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간의 도시(6)
칸발리크 주변의 병력 증강.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카간 앞, 각료들 사이에 염려가 오간다.
“한동안은 각종 방위계획의 재조정이 불가피할 듯합니다.”
본래 군의 배치는 가장 끝자락부터 가장 깊은 곳까지, 치밀한 방어를 염두에 두고 유기적으로 짜여 있다.
적극적 방어를 빙자하는, 혹은 반격이라는 이름의 공격 작전 역시 마찬가지다.
“칸발리크의 급변 사태라고는 하지만, 방어체계가 혼선을 빚는 건 마음에 걸리는군.”
원래대로라면 국경 부대들이 적의 공격을 막는 동안, 후방에 있던 부대들이 차근차근 진격해 아군을 도우며 방어를 증강하는 방식의 작전이 세워져 있다.
그 외에도 후방 부대들은 물자와 인력의 수송, 혹시 모를 내부 교란 공작을 저지하는 임무도 맡는다.
상당수 후방 부대들을 칸발리크 인근으로 재배치하면 이런 작전 계획에 빈틈이 생길 터.
“그러니 그 ‘한동안’을 최대한 줄여보는 수밖에 없지요.”
늘 그렇듯이 말을 어떻게 실천으로 옮길 것인가가 문제다.
칸발리크로 병력을 집결시키고, 그 다음은?
수도의 모든 건물과 골목, 지하 시설 등을 하나하나 다 뒤지고, 도시 내 모든 인간의 삶을 죄다 검열할 것인가?
“그런 일이 가능하고 아니고 이전에, 그렇게 해도 이번 테러의 범인이나 그 수단을 찾아낸다는 보장이 전혀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도시에 그런 괴물들을 계속 풀어놓는지, 그러면서도 정작 범인은 어떻게 단서 하나 남기지 않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병력을 증강함으로써, 매일 밤 일어나는 테러에 더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해야 할 겁니다.”
“경찰이나 기존 수도방위군 병사들의 피로가 점차 쌓여가고 있으니까요. 대응할 병력이 많아지면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뭔가 하나쯤…… 나오지 않겠습니까.”
밤사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괴물들. 그것들을 잡고 주민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출동하는 군과 경찰.
괴물의 출현 횟수가 늘어나면서 자연히 출동 횟수도 늘고, 그러다보면 피로도 늘어난다.
“피로뿐만 아니라, 다른 괴로움을 호소하는 병사들도 있다고 합니다. 한정된 인원이 계속 이 테러에 노출되는 건 좋지 않아요. 휴식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저 괴물을 쳐다보고 온 것만으로도 공포와 혼란을 느끼고, 악몽을 꾸거나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정서 불안, 그에 따른 동료와의 갈등, 폭력 사건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더 거대하고 더 기괴하게 생긴 괴물이 나타나면서, 그런 호소는 늘어만 가는 중이다.
“자자, 병력이 증강됐으니 그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겁니다. 그러니 과연…… 증강된 병력으로 개별 테러 사건을 해결하다 보면, ‘뭔가가 나오기는 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죠.”
각료들은 잠시 말을 멈춘다. ‘나와야만 합니다’라고 기세 좋게 대답할 수는 있지만, 그런 대답이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기자들 앞에서는 그런 답변을 해서 국민을 안심 시켜야겠지만, 지금 여기는 확실한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카간의 어전.
“그 점에 대해서는 짐이 한마디 보탤 수 있겠군요.”
각료들의 논의를 보며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카간이,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황실에서 독자적으로 연구하던 괴물의 자료 일부를 공개하고, 그 대처법을 함께 고민해봐야 할 때입니다.”
‘여기까지’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수도가 괴물들의 출현으로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매일 밤 시민들이 불안에 떨며 잠들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의미.
그리고…… 적군도 아니고 자국군의 포격으로 다수의 시민을 죽게 만든 상황이라는 의미.
카간의 얼굴에 드리운 짙은 그늘은, 피로 때문만은 아니다.
죄책감도 한몫하고 있다.
물론 포격을 지시한 책임자를 불러 엄하게 추궁하기는 했지만, 그의 판단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단의 공격이 제대로 통하지 않은 데다, 지금까지 나타난 괴물과는 전혀 다른 괴물이었습니다. 어떤 방식의 공격을 하고, 그게 어떤 피해를 끼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습니다.
-수도 전체의 안전이 걸린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적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다른 구역으로 피해를 확산시키지 않은 것이 최선이라고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단 전력의 보존이 중요했습니다. 이단들을 혹사하는 현 상황에서, 이단 전력의 감소는 대테러 방어 전략 전체를 뒤흔들 수 있습니다.
무엇이 덜 중요하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 저울에 올려놓는다.
설령 그것이 사람의 목숨이라 해도.
지휘관은 그래야 할 때가 있다.
몽골군 통수권자로서, 그리고 세계대전을 겪어 본 세대로서, 카간 시레문은 그 지휘관의 말을 이해했다.
작은 악행을 저지르길 주저하면, 큰 악행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 때도 있다.
만약 그 지휘관이 그 주변 시민들의 안전을 우선하다, 도시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갔다면, 그때는 또 어떻게 추궁했을 것인가.
그러니…… 죄책감은 부하들이 아니라 카간이 책임지고 안고 가야 한다.
“폐하…….”
타이시 볼로드가 말리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시레문은 고개를 저었다.
“전부 공개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수도가 이 지경이 됐는데 비밀을 안고만 있을 순 없지.”
