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82화 (181/541)

몽골인의 공화(7)

이번에는 무당도 목소리를 낮춘다.

“알말릭 근처, 늘 접선하던 국경에서 바라트 공산당에서 파견 나온 동지를 만나는 거요. 만나서 우리의 혁명 의지를 전하시오.”

“전하기만 하면 됩니까? 중앙위에서 원하는 게 있을 것 아닙니까?”

깡패의 말은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라는 요구였다. 어쨌든 ‘혁명의 최전선’이 아닌가. 실무자가 활용할 정보를 많이 주셔야지.

“바라트 공산당에서 혁명을 지도해 줄 동지들을 보내줄 수는 없는지, 그와 함께 물자나 자금 지원을 해 줄 수는 없는지, 그런 것들을 물어보고 싶어하는 것 같소.”

“하, 그놈의 ‘체면’…… 그거 챙겨서 우리가 혁명 ‘의지’만 전달하면 저쪽에서 어련히 알아서 지원해 주겠습니다.”

몽골의 동지들이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입장이다. 바라트는 혁명의 성공 가능성, 혁명 계획의 치밀함 등을 따져보고 지원을 결정하겠지.

누구든 장사를 하려면 그 정도 시장조사는 한다.

너무 자본가 같은 발상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깡패는 피식 웃었다.

“더럽게 어렵지만 해보긴 하죠. 중앙위에는 큰 기대 말라고 전해주십쇼. 무당 동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기는 할런가 모르겠지만.”

“고맙소, 동무. 그럼 다음 접선은……”

“그건 제 일이 끝나는 대로 이쪽에서 신호를 보내죠.”

깡패와 무당, 두 사내는 술잔을 들이켜곤 일어섰다. 말없이 마주 고개를 끄덕인 뒤, 둘은 술집을 나섰다.

마치 전혀 모르는 남이었던 것처럼 두 사람은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다.

***

깡패는 서쪽으로 움직였다.

변경 도시 알말릭으로 향하는 길에, 몇 번이고 미행을 따돌렸다. ‘혁명의 최전선’에서 미행은 흔한 일이다.

풋내기 시절엔 미행이 붙으면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죽고 죽이는 자리에 왔구나, 그런 실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일상처럼 익숙해졌고, 미행이 붙으면 따돌릴 뿐이다.

……가끔은 따돌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깡패는 시골 마을, 으슥한 골목으로 미행하는 자를 유인한다.

미행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지금부터 비밀 기지로 들어간다는 듯.

상대는 깡패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미행하던 발걸음을 노골적인 추적으로 바꾼다.

골목 안쪽에서 함정을 파두고 기다리던 깡패는 그를 급습.

품에 숨겨 둔 자그마한 권총 하나, 총알 한 방으로 미행을 쓰러뜨린다.

“누가 미행한 건지 알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깡패는 시체를 쓰레기 더미 사이로 밀어 넣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살려둔 채로 어딘가에 처박아두고, ‘추궁’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캐내면 좋겠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경찰의 끄나풀인가, ‘카라코룸 신정부’의 간첩인가, 아니면 당내 다른 파벌의 견제인가.

그걸 알고 싶은 마음은 한구석에 묻어두고, 깡패는 서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변경 도시 알말릭의 동지들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혁명의 최전선’은 늘 이런 식 아니겠습니까.”

알말릭 조직의 리더는 체념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끄나풀 색출과 숙청. 이는 국가 단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군의 정보기관에서만 전담하는 일도 아니다.

권력을 지향하는 모든 집단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끄나풀, 혹은 ‘쥐새끼’라고 불리는 자들의 종류와 목적은 다양하다. 그만큼 수법도 다양하고.

“적들이 보낸 자도 있고, 이중간첩도 있고…… 또 그 이중간첩들은 어디에 충성하는가도 애매하고.”

“이기는 쪽이 우리 편이라는 놈들도 있겠죠.”

깡패의 말에 알말릭 리더는 껄껄 웃었다.

“그러니 쥐새끼죠. 그래도 쥐새끼들이 유용하긴 합니다. 우리가 ‘내어 줄 정보’만 세심하게 잘 고르면, 저쪽에서 쓸만한 정보를 물어다 주니까요.”

