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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92화 (191/541)

회수대치(1)

회수대치.

이는 키타이와 낭키아스 국경지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군의 대치 상황을 말한다.

총알 하나, 포탄 하나 날아가진 않는다.

그렇지만 언제라도 전쟁이 시작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 강 북쪽과 남쪽을 감돌고 있다.

그 긴장감은 전면전이라도 치르듯 높았지만, 양군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일단, 한족은 키타이와 낭키아스에서 징집 대상이 아닙니다.”

전쟁성 장관 강태훈은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몽골 개입’ 회의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각료 중 전쟁에 있어 가장 전문가였고, 따라서 대략적인 배경지식을 동료 장관들이나 태사에게 전해야 한다.

이야기를 진행하려면 고려군이 파악하고 있는 키타이군과 낭키아스군의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엉뚱한 질문이나 의견으로 시간 낭비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그 두 나라 군대의 특성은…… 세계대전에서 비롯된 복잡한 역사의 결과물이자, 동아시아 정치 외교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거울이기까지 하다.

다소 수업을 진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강태훈은 최대한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드물게 한족이 장교로 자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몽골인보다도 엄격한 절차를 거쳐 임관되기에 수는 많지 않습니다. 아직 정복자 몽골인들은, 정복당한 한족을 의심하고 있죠.”

그래서 한족은 장교가 되어도 진급이 쉽지 않다. 동족들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따라서 두 나라 군인의 대부분은 세계대전 이후 그대로 남쪽 땅에 그대로 정착한 몽골인 2세대거나, 몽골 본토에서 파견한 ‘주둔군’입니다.”

회수에 대치한 군의 규모는 얇은 전선 한 겹을 유지할 정도.

본격적으로 동원령을 발동한 뒤 앞뒤 가리지 않고 징집하면 상당한 규모를 만들 순 있겠지만, 어쨌든 현 상황은 그러하다.

누군가 강태훈의 말에서 ‘이상한’ 부분을 지적했다.

“‘몽골 본토에서 파견한 주둔군’이라니요? 그 말씀은……?”

“네. 키타이와 낭키아스군은 그 구성부터 독립된 국가의 군대라 보긴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이게 두 나라가 과연 ‘독립국’인가, 하는 논쟁에 불을 붙이기도 하죠. 어쨌든 자국에 뿌리를 둔 ‘믿을만한 군인’의 수가 적다는 건 두 나라 모두의 약점입니다.”

게레센제와 울제이 모두 카간 자리에 욕심을 내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몽골 본토에서 내려온 ‘주둔군’의 충성을 요구하려면, 언젠가는 ‘본토로 돌아갈 수 있고’, ‘카간을 따라 출세할 수 있다’는 대가를 제시해야 한다.

만약 카간 즉위가 좌절되면 게레센제와 울제이가 몽골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각기 한족 국가를 건설하려는 것도 이런 사정이 있어서다.

그래야 ‘한족 국가를 지키는 한족 병사를 징집’할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 고려와 몽골 정부가 연합해서 두 나라를 상대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다. 이것이 강태훈이 하는 말의 요점.

전쟁성 장관은 슬쩍, 태사의 눈치를 살핀다.

하얗고 작은 얼굴의 태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김천열 중장과 조유관 대장은 각각 어떻게 움직이고 있죠?”

물어보는 게 태사의 업무니까 물어본다는 느낌이다.

본래 태사의 정책 방향은 ‘몽골 내전에는 개입하지 않는다’였을 터.

그랬던 방침이 공산당과 사회민주당, 그리고 몽골 정계와 루우의 움직임으로 인해 깨졌다.

때문에 지금 태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몽골의 황위 계승 문제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조유관 대장이 이끄는 서부군은 몽골 초원 남쪽에서, 동서에 걸친 긴 전선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키타이군이 후방을 위협할 가능성은 있지만 몽골군이 이 부분은 어떻게든 해주고 있다고…….”

