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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98화 (197/541)

회수대치(7)

가진 게 많아지면, 겁도 많아지는 법이다.

그 모든 걸 잃게 될까 봐.

게레센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제 예케 몽골 울루스, 즉 대몽골 제국의 카간이 되었다. 먼 옛날에는 중화라 부르던 대륙의 남쪽 절반을 영지로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그 위에 북방 대초원까지 지배한다.

어쩔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한다.

본래 영지인 낭키아스에서는 물리적으로 멀어졌다. 카간이 된 그는 칸발리크에서 제국 전토를 통치해야 한다. 낭키아스의 수도 응천에는 이제 일 년에 한 번 정도, 기념 삼아 방문하게 될까?

몽골 황위도 마찬가지다.

울제이가 꿰뚫어 보고 그 참모들이 지적했듯이, 게레센제는 기존 칸발리크 정권의 승인과 고려의 지원으로 황위에 올랐다.

조카 루우 테무르가 한발 물러나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찬탈.

루우 테무르는 자신을 그저 ‘징검다리’로만 여기고 있다. 일단 카라코룸의 반란을 비롯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면, 이제 숙부에게 잠시 맡겨두었던 황위를 접수하려 들지 않을까.

게레센제의 영지인 낭키아스까지 동시에.

그런 야심을 굳이 감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막을 테면 막아봐라. 하지만 그 순간 당신 목숨도 황위도 끝이다. 나는 ‘어차피 못 먹을 황위였어’라며 고려 황위에만 만족하면 된다…… 는 식.

게레센제의 침착했던 면모는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그가 본래 지녔던 황족으로서의 품격과 학자로서의 지성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매일 신경이 날카로워져만 간다.

당장 구 칸발리크 정부의 관료들과, 새로 낭키아스에서 올라온 관료들이 눈앞에서 갑론을박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저들에게도 생존이 걸린 싸움이다.

신정부의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자리를 누구에게 주고, 이익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머리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붉은 존재와, 나라의 절반 이상이 반군 손에 넘어간 상황이 먼저 아닌가, 일반 국민의 상식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 법하다.

그러나 잠깐의 양보가 영원한 정치적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것이 일견 어리석어 보이는 이 싸움을 반복하는 이유다.

어리석다고만 생각해 이 싸움을 외면하면…… 그래, 이를테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낭키아스의 관료들은 기본적으로 게레센제의 편이지만, 언제까지고 한계 없이 지지해주는 건 아니다.

낭키아스에 남겨둔 기반을 지켜줌과 동시에, 칸발리크 중앙 정계 진출이라는 적절한 보상도 해줘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한다면? 이 관료들이 더는 게레센제를 따를 까닭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게레센제가 자기들을 카간 자리까지 올라가는 데 쓸 도구로 여겼다고 느끼게 된다면?

-칸발리크 정부는 우리들을 동료가 아니라 지역 토호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그들의 뇌리를 스친다.

게레센제에게 충성한 보답을 받을 수 없다는 불안. 그 불안감이 들자마자 그들은 낭키아스로 돌아간다.

그리고 현지 주민들, 한족 독립운동세력과 협력, 게레센제 없는 낭키아스의 독립으로 나아간다.

이미 그 땅을 고향으로 삼는 몽골인은 많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나면, 그날로 루우 테무르가 찾아와 이렇게 말하겠지.

“지지 기반도 없는 숙부님께 카간 자리를 맡겨둘 수는 없죠. 내려오셔야겠는데요.”

그럼 반대로 낭키아스 관료들을 적극 밀어주면 어떨까.

칸발리크 관료들이 떨어져 나간다. ‘역시 루우 테무르를 옹립할 걸 그랬어.’ 이런 여론이 확산된다. 그럼 루우 테무르가 그걸 지켜보고만 있을까?

더욱 확고한 명분이 생겼으니 거침없이 돌진해오겠지.

