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대치(3)
카간 게레센제가 앞으로 치러야 하는 싸움은 크게 세 종류였다.
첫째, 어렵게 얻은 카간 자리를 지키고, 권력을 확대하기 위한 싸움이다.
둘째, 하늘 위에 떠 있는 ‘붉은 존재’를 없애고, 칸발리크를 정상화하기 위한 싸움이다.
셋째, 반란을 일으킨 카라코룸 정부, 소위 ‘알타이 자유 공화국’이라는 역적들을 멸하는 싸움이다.
첫 번째 싸움을 치르는 중에는 필연적으로 루우 테무르 및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과 싸워야겠지만, 둘째 싸움과 셋째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일시 ‘휴전’을 맺었다고 봐도 좋다.
그렇기에 게레센제는, 자신이 카간이 될 때까지 감춰뒀던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파멸인’은 말 그대로 인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이었던’ 자들이라고 해야겠지.”
-그렇다면 그때 칸발리크 골목에서 본, 피를 뒤집어쓰고 파멸인으로 변한 인간은 잘못 본 게 아니군.
루우와 효윤은 마주 보며 끄덕였다.
“숙부님, 보여드릴 게 있어요.”
루우는 볼로드와 함께, 게레센제를 황궁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원래는 그런 용도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 안에 ‘보관한 것들’ 때문에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이건.”
게레센제는 그 안의 광경을 보고 당황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거기엔 칸발리크에 첫 테러가 일어난 뒤부터, 이날까지 모은 파멸인의 시체 혹은 시체 조각들이 냉동 보관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변이하던 도중 죽은 자의 시체도 있었다. 그런 시체일수록 더욱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칸발리크 곳곳에 이상한 신흥 종교가 퍼졌습니다. 그 신자 중 일부가 기도문을 외고 나서 파멸인의 피와 접촉, 똑같이 파멸인으로 변이하더군요.”
“그 기도문 내용은 혹시…… ‘자신이 영혼 없는 물질에 불과함을 깨달아라, 생명과 신성 사이에는 관계가 없음을 깨달아라’ 뭐 그런 내용인가?”
루우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숙부님, 그게 무엇을 암시하는 겁니까?”
“내용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 물론 그 내용에 일말의 진실도 담겨있긴 하지만 중요한 건…… 기도하는 자의 ‘의지’지.”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라며 게레센제는 두 손을 모았다.
시체들을 보는 그의 눈길이 흔들린다. 그 옆모습을 보며 루우도, 효윤도, 견하도 모두 침묵을 지켰다.
“‘괴력난신은 논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나?”
“네. 유가의 가르침이죠.”
견하는 그렇게 대답하는 루우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작년, 체육관에서 견하를 단련시키며 이단에 대해 가르쳐 줄 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날렵한 옆모습은, 황제가 된 지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괴력난신은 논할 수가 없다’가 좀 더 정확한 말에 가까울 걸세, 고려 황제.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영혼 없는 존재’고, 신들은 우리의 창조나 심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어떤 존재’일 뿐이니까.”
갑작스레 쏟아내는 듯한 게레센제의 말.
주변의 누구도 그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숙부님……? 무슨?”
“그 말대로일세, 황제. 우리는 영혼 없는 존재야. 아주 먼 옛날 어떤 원시인이 영혼을 지닌 존재들처럼 되고 싶어서, 멋대로 우리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이야기를 꾸며낸 거지.”
영혼의 존재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에겐 그것이 없기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황제, 그대의 이단 능력과 관련이 있는 ‘용’…… 왜 그것을 신종(神種)이라 부르는 지 아는가?”
그 질문에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다.
“……모르겠어요.”
“‘신’이라 부르지도 않고, 신의 짐승, ‘신수’라고 부르지도 않고 마치 어떤 ‘생물 종’이라도 되는 듯이 ‘신종’이라 부르지. 왜냐하면 그것들은 ‘영혼을 지닌 생물 종’이니까.”
