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간의 도시(5)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질문이기는 했다.
태사 미리안은 루우의 몽골 황위 계승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몽골 황위 계승은, 단순히 루우가 몽골과 고려의 황제 자리를 겸직한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군연합.
고려와 몽골, 두 국가 간의 연합.
더 나아가 두 나라의 완전한 합병까지 내다볼 수 있는 사안이다.
“처음에는 황제의 거부권과 태사의 권한 문제를 들고나오더군.”
리안은 작년, 루우의 황제 즉위 직전에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견하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황제의 거부권을 제한하고, 태사의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한다. 그 대신 태사는 황제의 야망에 협력한다…… 그런 거래였어.”
하지만 리안은 그 거래 조건이 형식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우의 몽골 황위 계승은 아직 먼 이야기고, 설령 가까워진다 해도 어떻게든 ‘시간을 끌’ 수 있을 거라고.
“시레문 카간이 아들을 새로 낳는다든가, 혹은 동생들 중 하나를 명확한 후계자로 선포한다든가. 루우의 계승을 가로막을 수 있는 요인은 많거든.”
그때는 그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것이다.
루우에게는 협력한다고 말하면서, 감정 상할 일을 피한다.
대신 리안은 간신히 얻은 권력을 안정시킨다.
하지만 상황은 합리적으로 판단한 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대공황이 터지고, 그 돌파구로 관세동맹을 택했지.”
그 결과 몽골과 고려의 경제적 결속력은 강해져 간다.
“아즈텍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고.”
그렇기에 고려에서는 군사적, 정치적 안전망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제는 몽골의 불안정도 가속화되고 있어.”
그 불안정을 노리고 각자의 이익을 취하려는 자들이 지하에서 꿈틀거린다.
“아마 황제…… 루우는 지금 이 상황을 좋은 기회로 여기고 있겠지.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면서?”
견하는 끄덕였다. 루우가 한재연에게 명령해 만들게 한 그 「계획」. 견하로서는 반대할 방법이 없다.
물론 견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그 계획에 관여는 하고 있지만.
“만약 카간이 죽거나, 강제로 퇴위를 당하거나, 몽골이 혁명이나 내전에 휩싸인다면 루우는 적극 개입을 주장할 거야. 만약 제국최고회의에 직접 나타나서 연설이라도 늘어놓는 날에는, 막을 방법이 없어.”
리안이 아무리 제국입헌당을 철저히 장악하고 있어도, 다른 당과의 협력이 아무리 잘 이루어지고 있다 해도, 황제의 직접적인 호소가 가져올 파급보다는 크지 않다.
의원들은 리안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몽골 문제 개입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다. 불충한 인간으로 낙인찍힐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몽골로의 확장은 누나의 권력도 늘려줄 거예요.”
리안은 그 말에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알아. 그러려고 네가 루우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 카라코룸 천도, 나에게 주기 위한 새 수도잖아? 남자친구니까, 여자친구를 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허리를 곧게 펴고, 부드럽게 고개를 젓는다. 마치 달래듯이.
“나랑 만난 첫날, 왜 내가 권력을 쥐어야만 하는지 이야기했던 거, 기억해?”
“……네.”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날 리안은, 허동주의 미친 확장 전쟁 계획을 막아야만 한다고 호소했다.
“내가 여기서 루우의 계획에 찬성하면, 나는 대체 왜 권력을 쥔 거지?”
내전에서 피를 흘린 사람들은 개죽음을 당한 건가? 허동주와 다를 바 없는 태사를 세우기 위해서?
그래선 안 된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게 했으면, 피를 흘린 만큼 뭔가 해야 한다.
허동주와는 다른 면모, 다른 정치, 다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
“나는 허동주가 아니야.”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더는 대답을 미룰 수 없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이익을 추구하는, 그런 얕은 수작을 부릴 수도 없다.
“나는 루우의 몽골 황위 계승에 반대하겠어.”