공무원들에게 건네는 뇌물만으로는 얻기 힘든 정보들. 그런 정보는 해당 조직에 직접 파고들어서 캐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정보를 통해 경찰의 눈을 피한다. 파업을 계획하거나 불법 신물을 인쇄, 배포하는 모든 일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뭐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아직 쥐새끼 박멸에 성공한 도시는 없어요. 조직도 마찬가지죠.”

깡패는 끄덕인다. 알말릭 조직은 리더의 기민한 판단에 따라 잘 움직이고 있다. 리더는 현실을 볼 줄 안다. 그렇다면 실수할 일은 없다.

리더 본인이 ‘쥐새끼’가 아니라는 전제 하의 이야기지만…… 그건 슬슬 감시를 발동해 볼 일이고.

“도시 내 노동자들은 얼마나 조직화되어 있습니까? 당장 봉기가 가능한 수준입니까?”

“파업이야 뭐 준비되어 있지만…… 봉기 말씀이십니까?”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리더는 답을 내놓았다.

“하려면 할 수야 있습니다. 경찰서를 습격하고 무기를 강탈하는 계획은 잡혀 있죠. 그 무기고를 열어줄 사람도 있고.

그런데 아시다시피…… 외부에서 지원이 없으면 봉기 자체가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그건 감안하셔야 합니다.”

깡패도 동의했다. 그도 ‘최전선’의 사전은 잘 아니까.

“그런데 봉기라면, 우리도…… 하는 겁니까?”

얼마 전에 깡패가 무당에게 던졌던 질문과 같은 질문이다. 깡패는 고개를 저었다.

“통상적인 점검이라고만 생각해두쇼. 결정은 아직 안 된 것 같소.”

단독 혁명을 진행할지, 카라코룸 신정부에 가담할지. 혹은 아예 다음 기회를 노리든지. 당 중앙위는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정보를 알말릭 리더에게 전하진 말자고, 깡패는 판단한다.

눈앞의 인간이 ‘쥐새끼’일 가능성은 늘 열어둬야 한다.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그럼 나는 이만 가보죠. 중앙위에서 뭔가 소식이 나오면 또 오겠소.”

깡패는 알말릭 리더의 궁금증에 찬 시선을 뒤로 한 채, 일방적으로 그렇게 통보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깡패는 국경까지 이동한다.

거기서 몇 가지 절차를 거쳐, ‘혁명의 고향’인 바라트와 접촉하는 것이다.

국경도시 알말릭 남쪽으로는 알티샤흐르, 서쪽으로는 카자흐 국경이 펼쳐져 있다.

그만큼 알말릭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오간다. 몽골인, 카자흐인, 알티샤흐르인 뿐만이 아니다.

호레즘인, 사마르칸드인, 더 멀리 후라산이나 페르시아, 카불, 사라이 사람들도 오간다.

그런 도시이기에, 바라트에서 온 동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들 수 있는 것이다.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바라트인은 금방 깡패를 찾아왔다.

“바라트 공산당에, 우리가 혁명을 시작해도 좋을지 자문을 구하고 싶소.”

바라트 측 입장은 이렇다. 해외의 동지들이 섣부른 혁명을 시작했다가 실패하면, ‘세계혁명’이라는 궁극적 목표에서 계속 멀어지게 된다.

아까운 동지들이 스러지고, 혁명 역량이 소멸한다. 뿐만 아니라 혁명의 적들은 대처법을 학습할 테고, 그러면 새로운 혁명은 계속해서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바라트는 해외 동지들을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간섭한다.

몽골에서 바라트 공산당의 의향을 묻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몽골 동지들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습니까?”

깡패는 자신이 파악한 정보들을 대략적으로 정리해 바라트인에게 넘겨줬다.

바라트인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그는 아무 설명 없이 기다리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바라트인의 보고도 ‘상관 동지’ 몇 사람을 거쳐, 바라트의 수도, 델리에 닿는다.

무굴의 황제들이 머물던 황궁은 ‘주석 동지’의 관저가 된 지 오래다.

보고가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석 동지의 집무실에서 노성이 터져 나온다.

