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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201화 (200/541)

회수대치(10)

따라서 한족 반란의 경우엔, 노골적인 군사 개입을 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태사 미리안은 견하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듯,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무력 개입에는 저도 찬성이지만, 그 전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요.”

“뭐지?”

“이 반란의 성격이죠.”

지난 20년간 한족의 반란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키타이와 낭키아스 모두 나름의 지혜를 발휘해 이 피지배 민족들을 잘 통제해왔다.

생활 여건이 크게 악화한 것도 아니고, 친몽파 인사들의 영향력이 이유 없이 줄어든 것도 아닐 터.

“무장 독립 투쟁에 동조하는 자들이 갑자기 늘어났다면, 분명 이유가 있겠죠.”

그 이유를 짚어내야, 효과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

“짐작 가는 이유가 있긴 하지.”

짐작 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불과 얼마 전에 신수덕의 한족 학살과 그 수습 때문에 바쁘지 않았던가.

간신히 ‘보다 온건한 독립운동가’들을 설득해 ‘발해도’라는 행정구역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분노한 한족의 통제가 감당되질 않아서, 키타이와 낭키아스, 몽골에 영토를 나눠줘야 했고.

“신수덕이 뿌린 씨앗인가.”

“산동 사태야 어찌어찌 수습했다고는 해도, 그때 있었던 학살의 소문은 널리 퍼졌겠죠.”

신수덕은 단순히 ‘불온한 한족’을 죽인 게 아니다. 그때까지 고려의 산동 통치에 협조해주던 친려파 인사들, 그냥저냥 고려의 통치에 만족하며 살던 사람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죽여버렸다.

복종해도 죽인다.

협력해도 죽인다.

이렇게 되면 누가 정복자를 믿어주겠는가?

정복자는 반항하는 자들에겐 잔인하더라도, 굴복한 자들에겐 한없이 관대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반항하는 자가 되어버린다.

복종해도 살려준다는 믿음이 없으니까.

“그렇지. 우리는 지역 개편과 동시에 ‘발해도’를 만들어서 그 문제에 꽤 적극적으로 대처했어. 하지만 키타이와 낭키아스, 혹은 다른 승전국들은 기존 방침을 크게 변경하진 않았을 거야.”

“한족들 사이에 근본적인 불안, 불신, 분노가 퍼져 있다고 봐야겠죠.”

이렇게 일을 번거롭게 만든 것도, 신수덕을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이유다. 신수덕을 죽였다, 정복자는 이런 일탈자들을 확실히 처단한다, 그런 보장이라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한족들 마음속 불안을 씻으려면 ‘신수덕의 목’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반란의 해법도 우리의 ‘발해도’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건가.”

“무력으로 일단 우리 고려의 힘과 단호함을 보여주기는 해야 할 거예요. 타협은 그다음이 되겠죠.”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할 가능성이 남아있는 상태에선 쉽사리 타협에 응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무력 투쟁보다 쉬운 길’이 있다고 알려주려면, 먼저 무력 투쟁이 어렵다는 것부터 가르쳐줘야 한다.

“좋아. 현 사태 개입은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자고.”

리안의 허가가 떨어졌다. 그녀의 뜻을 거스르며 행동한다는 부담을 상당히 덜어낸 셈이다.

견하는 고려에 귀국하고 나서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리안은 그런 견하에게 마주 미소 지으며, 그녀답게 빈틈없는 조건을 들이밀었다.

지난번에는 견하에게 한 방 먹었지만, 이번에는 빈틈을 보이지 않겠다는 듯.

“딱 여기까지야. 다이온 연방인지 뭔지 설립하는 거,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고려가 그 연방 정부에 통합되어서는 안 돼. 고려를 중심으로 연방 각국을 통합하는 것도 안 돼. 고려를 비롯한 각국의 자주와 자치를 훼손하는 그 어떠한 것도 더는 안 돼.”

연방은 이름뿐이어야 한다.

루우는 몽골과 고려를 비롯한 각국의 군주로 군림할 수는 있으나, 통치할 수는 없다.

