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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95화 (194/541)

회수대치(4)

벌집을 건드려 놓고, 붕붕거리는 그 곤충들을 피해 도망치는 것 같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 긴장감이 못내 자극적이다.

칸발리크 황궁은 고려에서 동원된 저…… ‘기갑사’라는 신병기가 철통같은 방어를 펼치고 있다. 실제로 쇠로 된 통이기도 하고.

그걸, 멀리 떨어진 건물 옥상에서 하얀 촉수를 뻗어 두들긴다.

마치 저격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덩텅, 하는 큰 소리와 함께 기갑사가 벌러덩 나자빠진다.

거리도 있고 빠르기도 하니까 타격을 주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금방 일어난다.

굉장히 튼튼할 뿐만 아니라 안에 든 이단도 잘 보호하는 기계인 모양이다.

어쨌든.

촉수를 거둬들인다.

총알과 달리 궤도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황궁의 기갑사들은 금방 토칸이 서 있는 건물을 가리킨다.

이대로 도망갈까, 아니면…….

토칸은 옥상에서 도약했다.

공중에 떠오른 토칸 주위로 기괴한 붉은 문양이 퍼져나간다.

마치 그 문양의 신비한 힘이 밀어주기라도 하듯, 토칸은 허공을 날아 황궁 안을 향해 일직선으로 짓쳐들어온다.

멀리서 볼 때는 활공하는 것 같지만 실제 속도는 아주 빠르다.

순식간에 포탄처럼 날아와 황궁의 돌바닥을 깨부수며 착지.

아까 전 촉수도 그렇고, 이런 비행과 착지 역시 일반적인 이단은 불가능한 움직임이다.

하늘 위 ‘붉은 존재’를 마음껏 쳐다본 직후이기에, 이 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너무 오래 쳐다보면 나도 괴물이 되겠지만.”

아니 이미 괴물인가. 토칸은 촉수를 거대한 낫으로 변형한다.

폭이 어른 하나, 길이가 어른 둘의 키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낫.

빙글 돌며 기갑사 두 기를 베어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안에 든 이단은 터져버리고, 밖의 기계는 푸쉬쉬 연기를 내며 작동을 중단한다.

“폭발이라도 하면 멋있을 텐데 좀 아쉽네.”

여유롭게 그런 말을 하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기갑사들을 본다.

자세를 잡는다. 한 합 정도만 상대해주고, 다시 황궁을 빠져나가자.

할 일은 이것 말고도 또 있으니까.

하지만 기갑사들이 달려들기 전에, 토칸은 뒤쪽에서 맹렬한 기세로 접근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망설이지 않고 방향을 틀어 그 무언가에 맞선다.

하얀 칼날이 부딪친다.

“호오…….”

토칸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잘생긴 소년이다. 하얀 제복. 이 외양은 전해 들은 바가 있다.

아마 이 소년이 고려 제3제국의 감찰국장 주견하겠지.

위기라고 판단하니까 망설이지 않고 본인이 뛰쳐나온 건가.

낫을 하나 더 만들어내 위협하듯 휘두른다.

주견하는 순식간에 토칸과 거리를 벌린다.

전투 감각은 좋군.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성격은 아니야.

만나봤으면 했지만,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 실제로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부하들 선에서 해결해도 충분하니까.

이렇게 튀어나와 주다니 정말 고맙군.

그런 토칸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견하는 흘끔, 피와 연기를 흘리는 망가진 기갑사를 본다.

검을 들지 않은 왼팔로 기갑사를 열어 안에 든 시체를 꺼낸다.

조심스럽게 눕힌다.

“……전우를 죽여서 화가 났나?”

실컷 비아냥거릴 생각이었는데 별다른 반응은 없다.

뭐지? 몽골어를 못 알아듣나? 아니, 말하는 게 어눌하긴 해도 알아듣는 실력이라 했는데.

견하는 말없이 왼손의 붕대를 푼다.

은빛 손가락이 드러난다.

“저게 그 보고됐던,”

기계처럼 변해버린 주견하의 왼팔. 정말이었군.

견하는 조종석의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가진 기갑사에 올라탔다. 그 행동이 너무 기이해서 토칸은 공격할 생각도 않고 바라만 봤다.

고장 난 기갑사에 타서 뭘 하려고?

그 말에 답이라도 하듯 견하는 자신의 은빛 왼팔을 기갑사에 쑤셔 넣는다. 거기가 팔을 넣을 자리가 아닌데도, 무식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토칸이 다시 공격을 퍼부으려 자세를 잡을 때,

내장의 점막 같은 뭔가가 견하의 몸을 감쌌다.

