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인의 공화(13)
조유관의 서부군은 신속하게 몽골 국경지대에 전개했다.
몽골의 타이시, 볼로드의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국경을 돌파, 몽골군과 협력하며 수도 칸발리크로 나아간다.
칸발리크로 향하는 쪽은 칸발리크뿐만이 아니라 옹구차트, 새너두 등 수도권 주요 도시의 장악도 목표로 잡고 있다.
그 외에도, 조유관은 서부군 일부를 떼어내어 서북부 방면을 경계하도록 했다.
이는 반란군, 혹은 ‘알타이 자유 공화국’이라 불리는 세력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아마 동명에서는 서북부 군대도 움직여 흥안령 산맥의 국경으로 보낼 테고, 그러면 훨씬 증강된 병력이 몽골 초원을 삼킬 듯 진군할 것이다.
“‘해외 주둔 제한법’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아직 조유관은 명확하게 자신의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니 그 법이 오로지 조유관만 겨냥한 법이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그러나…… 그 법을 만드는 데 안세규도 참여했다.
그렇다면 안심하기도 어렵겠지.
“말 안 듣는 군인은 고삐를 채워야 한다는 건가.”
여기선 조심스레 움직여야 한다. 안세규가 조유관을 견제하기 시작했다면 그건 미리안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있다.
자신은 제국의 서부 국경, 그 군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자니까.
이미 허동주와 미승휴를 통해 ‘군벌’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고려 제3제국은 충분히 겪었다.
중앙정부는 또 다른 허동주나 미승휴를 만들 순 없다고 생각하겠지.
“일단은 명령에 충실하게 따르면서, 안전망을 확대해볼까.”
칸발리크에 머무는 황제와 적극 제휴하고, 최효윤을 통한 태사와의 연결도 강화한다.
“그것도 일단은 칸발리크에 진입해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참모 중 한 사람의 의견이었다. 여기 조유관의 앞에 모인 참모들은 모두 그와 생사를 함께하는, 충직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조유관이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는 속마음도 파악하고 있고, 이렇게 거리낌 없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그렇지. 일단은 황제와 얼굴을 맞대는 게 우선이지.”
“하지만 비밀리에 만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직접 황제와 접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태사 미리안의 경계는 최고조로 올라갈 테고, 그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본국 송환, 숙청 및 처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음, 그렇겠군. 조심해야겠어.”
조유관은 이 문제는 이쯤 해두지, 라고 말하며 작전도로 시선을 돌렸다.
칸발리크 쪽과 서북부 쪽 두 방향으로 전개된 작전이 지도 위에 나타나 있다.
“씁쓸하군.”
조유관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내가 엄선해 보낸 교관들로 훈련시킨 병력이 저기 있을 걸세. 무기들도 그렇지. 뭐 대부분은 기존 몽골군 중 카라코룸에 붙은 자들이겠지만…… 그래도 내가 기른 병사들이 있을 텐데 총부리를 겨누게 되다니.”
씁쓸함을 털어버리듯 한숨을 내쉬고, 조유관은 눈빛을 날카롭게 가다듬는다.
“원래 세상은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법. 아쉬움은 이걸로 끝이다. 다들 언제든 ‘적’을 박살낼 준비를 갖추도록.”
힘찬 대답이 돌아온다. 참모들은 아군의 전력과, 앞으로 다가올 정세를 분석하며, 카라코룸 공략의 구체적 작전을 짜기 시작한다.
***
게레센제는 키타이의 수도 개봉을 떠나 남쪽, 자신의 본거지이자 낭키아스의 수도인 응천으로 향했다.
수상하게 여긴 울제이가 ‘게레센제를 구금한다’는 강수를 둘 수 있었기 때문에, 귀국에는 나름 구실이 필요했다.
게레센제는 이런 말로 울제이를 설득했다.
“볼로드와 루우 테무르의 결탁은 공고해진 것 같다. 더는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없겠어. 타협안이 통하지 않는다면 실력행사에 나서는 수밖에.”
“실력행사라 하시면……”
“그래. 무력 사용, 전쟁도 불사해야지.”
