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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61화 (161/541)

카간의 도시(11)

지도를 보고 실제 국경 현장을 상상해본다.

군인들의 눈 앞에 펼쳐진 철조망 너머에는, 동생 울제이 칸의 나라가 육중한 몸집을 기울여 형의 앞을 막고 있다.

고려의 산동 식민지를 분할한 이후, 북쪽 국경은 온전히 키타이와 낭키아스만의 것이 되었다.

가로막는다.

그렇다. 무의식중에 떠올린 그 표현대로다.

게레센제는 동생 울제이가 자신과 큰형 시레문 사이를 가로막는다고 느꼈다.

칸발리크와 응천 사이를.

몽골 본국과 낭키아스 사이를.

두 형제 군주 간 사적인 사이뿐만 아니라, 두 나라 간 정치적인 교류마저도.

물론 노골적인 국경 봉쇄나, 키타이군의 남방 전진배치같은 움직임은 없다.

오히려 울제이가 칸발리크에서 일어나는 문제나 각종 외교 현안들을 논의하자고 제안해왔다.

“하지만 내가 직접 칸발리크와 접촉해 지원에 나서려 하면, 그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지.”

게레센제의 황위 계승을 막기 위해서라면, 울제이는 개봉에서 단독 쿠릴타이라도 열어서 카간이 된 후 칸발리크로 진격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는 굳이 시험해보지 않아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다.

형제니까.

같은 야망을 품은 형제니까.

언젠가는 몽골의 카간이 되겠다는 야망을.

지금 카간의 계승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게레센제다. 그 다음이 울제이, 루우 테무르 순일까.

“나 다음이라고 해서 나와 큰 격차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

당장 귀여운 조카라고만 여겼던 루우 테무르조차 강국 고려의 여제가 되어 이 황위 쟁탈전에 참여하지 않았는가.

울제이 역시, 일단 게레센제만 배제하면……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형제라고 해도.

전에 루우 테무르에게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친인척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려고 분투하는 것 사이에 모순은 없다.

“그 아이도, 자기가 황위를 계승하기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숙부들에게 칼을 겨누겠지.”

그렇다고 해서 괘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배신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권력을 향한 열망은, 황금가문 보르지긴의 일원이라면 당연한 것.

다만…….

“내 쪽에서도 최선을 다해 맞서 줄 뿐.”

그렇게 말하며 게레센제는 몸을 일으켰다.

동생은 허심탄회하게 형제끼리 대화를 나눠보자고 했다.

그러고 보니 산동 토벌 이후 서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다. 신수덕 문제로 서먹해져서, 칸발리크에서 열린 관세동맹 관련 회담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화해…… 까진 어렵겠지. 화해가 필요할 만큼 서로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지만.”

애초에 섭섭하고 말 것도 없다. 둘은 각자의 조국을 위해 애쓸 뿐이니까.

그런 군주의 입장이기에, 화기애애한 대화든 적대감을 드러내는 날 선 대화든, 사적인 감정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번에 개봉에 가서 나눌 이야기도 마찬가지지.”

일단은 들어볼까. 무슨 이야기를 할지 짐작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지만.

비서관을 호출하려던 손을 멈추고, 다시 잠깐 생각에 잠긴다.

“칸발리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역시, 그때 신수덕이 넘겨준 기술과 관련이 있겠지.”

그의 말에 따르면 ‘문의 개방’이라 불리는 현상.

충분한 대비를 했기 때문에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게레센제는 ‘파멸인’을 불러내는 실험을 한 번 해보곤 더 이상의 연구를 중단했었다.

“무서운 기술이고, 군사적 쓸모도 의심스러워.”

파멸인의 내구성이나 전투력 자체는 엄청났고, 신수덕이 넘긴 기술을 바탕으로 통제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점, 즉 ‘대체 어떻게 해서 그 모든 일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떠올릴 수 없었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통제한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오판일 수 있다. 이는 곧, ‘통제하지 못한다’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칸발리크에서 저 난리가 났다는 건, 신수덕이 우리에게만 기술을 넘기진 않았다는 소리지.”

신수덕이 아니라 허동주 잔당 중 누군가일 수도 있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아니, 아니, 큰 차이가 있다.

게레센제는 제정신이라 그 기술을 쓰지 않지만, 칸발리크의 누군가는 파멸인을 도시에 풀어놓을 만큼 단단히 미쳤다는 것.

“혹은 그렇게 미친 짓을 해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게 있거나.”

이번에 키타이의 수도 개봉에서 울제이를 만날 때는, 그 점을 염두에 두고 회담에 임해야 한다.

시레문도, 울제이도 신수덕이 전해준 그 ‘기술’에 대해 모를 경우, 즉 게레센제만 알고 있을 경우.

정보를 두 사람과 공유해야 하는가?

칸발리크의 혼란을 틈타 몽골 황위에 한 걸음 더 다가설 것인가. 아니면 정보를 공유해 사태를 진정시키고, 관세동맹을 통한 낭키아스의 국력 신장을 꾀할 것인가.

울제이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미리 방향을 정해둬야 한다.

또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자.

울제이가 그 ‘기술’을 알고 있을 경우.

그런 경우라면…… 이번 칸발리크 테러의 배후가 울제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역시 가능하다.

하지만 울제이가 그런 모험을 할까? 정말 울제이가 그런 짓을 했다면 몽골과 낭키아스는 전쟁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고려 역시 키타이 정벌에 가담하겠지.

그러니 이제 막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확보하고, 관세동맹을 통해 키타이 경제를 성장시키려는 울제이 입장에선 동기가 부족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울제이가 ‘알고 있다면’, 게레센제는 자신도 안다고 털어놓고 적극적으로 협력할지, 아니면 그냥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태를 지켜볼지 선택해야 한다.