리안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견하는, 이윽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나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가야겠지만…… 막을 방법은 있어요? 아까 누나 말대로 루우가 덜컥 제국최고회의에 나타나서 ‘짐은 국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외쳐버리면 의원들은 줄줄이 찬성표를 던질 거예요. 그게 라디오 방송이라도 타면 국민들도 너도나도 애국을 부르짖을 거고요.”
“생각해둔 방법은 있지.”
루우가 제국최고회의에서 직접 발언을 하기 전에 저지할 방법.
즉, 루우가 자기 생각을 행동에 옮기기 전에, 제국최고회의든 각료회의든, 루우의 몽골 황위 계승에 반대한다는 분위기를 형성해 둘 필요가 있다.
헌법에는 공격적 전쟁을 금지한다거나 고려의 자주성에 대한 위협을 금지한다는 문구를 넣어두는 방법도 있겠고.
사법부라도 동원해서 타국 왕위 계승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식의 판결을 받아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려면…… 미리안 혼자, 혹은 제국입헌당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다른 당의 협력이, 좀 더 강력한 의지를 가진 다른 당의 협력이 필요하다.
“누나 설마…….”
“안세규에게 3대 태사 자리를 주는 거지.”
견하의 눈썹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하게 찌푸려진다.
“잊으신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지만, 안세규는…… 적어도 구 민국정부 세력은 지난 내전을 부채질한 혐의가 있어요. 허동주와 누나 사이의 갈등을 일부러 폭발시켰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런 집단에게 권력을 넘겨준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는 나도 알아. 무방비하게 그냥 권력을 다 넘겨줄 생각은 없어.”
거기에도 대처할 방안은 있다. 3대 째에만 잠시 넘겨줬다가, 4대나 5대째에는 재집권할 구상도 있다.
“태사 자리만 넘겨주는 거지, 제국최고회의 의장 자리는 넘겨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또 하나 있지. 지난 내전 이후 중서문하성은 폐지됐잖아.”
원래는 허동주가 이인자, 문하시중으로 있을 때, 그 권력의 기반이 되어주던 기관.
다른 나라라면 ‘내무성’ 정도에 해당하는 기관일까.
“지금은 폐지된 상태지만, 언제까지고 태사가 모든 업무 처리를 다 할 수는 없어. 그러니 나는 태사에서 물러나면서 내무성을 신설하고, 거기 장관으로 취임하는 거야.”
각료로서는 안세규의 아래에 들어가지만, 현재 태사가 맡은 업무를 분담하기 때문에 상당한 권력을 그대로 쥐게 된다.
게다가 제국최고회의, 즉 입법부의 의장 자리도 계속 겸직한다. 안세규의 아랫줄에 속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안세규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면, 보다 적극적으로 루우를 저지할 수 있어. 황제체제에 회의적인 입장인 사회민주당이나 공산당과의 협력도, 안세규를 통하면 더욱 수월해지고.
견하 군, 우리는 여러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해. 안세규가 강해질 것 같으면 황제의 힘을 빌려서 저지해야겠지만, 황제가 너무 강해진다면 안세규의 힘을 빌려서 황제를 억눌러야 돼.”
그 뒤에는, 다시 황제나 다른 세력들과의 협력을 통해 4대 태사 자리를 되찾는다. 곧장 4대 태사 자리를 되찾는 게 어렵다면, 일단은 현 법무성 장관인 류성일을 앞세워서 집권케 한다. 그리고 리안은 5대 태사로 복귀하는 것이다.
리안은 견하를 안심시키려는 듯 웃는다.
“괜찮아. 나는 아직 어려. 그 말은 안세규에게 반격을 가할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다는 말이지. 잠깐 한발 물러설 뿐이야.”
한 발도 아니다. 반걸음. 혹은 그 이하.
“게다가 ‘그런 대책’이 있다는 거지 당장 실행에 옮긴다는 것도 아니잖아? 표정 풀어.”
견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다. 알겠다는 뜻이었다.
“저는 조유관의 조사와 감시, 그리고 칸발리크 쪽에 집중할게요. 안세규와의 타협은…… 전적으로 누나에게 맡길 수밖에 없겠네요.”
