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간의 도시(4)
네 번째 출현한 파멸인……? 파멸인인가? 저게?
효윤은 그렇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이 자리에 온 모든 이가 그렇게 속으로 되묻고 있지 않을까.
“표면은 확실히 기존의 파멸인과 비슷해 보입니다만……”
태주갑이 옆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다.
하얗게 번들거리는 피부는 파멸인, 혹은 하얀 괴물과 같다.
그러고 보니 오늘 세 번째 출현한 파멸인도…… 다른 파멸인들보다 팔다리가 더 많았었지.
“하지만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른데요.”
효윤의 말처럼 그것의 형상은 정말로 기괴했다. 아니 원래 파멸인 자체가 충분히 기괴했지만, 이건 더 기괴하다.
일단 크기가…… 건물 3층 높이 정도로, 지금까지 본 파멸인들보다 훨씬 크다.
탈 같은 얼굴에, 인간의 것처럼 보이는 부속지는 일반적인 크기로 붙어 있었지만, 나머지…… 여백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 문제다.
대장이나 소장, 혹은 위나 간처럼 보이는 무언가.
뇌나 혈관, 심장, 힘줄처럼 보이는 무언가도, 있다.
그 모든 것들은 인간의 그것과 닮았지만 훨씬 거대했으며…… 각자 제멋대로 박동하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징그러운 광경이지만, 그보다 더 심한 게 남아 있다.
괴물 옆으로 주머니처럼 튀어나와 있는 것.
얼핏 보기엔 생선의 알집 같지만, 저 동그란 것 하나하나가, 눈…… 그러니까 안구다.
괴물이 새소리 같은 울음을 내며 주머니를 휘두른다.
주머니가 건물 벽과 부딪치니 벽도 부서졌지만, 주머니에 붙어 있던 알들도 상당수가 터져나갔다.
여기서 그 의태어를 몽글몽글이라고 해야 할까 부글부글이라고 해야 할까.
알들이 터져나간 자리에 새로운 안구들이 돋아나고, 각자 한 번씩 눈꺼풀을 깜박인다.
덤으로, 피로 번들거리기까지 한다.
“일단 접근전을 벌이기보다는 사격을 통해 반응을 보는 게 좋겠습니다.”
어느새 효윤의 부관 같은 입장이 된 태주갑이, 그렇게 제안했다. 효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총성과 괴성이 골목에, 밤하늘에 메아리친다.
***
구조 작전은 단순히 파멸인 격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파멸인이 언제 또다시 나타나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칠지 알 수 없는 이상, 해당 지역 주민들의 피난까지 동반한 작전으로 변해갔다.
그 주민들의 거주지역이 파괴되었다면 더더욱.
효윤은 이번에도 땀을 닦아내며, 괴물의 잔해를 돌아봤다.
터져나간 괴물의 흔적은 저 멀리, 큰길가까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아직도 불이 붙은 채 타오르는 조각도 있다.
워낙 큰 덩치 탓에 이단의 공격을 받아도, 집중 사격을 받아도 큰 타격을 주긴 어려웠다. 그런 공방이 몇 차례 반복된 끝에 몽골군은 효윤과 고려 측 구조대에게 물러날 것을 권했다.
“물러나라니? 파멸인 격퇴는 포기한다는 말인가?”
효윤이 되묻자 통역을 맡은 몽골인 장교는 부정했다.
“아닙니다. 포격할 거라고 합니다!”
“포격?!”
화포의 살상 범위나 오차에 대해서는 효윤도 들어둔 바가 있다. 그녀는 몽골군이 권하는 대로 대원들을 충분히 물렸다.
잠시 뒤 어마어마한 굉음, 불빛과 함께 포탄이 떨어지고 괴물은 부서졌다.
주변 건물들도 함께, 불타오른다.
포격은 확실히 효과적이어서, 그 뒤로 일반적인 사격이나 이단의 공격으로 충분히 그 거대한 파멸인을 쓰러뜨릴 수는 있었지만…….
너무, 피해가 컸다.