그리고 각료들 전부를 한 번 둘러보며 덧붙인다.
“칸발리크가 어떤 도시인지는, 여기 계신 모두가 알잖습니까.”
몽골 초원과 한족의 농토 사이, 교차 지점.
이질적인 두 민족 집단을 아우르기 위한 수도이자, 세계의 수도로 만들고자 했던 쿠빌라이 카간의 꿈이 깃든 곳.
그래서 쿠빌라이 카간은 자신의 이상을 한족도 곧바로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의 말로 대도(大都)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 후로 700여 년, 이 도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피를 아낌없이 내놓았던가.
“한족의 반란군, 그들이 세운 명, 이후 순과 주. 우리 조상들은 그 나라들의 계속된 공격을, 그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막아내셨습니다. 태평천국과 싸웠던 우리처럼 말이죠.”
여기 대부분은 그 아픈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칸발리크를 지키는 데 실패하고 한 차례 빼앗겼지만, 끝내 되찾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그 기억도 역사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때 느꼈던 슬픔과 절망, 희망과 영광과 기쁨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런 소중한 도시를 지키려면, 뭔가 내놓을 각오는 해야만 한다.
“매일 밤 나타나는 괴물을, 우리는 ‘파멸인’이라고 부릅니다. 중세, 근세 성리학자들은 일찍이 이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그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각료들이 서로를 힐끔거린다. 공식적인 이름이 붙어 있었다면, 확실히 황실은 사태를 우리보다는 더 잘 파악하고 있겠군.
“황실과 군은 군사적 목적으로 옛 시대의 유적지, 특히 고대 사원들을 탐사해 이 괴물들의 습성을 연구해왔습니다. 그 결과 대략적인 격퇴 방법, 즉 괴물의 약점이나 내구성 정도를 알아냈습니다만…… 이런 사태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사원 등 유적지 인근의 출현 사례는 있다. 그러나 지금 칸발리크에 나타나는 파멸인들처럼 특정한 거점도, 규칙성도 없이 나타나는 건 처음이다.
“얼마 전에 나타났던 거대한 파멸인…… 아니, 그것도 파멸인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그것도 황실과 군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시선을 탁자 위에 놓인 지도로 돌린다. 이미 백여 개를 넘은 파멸인 출현 지점이 붉게 표시된 지도.
그 지도 위에, 거대 파멸인의 출현 지점만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도 있죠.”
황궁을 중심으로, 도시의 주요 구역 주변을 감싼 삼엄한 경계선.
파멸인은 마치 그 방어선 밖에서 포위라도 하듯이 출현하고 있다.
“파멸인은 자연재해도 아니고,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고대의 신비가 재림한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명확한 ‘의도’를 갖고 우리의 성스러운 수도를 공격하는 겁니다.”
파멸인을 조종하는 ‘의도’. 이는 루우가 보내준 정보가 아니었다면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시레문의 딸은 다분히 계산적이긴 하지만, 협력적으로 나오고 있다.
“출현 빈도, 장소, 출현하는 괴물의 성질과 종류, 이 모두를 조절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 ‘누군가’는 우리를 기만하며 소모시키는 한편으로, 우리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떠보고 있죠.”
아마 그 누군가의 최종 공격 목표는, 이 도시의 중심.
그리고 이 나라 몽골의 중심.
황실과 정부일 터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잘 ‘대응’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응 방식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적이 의도대로 행동하고, 그 의도에 ‘맞춰서 대응’하면 영원히 적이 행동하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가 됩니다.”
‘적’이라는 명확한 표현이 각료들 사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차라리 그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나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만 적의 행동을 학습하는 게 아니라, 적도 우리의 대응을 학습합니다. ‘아, 대응 역량이 이 정도군. 그렇다면 이번엔 대응하지 못하도록 좀 더 엄청난 걸 터트려볼까.’ 적이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대응체계도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적의 의도를 앞질러야 한다.
그러기 위한 병력 증강이다.
“수도 주변으로 증원된 병력은 기존 병력이 하던 업무를 분담할 뿐만 아니라, 수도 주변으로 ‘또 하나의 포위망’을 만들 겁니다.”
“폐하, 그렇다는 말씀은……?”
“적이 칸발리크 밖, 전국토를 노리고 괴물들을 퍼트리는 걸 막겠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도시의 안과 밖에서 적을 협공해 물리친다는 이야깁니다.”
작년, 고려 제국의 내전 초기에 미리안도 이런 식으로 작전을 세웠다고 들었다.
수도를 포위한 반란군을, 외부에서 다시 포위.
그렇게 도시의 안과 밖에서 협공해 적을 물리치고, 반격을 위해 숨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국가 원수이면서 동시에 군 통수권자인 카간은, 그런 사례를 미리 머릿속에 넣어 뒀었다.
게다가 지금 몽골의 조건은 그때 미리안이 처한 상황보다는 낫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누군가’, 즉, 사람이 의도를 갖고 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황실과 정부를 적대하는 자다. 그런 자가 이렇게 큰일을 꾸밀 수 있다면, 용의자는 상당히 한정된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세력.
그런 세력은 ‘범 알타이 인민동맹’ 같은 파시스트들이기도 하고, 공산주의자들이기도 하다.
몽골 정부와 황실은 그들에게 포위됐다.
“그러므로 ‘사람’을 잡으면 이 일은 마무리됩니다. ‘파멸인’의 격멸 작전과 함께, 모든 반정부 인사에 대한 철저한 조사에 착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