“저건 또 뭐야.”

그 점막에서 또다시 뻗어 나온 힘줄, 핏줄, 근육이 부서진 기갑사의 틈새를 메우고, 표면을 뒤덮어 나간다.

***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온통 붉게 물든 시야 속에서, 견하는 그런 판단을 내렸다.

하늘에서 포탄처럼 떨어져 기갑사들을 쓰러뜨릴 정도라면 보통 이단이 아니다.

다른 이단들에 비해 전투 경험이 뒤떨어지는 견하가 당해낼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다.

만약 이 녀석이 양동 작전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도 매우 위험한 녀석이다.

카간과 황제 곁에는 효윤을 남겨뒀지만…… 효윤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한 합 만에 그렇게 판단하고, 견하는 물러섰다.

그리고 자신의 최대 전력을 발휘할 방법을 찾았다.

허동주를 죽였을 때처럼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연구자들은 이걸 불가살 단계, 라고 부른다지.

생명과 기계의 이가 혼돈과 폭주를 일으키는 상태.

그래서 배관은 핏줄이 되고, 전선은 신경이 되어 뒤섞인다.

-인간의 육신에 영혼이 없다면, 기계와 별 차이도 없지 않나.

둘이 이렇게 섞일 수 있는 건 그런 공통점 때문이 아닐까, 의미 없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까지고 의미 없는 사변만 늘어놓을 순 없지.

검붉은 핏물 같은 진액이 기갑사의 왼팔에서 뻗어 나온다. 그걸 그대로 검의 형태로 만든다.

돌진.

가뿐하게 테러범의 낫 두 자루를 튕겨내고, 목을 노리고 거리를 좁힌다.

테러범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른다. 외양도 외양이지만, 이 덩치에 이렇게 빨리 움직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해서겠지.

오른팔에도 검을 하나 더 만든다. 다시 달려드는 낫을 튕겨낸다. 그 사이 테러범은 거리를 벌린다.

검을 채찍 형태로 변형.

두 자루로 양쪽에서 협공하듯 후려 갈긴다. 테러범의 자세가 무너진다. 잡을 수 있다. 다시 돌진한다.

다른 기갑사들은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다. 견하는 그러라고 일부러 요란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테러범은 기갑사도 가뿐하게 베어내는 괴물이다. 쓸데없이 희생을 늘릴 순 없지.

-저놈은 내가 잡는다.

희생을 줄이는 방법이자, 가장 성공 가능성이 큰 방법.

동시에 생포까지 할 수 있다면…… 뭔가 정보를 캐낼 수 있겠지. 품은 좀 들겠지만.

견하 자신도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는 공방이 오간다.

하얀 낫이 견하가 있는 기갑사의 복부 쪽을 가를 듯 다가오면, 검붉은 채찍 하나가 밀어내고, 다른 하나가 테러범을 짓뭉갤 듯 내리친다.

상대는 막아내긴 하지만 힘에서 기갑사를 따라잡지 못한다. 다시 자세가 무너진다.

이쯤 되면 도망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자 아니나 다를까 바로 꽁무니를 뺀다.

내려올 때보다 기세는 약해도, 화살처럼 공중을 향해 날아간다.

하지만 저 테러범이 계산하지 못한 게 있다.

그가 하는 건 지금 견하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도약한다.

순식간에 공중에서 따라잡는다.

어깨 너머로 돌아보는 테러범의 눈에 경악과 공포가 떠오른다.

공포.

그렇다. 남에게 심어주는 공포는 늘 만족스럽다.

머리하고 몸통 정도만 멀쩡하게 남겨두면 될 것이다.

다른 부분은 필요 없으니 잘라-

그렇게 생각하는데, 공중에서 기갑사의 움직임이 멈췄다.

뭐지? 기갑사의 출력이 내 생각보다 좀 모자랐나?

하지만 추락하지도 않는다.

그제야 주변을 감싼, 빛의 덩어리가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대한 짐승의 앞발이다.

용의 앞발.

루우가 소환한 용의 형상이, 공중에서 견하를 붙든 것이다.

***

루우는 검붉은 채찍과 하얀 낫, 각기 두 자루가 날뛰며 일으키는 폭풍을 봤다.

그 무기들이 그리는 궤적만으로도 거대한 돔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얼핏 대등하게 싸우는 듯 보이지만, 곧 우열이 가려진다.