“고려와 몽골은 단순한 동군연합, 그 이상으로 나아가선 안 돼. 연방의 이름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것도 더는 안 돼.”

딱 잘라서 그렇게 말한다.

타협의 여지는 없다. 설득도 소용없다. 견하 네가 나의 연인이고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해도 용납할 수 있는 행동은 여기까지다.

그 의미는 분명히 견하에게 전해졌다.

굳어버린 소년의 얼굴을 본다.

안쓰럽다. 그에겐 기댈 곳이 없다. 나만이 그의 버팀목이다. 그리고 나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니까 절대로 나를 잃지 않도록, 그 어떤 요새보다도 튼튼한 권력의 요새를 쌓으려 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어찌 모를까.

리안 역시 견하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

리안은 책상을 돌아 앞으로 걸어 나왔다. 긴 머리카락이 살랑인다.

소년이 그 머리칼로 손을 뻗는다. 윤기가 흐르는 머리칼에 약간의 자부심을 느끼며, 매만져주는 소년의 손길에 만족감을 느끼며 바싹 다가갔다.

그리고 두 팔을 뻗어, 견하의 몸을 껴안았다.

먼 타지에서 싸우고 돌아온, 내 사람의 체온과 향기.

리안은 볼을 기대며 말했다.

“내가 그리는 고려의 미래는 이런 방향이 아니야.”

탓하는 말은 아니다. 아쉬움을 담은 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의 형태도 이렇지 않고.”

강대한 권력을 누리며 최대한 오래 집권하고 싶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치권의 합의와 국민의 동의를 바탕으로 이뤄내고 싶다.

제국의 영토적 확장, 그 과정에서 권력도 함께 확대해나가는 건 리안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요즘은 주변 사정에 말려들어 가는 느낌이 들어.”

사실이기도 했다. 그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돌아간 일이니까.

굳이 따지자면 루우의 야망과 견하의 강박증이 뒤섞이며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고 해야겠지만…… 더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나아갔구나 하는 씁쓸함이 있을 뿐.

소년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몽골에 다녀오기 전보다 조금 마른 것 같다.

그래도 잘생겼어, 내 남자친구. 그런 뿌듯함에 미소가 떠오르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는다.

그 말 대신 다른 말이 나올 것 같았으니까.

순간적인 충동이었지만, 너를 내칠까 생각했었다. 그 말이 나올까 봐 억눌렀다.

다시금 떠올리자 죄책감이 밀려든다.

살아남는 데 급급해서 억눌러 둔 죄책감. 속죄한다는 식으로 견하의 지위를 높여주며 감춰왔던 어두운 마음이 리안의 등을 짓누른다.

리안의 눈에서 그런 기색을 읽은 것이었을까.

견하도 팔을 뻗어, 리안의 등을 감쌌다.

리안은 자신의 표정이 아마 헤벌쭉- 해졌을 거라 생각해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대로 이 포근한 행복감에 파묻혀 있고 싶어 견하의 가슴에 이마를 댔다.

향기, 두근거림, 들뜸, 온기…… 그런 것들이 리안의 머리를 멍하게 만든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그래, 견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만…….

아니, 나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교육받지 않았다.

무책임하게 국가와 직무를 내팽개치는 사람이 아니다. 백부님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우리 가문의 혈통이 물려준 긍지와 의무에서 고개 돌리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리안은 견하의 팔을 풀었다.

손을 마주 잡은 채, 견하의 눈을 들여다본다.

의아해하는 눈빛이다.

그 눈빛이 사랑스러워서, 리안은 입술을 그 눈 위로 가까이 가져갔다.

소년이 살짝 눈을 감는다. 리안은 눈꺼풀 위에 입을 맞췄다.

그녀가 연인에게 전할 수 있는 최대의 위로.

분위기에서 뭔가를 읽었을까. 소년이 끄덕인다. 리안의 기분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아, 그러고 보니 키스는 오랜만이지.

리안의 눈꺼풀이 반쯤 내려온다. 두 사람의 호흡이 겹친다. 시선들은 각자의 입술에 집중하는 듯하다.

