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대치(8)
그럴싸한 신앙 고백을 늘어놓는 토칸의 눈앞에, 한 사람의 모습이 스친다.
스스로 살덩어리와 기계의 혼합물 안으로 들어간 한 소년.
주견하.
토칸 자신보다 더한 괴물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몹시 유쾌해졌다. 웃음이 나온다. 아마 이 앞에 있는 사람들에겐 ‘혁세주’에 대한 환희로 짓는 웃음처럼 보일 것이다.
단순히 기이한 모습을 보여서 괴물인 것은 아니다.
자신은 이렇게 정체를 숨기고, 어둑한 골목에서 살아간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사람들이 모르도록 늘 조심한다. 정치의 이면에서만 움직인다.
주견하는 다르다. 자신의 능력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정치의 전면에서 움직인다.
인간의 눈을 두려워한다면 아직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인간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상식으로 잴 수 없는 존재다.
주견하는 의식 자체가 자기보다 더 괴물에 가깝지 않은가.
하늘에 저렇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을 드러낸 ‘혁세주’가 괴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혁세주는 우리가 ‘이단’이라 부르는 초능력을 주셨습니다.”
좀 깨달으라고 이 우매한 인간들아. 저건 신이 아니야. 이미 멸망한 다른 세상의 그림자지.
“우리는 혁세주를 뵙고 우리의 본질을 깨닫습니다.”
전형적인 증상은 두통. 인간은 파멸인이든, 구체든, 저 혁세주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본질을 무의식중에 깨닫는다.
그 깨달음 끝에 파멸인이 되든지, 이단이 되든지 하는 것이다.
“우리의 본질은 곧, 우리가 ‘영혼 없는 불쌍한 존재’라는 것.”
그 본질을 잘 이해할수록 이단의 힘은 강해진다. 하늘 위 ‘혁세주’를 바라본 토칸의 전투력이 일시적으로 상승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물론 이 광신도들은 ‘그러니 우리는 영혼을 얻기 위해 더욱 신앙에 힘쓰자’고 생각하겠지만…… 그 결과는 파멸뿐이지.
하지만 동정심은 들지 않는다.
저쪽 세상에서 어리석은 일을 했던 사람들과 똑같이, 욕심이 파멸을 낳을 뿐이다.
가급적 빨리 파멸해줬으면 좋겠다. 저주스러운 몽골 제정이 빨리 무너지도록.
저주스럽다?
증오?
-그래, 나는, 나를 이런 몸으로 만들고, 또 무고한 사람들…… 이를테면 고아들을 데려다 무참한 실험체로 만든 몽골 제정을 증오한다.
환희에 찬 표정과 달리 토칸의 마음속 불길은 타오른다.
딸에게는 인자한 아버지, 형제에게는 든든한 형, 백성들에게는 어진 군주로 겉모습을 치장한 시레문이라는 남자.
그는 어찌 되어도 좋은 사람들은 ‘황실과 나라를 위한다’는 구실로 거리낌 없이 희생을 강요했다.
그러니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
공화혁명은 성공해야 한다.
부패의 퇴적지인 수도 칸발리크는 멸망해야 한다.
그렇게 증오를 불태울 때마다 몸 안에서, 먼 옛날 받았던 고통스러운 실험의 흔적이 꿈틀대는 것만 같다.
그 감각이 증오를 더욱 부채질한다.
***
저쪽 세상 사람들은 ‘영혼’을 얻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고깃덩어리가 감히 영혼을 얻고자 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세상 모든 인류의 파멸.
‘이’의 혼돈. 형체의 붕괴.
그렇게 파멸인이라는 괴물이 되었다.
물론, 성공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소수지만 성공 사례가 먼저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 인류를 판돈으로 걸고 도박을 시도한 것이다.
아마도 신종(神種)의 선택을 받은 게 아닐까 싶은, 초능력자들.