주민들의 통곡과 비명. 지금까지 파멸인을 격퇴하면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오늘 이 자리에는 섞여 들어왔다.
불타버린 시체, 조각난 시체, 터져버린 시체.
괴물의 시체뿐만 아니라, 사람의 시체도 있다.
지금까지 잘 버티던 대원들 중 구토를 하는 사람도 보인다.
소방대가 출동해 불을 끄고, 건물 잔해를 헤치고 시체를 꺼내거나 생존자들을 구출한다. 몽골군과 경찰도 이를 돕는다.
이 사람들의 얼굴도…… 하나같이 참담하다. 말은 다를지 몰라도 그 감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주갑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런 사내를 돌아보며, 효윤은 느낀 바를 말한다.
“단순히 나빠진다라고만 할 문제가 아니에요. 이거…… 강요당한다는 느낌 안 드세요?”
“강요…… 말씀이십니까?”
“자국군이 자국민의 거주구역에 포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요. 테러에 대한 예측과 대응을 비효율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요. 방어자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강요.”
효윤은 리안의 말을 떠올린다.
‘의도’를 가지고 파멸인을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다.
“이런 걸 불러내는 테러리스트가 누군지는 몰라도, 상황이 점점 나빠지도록 의도하고 있어요. 보란 듯이 점점 더 기괴한 걸, 기괴한 방식으로 내놓으면서 말이에요.”
비명처럼 울부짖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트럭으로 향하는 몽골 병사 하나가 보인다. 몽골어는 모르지만, 저 어감은 분명…… ‘엄마’다.
아이를 트럭에 태운다. 트럭에서 아이를 받는 다른 병사는 입술을 짓씹고 있다.
아이를 건네준 병사가 돌아선다. 저 병사의 얼굴에 번들거리는 것은 눈물일까 땀일까.
“저 주민들은 어디로 옮기는 거죠?”
“방어선 안쪽의 임시대피소로 옮긴다고 합니다.”
“방어선 안쪽의 부양 능력에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 같은 일이,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할 순 없잖아요. 저런 주민들은 계속 늘어날 텐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외부에서 물자를 지원해주지 않는 이상은.”
“물자뿐만이 아니에요. 인력, 아니……”
효윤은 잠깐 뜸을 들였다. 외국군이 함부로 언급할 사안이 아니었기에.
“정확히는 ‘병력’이 더 필요하겠죠. 지금 규모로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처할 수가 없어요.”
주갑은 침묵으로 동의를 대신했다.
***
양수영의 보고를 분석한 견하가 태사의 집무실에 들어왔을 때, 태사 역시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들어오는 견하를 보고, 인사 없이 곧바로 본론에 들어간다.
“나는 늘, 옛 극북방위군이 고려국민당의 사병 집단으로 돌변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말이야.”
이를테면 공산주의 국가인 바라트처럼.
바라트에서 군대는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바라트 공산당의 군대다.
“그래서 지난번 숙군에서 일부 쳐내고, 조유관과 나머지는 서부군으로 배치를 옮겼는데, 이게 잘한 건지 모르겠어.”
견하도 비슷한 의문을 안고 리안 앞으로 다가갔다.
“조유관이 무슨 의도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은 하나씩 검토해보자고.”
리안은 견하와 눈을 마주쳤다.
“조유관은 칸발리크에 출현한 괴물에 대해, 효윤이에게 물어봤다고 하지.”
“자기 부하들을 파견하는 임무니까 상관으로써 알아둬야 한다는 명분은 있죠.”
“하지만 나중에 추가로 들어온 효윤이의 보고에는, 이미 파멸인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들어 있었어.”
견하는 붕대를 꼼꼼히 감은 왼팔을, 살짝 떨었다.
“지난번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 조유관의 귀에도 들어갔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들어갔다고 보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좋겠지.”
당장 뚜렷한 대책은 없지만, 이라며 리안은 피식 웃었다.
“다음으로 고민해 볼 부분은 이거야. 효윤이가 요청하지도 않은, 적극적인 추가 지원 약속. 효윤이가 충실한 학생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보고였지.”
