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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80화 (179/541)

몽골인의 공화(5)

마주 보던 두 무리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에게 달려간다.

어제까지 대치하던 광경대로라면, 두 무리가 서로를 쳐부수러 달려든다고 이해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두 무리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라 있다. 어색한 듯, 그러나 오랜만에 화해한 친구 혹은 형제를 만나듯 그런 웃음을 띠고 서로에게 다가가 얼싸안는다.

바로 몇 분 전에, 행진을 가로막고 있던 군과 경찰 측에서 시위대를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이다.

단순히 길을 가로막지 않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도 시위에 가담하겠다고.

적개심 가득한 표정들을 거두고 평화와 화합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며 카라코룸 총대주교 레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덥수룩한 수염 너머의 웃음이지만 분명히 알 수 있을 만큼 깊은 미소.

그런 미소를, 토칸은 옆에서 지켜보며 자기 얼굴에 따라 그린다.

“정부 측에서 성당을 태워버렸을 때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네만, 지금은 오히려 건물 몇 동으로 일이 잘 풀리는 계기가 됐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

자신이 시위대 앞에 서서 군, 경찰의 강경 진압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정부가 성당 방화를 저질렀다. 총대주교는 그렇게 알고 있다.

총대주교뿐만이 아니다. 토칸과 가까운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런 탄압에는 굴하지 않겠다는 성하와, 여러 사제분들의 용기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취재를 나온 기자들에게 총대주교가 직접 나서서 ‘이런 위협 때문에 주님의 어린 양들을 저버릴 수는 없다’라고 천명.

기사가 나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시위대의 기세와 규모는 더욱 늘어났고, 군과 경찰에서는 눈에 띄게 동요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당연하다. 총대주교를 비롯한 사제들은 그저 시위대 앞에서 기도문을 외우며 서 있었을 뿐이다. 단순히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방화를 저지르는 건 치졸하지 않은가.

정부가 뭘 해야 한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말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성당은 ‘신의 집’이다. 아무리 정부라 해도 그런 곳을 불태우는 것은 불경한 일이다.

방화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가 늦어지는 것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꿨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그러니 ‘정부가 하는 짓이 비열하다’는 여론이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치졸, 불경, 비열.

정부, 하면 떠오르는 말이 이 세 단어로 압축된다.

이 지경까지 오면 군인이든 경찰이든, 계급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퍼진다.

그리고 이성을 되찾고 생각해보게 된다.

경찰과 군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 카간과 정부인가, 국민인가.

물론 체계와 명령에 복종한다는 완고한 신념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무엇이 옳은 것인지 고민한다.

총대주교가 머무는 성당에도 아무렇지 않게 불을 지르는 정부. 그런 정부의 명령에 따라 국민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게 옳은 일인가?

이성과 상식, 그리고 인간의 양심에 근거해서, 군과 경찰 상당수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고른다.

그들은 이제 시민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나란히 행진한다.

혹은 아직도 칸발리크 정부와 카간을 따르는 군, 경찰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듯 앞장서서 걷는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은 사라지질 않는군.”

총대주교는 먼 거리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시민들의 행렬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오랜 시간 성직자로 살아 온 그의 눈은, 깊은 통찰력으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내다본다.

“카라코룸의 일은 이렇게 해결됐다고 치세. 허나 이것이 몽골 전체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앞으로의 상황은 몽골에 좋게만 돌아갈까. 그런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네.”

토칸은 결의를 다지겠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총대주교의 말에 대답했다.

“저희가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성하께선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시겠지요?”

“자네들이 몽골과 국민들…… 주님의 백성들을 위한다면야 나는 목숨 붙어 있는 마지막 날까지 기도할 걸세. 하지만…… 청년이 중년이 되고 운동가가 정치인이 되면 여러 유혹이 생기는 법이네. 그 유혹에 흔들리지 말게.”

총대주교 레오의 충고를, 토칸은 반쯤은 흘려듣는다.

현실의 정치, 현실의 투쟁에 그런 도덕론은 도구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도 토칸은 진지한 얼굴로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

몽골 제2의 도시, 또 다른 수도라 불리는 카라코룸은 ‘범 알타이 인민동맹’의 손에 넘어갔다.

원래대로라면 토칸은 인민동맹의 상층부에서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혁명이 도시를 장악하는 과정에서의 공을 인정받아, 토칸은 조금 위로 올라갔다.

그래서 직접 듣기도 하고, 어깨 너머로 엿보기도 하면서 상황의 흐름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신정부를 구성할 모양이다.”

그는 알아낸 사실들을 부하들에게 들려줬다.

토칸이 하는 말이라면, 토칸이 행하는 일이라면 뭐든 따르는 충실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이번에 대성당에 불을 지를 때도 ‘대의’라는 토칸의 말 한마디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고 함께 행동해줬다.

아는 바를 설명하는 일은, 그런 충직함에 대한 보상이다.

“우리 범 알타이 인민동맹의 중진들이 많이 참여하겠군요?”

부하 하나가 그렇게 묻자, 토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인민동맹은 전면에 나서진 않을 거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우리가 주도한 혁명 아닙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지. 일단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부족한 점이 많아. 우리는 이제 겨우 카라코룸 한 곳을 장악했을 뿐이야.”

혁명을 몽골 전국으로 확대하려면 범 알타이 인민동맹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세력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참여가 필요하다.