견하는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가기로 한다.
나가기 전에, 잠깐의 입맞춤.
여전히 소녀 같은 태사는 입술을 떼고 고개를 숙인 채, 쑥스러운 듯 소년의 눈을 들여다봤다가, 다시 입을 맞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소년은 연인의 방을 나섰다.
복도를 걸어가는 견하의 얼굴이 점점 굳는다.
-만약 지난 내전의 배후에 안세규나 고려국민당이 있다면…….
그들은, 견하의 부모님을 참살한 용의자이기도 하다.
그런 자들의 집권은 용납할 수 없다.
견하는, 리안의 의견에 반대하기로 한다.
“독단, 을 저지를 수밖에 없나.”
감찰국은 루우의 야망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자.
그러고 보니 아까 리안은 내무성을 신설한다는 계획을 말했었지.
감찰국 국장에서 벗어나 정치경찰실 실장이 되고 나면, 그 후엔 어디로 갈까 싶었는데.
-내무성 장관이 좋겠군.
태사의 자리는 안세규에겐 절대로 넘길 수 없다.
류성일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에게도 넘길 수 없다.
굳이 ‘다음 태사’가 필요하다면,
-그건 내가 되어야 한다.
견하는 그렇게 장기적 목표를 정했다.
***
칸발리크의 황궁에서도, 시레문 카간이 주관하는 각료회의가 며칠째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타이시 볼로드를 비롯해 장관들 모두 피로에 절어버린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휴일을 달라고 카간께 청원할 수는 없었다.
도시 전체가 휴일이라곤 없었으니까.
얼굴에 짙은 피로가 드리운 건 카간도 마찬가지였다. 카간의 자세는 평소라면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흐트러져 있었다.
매일 밤, 계속해서 올라오는 테러에 대한 보고를 받고, 주민들을 방어선 안쪽으로 피난시킨다.
피난민의 임시 거처를 확보하는 일은, 단순히 공간 확보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아직 밤에는 난방이 필요하고, 먹고 씻을 물의 공급도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최소한 하루 두 끼니는 먹일 식량 공급도 일이다. 그리고 먹었으면 배설하는 것이 생물이라, 당연히 해당 위생 시설 확보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
게다가 추가적인 물품 구매는 각자의 지갑 사정에 맡길 수밖에 없는데, 생업이 끊겼으니 얼마 못 가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당장 아기들 기저귀 같은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카라코룸, 새너두를 지나 칸발리크로 들어오는 철도 노선, 고려 쪽에서 들어오는 노선, 개봉, 응천에서 들어오는 노선. 방어선뿐만 아니라 이들 노선에 대한 경비도 강화해야겠지.”
카간은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가 말한 철도 보급선은 이 도시의 생명줄이다. 혹여나 보급선이 끊기면 방어선 안의 피난민은 전부 말라 죽는다.
아니, 그 전에 방어선을 유지하는 병력의 보급품도 모자라게 된다.
“괴물의 출현 빈도와 강력함도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주어진 병력만으로는…… 더는 어렵습니다.”
수도방위 병력과 경찰만으로는 이 모든 업무를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고려에서 보내준 ‘구조대’는 확실히 정예이긴 하지만, 수가 너무 적다.
“방어선은 생각보다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방어선 안쪽에서는 괴물이 출현하지 않았으니, 이는…… 어떤 방법인지는 알 수 없으나, 테러리스트들이 괴물을 데려오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방어선은 단순히 길을 틀어막는 벽이 아니다. 어쨌든 수도의 경제가 돌아가게 하려면 사람이 드나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철저한 검문검색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직은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 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테러가 벌어지면 가서 제압하고, 다시 테러가 일어나길 기다리기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타이시 볼로드가, 결단을 촉구하는 눈길을 카간에게 보낸다. 결단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경 수비 병력을 제외한, 주요 도시를 방어하는 병력 일부를 차출해 칸발리크 주변에 재배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