그게 쿠빌라이 카간이, 마르코 폴로가, 퇴계 이황이, 그 후로도 수많은 연구자들을 환희케 하거나 절망케 한 이 세상의 결론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곳이 있다. 그게 우주 저편 어딘가 다른 세상인지, 과학자들이 말하는 ‘다른 차원’이나 ‘우리 세계와 평행을 이루는 곳’인지 뭔지는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곳에도 ‘인간’이 살았고, 그들 역시 우리처럼 영혼 없는 존재였다고 한다.”
영혼 없는 존재들은, 필연적으로 영혼이 있는 존재들을 부러워하게 된다.
그래서 신화를 만들고, 종교를 만들고, 없는 영혼이라도 있는 척 스스로를 속인다.
언젠가 영혼이 더 나은 육체를 찾아 환생하거나, 고통도 슬픔도 없는 낙원으로 향한다는 식으로.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거짓이다.
거짓을 깨달은 자들은 절망했다.
어떤 이들은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를 해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거짓으로부터 깨어나도록 가르치려 했다.
어느 쪽도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이들은 생각했다.
그냥 거짓을 사실로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영혼’을 가지기로 하고, 영혼을 지닌 신종을 연구하기로 했다.
신에게 가까워지길 바라며 기도하듯,
신종에 가까워지길 바라며 연구했다.
그 결과…….
“‘파멸’한 거군요.”
루우가 아는 「쿠빌라이 문서」의 내용들과, 게레센제가 새로 얻은 「쿠빌라이 문서」의 조각들을 결합하면, 그런 이야기가 완성된다.
“영혼 없는 몸에 억지로 영혼을 불어넣으려 한 대가였지. 파멸인은 그렇게 파멸한 다른 세상의 인간들이야.”
파멸인의 기원과 정체는 대충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이 더 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저것들은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그리고 파멸인과 이단의 관계는?
견하는 자기가 직접 앞으로 나서서 게레센제의 말을 재촉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카간과 황제가 대화를 나누는 자리다.
게레센제는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혼백이 없는 살덩어리인 것이 생명의 기본 ‘원리’.
그 원리를 깨려고 했으니, 육체를 구성하는 원리 또한 깨져나가는 게 당연하다.
변이. 붕괴.
그 결과 지금 ‘파멸인’이라 부르는 괴물들이 탄생했다.
“저들이 ‘이쪽’으로 넘어오려는 것 하나만큼은 분명해. 하지만 정확한 목적까지는 몰라. 여기로 와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같은 조건인 우리들을 ‘새로운 실험체’로 삼아서 실험을 계속하고 싶은 건지.”
어떤 식으로든 공간의 벽을 도려내고, ‘구체’를 들이민다.
그리고 그 구체는 저쪽 세상에서 이쪽 세상으로, 파멸인들을 내보낸다.
“이 과정에는 ‘내부 협력자’가 없어선 안 돼. 즉 고려 황제 그대가 말한 신흥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 파멸인이 되든가 하는 식으로 저들의 이주를 촉진해야 하지.”
기도문의 내용의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광신도들이 ‘자기 몸을 바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혼이 없는 자는 몸을 바치면서 ‘혼에 대한 갈망’을 충족하려 든다.
“파멸인과의 신체 접촉은, 파멸인의 ‘이(理)’와 저쪽 세상의 ‘이’, 저 붉은 존재의 ‘이’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지.
신체 접촉 중에서도 ‘피’를 통한 접촉은 더욱 빠른 이해를 돕고. 그리고 이해한 자들은…….”
파멸인이 된다.
“도대체 왜 그런 미친 짓을…….”
효윤이 무심코 중얼거렸다가, 퍼득 놀라 입을 가렸다. 충분히 충격적인 내용이기에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했는지, 게레센제는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아마, 우리 세상에도 영혼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무리가 있겠지. 그런 사람들에게 ‘영혼을 줄 것’을 약속했을 테고.”
“그래서 그렇게 기뻐했었군…….”