“기다리라고들 해, 좀! 무엇이 그리도 급한가! 아즈텍의 혁명이 성공하면 지구에 두 개의 강력한 혁명 국가가 탄생하는 셈이야! 그러면 양쪽에서 포위하듯 간단하게 세계혁명은 달성된다! 왜 자기들이 주축을 담당하지 못해서들 안달인가!”

***

몽골 사회주의자들의 회의는 얼마 뒤에, 자리를 옮겨서 이어졌다.

이른바 ‘중앙위원회’라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간부들은 정치경찰의 눈을 더욱 의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론가로 명성 높았던 당 간부가 경찰의 간첩이었던 사례가 있는 만큼, 그들의 경계심은 신경질적으로 높다.

“범 알타이 인민동맹처럼 혁명을 시작하려면 우리도 ‘거점’ 도시를 확보해야 합니다. 칸발리크는 저 지경이니 당연히 안 되고, 카라코룸은 신정부가 선수를 쳤죠. 그렇다면……”

누군가 혁명을 시작할 도시의 조건을 정리한다.

“어느 정도는 규모가 있는 도시여야 합니다. 인구나 물자, 교통 면에서 혁명의 확산을 내다봐야 하니까요.”

“그럼 새너두나 옹구차트가 후보지가 되겠는데…… 이 도시들에 있는 조직의 준비 정도,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 계십니까?”

또 다른 누군가가 손을 든다. ‘무당’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는 별명조차 밝히지 않고 앉아 있었다.

‘무당’은 딱 보기에도 비밀스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제든 봉기를 일으킬 준비 자체는 되어 있소. 그런 질문은 우문에 가깝지. ‘혁명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동지들한테는 진압 경찰이나 군인들과 쫓고 쫓기는 게 일상이니까.

조직 내에 숨어든 간첩들을 잡아내거나 그들을 이용해 역정보를 흘리는 것도 그렇고. 동지들은 늘 전쟁 중이오.”

“동지의 말이 옳습니다. 봉기 이후에 도시를 장악할 수 있는가, 그 이후의 혁명 전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겠죠.”

“그런데…… 새너두와 옹구차트는, 카라코룸과 칸발리크 사이에 끼어 있는 도시입니다. 이건 위험합니다. 검토가 필요해요.”

지도로 보기엔 딱 양쪽에서 공격당하기 좋은 위치다. 카라코룸이든 칸발리크든 그들과 제휴하려 들 가능성도 있지만, 제휴보다는 선수를 쳐 자기들이 도시를 장악하려 들 수도 있다.

“역사를 잊어선 안 됩니다. 최근의 역사라도 말이죠. ……20여 년 전에 고려의 동지들이 어떤 곤욕을 치렀는지 떠올려봅시다.”

무당이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미승휴와 허동주 모두 민국 정부와 손을 잡기보다는, 그들을 토벌하는 데 힘을 기울였지.”

“범 알타이 인민동맹과 칸발리크 정부가, 마치 허동주와 미승휴 같은 관계로 발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사실 상황이 그때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몽골 황위는 비었고, 카라코룸과 칸발리크는 내전으로 치닫기 직전이죠. 군주정이나 공화정이냐의 경계에서 내전을 택할 가능성이 무척 크지만, 저들도 분명 ‘내전을 피할 수는 없는가’하는 고민은 할 겁니다.”

“그때는 우리만 죽어 나가겠죠.”

“그런 일은 피해야겠습니다. 동지들이 피로 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혁명가가 될 자격이 없어요.”

“그럼 새너두와 옹구차트는 피해서, 서쪽 변방에 가까운 중소도시에서 혁명을 시작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미 알말릭 방면에서 혁명을 준비하자는 지령은 내려보내지 않았습니까?”

“알말릭에서 시작한다면 당장 칸발리크와 카라코룸의 날카로운 칼은 피할 수 있겠죠. 두 세력이 맞붙는 틈을 타 혁명을 단숨에 진전시킬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그때는 새너두와 옹구차트에서 시작할 때의 이익을 포기해야겠죠. 물자든 인력이든 모든 면에서 상당히 힘들어질 겁니다.”

“해외 동지들의 지원이 필수적이겠군요.”

‘해외’라고는 해도 나올 말은 한정되어 있다. 얼마 전에 바라트 쪽에 의향을 물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