들과 인사를 주고받는다.

잠시 뒤, 기다리던 고려 측 대표단이 들어온다.

깡패 동무의 눈이 가늘어진다.

-어리군.

대표단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대학생, 소년처럼 보이는 얼굴이다.

미리 조사해 둔 내용을 바탕으로 추리해보자면, 저자가 그 ‘감찰국장’이라는 주견하겠지.

태사 미리안의 어린 연인으로 벼락출세한 자라는 소문이 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천재성으로 자기 입지를 다져나가는 남자라는 소문도 있다.

이미 충분한 전투 경험을 쌓은, 잔혹하고 강력한 이단이라는 소문도 있다.

과장된 면은 있겠지만 그 소문들 모두 일정 부분은 사실이라 생각하고 회담에 임하는 게 좋겠다.

깡패는 그렇게 판단하고 주견하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악수한다.

“고려의 감찰국장 주견하입니다.”

“내 동지들은 나를 ‘깡패’라고 부릅니다. 그 이상 알려드리지 못하는 건 양해해주시길.”

“충분히 이해합니다. 늘 위험에 몸을 맡기신 분들이시니까요. 혹시라도 ‘적’에게 잡혔을 때를 항상 대비해야죠.”

미처 죽지 못하고 적의 포로가 되었을 때, 조직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잡힌 당사자만 죽어야 한다.

그러려면 애초에 각 조직원들이 알고 있는 정보 자체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어떤 고문이나 유혹도, 그 입에서 나올 말이 ‘깡패’라는 별명과 인상착의 정도라면 소용이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조직의 지도부는 조직원을 몇 사람 희생시키든 무사해야 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조직의 가장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 있으니까. 그들이 잡히는 순간이 조직의 마지막이다.

바라트가 그토록 폭력적인 공산국가가 된 데에는, 정부 구조 자체가 이런 폭력적 환경에 기원을 둔 탓도 크다.

주견하가 그런 맥락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는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럼, 시간도 신경도 아낄 겸, 바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고려의 감찰국장께서 혁명동지들을 통해 이번 회담을 제안하신 이유는 뭡니까?”

주견하는 당황하지 않는다.

깡패는 그게 꾸며낸 태연함인지, 아니면 경험에서 나오는 능란함인지 관찰한다.

후자, 에 가까운 것 같다. 주견하는 이런 식으로 단도직입적인 대화에 익숙하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예상한 듯하다.

“전에 우리나라의 사회민주당, 공산당에 참으로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셨더군요. 우리 황제 폐하의 몽골 카간 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그 결과가 고려 범 좌익의 루우 지지로 이어졌고,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미리안이 몽골 내전에 좀 더 깊숙이 발을 들이밀게 되었다.

“하지만 고려 황제께선 숙부인 낭키아스 칸에게 카간 자리를 양보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걸로 무산된 일 아닙니까?”

“겉으로는 우리도 ‘무산된’ 것으로 보이려 하는 중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고려의 황제든 태사부든 아직 몽골 카간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심은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이죠.”

여기서 깡패는 핫, 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숨기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나는 그쪽과 손발 맞춰서 일하고 싶고, 그 일의 핵심 내용이 바로 ‘몽골 카간 자리’인데 그걸 감춰서야 되겠습니까.”

깡패의 얼굴이, 소리 내 말하지 않을 뿐 ‘호오’하는 감탄사를 발한다.

“요컨대 당신네가 작년에 치른 내전처럼, 우리도 이 내전에서 협력해달라?”

미리안이 고려의 범 좌익과 손잡고 허동주를 몰아냈던 것처럼, 이번 내전에서 고려 및 칸발리크 정부와 협력해 알타이 자유 공화국을 무너뜨려달라는 것인가.

주견하가 핵심을 찌른다면 깡패도 마주 핵심을 찌른다.

“네. 여러분이 바라는 노동운동의 자유, 노조와 노동자 정당 합법화, 노동자 권익 증진, 투표권…… 이런 것들을 대가로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나라의 사회민주당, 공산당에 해줬던 것처럼.”

지금 몽골 내 사회주의 정파들이 논의 중인 이야기가, 이 소년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아주 똑똑한 사람이다.

-요컨대 우리가 던졌던 질문을 역으로 계산해서, 대체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해냈다는 말이지.

좀 더 본격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쪽이 우리를 이용만 하고 버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그럴 생각이라면 이미 고려 내 사회주의 계열에 대한 숙청부터 있지 않았겠습니까? 고려 사회민주당, 공산당의 대표들과 함께 이 자리에 이렇게 모인 것보다 더 강력한 보장이 필요한지?”

“아니, 아니, 이보시오 감찰국장 동무. 어물쩍 넘길 생각은 하지 맙시다. 사정이 다르지 않소. 일단 이 몽골 내전은 ‘당신네 내전’이 아니오.”

고려 제3제국이 개입하고 있다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국의 개입일 뿐이다. 당사자가 아니다.

작년 고려 내전에서, 미리안은 내전의 당사자였다. 따라서 내전의 승리자로서, 지금 주견하가 말한 것과 같은 약속을 반드시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내전에서 고려 제국의 도움으로 칸발리크 정부가 승리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승자의 동맹’이라는 위치에 머무른다.

약속 이행의 권리는 어디까지나 몽골의 태사, 즉 타이시 볼로드에게 있다. 혹은 카간 게레센제에게 있거나.

“지금 단계에서 고려의 황제나 태사는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는 있을 거요. 그렇지만 그뿐이지. 볼로드든 게레센제든 완강히 거절하면 그걸로 끝. 당신네들도 ‘노력했지만 참 유감입니다’라고 입 딱 씻어버리면 그걸로 끝 아니오?”

매서운 추궁. 하지만 주견하는 슬며시 웃음을 띄운다.

깡패 동무는 이제 약간은 기대하는 기분이 되었다. 저 소년이 무슨 말을 할까.

“핵심을 놓치고 계시는군요.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그런 상황을 두고 볼 것 같습니까? 우리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보르지긴 루우 테무르, 황제 왕서라를 몽골의 카간으로 만드는 것.

“우리가 그쪽을 배신하면 카간 자리도 그만큼 멀어지겠죠. 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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