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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89화 (188/541)

몽골인의 공화(14)

“국장에게서 전보가 왔어. 최우선. 긴급. 다른 모든 업무보다도 이걸 먼저 해결하라더군.”

소년과 과장인 유지나, 청년과 과장 ‘대행’인 이익서.

두 사람은 한재연의 하급자가 아니다. ‘알타이 민족 문제 연구소’, 통칭 AN연구소는 어디까지나 감찰국의 하부 조직이다. 따라서 같은 감찰국의 하부조직인 소년과 과장, 청년과 과장 ‘대행’은 AN연구소장과 대등하다.

굳이 따지자면, 청년과 과장을 따로 두지 않고 그 업무를 감찰국장이 겸하고 있기에, 과장 ‘대행’인 이익서만 조금 낮다고 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런 사정 때문에, 지나는 재연의 ‘소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당신이 직접 와서 전달해도 되지 않아?”

연장자라 해도 거리낌 없이 반말로 묻는다. 자신과 ‘대등’하거나, 자신이 ‘우위’에 서 있다고 판단한다면 지나친 예의를 보일 필요는 없다는 게 지나의 생각이다.

그랬다간 얕잡아 보인다.

재연은 한때 적이었다 항복한 자. 견하의 친구라 해도 그 입지는 지나보단 취약하다.

지나는 가족이 허동주에게 협조하는 바람에 강제로 감찰국에 들어오긴 했지만, 한재연보다는 믿음 면에서든 업무 면에서든 확실히 앞서고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재연은 유지나와 맞서고 싶지 않았다.

그는 슬쩍 웃으며 소탈하게 사과의 말을 전한다.

“미안해. 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보단, 두 사람이 여기 와 주는 게 보안상의 이유로 더 적절할 거라고 생각했어. 논의에 필요한 자료나 자문도 여기서는 금방 구할 수 있고.”

그 말 자체는 맞다. AN연구소가 있는 연구동 쪽에는 관련 학자도 여럿 있을 뿐만 아니라, 자료도 상당히 비축되어 있다.

당장 재연의 이 집무실부터가 서적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일단 견하가 재연에게 전보를 보낸 만큼, 재연의 집무실에 두 과장이 찾아와 조용히 논의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지나는 알아들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재연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감찰국은 황제 폐하의 조칙을 받들어,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의 작성에 착수했어. 그리고 지금은 그 실행까지 내다보고 있지. 주견하 국장이 폐하를 보필하기 위해 칸발리크로 간 것도, 「계획」의 실행과 관련이 있어.”

어떻게 몽골과 고려, 두 나라를 아우르는 ‘다이온 연방’을 만들고, 그 수장으로 루우를 세울 것인가.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한 칸발리크행이다.

“원래 「계획」은 그 실행이 적어도 수년 뒤, 혹은 수십 년 뒤라고 상정한 물건이야. 하지만 칸발리크 테러, 그로 인한 카간 시레문의 붕어…… 이 모든 것들이 「계획」 실행을 재촉하듯 몰아붙이고 있어. 때문에 나는 「계획」을 수정하면서 동시에 이 ‘연구소’도 서둘러 꾸려봤지만…….”

아무래도 촉박하다. 연구소는 간신히 학자들의 방을 배정하고 연구 자금을 지급해 준 정도라, 아직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재연도 「계획」의 획기적 수정안을 뽑아내진 못했다.

“꽤 훗날을 대비한 「계획」이었기에, 초안은 ‘알타이 민족’ 개념을 시간을 들여서 완성, 선전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자연스러운 동군연합, 점진적 합병을 꾀한다는 거였지만, 바꿀 수밖에 없었어.”

먼저 합병을 우선하고, 거기에 인위적으로 ‘알타이 민족’ 개념을 주입해 가는 방향으로, 순서를 바꿨다.

당연히 매서운 반발과 수많은 난관이 예상되지만, 극복해야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마저도 또 방향을 바꾸라는 요청이야.”

루우를 당장 카간 자리에 올리진 않는다.

대신 게레센제를 카간 자리에 먼저 올리고, 고려는 점진적으로 연방을 장악해나간다.