루우는 피를 받아먹으며 미친 듯이 웃던 그 남자를 떠올린다.
솔직히 영혼이 있건 없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나의 삶이 끝나면 완전한 무(無)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힘든가?
그렇게 환생이 하고 싶고, 낙원에 가고 싶은가? 죽음 뒤에도 이어지는 삶을 원하는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도 있겠거니, 할 수밖에 없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칸발리크 테러는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을 알고 있는 자가 일으킨 사건이라는 걸세. 그리고 그들은 바로 ‘알타이 자유 공화국’이라는 무리고.”
그중에서도, 반란을 기획한 ‘범 알타이 인민동맹’이라는 집단.
게레센제는 ‘신수덕이 그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줬을 것’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불문에 부치고 넘어가긴 했지만, 여기서 자신이 잠깐이나마 신수덕과 협력했다는 사실을 밝혀서 좋을 게 없으니까.
“적이 하나로 압축되어서 다행이네요. 테러를 일으킨 놈들 따로, 반란을 일으킨 놈들 따로 토벌할 게 아니라, 반란군 하나만 토벌하면 되잖아요?”
루우의 낙관론에 게레센제는 고개를 저었다.
“저들을 토벌한다고 해서 칸발리크 하늘 위에 펼쳐진 저 ‘붉은 존재’가 해결되는 건 아니야. 이미 붉은 존재가 나타난 이상 그걸 소환한 쪽에서도 없애긴 어렵네.
그리고 저 붉은 존재는 단순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파멸인으로 만들 수 있어.”
몇몇 이단들이 꾸는, 붉은 세계의 꿈.
그것은 파멸인과 붉은 존재의 ‘이’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효윤처럼 두통이 일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처럼 광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을 더듬어나가던 루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버지, 시레문이 비행선 안에서 어떤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을지, 짐작이 됐으니까.
그 비행선은 지상의 그 누구보다도 ‘붉은 존재’에 가까이 접근했었다.
토할 것 같은 얼굴이 된 황제를 효윤이 부축한다.
그런 루우를 대신해 견하가 질문했다.
“폐하, 그렇다면 저 붉은 존재를 없애고 칸발리크를 정상화할 다른 방도는 없단 말씀이십니까?”
“아니, 방법은 있네. 하지만 그 방법에도 큰 문제가 있어…….”
카간 게레센제는 한참을 망설였다.
“먼 옛날, 아즈텍 사람들이 내놓은 게 유일한 해결책이지.”
***
토칸은 건물 옥상에서, 칸발리크 거리를 내려다본다.
지옥도까지는 아니지만, 이게 정말 그 ‘몽골 제국의 수도’인가 의심될 정도로 음침하다.
어딘가에서 인간이 내지르는 절규가 토칸의 귀에까지 들어온다.
신체가 변이하는 중이거나, 그렇게 된 파멸인에게 죽임당하는 인간의 비명인 것 같다.
파멸인, 더 나아가 하늘 위 붉은 존재를 섬기는 종교는 오늘도 예배를 계속하고 있다.
국가에서 즉결 처형을 계속 집행하고 있는데도.
거리에 널브러진 시체, 시체, 시체.
그러나 한편으로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간다.
동네 구멍가게 주인은 부지런히 가게 문을 열고, 밤새 비명과 총성에 떨던 아낙네는 식료품을 사러 그 가게에 들르는 것이다.
“멋진 광경이야.”
토칸은 씩 웃었다.
“시레문 카간, 보고 계신지? 아, 죽었으니 못 보시려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우리 모두 혼 없는 자들이니 죽으면 고통도 기쁨도 보상도 징벌도 없다.
그러니 자신의 나라가 이 지경이 되어도 별다른 감상은 없을 수밖에.
“좀 더 재미있는 일을 벌여 볼까.”
토칸은 고개를 들어 ‘붉은 존재’를 똑바로 바라본다.
마치 상쾌한 공기를 마신다는 듯, 만족스레 깊은숨을 들이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