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간의 도시(3)
목표라는 말에 대원들이 반응한다. 역시. 단순 구조 임무가 아니구나.
“이 ‘구체’라는 괴물은 직접적인 공격 능력은 없지만, 발견 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체는 ‘파멸인’을 낳기 때문입니다. 즉, 파멸인이 나타났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이 구체가 계속 파멸인을 생산하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파멸인의 완전한 격퇴는 이 구체를 소멸시키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또 다른 대원이 손을 들었다. 효윤은 예, 라며 발언을 허가했다.
“구체의 격퇴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파멸인이라는 괴물처럼 충분한 타격을 입히면 되는 겁니까?”
효윤은 입을 열었다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다시 다물었다. 그리고 대원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를 때쯤, 다시 입을 열었다.
“정확한 격퇴 방법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당혹감이 깊어지기 전에 효윤은 대원의 말을 잘랐다.
“구체의 격퇴에 성공한 사례는 단 한 사례라, 정확한 원리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다른 대원이 손을 든다. 좀 더 노련해 보이는 덩치 큰 대원이다.
“그렇다면 격퇴가 가능은 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구체는 공격을 받기 시작하면 파멸인을 생산하기 시작하는데, 계속해서 공격받으면 생산하는 파멸인의 품질이 떨어집니다. 여기서 더 공격을 받으면 ‘발악’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죠.”
“‘발악’……?”
효윤은 다시 말을 잠깐 멈췄다. 애매한 표현밖에 쓸 수 없는 자신의 어휘력이 원망스러웠다.
“구체는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공간을 왜곡하면서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현상을 일으킵니다. 유일한 격퇴 사례에서는 이때 몸의 일부가 빨려 들어갔던 이단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치명적인 부상이라고는 했지만 견하는 생활 자체는 멀쩡하게 하고 있다.
다만 다른 이단들이 빨려 들어가도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 여기서는 경각심을 주도록 하자.
“그 이단의 일격을 마지막으로 구체가 소멸했습니다.”
“……어떻게 격퇴하는지 모른다면 상당히, 위험성이 높은 임무가 되겠군요.”
덩치 큰 대원이 그렇게 소감을 말했다. 효윤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직접 격퇴하지는 않을 겁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의 목표는, 표면적으로는 몽골군과 경찰을 도와 파멸인을 격퇴하고, 출현 지역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선을 넘을 때는 아주 신중해야 합니다.”
“파멸인 격퇴 이상의 일, 즉, 구체를 발견하더라도 격퇴는 몽골군과 경찰에게 맡겨두라는 겁니까?”
“정확합니다. 물론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우리가 격퇴를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작전의 목표는 ‘구체’의 행동 양상과 정확한 격퇴 방법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이 점, 확실히 마음에 새겨두셨으면 합니다.”
효윤은 조유관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할 말은 다 했다.
효윤이 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조유관은 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곧 칸발리크로 출발한다. 이동 수단은 열차니까, 거기에 맞게 장비를 준비하도록.”
***
효윤의 거대한 박도가, 칸발리크의 밤공기를 가른다.
파멸인의 사지, 아니, 네 개가 아니니 부속지라고 불러야 더 적절할 것들을 순식간에 잘라낸다.
기습적으로 건물 위에서 내리꽂듯이 달려들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효윤이 정면에서 달려들고, 파멸인이 그녀의 접근을 눈치챘다면 어려웠겠지만.
한쪽 무릎이 땅에 닿을 듯 말듯 몸을 굽힌 채, 효윤은 낙하의 충격을 견디며 칼날을 대각선으로 세운다.
재킷 자락이 펄럭이며 효윤의 군살 없는 허리선과, 그 가운데 척추가 매끈하게 지나는 선을 드러낸다.
재킷이 다시 덮여 소녀의 허리를 숨기는 아주 짧은 순간.
파멸인은 이전의 그 울음소리 비슷한 무언가를 내며 상황 파악을 끝낸다. 탈처럼 생긴 ‘머리’를 돌려 효윤 쪽으로 향하는 한편, 부속지가 잘린 자리에 뭔가…… 부글거리는 현상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효윤의 칼에 잘린 자리는 생물의 뼈와 근육이 아니라 마치 두부가 썰려 나간 것 같은 단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괴했지만, 이제는 안쪽에서 거품 같은 뭔가가 부글대니 더욱 기괴하다.
“재생인가……?”
재생을 막겠다는 듯 효윤의 발이 지면을 박찬다. 박도의 큰 날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준비를 한다. 이대로라면 그 궤적은 파멸인의 ‘목’ 언저리를 통과하리라.
부글대기를 멈추고 그 자리에서 갑자기 뻗어 나오는 뾰족한 촉수.
여전히 생물 같은 면모는 없고, 길게 늘어난 석고 원뿔 같다.
