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없는 사람들의 교회(1)
“칸발리크에 다녀와서 표정이 계속 안 좋은데.”
재연은 수영의 어깨를 쥐며,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수영은 고개를 들고 재연의 얼굴을 마주 본다. 말할 듯 말듯, 입술을 달싹이다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것저것 너무 충격적인 장면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봐.”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고, 그 괴물이 온 도시를 뒤덮는 광경을 보았다.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재연은 수영의 말하지 않은 부분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사귀고 있는 데다, 재연 역시 내전을 비롯한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성장했으니까.
소년들에게, 그리고 소녀들에게 훨씬 더 일찍 철이 들 것을 요구하는 시대다.
“견하가 죄수들을 모으고 있는 것, 그게 마음에 걸리는 거야?”
재연의 말에 수영의 모든 행동이 잠깐 멈췄다.
이윽고 흡. 하는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고, 호소하듯 크게 뜬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솔직히 못 견디겠어.”
내전이 터지자 한족들이 학살당하는 걸 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동지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보았다.
신수덕이 저지른 학살…… 그건 내가 속한 파벌이 저지른 짓은 아니라고 외면했다. 한족들이 저지른 수많은 학살과 만행의 대가라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마음속에 일부러 증오의 불길을 지펴서, 잔인해져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를 차분히 식히고 생각해보면, 괴로움이 밀려든다.
평범한 고등학생 여자애가 이렇게 많은 살육에 가담하는 일이 흔할까?
주견하가 그녀에게 받은 첫인상대로, 그녀는 그냥 한 학급의 반장이자 모범생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고려 민족의 영광이라는 이상에 끌려 천손민족협회에 가입했었다. 모범생이라는 칭찬을 늘 받아온 삶이니만큼,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낭만적인 투쟁의 장이 아니었다.
피비린내 나는 처형장이었지.
그런데 이제 또 다른…… 아니 훨씬 끔찍한 살육에 힘을 보태라고 한다.
“유지나 걔는…… 주견하에겐 다 계획이 있을 거다, 뜻이 있을 거다, 그가 틀렸을 리가 없다면서 견딜 힘을 얻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니야.”
수영을 바라보는 재연의 얼굴에 연민이 스친다. 그는 연인의 곁에 앉았다.
수영은 예전부터 모질지 못했다. 영리하긴 했지만.
그게 재연과는 다른 점이다.
재연도 흔들린다. 이상으로 삼던 사람의 죽음 앞에서 방황했다.
그러나 일단 다시 방향을 잡으면, 결단을 내리면 상대적으로 침착하게 일에 집중한다. 필요한 만큼 잔인해질 수도 있다.
견하처럼 되긴 어렵겠지만, 재연은 나름대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했다.
그렇다고 수영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수영이 나약한 게 아니다. 이게 정상적인 인간의 반응이다.
견하나 자신이, ‘얼마든지 사람을 물건처럼 써댈 수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다.
그러니 위로를 해주고 싶다.
재연이 방황할 때, 수영이 버팀목이 되어 주었으니까.
“나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일단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은 잠시 끊긴다.
“이게 옳은 일이라는 생각은 안 해. 물론 합리화는 하지. 괴로울 때마다 하고 있어.”
솔직히 해야만 해서 하는 일인지, 아니면 저질러 놓고 ‘해야만 했다’고 합리화하는 건지, 그 경계가 늘 모호하다.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있지. 그 해결책도 나왔고. 그런데 그 해결책이라는 걸 ‘우리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니까, 양심 어딘가가 찔리는 거야.”
칸발리크 사태가 몇 달째 지속되고 있다.
고려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경제 규모가 있는 나라가 내전에 휩싸였고, 그 수도는 기능을 정지했다.
그곳에는 낮이 없이 오직 밤만 계속되고, 기이한 괴물들이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런 비정상적인 사태는 조속히 해결되어야 한다. 이건 그 누구라도 동의하는 바다.
“‘인간 제물’이 필요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나도 주견하 이 자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싶었어. 아니 솔직히 지금도 그래.”
견하는 무덤덤하게, 게레센제에게 들은 바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아즈텍 사람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먼 고대에 정말로 ‘태양을 잃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들이 그 문제를 해결했던 방법만이, ‘유일하게 검증된’ 것이다.
다른 실험을 해볼 여유는 없다. 시간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지금 이 순간에도 희생자는 늘어만 간다.
시레문 카간도 그 희생자 중 한 사람이다.
수영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알아! 알지만…… 그 사람들 모아서 ‘파멸인의 사체’를 먹게 한다니 그건……!”
파멸인의 ‘피’와 접촉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현상일 일으킬 것이다.
해결은 되겠지. 하지만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인가?
상처 입은 도시, 괴물들의 사체, 괴물이 되다 만 인간들의 사체, 살아남은 사람들의 악몽.
그리고…….
“그 모든 재앙을 해결한 우리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위업이 남겠지.”
단칼에 자르듯 재연은 그렇게 말했다.
죄악은 감찰국이 저지르고.
감당은 몽골…… 특히 게레센제 카간이 하고.
영광은 루우가 차지한다.
몽골인들은 그녀를 칭송하고 찬미한다.
통합된 동아시아, 다이온 연방의 지도자 자리에 한 걸음 더 다가선다.
“고려, 황제 폐하, 감찰국은 이 일로 충분히 ‘이익’을 거둬. 이익을 거두고 싶지 않다고 피할 수 있는 사실도 아니고 우리가 여기에 반발해 봤자……”
반발하면, 주견하는 주저 없이 그들의 ‘쓸모가 다했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다음은 폐기처분.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면 절대로 정신 놓지 말고, 그 등줄기 꽉 붙잡아야 해.”