강태훈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리안은 곧바로 다음 소식을 재촉했다.

“서북부군쪽은?”

***

김천열은 서부군에서 서북부군으로 옮긴 부대들을 실험적으로 운용해보았다.

충분한 포격 후, 전차들로 몽골 반군의 전선을 돌파, 적 지휘부를 날려버리거나 적 후방을 포위, 그와 함께 보병 돌격.

“세계대전 이후 평화에 잠겨 있던 군대와, 내전을 통한 실전 경험이 있는 군대가 붙으면 이 정도 차이가 나는군.”

그게 김천열의 감상이었다.

일단 첫 공세를 통해 돌출부를 만든다. 이 돌출부를 다시 밀어 넣기 위해 알타이 자유 공화국군…… 즉 몽골 반군은 꽤 맹렬한 공세를 가한다.

그 모든 시도는 여유롭게 격퇴.

“돌출부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연습을 좀 시키도록 하지.”

김천열 자신의 지휘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다른 부대들과의 협력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충분한 공방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부대가 될 수 있도록 하자.

“돌출부를 넓히며 전진하는 건 그다음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그 앞에, 수도 동명에서 통보 하나가 던져졌다.

서북부군 재편성 작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것, 몽골 반군에 대한 첫 공세를 성공한 것에 대한 치하가 죽 이어지는 통보.

김천열은 그 끝에 덧붙은 말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장 진급이었다.

***

“어차피 키타이나 낭키아스와 한판 붙어야 한다면, 해군을 동원해서 견제하는 방안은 어떻죠?”

“외무장관과 논의해본 바로는 득보다는 실이 클 듯합니다. 일단 낭키아스가 직접 고려 영해를 침범할 가능성은 낮고, 키타이는 해군이 없다시피 합니다.

괜히 고려 해군을 움직였다가 일본공화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게…… 외무장관과의 논의 결과입니다.”

리안은 세규를 향해 잠깐 시선을 던졌다. 일단 이 문제에 있어서는 그와 협력하는 중이다. 의견을 따르는 게 좋겠지.

“좋습니다. 그렇다면 육군, 서부군과 서북부군 위주로 움직이되, 공군도 해당 전선의 제공권 장악을 위해서만 한정적으로 움직입시다. 해군은 대기 상태로 두도록 하죠.”

그녀는 태사다. 하기 싫은 일이라 해도 방침을 정하고 국가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루우나 다른 사람들이 꾸민 일에 말려들어 가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말려들어야만 한다면 최선의 결과를 내는 수밖에.

회의를 마치고 태사부로 향하는 그녀의 곁으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다가온다.

“나제홍 실장…….”

정치경찰실장 나제홍이다. 그는 뭔가 주도적으로 움직여볼 위치에 있지도 않고 성격도 그렇지 않다. 그런 그가 찾아왔다면……

“……주견하 국장으로부터 보고인가?”

“예, 각하. 칸발리크의 정세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고.”

리안은 고개를 갸웃해 의문을 표한다. 나제홍은 선뜻 입을 열지 않는다. 리안은 따라오라 손짓했다.

집무실에 들어서서 책상 앞에 앉자, 비로소 나제홍은 입을 열었다.

-루우 테무르가 카간 자리를 곧바로 계승하지는 않기로 함.

-게레센제가 먼저 즉위하고, 루우는 몽골 내에서 영향력 증대, 선양을 준비할 것.

-게레센제는 그 대가로 칸발리크 테러 사태 해결에 중요한 협력을 할 예정.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의 실행안 수정. 고려가 몽골을 합병하는 것이 아니라, 몽골과 낭키아스가 일단 합방하면서 창설하도록 함.

-고려는 다이온 연방의 ‘참관국’ 자격을 획득. 고려 황제는 연방과 카간의 ‘보호자’가 된다.

-연방 의회 창설 예정. 제국최고회의에서 대표단을 선출해 ‘참관’할 수 있도록 파견 바람.

