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76화 (176/541)

몽골인의 공화(1)

보라.

부서진 붉은 세상의 도래를.

그분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우리에게 신성을 가르치시며,

우리도 올라가 그분들과 같이 영혼을 얻을지니,

우리는 대지를 박차며 승천하리.

부서진 지상은 더는 우리의 신성을 속박하지 못하도다.

그러니 모두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라.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이 죄다 이런 식이야.”

효윤은 신경질적으로 라디오를 꺼버렸다.

그녀의 시선도, 수영의 시선도, 침대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루우를 향했다.

루우는 방금 아버지를 잃었다. 의료진과 함께 탑승했던 어머니도 함께.

그 모습을 보며, 효윤은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딘가에서 생을 마감했을…… 아버지.

그도 젊은 시절에는 세계대전을 막으려고 몽골과 고려를 오가며 분투했다.

-그 딸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 보면 뭐라고 하실까.

혈육, 피와 살이라는 말은 참으로 신비해서, 자그마한 추억 한 조각조차 없어도 애틋한 마음이 들게 한다.

효윤 자신도 이런데, 루우는…… 도저히 뭔가 말을 꺼낼 상황이 아니겠지.

동공이 무의미하게 흔들리고, 어깨는 떨림을 감추지 못한다.

“중장 각하.”

방 밖에서, 굵은 목소리가 부른다.

“태주갑입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미안하지만 간단하게 요기할 정도만. 방으로 갖다줘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효윤을, 루우는 멍하니 고개를 들고 바라본다.

“‘우리’는, 고려 측에서 온 사람들은, 그냥 대기 중인 건가?”

“그래. 지금 상황에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불행 중 다행, 이라는 말을 루우 앞에서 꺼낼 수는 없지만…… 타이시 볼로드와 정부 요인 몇 명은 카간과는 다른 비행선을 탈 예정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살아남아, 이 비상 상황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저 태주갑이라는 중령한테, 즉시 서부군 사령부에 연락 취해서 움직이라고 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그렇게 질문하기도 전에 루우의 입에서 말이 쏟아진다.

“너도, 즉시 태사한테 연락 취해. 이건 인간의 힘을 벗어난 일이야. 몽골 정부 혼자서는 어림도 없어. 혼란을 막으려면 고려의 총력을 투입해야 할지도 몰라.”

루우는 곧바로 수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도 네 상관한테 전해. 고려군의 출병이든 태사의 개입 결정이든 기다리지 말고, 감찰국장이 곧바로 칸발리크로 오라고.”

효윤과 수영은 마주본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건 흥분한 루우가 마구잡이로 내리는 명령일까? 아니면 이런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고 내리는 냉철한 명령일까.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위로하고 설득해야 하는가.

루우는, 바닥을 향해 쏟아내듯이 말했다.

“이미 적보다 늦게 움직이고 있지만, 더 늦게 움직이면 안 돼. 너희들도 봤잖아. 하늘에 뜬 거. 게다가 라디오에서는 이상한 방송만 계속 나와.”

방송국이 ‘그 정체불명의 종교’ 신도들에게 넘어간 건지, 아니면 하늘 위의 붉은 존재가 그런 전파를 뿜어내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전례 없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라는 건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효윤과 수영은 끄덕이고, 본국에 연락을 취하러 밖으로 나섰다.

***

카라코룸 총대주교 레오 6세는, 평소 총명하다고 생각했던 청년의 낯선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정말 내가 나서야 하는가, 토칸?”

“경찰과 시위대가 부딪치면 많은 사람이 다칠 겁니다. 죽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만약 총대주교께서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 앞에 서 주신다면, 경찰도 감히 곤봉을 휘두르진 못하겠죠.”

어느 나라나 명망 높은 성직자는 ‘큰 어른’으로 대우한다. 그래서 아무리 악독한 정권이라도 그런 성직자에겐 ‘발언을 자제해 달라’는 권고나 가택 연금에서 그칠 뿐이다.

애초에 어떤 정권이든 그 구성원 중에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성직자’를 건드리는 순간 정치고 뭐고를 떠나서 곧바로 정권의 반대 세력이 된다.

시민들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위가 폭력으로 치닫는 것도 바라지 않는 레오 총대주교는, 청년의 설득에 흔들렸다.

청년이 자신을 이용할 생각이라는 건 알지만, 자신의 영향력으로 이 모든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낼 수 있을 듯하다.

“알겠네. 자네들과 함께 가지. ……우리 주께서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부하들이 총대주교를 모시고 성당 밖으로 나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토칸은 미소 지었다.

“명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피해자, 선한 사람,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분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은 부하들을 돌아보며 토칸은 물었다.

“성당 안에 계신 신부님들 모두 피난시켰나?”

“예. 총대주교께서 시위대를 따라 나가시니, 군경의 보복이 미칠지도 모른다고 설득했습니다.”

“음, 좋아.”

그들은 오늘 총대주교를 모시고, 다른 날과 달리 평화롭게 시위를 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 소식이 충분히 카라코룸 전체에 퍼졌을 때, 성당에 불을 지른다.

군이나 경찰의 소행으로 보이게 할 준비는 다 되었다.

“알타이 민족 혁명의 불꽃이 타오른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군.”

그렇게 말하며 웃는 토칸의 손가락 끝이, 하얀 촉수처럼 변해 꿈틀거린다.

***

카간 시레문, 붕어(崩御).