“속내가 없는 호의는 없다. 호의를 그저 호의로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말이죠?”
“그래.”
리안은 짧게 키득인 다음, 마치 문제를 내듯 견하에게 물었다.
“왜 이런 제안을 한 걸까? ‘효윤이를 지원해서’, 뭘 얻고자 한 걸까?”
물론 견하도 이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왔기 때문에, 대답은 곧바로 나왔다.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효윤이를 통해서 태사부에 연줄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거죠.”
“지난 숙군의 영향이겠지?”
“자기가 다음 숙군의 대상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좋아. 두 번째는 뭐지?”
“효윤이를 계속 지원하게 되면, 서부군이 국경을 넘어 몽골 국내로 들어가게 되죠.”
“효윤이에겐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걸로 봐선, 상당한 병력과 물자도 거리낌없이 보낼 생각이겠고.”
“만약 대규모 병력과 물자가 몽골 안으로 진입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군사개입’이지.”
두 사람 모두 잠시 말을 멈췄다. 군사개입이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효윤이의 지원 요청을 명분 삼아서 야금야금,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상당한 규모의 고려군이 몽골의 수도를 장악하고 있다. 그런 상황을 만들려는 걸까?”
“그런 의도도 있다고 봐야겠죠.”
“군사개입을 해서 뭘 어쩔 셈인 거지? 이것도 숙청당하지 않으려는 발버둥인가? 공을 세워서?”
“군인은 혼란을 수습하는 데 필요하죠. 바꿔 말하면 군인은 혼란을 통해 자신의 필요성을 강조할 수 있고요.”
“‘나는 태사와 고려 제국에 필요한 인재이고 싶다. 그러니 내가 직접 혼란을 일으키겠다?’ 견하 군, 만약 조유관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대단히 위험한 인간이야.”
“허동주만큼 위험하죠.”
하지만, 이라며 견하는 말을 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를 짚어볼 수 있어요.”
리안은 굳은 얼굴로, 계속 이야기해보라는 듯 눈짓했다.
“조유관이 고려국민당, 그리고 그 당수인 안세규 장관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면, 굳이 효윤이라는 끈이 필요하진 않겠죠. 안세규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숙청까지 밀어붙일 수는 없으니까요. 안세규를 숙청할 게 아닌 이상은.”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건, 불안하다는 뜻이지.”
“그리고 안세규는, 겉으로 표현하지만 않을 뿐, 루우의 몽골 황위 계승이나 몽골 합병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그래서 이번 칸발리크 테러에 대해서도 신중론과 불개입을 내세웠죠.”
“하지만 조유관은 그런 안세규의 입장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고려군의 개입을 꾸미고 있다면…… 조유관과 안세규 사이엔 상당한 입장 차가 있을 거예요.”
“흥미로운 지적이긴 하네.”
“파고들어 볼 만하지 않을까요?”
리안은 눈을 감았다. 한동안 그렇게 침묵하고 있다가, 입을 뗀다.
“하지만 견하 군,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안세규가 칸발리크의 테러를 배후에서 지원 중일 수도 있어. 즉, 조유관 역시 효윤이를 지원한다는 건 핑계고, 실은 그 틈을 노려서 테러 단체에 더 많은 물자를 공급해주려는 속셈일지도 몰라.”
“그런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조유관, 더 나아가 안세규를 숙청할 빌미를 만들어주죠.”
어떤 식으로 상황이 돌아가든, 기회로 삼자는 건가.
“일단은 감시를 계속해야겠네.”
“네. 그런데 말이에요, ‘누나’.”
견하가 갑자기 연인의 호칭을 부른다. 그 목소리에 살짝 몸이 굳었다.
왜? 라는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만약 조유관과 안세규 사이에 틈이 있고, 그걸 이용하게 될 경우 말인데,”
진지한 눈길로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는 견하 앞에서, 리안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연인으로서 계속 두근대야 할까, 아니면 어떤 발언이 나올지 긴장해야 할까.
“그 전에 확실히 해 둬야 할 게 있어요. 루우의 몽골 황위 계승에, 누나는 어떤 입장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