곁에 앉은 어린 아들, 바이다르를 내려다본다. 조금 겁먹은 듯한 눈으로 어른들의 말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경험을 쌓으라고 각료 회의에 데려왔는데, 열두 살에겐 조금 일렀을까.

불안하다.

내가 이 아이에게 황위를 물려줄 수 있을까.

사촌 누나의 위협을 걱정해야 하는 소년이라니. 이 얼마나 서글픈 말인가.

낭키아스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혹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바이다르를 낭키아스의 칸으로 봉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곧 거둬들였다.

낭키아스 파벌이 어린 바이다르를 납치하다시피 해서 멋대로 독립국가를 만들어버리면, 대응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바이다르 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게다가 이번에도 루우 테무르가 걸린다. 루우 테무르와 승부가 날 때까지 아들을 안전한 곳에 피신시켜 두겠다는 듯한 모양새가 되니까.

루우 테무르는 그런 조치를 자기와 싸워보겠다는 결의로 받아들일 것이다.

모두가 욕심쟁이들이다.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공을 세운 자는 많은데, 자리는 부족하다.”

한숨을 내쉬듯이 게레젠제가 입을 열었다. 일단 카간의 앞이다. 모두가 조용해져서 카간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일단은 있는 자리를 생각해보자.”

몽골 의회-쿠릴타이의 의원들 중 카라코룸의 반란 정권으로 넘어간 자들이 있다. 각 관청의 장관, 차관 자리도 몇 개가 그렇게 비었다.

그 자리는 자연히 낭키아스 출신들이 채운다. 여기에는 양측 모두 불만이 없다.

문제는 자신이 지금까지 게레센제를 모신 세월과 공로를 인정해주길 바라지만,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것.

그런 자들은 선거를 치러서 의원을 다시 뽑거나, 능력에 따라 자리를 재분배하자고 주장한다.

당연히 칸발리크 관료들은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그 어떤 상황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이 갈등을 쭉 지켜본 끝에 게레센제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이것이었다.

“자리를 늘린다.”

자리를 늘리려면 기관을 확장해야 한다. 국가 기관을 확장하려면 국가의 외연을 늘려야 한다.

“일전에 제안되었던 ‘다이온 연방’, 우리는 몽골 본토와 낭키아스를 합쳐 보다 거대한 하나의 조국을 이룬다. 늘어난 인민과 국토는 더 많은 관료 기구를 요구할 터. 그렇다면 신하로서 이름을 드높이길 바라는 그대들의 열망도 어느 정도는 충족되지 않겠는가?”

그렇다. 이렇게 된 이상 게레센제도 다이온 연방의 창설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루우 테무르의 계획에 말려드는 것 같지만 별다른 대안이 나오질 않는다.

어쨌든 ‘다이온 연방’이라는 정치체가 구성되면, 그에 따른 여러 가지 기구도 새로 정비되거나 창설된다.

예를 들어 ‘연방 의회’같은 기구가 그러하다. 기존 쿠릴타이는 그 연방 의회의 ‘상원’으로 삼고, 몽골과 낭키아스에 다시 총선을 실시해서 ‘하원’을 만든다.

물론 낭키아스의 한족 전원에게 선거권을 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자리를 늘려나가면, 모두가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결과를 낳겠지.

“그러므로 그대들은 새로운 연방 체제의 창설을 고민하라.”

관료들이 고개를 조아린다. 오늘의 논쟁은 이것으로 점차 마무리될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떤 논쟁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당장 ‘다이온 연방 창설’이라는 해결책은, 루우 테무르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향후 이 연방에 가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고려 제국이 ‘참관국’ 자격을 얻으니까.

연방 의회에는 고려의 제국최고회의에서 파견한 자문위원들이 출두할 테고.

안 그래도 고려 황제는 몽골 카간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그래서 고려에서 파견한 기갑사 부대가 게레센제의 근위대 대신 칸발리크 황궁을 장악한 거고.

얼마 전에 있었던 적 이단의 황궁 습격. 그것 때문에 이 기갑사들을 다른 데 보내지도 못한다.