재연의 말에 뭔가 느낀 듯, 수영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감찰국장 주견하의 명령만 충실히 이행하면, 계속해서 쓸모를 입증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어. 적어도 ‘우리가 죽임을 당한다’는 결말은 피할 수 있어.”
수영은 재연의 어깨에 볼을 기댔다. 그러면서 가만히 그럴까, 라고 중얼거렸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저지른 죄악의 대가를 피하지 못할 거야.”
이번에는 재연도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
-조유관 예비역 대장은 몽골 군부와의 유연한 협력을 통해 옹구차트, 새너두 방어전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음. 이러한 군사적 성과뿐만 아니라 몽골 고위 인사들과의 교류는 향후 양국의 관계 증진에 매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됨. 황제가 직접 보증함.
이러한 내용의 전보가 내무성 장관 안세규에게 전해졌다.
동시에 주견하를 통해 비슷한 내용의 라디오 방송이 이루어졌고, 신문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이 새로운 외무장관에 취임했음을 보도했다.
“이로써 황제와 감찰국장 사이의 연계는 확실하다고 봐야 합니다.”
안세규의 말에 리안은 침묵으로 답했다.
“태사부에 대한 항명은 아니지만, 적어도 위험성은 인지하셔야 합니다.”
태사의 최측근이 황제의 끄나풀이 되어 태사의 뜻을 거스른다.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현 상황은 이러하다.
“선을 넘은 수준은 아니에요. 아직 허용범위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조유관의 군복을 벗겨내는 데에는 성공했잖아요?”
주견하가 한 일이라고 해봤자 황제의 부탁을 받아 그 신변을 보호하는 정도다.
“주의는 주셔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만.”
“주 국장은 오히려 황제가 빚을 지게 하는 쪽으로…… 황제를 이용할 생각일 겁니다.”
그의 목적은 결국 리안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 물론 리안도 권력을 갈망하지만 견하처럼 모든 균형을 무너뜨린 권력 집중 상태를 바라진 않는다.
그 점이 그와 리안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주 국장을 상당히 신뢰하시는군요.”
“1929년 4월 1일.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그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어요. 그때 제 가신은 최효윤 중장과 주견하 대령 딱 두 명이었습니다. 이 정도 신뢰가 이상할 이유는 없죠.”
루우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손을 잡은 것뿐이다. 안세규와 리안의 동맹은 딱 그 정도다.
안세규는 견하가 선을 넘었다고 하지만, 리안은 안세규가 이 이상 선을 넘으면 가차 없이 쳐낼 생각부터 할 것이다.
리안은 안세규가 내전 발발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당장 황제의 증언만 터트리면 그걸로 안세규를 얼마든지 몰락시킬 수 있다.
그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어쨌는지, 안세규는 한발 물러났다.
“태사 각하의 판단을 믿습니다. 주 국장의 충성이 각하를 향하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각하께서도 아시겠지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주견하는 자신의 세력도 동시에 기르고 있다.
권력을 향한 집착, 열망은 어느새 리안도 느낄 정도로 넘실댄다.
아직은 ‘리안의 연인이자, 충실한 부하로서의 권력’이라는 선을 지키고 있지만…….
아니, 아니다. 그는 선을 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리안이 살아있는 동안은.
안세규의 입을 다물게 해야겠다 싶었는지, 리안은 표정과 어조를 바꿨다.
“조유관 문제는 우리가 그를 수도 동명에, 각료 중 한 사람으로 묶어두는 선에서 충분히 해결되었다고 보는데요. 그런데 왜 내무장관은 아까부터 ‘조유관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단순히 시비를 거는 게 아니다. 입 닥치게 하려고 아무 말이나 던지는 것도 아니다. 리안의 추궁은 이 와중에도 확실히 안세규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고려국민당 내에서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으로 성장할지도 모른다, 그걸 걱정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각하 앞에서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안세규는 재빨리 인정한다. ‘더 구린 구석이 있다’는 데에 리안의 생각이 미치게 하는 것보다는, 여기서 그치게 하는 게 좋다.
범 알타이 인민동맹을 지원했다는 사실은 절대로 알려져선 안 된다.
안세규의 순순히 인정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리안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안세규를 탐색하듯 살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조유관을 키워서 안 장관을 견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점은 안심하시길.”
“태사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다행입니다.”
“조유관에 대한 견제는…… 자신의 옛 부하들과 연락을 주고받거나 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지는 않는지 감시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하죠.”
조유관을 둘러싼 문제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새 외무장관은 황제의 지지, 스스로 쌓은 전공을 바탕으로 꽤 인기를 얻었다. 그와 동시에 고려국민당 내에서 서서히 자기 파벌을 구축해갔다.
안세규가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리안과 세규가 조유관에게만 신경을 쏟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정세의 변화는 너무 빠르다.
-몽골 반군, 서북부군이 담당한 전선을 향해 기습 대공세!
전차를 비롯한 기갑 전력, 기갑사와 같은 신병기를 최대한 동원해 김천열 대장이 이끄는 서북부군을 패퇴시켰다.
‘대패’라고 말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몽골 반군의 항공기 몇 대가 고려의 국경 지대까지 날아왔다.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위기감이 제국최고회의를, 태사부를 휘감는다.
그리고 견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상황에 딱 필요한 ‘계획’을 들고 리안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