이들은 자손을 낳았고, 그 자손들을 이쪽 세상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이단’.
많은 이단이 조상과 부모로부터 내려오는 혈통을 통해 능력을 드러낸다.
혹은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신종’의 선택으로 이단이 된다, 고 추정된다.
어쨌든.
이 극소수의 성공 사례들은 어찌어찌 ‘영혼 비슷한 것’이라도 건져낼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영혼 비슷한 것’일 뿐,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은 아니다. 지옥으로 떨어지지도 않고 천국으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육체를 변이시키는 원인 물질……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일부를 ‘추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이 견하와 리안, 효윤이 제1대학 총장실에서 처음 목격한 ‘하얀 괴물’.
어린 토칸을 비롯한 실험체들에게 주입된 것이기도 하다.
인위적으로 이단을 만드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시레문이 지원하던 실험은 보통 이런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깔끔하고 고통 없는 죽음은 아니었다. 온갖 체액을 뿌려대며 더럽고 고통스럽게 죽었다. 파멸인으로 변이하다 말고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이 칸발리크 거리 곳곳에 널려 있는 시체들처럼.
실험이 성공해 ‘살아남은’ 자, 즉 이단으로 재탄생한 자들은 다른 이를 이단을 만들 수도 있다. 이는 파멸인도 특수한 경우에 한하여 가능하다. 이단과 파멸인의 기원은 결국 같기 때문에, 이런 특성을 공유하는 것이다.
드물게, 그렇게 만들어진 이단이 사망하면 주입된 ‘하얀 괴물’만 튀어나와 다른 적당한 육신을 찾아내려 든다.
독버섯이 포자를 퍼트리듯. 전염병이 퍼져나가듯.
-어쩌면 주견하와 나는 같은 ‘이단’을 기원으로 뒀을지도 몰라.
토칸은 그런 상상을 해본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실험에 쓰일 ‘재료’의 수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도대체 어떤 경로로 주견하가 이단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생각하니,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그 전투가 묘한 아련함을 불러일으킨다.
-이건 ‘동포애’ 비슷한 것일까?
다시 만나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죽든지 그가 죽든지 하여튼 결판을 내면, 어느 쪽이든 더 높은 이해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아, 아니지.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니까 주견하가 죽는 쪽이 되어야지.
***
비슷한 추측을, 같은 시간 루우도 하고 있었다.
시레문의 외동딸이라지만…… 어쩌면 자신은 ‘가장 총애하는 실험체’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뭐 이제는 진심은 뭐였는지 물어볼 수도 없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다면 따로 자료를 모은다. 아니면 물어볼 사람을 찾아낸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루우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칸발리크에 머물러 있었고, 토칸이 황궁에 쳐들어와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는 모습을 봤다.
하얀 촉수들을 엄청나게 길게 뻗어 공방을 주고받던 모습.
그 모습을 토대로 의심과 추측의 조각이 하나둘 모여들고, 얼추 모양을 갖춰나간다.
그리고 마침 그에 대해 물어볼 사람도 칸발리크에 있다.
루우는 볼로드를 불렀다.
“나한테서 실험에 쓸 재료를 ‘추출’한 적이 있나요?”
단도직입적인 질문은 ‘알 만큼은 알고 물어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되지도 않는 변명이나 거짓을 늘어놓으면 무서운 질책이 날아온다.
군주를 오래 섬겨본 볼로드는 루우가 무엇을 물어보는지 직감했다. 그는 깔끔하게 시인하기로 했다.
“예.”
소녀의 얼굴에 역시나, 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저는…… ‘순도가 높잖아요?’”
칭기스 카간도, 고려의 태조 왕건도 아마 이단이거나, 이단의 혈통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때는 이단이라는 개념은 없었겠지만.
푸른 늑대와 흰 암사슴, 그리고 용.
이 모두가 ‘신종’으로 추정된다.