옹구차트-새너두 전선에 적 기갑사가 출현한 건 참으로 좋은 구실이건만…….

형, 시레문 카간이 그렇게 죽은 후로 칸발리크 정계는 카간 암살 시도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때문에 더더욱 기갑사들을 내보낼 수가 없다.

거기다 나쁜 소식만 자꾸 들려온다. 동생 울제이가 움직여, 남쪽 몽골군이 크게 패퇴. 칸발리크를 코앞에 두고 있다.

막 탄생한 게레센제의 정권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뭔가 조치는 취해야겠는데.”

가용 전력이 모자라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빌려 올 수밖에 없다.

“고려군을 더?”

하지만 고려군의 개입이 늘어날수록, 그에 비례해 루우 테무르의 영향력은 커져만 간다. 그건 게레센제의 입지는 좁아져만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루우 테무르는 사실상 몽골 제국의 섭정 행세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신수덕이 남겨준 걸 꺼낼 수밖에 없나.”

알타이 자유 공화국의 기갑사는 신수덕이 넘겨준 설계도를 기반으로 한 것일 터. 그리고 그 설계도는 낭키아스도 받았다.

게레센제도 급하게나마 몇 대 만들어 둔 게 있다.

“하지만 그걸 지금 꺼내고 싶진 않은데…….”

어디까지나 비장의 수로 남겨두고 싶다. 꺼낸다면 울제이와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이든지, 루우 테무르 세력을 몽골에서 완전히 몰아낼 때 꺼낸다.

그렇지만 기갑사를 감춰두고 있다고 해서 뭔가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라, 게레센제의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

***

또 다른 반란의 불길이 치솟았다.

이번에는 낭키아스 서쪽과 남쪽 변방, 한족의 독립운동이다.

회수에서 키타이군과 대치하느라 주력 대부분을 북방 경계에 묶어두었던 낭키아스군은, 이 반란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게레센제가 응천에 남아있었다면 뭔가 결단을 내렸겠지만, 지금 그는 칸발리크에 있다. 응천에 남은 관료들은 반란이 일어난 지역의 기존 주둔군만으로 상대할지, 북방 국경에서 병력을 빼도 좋을지, 뺀다면 얼마나 빼야 할지 헤매기만 할 뿐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반란은 주변 도시들로 확산되어 간다.

“카라코룸의 높으신 분들께서는 기뻐하시겠군.”

칸발리크의 어느 깊숙한 골목, 조직원들의 정보망을 통해 한족 봉기 소식을 들은 토칸의 중얼거림이었다.

카라코룸을 향해 죄어들던 포위가 조금은 느슨해질 것이다. 그것으로 신 공화국 정부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된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지금 토칸의 관심사는 아니다. 토칸은 눈앞의 집회에 집중했다.

하늘 위 붉은 존재, ‘혁세주’를 모시는 종교 행사를.

토칸은 거기 모인 사람들의 면모 하나하나를 뜯어보듯 살핀다.

본래는 칸발리크 정부를 흔들 목적으로 몇 년간 기획한 종교였지만, 생각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지금은 토칸의 이해를 벗어나 멋대로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가 될 만큼 성장했다.

신도들이 마련한 연단에서 누군가 연설을 한다. 기도하듯 조아리고 흐느끼고 소리치고 아주 그냥…… 난리를 친다.

그걸 지켜보다 자기 차례가 되자 토칸은 연단 위로 올라갔다. 혁세주에 대한 신앙을 연기해보자.

여기서는 그가 알타이 자유 공화국에서 왔다는 걸 아는 자가 없으니, 마음껏 능력을 드러내도 좋다.

토칸은 손을 햐안 촉수들로 변이시켰다.

사람들이 숨을 삼킨다.

“저에게도 혁세주께서 은총을 내려 주셨습니다.”

토칸이 손을 들어 올리자, 촉수들도 찬미하듯 치솟아 올라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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