“우리는 허동주의 실패에서 배워야 해. 허동주 편을 든 사람들은 원래 그의 세력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거나, 돈만 많이 싸 들고 평양으로 내려온 기업가들이야. 기업가의 ‘머릿수’는 절대로 노동자의 머릿수를 추월할 수 없지.”

동원할 병력, 물자를 생산할 숙련공 수에서 허동주는 철저하게 밀렸다.

정예 병력은 많았지만, 일단 미리안이 공세를 몇 번 떨쳐내자 허동주의 희망은 사라졌다.

미리안을 비롯한 고려 제국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이야기냐고 할 법하지만, 어쨌든 몽골 쪽에서 보는 시각은 그랬다.

“그러니 인민동맹은 정당들 중 하나로 참여할 거야. 정부 수반이나 뭐 그런 사람들은 우리와 ‘협력 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겠지.”

“그래도 공화국 통령 자리는 우리가 차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생각에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상층부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야. 그게 일리도 있고.”

“어떤 겁니까?”

“우리는 이제부터 정부 체제를 바꿀 거야. 카간의 제국에서 몽골인의 공화국으로. 그런데 이건 외국인들이든 아니면 다른 지역 국민들에게든 뜬금없이 카라코룸에 자기네가 정부입네 자처하는 무리가 나타난 것처럼 보이거든.”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외국의 인정도 필요하다.

특히 외국의 입장에서 신정부를 인정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교류해 온 칸발리크 정부를 ‘버린다’는 의미이다.

그런 결정을 내릴 만큼 신정부 수립이 외국에 매력적인 사건인가?

“카간이 죽었지. 그리고 칸발리크는 저 모양이고, 칸발리크 정부도 그걸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어. 여기에 카간위 계승분쟁이 겹쳤지.

고려도, 키타이도, 낭키아스도 모두 몽골 황위를 노려. 동쪽과 남쪽으로는 우리 신정부를 지지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나라들 뿐이야. 이들과는…… 싸워야겠지.”

혁명 직후 프랑스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프랑스는 제국으로 변해버렸고, 황제 나폴레옹 1세가 아예 오스트리아로부터 신성 제국의 황제 자리를 빼앗으면서 완전히 구체제에 영합해버렸지만.

그러나 우리의 혁명은 그렇게 만들지 않겠다, 라고 토칸은 마음먹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국의 동맹…… 아니 동맹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적대는 하지 않을 나라들을 찾아야 해. 예를 들면 카잔, 카자흐, 사마르칸드, 알티샤흐르 같은 나라들.”

그렇게 해야 서쪽, 서남쪽 국경을 안정시켜 동쪽, 동남쪽에서 ‘적들’과 싸울 수 있다.

“즉, 우리의 신정부에 필요한 건 인민동맹의 ‘새 얼굴’이 아니라 ‘명망이 있는 익숙한 얼굴’이라는 거지.”

부하들은 다소 불만스럽기는 해도 납득은 한다는 얼굴이다. 토칸도 설명은 했지만 그들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일단은 함께한다 해도 언젠가 상황이 나아지면 결국은…… 잡다한 세력들은 쳐내고 범 알타이 인민동맹 중심의 정부를 만들어야겠지.

다른 부하가 질문을 던진다.

“여러 세력의 협력을 구한다면, 공산주의자들과도 협력하는 겁니까?”

“……글쎄.”

토칸은 대답을 망설인다. 그 역시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범 알타이 인민동맹은 사회주의 혁명세력이 아니라 극우 민족주의 단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 중 절반이 범 알타이 인민동맹의 이상에 심취해 있다고 해도, 다른 절반이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성향을 띠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막 칸발리크 정부와의 투쟁을 시작했는데, 함께할 노동자 절반을 적으로 돌려버린다?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다.

수많은 혁명가들이 독선으로 혁명정부를 멸망으로 몰고 갔다. 범 알타이 인민동맹은 그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요컨대, 친위혁명을 시작하던 당시 리안이 빠졌던 고민과 비슷한 고민이, 신정부에도 요구되는 상황.

“……아무래도, 그 사람들이 자기네 ‘노선’을 어떻게 정하는지에 달리지 않았을까. 우리 쪽에서도 아마 회유는 해보겠지만.”

***

토칸의 말대로 사회주의 계열 정당들은 앞으로의 노선을 두고 논쟁에 휩싸였다.

좋게 말하자면 활발한, 나쁘게 말하자면 혼란스러운 논쟁.

인민을 억압하는 군주, 카간 시레문의 죽음은 혁명이 진보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모든 기회가 그렇듯이 어떤 ‘결단’을 요구했다.

이미 극우 단체인 범 알타이 인민동맹은 혁명을 시작, 카라코룸을 장악하고 신정부 구성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러 정치 세력에 신정부에 참여하라고 제안한다. 사회주의 계열 명사들도 그런 권유를 받았다.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시골의 허름한 어느 가정집. 거기에 각기 변장을 하고 모인 ‘당원’들이 ‘당대회’를 연다.

늘 그렇듯 ‘당대회’는 말과 말이 부딪치는 전투다.

“이념 갈등은 잠시 접어두고, 신정부에 참여해 군주정에 맞선다는 명분을 공유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나름의 신정부를 구성, 독자적 혁명을 진행할 것인가?”

“혹은…… 기존 몽골 황실과 칸발리크 정부에 협력하면서, 지분의 확대를 요구할 것인가?”

그들의 고민, 오늘 논의할 주제는 이렇게 대략 세 갈래로 압축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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