키타이와 낭키아스의 연합군이 나란히 칸발리크로 진군한다. 이를 위해 낭키아스 육군도 준비태세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해군도 바다에서 고려 해군과 맞서며 육군의 진군을 보조한다.
게레센제는 그 준비를 구실로 개봉을 떠나 응천으로 향한 것이다.
그러나 울제이에게 한 약속과 달리, 게레센제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루우 테무르와 칸발리크 정부는, 내가 카간위를 승계하는 걸 인정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는 루우 테무르와 울제이 사이에서 저울질할 이유는 없다.
게레센제의 제안. 게레센제가 형 시레문의 뒤를 이어 다음 카간의 자리에 오르는 것.
그것을 루우 테무르 및 칸발리크 정부가 거부한다면 울제이와의 동맹을 유지한다. 그러나 받아들인다면 울제이를 배제하고 일단은 루우 테무르와 협력한다.
조카는 숙부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래서 숙부는 후자를 골랐다.
-카간이 된다고 해도 그때부터 또 다른 모든 것들이 시작되겠지만…….
그때는 루우 테무르와 고려 제국의 내정 간섭 세력, 볼로드를 비롯한 기존 정부 세력과 때로는 적대하고 때로는 동맹하며, 끝나지 않는 정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래도 그 정도는 충분히 각오한 일이다. 각오를 다졌으니 눈앞의 고비를 넘자.
카간이 되자.
게레센제는 응천에서 군과 정부에 몇 가지 명령을 내린다. 그 후 다시 동쪽 항구로 나가 배를 타고 황해에서 북상, 발해만을 지나 몽골의 영토로 들어간다.
이제 막 내륙국을 벗어난 키타이에 해군전력이라고 해봤자 어선 수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일단 게레센제가 황해를 통과하는 걸 막을 방도는 없었다.
게레센제가 몽골에 입항했다는 소식은 금방 키타이로 퍼졌다. 울제이가 궁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신 울제이는 ‘국가’를 움직이는 것으로 자신의 사적인 반응을 대신했다.
키타이 공군에는 비상대기령이 내려지고, 육군은 북쪽과 남쪽, 두 국경으로 전진 배치됐다.
북쪽 국경은 당연히 칸발리크 방면이다.
남쪽은 회수, 낭키아스와 키타이를 가르는 자연 국경이다.
게레센제는 낭키아스를 떠나기 전에 당연히 이 문제를 대비해 뒀고, 낭키아스군은 아주 ‘자연스럽게’ 북상해 회수를 사이에 두고 키타이군과 나란히 대치했다.
한족의 왕조가 남북으로 나뉠 때마다 종종 그 경계선이 되곤 했던 이 강은, 이제 다시 키타이와 낭키아스 간 전운이 감도는 현장이 된 것이다.
신문에서는 여기에 ‘회수대치’라는 이름을 붙여 1면에 실었다.
***
운하를 따라 칸발리크로 들어오는 게레센제를, 고려에서 파견한 기갑사 부대가 호위한다.
게레센제는 그들을 곁눈질하면서, 이번 여정을 고려의 군사력을 가늠하는 기회로 삼는다.
-우리도 신수덕에게 기갑사 기술을 받아서 연구 중이지만…… 역시 실전 투입까지 가능한 나라를 따라잡긴 어렵나…….
미리안이 아니라 허동주가 한 것이긴 하지만, 고려는 작년에 이미 신환도역 전투에 기갑사를 투입해 본 적이 있다.
그 기술을 미리안이 그대로 흡수해 전력화시켰다.
적어도 기술이 5년 정도는 앞선다고 봐야겠지.
그런 ‘관찰’이 거슬렸는지, 아니면 그냥 때가 되었기 때문인지, 하얀 제복을 걸친 한 소년이 다가와 말을 건다.
“곧, 칸발리크에 도착합니다.”
소년은…… 고려의 태사부, 거기서도 정치경찰실 감찰국 국장을 맡고 있다고 했던가.
주견하.