그 신종의 선택을 받은 이단들이 있다. 이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유로, 대체 어떤 경위로 이런 강력한 이단들이 출현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어쨌든 루우의 ‘순도가 높다’는 말은, 이단으로서 능력을 발휘할 때 그런 신종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니 실험체로서는 참으로 가치가 높았겠다는, 살짝 비꼬는 말.
“……송구합니다.”
“어차피 아버지의 뜻이었을 텐데요 뭘. ……그럼 나한테 추출한 재료들을 어디에 썼는지, 대충이라도 기억하고 있나요?”
볼로드는 잠시 대답하지 않는다. 소녀 황제는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할까.
그런 볼로드의 계산을 읽었는지, 루우는 질문의 범위를 좁혀준다.
“고려의 안세규 외무장관이나, 고려민국 임시정부의 누군가에게…… 제공한 적이 있나요?”
소녀의 눈이 금빛으로 변한다.
얕은 수작을 부리면, 정치적 계산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찢어 죽일 것이다.
볼로드의 직감은 죽음을 회피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제공, 했습니다. 아마 그쪽에서 인위적으로 이단을 양성하는 사업에 썼을 겁니다.”
루우는 고개를 돌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짐작이 사실로 드러날 때는, 확실히 맛을 보기 전까진 그 사실이 달콤한지 쓴지 알 수가 없다.
이번에는 쓴 쪽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이쪽에서 알 수 없겠죠.”
“예, 직접…… 그쪽 조직을 들춰보지 않는 이상은.”
루우는 잠깐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루우의 신종에 기원을 둔 이단이 만들어졌고, 그 이단은 고려민국 임시정부 소속으로 태사 미리안을 기습했을 가능성이 높다.
루우가 그를 죽였고, 죽은 그 이단의 몸에서 하얀 괴물이 나외 최후의 발악을 한다. 그것은 견하를 새로운 보금자리로 삼았다.
견하의 이상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들은, 모두 루우의 ‘순도 높은 신종’에 기원을 두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루우에게서 추출되어 암살자를 거쳐 견하의 몸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변이가 일어난 걸까.
캐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캐다 보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것이다.
리안도, 견하도.
그리고 루우 본인도.
안세규 및 고려국민당과의 연립 정권은 파탄이 날 테고, 또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다. 아니 죽는다. 미리안이든 주견하든 어물쩍 넘어가는 성격들이 아니다.
충분한 정보를 얻었기에 리안은 볼로드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이제는 혼자 고뇌할 시간이다.
야심을 달성할 기회와 힘 모두 손에 넣었다. 하지만 실행할 수 있다고 해서 다 실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즘 루우는 그걸 배웠다.
마음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는 일들도 있었고,
돌고 돌아 어마어마한 대가를 요구하는 일들도 있다.
“다 가질 수는 없지. 다 가질 수는 없는데……”
허리를 느슨하게 풀고, 다리를 쭉 뻗는다. 그런 흐트러진 자세로 푸념을 늘어놓는다.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데. 내가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카이사르가 말했듯 주사위는 던져졌다. ‘다이온 연방’이라는 아이디어는 게레센제에게 제시되었고, 게레센제는 쿠릴타이에서 그걸 추진하겠다고 발언했다. 여기서 루우가 발을 뺄 수는 없다.
“그건 내 발상이야.”
자신을 위해 노력해 준 모든 사람들의 고뇌가 담긴 것이다.
게다가 다이온 연방 창설이 추진되기 시작한 이상, 고려가 그것을 가져야 한다. 고려 서쪽에 그냥 강대국 하나를 덩그러니 만들어주고 끝낼 순 없다.
양 손바닥을 펼친다. 허공에 그녀의 언월도가 소환된다.
고뇌를 베어버리겠다는 듯.
의자에서 일어나, 넓은 방 안에서 언월도를 휘두르며 춤을 춘다.
문득 동작을 멈춘다.
언월도 끝은 관성을 모르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