작년에 고려에서 미승휴가 사망한 데 이어, 올해는 시레문이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2년 사이에 세계대전 시기의 지도자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 소식은 칸발리크 황궁에 피난해 있던 대사들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전해졌다. 키타이와 낭키아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칸발리크 상공에 나타난, 거대한 붉은 존재에 대한 소식도 함께.

울제이는 칸발리크에서 들려온 소식에 매우 놀랐지만, 게레센제는 형의 죽음에만 놀랐을 뿐, 그 붉은 존재의 출현에는 놀라지 않았다.

놀라는 척, 연기는 했지만.

-결국 그 단계까지 밟는 건가.

‘범 알타이 인민동맹’이 진행하던 일련의 행동들 끝에는, 그것이 출현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건데.

그거야 게레센제의 마음속 문제고, 이제부터 표면에 드러날 문제는 또 따로 있었다.

카간 자리 계승 문제.

하지만 당장 드러내진 않는다. 일단 옆에 선 울제이의 두 눈에선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게레센제 역시 비통한 마음으로 얼굴을 굳힌 채, 그런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키타이와 낭키아스 모두, 국가적으로 애도를 표하자꾸나. 그게 순서인 것 같다.”

“……예, 형님.”

게레센제는 여전히 개봉에 머무르고 있었다. 기차와 비행기 덕분에 ‘물리적 거리’가 갖는 의미는 많이 퇴색했지만, 그 유용성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리적 거리는 ‘정치적 거리’와 관련이 적지 않다.

루우 테무르가 태어나기 전에도, 태어난 후에도 카간위 계승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게레센제다.

그런 그를 낭키아스의 칸으로 임명함으로써, 그리고 그와 카간 울루스 사이, 키타이의 칸으로 울제이를 배치함으로써, 시레문은 ‘어떤 의사’를 드러냈다.

쉽게 카간 자리를 넘겨주진 않겠다는 의사 표시.

울제이에게도, 작은형을 견제하고 카간 자리에 희망을 품어도 좋다는 의사 표시.

시레문에게 설령 그런 의도가 없었고, 순수하게 정복지 통치의 효율을 위해 그런 배치를 했다 하더라도, 카간 자리를 둘러싼 정치권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권력의 흐름, 집중과 해체에 민감한 물고기들은 이런저런 희망과 예측과 분석을 내놓으며 끝없이 지느러미를 휘젓는다.

그런 물고기 중 한마리인 게레센제 역시,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칸발리크와의 ‘정치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응천을 떠나 개봉에 계속 머무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시레문이 울제이와 자신을 서로 견제하는 관계로 배치했다면,

자신은 개봉으로 올라와 ‘울제이의 편’이 되어주겠다는 식으로 응수한다.

그리하여 딸, 루우를 칸발리크로 맞이한 시레문에게 맞서, 울제이와 게레센제는 동맹을 형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시레문 형님의 죽음으로 더 유지하긴 힘들겠군.

카간 자리 계승 문제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으니까.

게레센제, 울제이, 루우. 세 사람 중 하나는 카간이 될 것이다. 이 말은 즉, 세 사람이 더는 시레문의 간섭을 받지 않고 경쟁하게 된다는 뜻.

하지만 지금은 ‘애도’를 핑계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아직은 이 동맹을 깨서는 안 된다.

적어도 칸발리크에 있는 루우의 행보가 확실해질 때까지, ‘쿠릴타이’가 게레센제와 울제이 형제를 부르기 전까지는 유지해야 한다.

-여차하면, 군을 움직여 칸발리크를 압박해야 할지도.

물론 낭키아스군은 키타이군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울제이는 게레센제와의 동맹이 깨지면 그 즉시 낭키아스군의 북진을 저지할 것이다. ‘물리적 거리’는 이럴 때도 게레센제의 발목을 잡는다.

발목을 잡는 게 있다면, 거기서 벗어날 방법도 생각해봐야겠지.

제약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아닌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변화를 일으켜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평생 남의 꽁무니나 따라다니게 된다.

잘 한번 생각해보자. 다른 방법은 없는지.

형, 시레문은 죽었다.

게레센제-울제이 연합 대 시레문-루우 테무르 연합, 이런 구도는 깨졌다.

물살이 변했다. 이전에 헤엄치던 방법을 고집하는 물고기는 죽을 것이다.

다시 말해, 동맹 관계에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미다.

이른바 ‘동맹의 역전’이라고 부르는 현상.

울제이와의 동맹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그를 끊어내고 새로운 동맹으로 루우 테무르를 택할 수도 있다.

머릿속으로 가상의 실험을 진행해보자. 먼저…… 그대로 울제이와의 동맹을 유지. 루우 테무르를 배제한다는 가정.

형제가 나란히 칸발리크에 입성한다. 여기까지는 통쾌한 상상이다.

그러나 방금 이야기했듯, ‘물리적 거리’가 문제다.

몽골 본토와 키타이는 육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낭키아스는 아니다.

요컨대 게레센제가 뭘 해보기도 전에 울제이가 카간 자리와 몽골 본토를 삼켜버릴 것이다.

게레센제는 기껏해야 명예나 황실에서의 더 높은 서열…… 정도를 얻어낼 수 있을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칸발리크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칸으로 머물 뿐이다.

반대로 루우 테무르와 손을 잡고, 울제이를 물리친다면?

일단 육로로 확실히 칸발리크 및 몽골 본토와 연결된다. 카간 자리를 노리기에 지금보다 더없이 좋은 조건이 갖춰진다.

물론 그때는 루우 테무르와 다시 한번 대결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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