곧, 두 사람은 입을 맞췄다.

긴 입맞춤이었다.

애정의 확인이자, 동시에 약속의 확인이기도 했다.

***

나는 정말로, 연인 미리안의 안위를 위해서만 움직이고 있나.

이번 칸발리크 방문, 루우와의 협력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노골화한 것뿐이지 않을까.

효윤의 지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입을 맞추고 있는 이 순간에도.

살짝 눈을 떠 리안의 속눈썹, 속이 비칠 것같이 투명한 눈꺼풀을 본다.

나를 지켜준 사람. 나를 붙들어준 사람.

내가 지켜야 할 사람.

되뇐다.

나는 내가 권력을 얻고자 하는 욕심에 매몰되지 않을 거라고.

내가 얻은 권력은 오로지 이 사람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자기암시, 합리화와 애정의 맹세가 구분되지 않고 뒤섞인다.

이번에는 지킨다.

이번만큼은 지킨다.

이번에는 빼앗기지 않는다. 짓밟히지 않는다. 속지 않는다.

나는 차라리 빼앗고, 짓밟고, 속이는 쪽에 서겠다.

입을 뗀다. 입술 끝에 달라붙은 달콤함, 미묘한 열기가 리안과 견하 사이에 흐른다.

“오랜만에 같이 점심 먹을까?”

평범한 연인처럼, 리안은 견하의 손을 잡아끌며 집무실 문으로 향한다.

“네.”

웃으며 그렇게 답했지만, 머릿속에는 게레센제가 했던 말이 떠오르고 있었다.

칸발리크 문제의 ‘해결법’이.

이 해결법은 아직 리안에게 말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허가받지도 않았다.

즉, 아직 금지당하지도 않았다.

너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되뇌면서 견하는 다음 계략을 준비한다.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 스물한 살이지만 여전히 작은 소녀 같은 그녀를 위해.

***

내전과 함께 잠시 폐지되었던 중서문하성.

그 기능을 이어받은 내무성이 신설되었다.

초대 내무성 장관에는, 본래 외무성 장관직을 맡았던 안세규가 취임.

리안 앞에서 티는 내지 않았지만, 견하는 지나 앞에서는 꽤 짜증을 부렸다.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 감찰국 국장이에요. 정치경찰실 실장 자리에도 못 올랐는데 곧바로 장관까지 뛰어오를 수는 없어요.”

올바른 지적이다. 견하가 지금 차지한 감찰국 국장도 꽤 무리한 자리다. 그런데 내무성 장관까지 단박에 승진한다면 모두가 경악을 넘어 미리안 정권에 경멸을 드러내겠지.

무리한 승진일 뿐만 아니라, 견하 본인도 감당할 수 없다. 더 많은 지식, 그리고 경험이 필요했다. 앞으로 몇 년은 더 걸릴 것이다.

안세규가 학생 조직부터 시작해 고려민국 임시정부 주석이 되고, 또 제국의 외무장관으로 활동하면서 경험을 쌓아왔듯이.

“알아. 하지만 짜증이 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견하의 퉁명스러운 말에 지나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웃을만한 이야기라도 했나……?”

“항상 기계 같은 선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조금 인간 같은 투정을 부리시니까요.”

귀엽네요, 라고 후배는 덧붙였다.

그제야 견하도 피식 웃으며 표정을 풀었다. 그래, 짜증만 내고 있을 일은 아니다.

어차피 내전 이후 태사가 떠안은 막대한 업무량은 누군가와 나눠야 했다. 늦든 빠르든 내무성 창설은 일어날 일이었고, 그 자리엔 안세규나 류성일이 가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지.

그리고 안세규가 갔다는 건, 제국입헌당과 고려국민당의 연합을 루우에게 보여주겠다는 의도고.

“좋아. 나도 내실을 다져야지. 공부하고, 경험을 쌓고, 조직을 강화한다. 유지나 과장, 직원들은 모아뒀어?”

“네. 말씀하신 대로 대회장에.”

“오랜만의 연설이니까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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