“즉 고려와 몽골 간 ‘연방’이 아니라, 몽골과 낭키아스 간 ‘연방’ 설립을 먼저 생각하라는 거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 고려는 어떤 위치를 잡을 것인가.”

쉽지 않은 일이다. 「계획」은 ‘고려의 황제인’ 루우가 몽골 황위를 잇는 상황을 가정하고 만들어졌다.

즉, 고려의 정치와 몽골의 정치, 그 외 여러 조건을 검토해가며 제작됐다는 말이다.

하지만 낭키아스, 몽골 간 연방 설립은…… 사실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은 분야다.

장기적으로 키타이와 낭키아스, 두 몽골계 칸국도 연방에 포함하는 내용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지 구체적인 실행안은 없다.

“……모르니까. 낭키아스가 어떤 나라인지, 어떤 식으로 정치가 굴러가는지, 그 나라 국민들은 알타이 민족이나 연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재연은 솔직하게 인정한다.

지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답한다.

“……낭키아스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통합할지는, 게레센제 칸이나 그쪽 정치인들 손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 말에 계속 침묵하던 이익서가 답한다.

“그 말대로라면 낭키아스 쪽 인사들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겠군. 거기도 의회가 있다면 새롭게 열릴 ‘연방 의회’ 같은 기구에 자리를 내줘야 할 테고.”

지나는 흘끔 이익서를 본다. 그녀보다 서너 살쯤 많은, 평범하게 만났다면 ‘오빠’라 불러야 할 사람이지만 지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대등한 대상에게는, 굽히지 말고 당당하게.

그게 견하가 지나에게 가르쳐준 것이니까.

지나는 이익서의 지적에 답을 돌려준다.

“내가 알기론 낭키아스나 키타이 모두 우리 ‘제국최고회의’같은 기구는 없어. 세계대전 이후 계속 군정 상태나 다를 바 없다던데. 있다고 해봤자 칸들을 보필하는 몽골 귀족, 장군들의 회의기구 정도일까.”

익서도 흘끔, 지나를 본다. 별다른 감정표현 없이 다시 그 말을 받는다.

“그렇다면 게레센제와 소수 유력 귀족들을 위한 자리가 필요하겠군.”

재연이 두 사람의 대화를 정리한다.

“국장에겐 ‘낭키아스를 먼저 통합하려면 게레센제에게 일정 부분 양보가 필요’라고 전해두지.”

세 사람 모두 이 부분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게레센제가 카간이 된다, 몽골과 낭키아스가 다이온 연방으로 거듭난다’, 이다음이야.

말했다시피 최종 목표는 우리 황제 폐하의 몽골 황위 계승. 제대로만 된다면 우리가 몽골, 낭키아스, 고려를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재연이 흐린 말을, 지나가 그대로 잇는다.

“어떻게 해야 폐하를 그 자리까지 모시고 갈 수 있는가, 그 구체적인 방안은 막막하다는 거지.”

재연은 끄덕였다. 사실 시레문의 죽음과 그 혼란을 틈타 고려군이 개입, 실력행사로 루우를 몽골 황위에 올려놓는 게 가장 편하다. 안정성은 떨어지지만.

안정성을 확보하며 천천히 나아가려는 견하의 방법은 시간도 걸리고, 절차도 복잡하다. 솔직히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감이 안 온다.

학술의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정치적 편의의 문제니까.

“게레센제가 카간 자리에 있는 동안, 우리 폐하는 몽골 내 실권을 장악하면서 다음 카간 자리를 노린다는 계산인데…… ‘어떻게 실권을 장악할 것인가’, ‘실권을 장악하는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가 문제란 말이지.”

이익서가 턱을 괴던 손을 내려, 손바닥을 재연을 향해 펼쳐 보인다.

“좀 더 구체화해보자. 가까이 있는 문제부터 말이지. 일단 우리가 몽골, 낭키아스로 구성된 ‘다이온 연방’을 창설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인가?”

“그렇지.”

지나처럼, 재연도 거리낌 없이 익서를 향해 반말을 한다.