견하 쪽이 이기고 테러범이 진다. 이길 수 없음을 느낀 테러범이 도주한다.

승부가 가려졌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다.

견하가 다시 기갑사에 올라타 ‘불가살 단계’로 나아갔기 때문에.

그냥 본인 몸으로 싸워도 저 정도 전투를 벌이면 불안한데, 거기에 불가살 단계라는 변수까지 끼어들었다.

더 추격하게 둘 수는 없다.

강제로라도 전투를 끝마치게 하고, 견하의 몸부터 챙겨야 한다.

어두운 하늘을 밝히는 거대한 빛의 용이, 벼락을 두른 채 황궁 한복판에 나타난다.

루우가 손을 뻗자 용도 앞발을 뻗어, 부드럽게 견하의 기갑사를 붙들어놓는다.

날뛸 줄 알았지만 의외로 금방 얌전해졌다.

기갑사를 그대로 땅에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동명시 지하철에서 피의 구체를 물리쳤을 때처럼, 기갑사가 있는 공간이 찌그러진다.

점막이 요동치고 내장인지 힘줄인지 모를 뭔가가 꿀렁인다. 피처럼 보이는 검붉은 액체가 터져 나오고…… 그마저도 쭈그러든다.

점막을 찢고 땀 범벅이 된 소년이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보다는 깔끔한 상태다.

쭈그러든 ‘기갑사였던 것’은 이제 견하의 왼팔 부근으로 모여들었다가, 그대로 흡수되듯 사라진다.

-왼팔의 변화를 살펴보는 건 나중에.

살짝 비틀대는 견하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한다.

소년의 땀 냄새가 왈칵 끼쳐 왔지만 불쾌하진 않았다. 체육관에서 견하에게 격투를 가르칠 때도 그랬지만, 이번은 조금 다르다.

조금, 안쓰러웠다.

“……카간 쪽은?”

“별일 없어. 무사해. 저 녀석 단독 돌입이었던 것 같아.”

“무슨 의도였을까.”

“글쎄. 황궁의 경비가 어느 정도인가 재보러 온 걸까.”

루우의 말을 들으며 견하는 입을 다문다. 루우는 그의 옆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보다 더 지쳐있는 것 같다.

들쳐업듯 견하의 팔 안쪽에 몸을 붙이며, 루우는 말했다.

“조급해하지 마. 쉬면서 생각해보자. 아직 시간은 있어.”

대답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응”이라는 대답이 루우의 귓가에 울렸다.

괜히 한 번, 자세를 고쳐본다.

***

게레센제의 카간 즉위가 알려지자, 가장 먼저 행동한 쪽은 키타이의 울제이였다.

물론 그 전에 고려 내에서는 공산당이나 사회민주당이 아쉬움을 표하며, 황제 폐하의 뜻에 따르고 계속 지원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려 국내의 일.

정세에 본격적인 영향을 끼친 건 울제이의 움직임이다.

회수에서 낭키아스군과 대치하는 부대들은 그대로 둔 채, 북쪽 국경의 부대들만 북상.

의외의 기동을 선보이며 남부 국경의 몽골군 부대들을 격파, 전선을 수십 킬로미터나 북쪽으로 밀어냈다.

“울제이 숙부가 이 정도의 전술가였던가?”

루우마저도 당황한 나머지 무심코 그런 물음을 내뱉었다.

게레센제는 다소 고통스러워 보이는 침묵을 지켰다.

“다소간 수적 열세는 있었지만, 장비나 보급 면에서의 문제는 없었을 텐데? 특히 장비는 몽골군 쪽이 확실히 최신 장비를 도입해 우세였을 터.”

타이시 볼로드도 그렇게 말하며 각료들을 닦달했지만 나올 수 있는 대답은 많지 않았다.

키타이군의 훈련 과정이 상당히 우수해 정예병을 양성해냈다는 것.

울제이 본인뿐만 아니라, 그의 참모진도 상당히 유능한 인재들이라는 점.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뼈아픈 패퇴를 설명할 길이 없다.

위기다.

새로운 카간이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다이온 연방 창설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

모두의 결단을 요하는 일이 또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기름을 붓듯, 안 좋은 소식이 연달아 전해졌다.

“옹구차트-새너두 전선에서 반군 소속 ‘기갑사’ 출현! 피해가 막대합니다!”

신수덕이 뿌린 씨앗은 이렇게 세상을 휘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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