-고려군의 몽골 내 주둔지를 선정하고, 다이온 ‘연방군’의 자문을 맡을 인사를 파견 바람.

보고를 다 듣고 난 리안은, 그 어느 때보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곧 답을 마련해주겠다며 나제홍을 집무실 밖으로 내보냈다.

“……무슨 생각이야.”

그녀의 남자친구, 그녀의 미소년은 지금 일을 너무 크게 벌이고 있다.

짜증이 나면서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고작 고등학교 3학년 답지 않은 이 과감한 행동과 치밀한 계획은…… 전에 루우가 말해주었던 ‘우려’를 떠올리게 한다.

“효윤이는 대체 뭘, 아니, 아니다. 걔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

효윤이가 아무리 보고 들은 게 많아도 루우와 손잡은 견하를 제어할 수는 없을 터.

“제어해야 해. 더 뭔가 일으키기 전에.”

그게 고려와 동아시아 정세를 위해서도 좋고, 견하 개인을 위해서도 좋다.

사태를 해결하자마자 본국으로 불러들이고, 직접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자.

하지만 결심은 결심으로 머물 뿐, 당장 불러들일 순 없다.

닥친 일을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좋아, 정리해보자.”

루우는 곧바로 카간이 되진 않는다.

몽골 내 황위 계승 전쟁에 뛰어들지 않고, 게레센제와 협상해 영향력을 증대하는 선에서 만족했다.

“키타이는 아직 애매하지만, 낭키아스는 적이 아니라는 거군.”

그렇다면 해군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 낭키아스 측과는 일단 협력이다.

“칸발리크 테러 해결, 그리고 알타이 자유 공화국의 진압, 이 두 가지에 집중하겠다는 건가.”

일의 경중과 선후 관계를 구분할 수 있다면 다행한 일이다.

견하도 루우도, 몽골을 합병하고 「계획」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날뛰진 않는다.

직진하는 것보다는,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지만.”

고려가 연방의 참관국 자격을 얻고, 황제는 카간의 보호자가 되고, 연방의회와 군에는 고려에서 파견한 대표단이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떻게 봐도, ‘언젠가는 합병하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아즈텍 연방은 제 코가 석 자니 이걸 두고 항의하진 않겠지만, 일본, 류큐, 베트남, 라타나코신 정도는 항의해올 수도 있겠네.”

제국주의적 야심가라고 리안을 맹렬하게 비판할 것이다. 리안이 바란 일도 아닌데.

“그래도 일을 원만하게 수습하려면 다른 나라가 이 문제에 끼어드는 걸 최소화해야 해.”

어떻게 하면 일본 등의 개입을 방지할 수 있을까.

고민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머릿속 지구본이 자연스레 서쪽으로 움직여, 그동안 원만히 진행되던 어떤 나라와의 경제협력 논의를 떠올린다.

“바라트…… 불가침 조약, 맺을 수 있을까?”

이를테면 다이온 연방이 형성되는 동안, 티베트나 라타나코신을 ‘중립지대’로 두고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한다면, 외교적 부담을 여러모로 줄일 수 있다.

바라트 정도 되는 대국과 조약을 맺는다는 것 자체로, 일본 등이 간섭을 망설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건 나중에 재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하여튼.”

견하가 올린 보고에는 다른 문제들도 많다.

리안은 설령 ‘다이온 연방’이 정말로 탄생하고, 루우가 카간 자리를 계승한다 해도 국가 간 느슨한 연합체 선에서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동아시아의 균형을 유지한다.

하지만 전쟁성 장관 강태훈의 설명에 따르면, 낭키아스나 키타이의 사정은 그런 느슨한 연합체를 허락하지 않을 듯하다.

“게레센제는 낭키아스와 몽골 본토의 완전한 합병을 노리겠지.”

그래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안전할 테니까.

“그러면…… 세력 균형은 깨지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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