“그럼 이렇게 이야기해볼 수 있겠군. 일단 창설된 다이온 연방, 거기에 우리 고려는 참여할 것인가?”

익서의 지적을 들으며 재연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좋은 지적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걸 생각하자면 고민해야 할 요소들이 좀 더 분명해지긴 하네. ……연방에 초기부터 참여한다면, 연방의 총수가 될 카간에 대해 우리 ‘황제’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이를테면 스스로를 ‘왕’으로 격하하고 신하를 칭할 것인가? 아니면 연방 내에서 특수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

지나가 눈살을 찌푸린다.

“폐하께서 스스로 왕으로 격하하시는 걸 국민들이 받아들일 리 없어.”

“맞아. 절대로 안 될 일이지. 태평천국 ‘황제’에 맞서 ‘자주’를 지켰다는 역사가, 그 자긍심이 가로막아.”

지나는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 한재연이라는 소년은, 고려인의 민족주의에 대해 마치 제삼자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황제 칭호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게레센제 카간’과 ‘왕서라 황제’가 공존하는 최소 몇 년의 시간이 있어. 우리 폐하께서 결국 언젠가는 카간까지 겸하시겠지만.

어쨌든 그 몇 년간 연방 내에서 ‘고려 황제’의 특수한 지위를 어떻게 규정하지?”

고려 황제를 ‘카간의 황태자’로 규정하면, ‘다음 카간은 루우’임을 분명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어쨌든 고려 황제가 몽골 카간의 아래라고 선언하는 꼴이다.

지나는 손을 내젓더니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보자고 말했다.

“만약 연방에 당장 참여하진 않는다면? 그러니까…… 연방이 결성되고 5년간 준비단계를 거친 뒤 가입한다든가, 우리 폐하가 카간 자리를 계승하면서 동시에 고려가 가입하는 방식으로 한다든가.”

재연은 잠깐 눈을 굴린다.

“내가 「계획」에서 키타이나 낭키아스, 혹은 보우슈엥이나 대예 같은 나라들을 가입시킬 때 쓸 개념으로 ‘참관국’을 활용하긴 했어.”

“참관국?”

“연방의 정식 가맹국은 아니지만, 중요한 회의에 참여해 발언할 권리가 있는 나라들이지. 정식 가입을 준비하는 동안, 고려를 연방의 ‘참관국’으로 두는 것도 한 방법이야.”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이익서가 그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그러면 ‘다이온 연방’에 관여하면서도 황제 폐하의 지위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되는군. 하지만 아까 게레센제가 카간으로 있는 동안 우리 폐하의 계승을 준비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때까지 몽골, 혹은 다이온 연방의 실권을 장악해나가야 할 텐데, ‘참관국’의 지위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나?”

제대로 된 권한을 행사하기 어렵지 않으냐는 지적이다.

단순히 ‘참관국’이라고 해버리면, 그 ‘참관국’ 지위를 문제 삼아 게레센제는 고려의 개입을 방해하려 들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러면 아주 짜증나겠지.

재연은 쓰게 웃었다.

익서도 지나도, 견하와는 또 다른 종류의 미학이 재연의 얼굴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첫 번째 안과 두 번째 안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겠네. 연방의 ‘법’ 문제도 교묘하게 파고들어야겠고.”

연방을 구성할 당시의 ‘법’에서 분명하게 고려 황제의 지위를 규정하고 들어가자는 말이다.

고려가 연방에 즉시 가입하긴 어렵고, 참관국 자격을 한동안 유지하되 일반적인 참관국 이상의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연방의 ‘방위력’에 고려군이 적극 개입할 수 있으면 좋겠군.”

얼마 전까지 군인이었던 이익서의 의견이다.

“‘연방 의회’에 제국최고회의가 대표를 파견하는 방식은? 태사부가 직접 움직이긴 어려워도 이런 간접 개입은 가능하지 않을까?”

발해도 문제 처리를 담당했던 유지나 다운 의견이었다.

재연은 박수를 짝, 한번 친다.

“좋아. 방향은 대충 정했어. 그러면 자문을 해줄 학자분들을 좀 불러볼까.”

이 연구소는 그러라고 만든 곳이니까, 라며 재연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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