한숨을 내쉰다.

“어느 쪽이든 쉽지 않군.”

개봉에 도착하기 전까지, 몇 번이고 대본을 되뇌는 연극배우처럼 연습을 해둬야겠다.

***

안세규의 우려는 단순히 고려 내의 권력 구조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루우가 몽골 황위를 계승하면, 그 과정에서 황제의 권력이 절대화한다.

그러면 입헌군주제와 민주정치가 말뿐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우려도 작진 않지만…….

-키타이의 울제이 칸, 낭키아스의 게레센제 칸에게 회담 제의.

-게레센제 칸은 이에 응해 개봉으로 향하는 중.

이런 보고처럼, 다른 나라들의 움직임에도 안세규의 걱정은 깊어진다.

칸발리크에서 일어나는 일에 키타이와 낭키아스 두 나라가 움직인다.

각 칸들은 몽골 카간의 계승권을 지닌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아시아 정세에 깊이 관련된 두 나라의 국가원수이기도 하다.

그러니 설령 루우가 몽골 카간 자리를 계승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걸로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날 리는 없다.

동아시아에는 몽골과 고려라는 두 강국이 통합된, 새로운 강대국이 무대에 등장하는 셈이다.

군주들은 개인적으로는 몽골 황위를 찬탈당했다며 항의할 것이고, 국가적으로는 경계심을 드러낼 것이다.

긴 국경을 마주하게 될 키타이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편의 낭키아스도 강한 경계를 보이겠지. 관세동맹의 저울도 고려-몽골 통합국가 쪽으로 크게 기울겠고.

그러다 아주 우연히, 어떤 일을 계기로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동아시아에 일어날 새로운 전쟁은 아즈텍과 일본에도 영향을 끼칠 테고, 그러면 두 번째 세계대전으로 발전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민주공화를 외치기 이전에 생존부터 절박해지는 시대가 와버린다. 반대로 안세규와 동지들의 이상은 수십 년쯤 뒤로 미뤄져 버릴 테고.

그러므로 몽골에서 일어나는 혁명은 최대한 지원해 루우가 얻을 황위를 없애는 한편, 고려 국내에서는 개입 여론을 억제해야 한다.

동시에…… 키타이와 낭키아스의 상황도 계속 주시해야겠지. 고려가 움직이지 않으면 두 나라도 섣불리 행동하진 않을 것이다.

울제이와 게레센제가 루우의 계승을 두고 보지 않듯이, 루우도 숙부들의 계승을 두고만 보진 않을 테니까. 두 군주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겠지.

다만…… 역시 우발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루우가 칸발리크로 가기로 결정한 만큼.

“설마 외무성과의 논의 없이 결정할 줄이야.”

태사의 승인. 그 후 카간과 황제 사이의 직통 연락망을 통해 합의를 보고, 외무성에는 사후 통보한다.

“고려 입헌군주정의 불완전함과 동시에…… 외무장관이 지닌 권력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군.”

황제가 어떤 행동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된 바도 없고, 태사도 그런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고 싶어 한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황제라면 저쯤은 할 수 있지’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외무성을 통해 타국의 외무성과 접촉, 자세한 몽골 방문 일정 등을 의논하는 게 ‘바람직하고’, ‘권장되는’ 방식이지만, ‘비상상황’에서는 이러한 변칙도 용납되고 만다.

그리고 외무장관은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다. 태사나 황제에게 ‘자제’를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딱 그 정도.

“역시 황제의 권력을 헌법부터 세세하게 제한해두지 않으면 안 돼.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제정 폐지를 지향하지 않으면……”

하지만 대체 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막막하다.

“역시, 끊임없이 위를 지향하는 수밖에.”

지난번에 법무장관 류성일과 이야기했듯이.

류성일과 협력. 그를 차기 태사로 올리고, 자신은 그 밑에서 국민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권력 기반을 확대해 나간다.

1대 미승휴, 2대 미리안, 3대 류성일…… 그리고 4대쯤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자.

그 정도 권력이면, 뭔가 해볼 수 있겠지.

민주정. 국민 모두에게 권력을 배분하기 위해선, 일단 배분할 권력을 손에 넣어야만 한다.

고개를 젓는다. 그건 장기적인 계획이다.

생각이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지금 눈앞에 놓인 일은 ‘루우가 칸발리크에 가는 것’, ‘게레센제와 울제이가 개봉에서 만나는 것’이다.

“군에서 굴리는 첩보망 쪽에도 접근해봐야겠군.”

그들의 힘을 빌리면 일은 다소 수월해지지만, 접촉할 수 있는 군 인사는 한정되어 있다.

군은 태사의 것이고, 안세규가 함부로 접근하면 태사의 이목을 끌겠지.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조유관 장군께 부탁하는 수밖에 없나.”

물론 조유관이 고려 제국의 군인이 아닌, 고려국민당의 군인이라는 혐의를 받는 분위기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 직접 접촉은 경솔한 행동이다.

전보를 보내는 게 한계겠지.

그나저나, 하고 안세규는 피식 웃었다.

태사도 황제도 칸발리크에서 일어나는 일에 몰두하고 있고.

울제이와 게레센제도 칸발리크의 동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고 안세규 자신도…… 칸발리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들을 파악하려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중이다.

어쩌면 일본이나 아즈텍, 바라트에서도 주목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카간의 도시 칸발리크는 20여 년 만의 위기를 겪으면서, 동아시아 정치외교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지 않은가.

그 역설이 안세규를 헛웃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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