그는 서늘한 눈빛으로 간단한 인사말만 할 뿐, ‘불편하신 데는 없으십니까’ 같은 형식적인 정담도 붙여 오지 않는다.
몽골어에 고려어 억양이 강하게 섞였다. 몽골어로 긴 대화를 하기 어려워서일까.
하지만 태도에서까지 서늘함이 묻어나는 건 뭐라 설명할 텐가.
루우 테무르가 자격 미달의 인간을 보냈을 리도 없고, 태사 미리안이 그런 인간을 대령까지 달아줄 리도 없다.
요컨대 주견하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그래도 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음.”
그래서 게레센제도 별 의미 없는 소리로 답한다.
그런가, 하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고, 그대의 무례가 불편하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는 소리.
주견하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던진다.
“칸발리크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들에 대해 알고 계신다고 했지요.”
“……그렇네만.”
“어떻게 알고 계신가, 그것까진 여쭙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알고 계신 것들을 토대로 ‘꼭 해결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군요.”
게레센제는 주견하의 눈을 똑바로 노려본다.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어른을 상대로 여전히 서늘한 눈길만 보낼 뿐 조금도 물러서지 않음에 감탄한다.
그 눈빛은…… ‘칸발리크 문제의 해결도 못 할 정도면 당신을 카간으로 받아들이는 보람이 있겠는가’라 말하고 있었다.
대단히 무례하다. 마치 자기가 정계의 거물인 양 행동한다.
아니…… ‘정계의 거물이기 때문에’ 정계의 거물처럼 움직이는 건가?
게레센제는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오만하게 주견하의 말을 흘려버리는 듯한 몸짓이지만, 머릿속에선 주견하를 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오간다.
-듣기론 태사 미리안의 연인이라고 하는데, 실은 루우 테무르의 것일지도 모르겠군.
-동갑이었나?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다고 하니 가능성 있는 이야기군.
-혹은 최고권력층 계집애들이니, 반반한 남자애 하나 ‘공유’할 가능성도 있고.
약간의 멸시를 담아 그런 생각을 하는 게레센제의 앞에, 드디어 ‘그 광경’이 펼쳐졌다.
칸발리크를 뒤덮은 검은 장막을 지나자, 밤만 계속되는 도시, 그 위에 떠 있는 부서진 새빨간 천체가 눈에 들어온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하군.”
저게, 나의 형, 시레문을 죽인 것.
온 도시의 거리가 병들어 신음하는 것 같다. 돌아다니는 군인들, 웅크린 채 떠는 주민들만이 여전히 이 안에서 ‘생활’이 영위됨을 알려준다.
“가실까요.”
주견하의 말에 게레센제는 짧게 끄덕였다.
***
견하는 게레센제가 항구에 들어오기 조금 전, 그를 마중 나가기 전에 고려 본국으로 전보를 하나 보냈다.
한재연 앞으로.
재연은 견하가 이야기했던 대로, 지금은 ‘알타이 민족 문제 연구소’를 창설, 그 소장으로 취임해 있다.
감찰국의 예산과 인력 일부뿐만 아니라, 황실로부터 제공된 자금을 통해 여러 저명한 학자들을 기용했다.
그들은 ‘알타이 민족’의 언어와 혈통, 종교, 이념, 역사, 심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공통 기반을 찾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물론 최종 목표는 그런 연구 성과가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의 훌륭한 밑거름이 되게 하는 것이다.
재연은 연구소의 소장으로 있으며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함과 동시에, 학자들의 학식을 따라잡으려 노력 중이다.
그렇기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친구이자 상관의 무리한 요구가 또다시 찾아왔다.
미소년은 일단 얼굴을 찌푸린다.
“기껏 만들어둔 「계획」을 다시 손봐야 한단 말이지. 학술적인 이유도 아니고 정치적인 이유로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라.”
물론 애초에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된 작업이지만.
그의 연인이자 조언자인 수영은 지금 효윤과 함께 칸발리크에 가 있다. 그녀의 도움은 얻을 수 없겠지.
재연은 견하의 참모진을 모으기로 했다. 그는 유지나와 이익서를 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