효윤의 예상보다 빠른 재생, 기습적 공격이 효윤의 머리와 가슴, 배를 꿰뚫었어야 하지만-,
파멸인의 목을 노리는 동작부터가 속임수였다.
-견하를 공격했던 하얀 괴물의 방식과 속도를 생각하면, 이게 맞겠지.
효윤은 가볍게 몸을 틀어 벽을 박차고 올라가, 가뿐하게 괴물의 머리 위를 넘어간다.
파멸인이 목을 한껏 뒤틀어, 공중에 뜬 그녀를 바라보지만,
두 번째 기습이 파멸인의 몸을 강타한다.
‘구조대원’들의 집중 사격이다.
구멍이 뚫리거나 여기저기 살점이 뜯겨나간 몸을 비틀대며, 괴물은 건물 벽에 의지한다.
더 이상의 사격은 괴물 뒤쪽에 착지한 효윤에게 맞을 수 있으니 중지된다. 대신 효윤이 파멸인에게 달려들어 몇 차례 더 칼자국을 남긴다.
아까보다 훨씬 짧고 느려진 촉수의 반격. 효윤은 그걸 여유롭게 쳐내며 물러난다.
이번엔 반대쪽에서 이단인 대원들이 달려들어 몇 차례 난도질한다.
그렇다. ‘의문의 괴물’일 때는 막막한 공포만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지만, 싸우다 보면 ‘생환’한 사람들과 그들의 ‘경험’이 쌓인다.
인간은 ‘경험’을 공유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개발해내는 동물이지 않던가.
덩치에 어울리는 내구성,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 이 모두를 갖춘 괴물이지만 공략할 방법을 찾아낸 인간 앞에선 그저 짐승에 불과하다.
파멸인이라는 의문의 괴물을 제압하는 과정은, 이렇게 맹수 사냥으로 변한다.
몇 차례 비슷한 공격이 반복된 끝에 파멸인은 산새 같은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물론 안전을 위해 몇 차례 더 총알을 먹여 반응이 없는 걸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야 협력해준 몽골군과 경찰에 파멸인의 시체를 양도한다.
소녀의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이 떨어진다. 몇 초 뒤에 다시 땀이 모여 턱 끝에 송골송골 맺힌다. 그 간지러움에 효윤은 이번엔 손등으로 쓱, 땀을 닦아냈다.
파멸인 하나를 죽이는 데 들어간 수고로 맺힌 땀방울은 아니었다.
“오늘 밤만 세 번째…….”
자기 몸의 열기에 못 이겨, 효윤은 재킷을 벗어 어깨에 걸쳤다. 맨살을 드러낸다는 부끄러움보다는 더위를 식히고픈 마음이 더 컸다.
“수고하셨습니다. 최효윤 중장님.”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오는 사내는, 브리핑 때 침착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던 덩치 큰 중령이다.
“예, 태주갑 중령도 수고하셨어요.”
태주갑이라는 이름의 사내 역시 이단이었기에, 소환된 거대한 창을 들고 있었다. 태주갑은 창의 소환을 해제하며,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본다.
“아직, 한밤중입니다. 자정도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을 들으며 효윤은 흐트러진 포니테일을 풀고, 다시 묶기 시작한다.
파멸인의 시체를 처리하던 몇몇 군인들이 효윤의 겨드랑이나 날개뼈가 그리는 선을 흘끔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 아직 동이 틀 때까지 시간이 한참 남았다는 게 더 신경 쓰였다.
“어젯밤은 일곱 마리였죠.”
“예.”
칸발리크역에 도착했던 첫날만 해도, 느긋한 임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구조대원들’ 사이에 감돌았었다.
역 주변만 보면 도시는 완전히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으니까.
새벽에 칸발리크에 도착한 후, 낮에는 숙소에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자정이 가까워서야 경찰의 지원요청이 들어왔고, 구조대는 출동해 파멸인 한 마리를 잡았다.
낮에는 대기, 밤에는 경찰의 지원요청을 기다리다 출동, 복귀 후 취침, 다시 대기……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려나 싶었는데, 당장 다음날부터 상황이 변했다.
하룻밤에 출현하는 파멸인의 숫자가 늘어났다. 셋, 넷, 다섯…….
그리고 어젯밤에는 마침내 일곱.
오늘 밤도 어제와 같다면, 아직 네 마리의 출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한 번 출현한 장소에는 다시는 안 나타나는 줄 알았더니……”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또 나타나기 시작했다죠.”
몽골 측에서는 같은 장소에 파멸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다고 보고, 열심히 그 출현 지점을 지도에 표시해 왔었다.
기존 출현 지점을 예상 출현 지점에서 제외하면, 인력과 시간을 상당히 아낄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러나 나타났던 장소에도 또 나타나기 시작한 이상, 이제 도시의 모든 곳을 경계해야 한다.
거기에 출현 횟수까지 늘어나니, 몽골군, 몽골 경찰, 그리고 고려에서 온 구조대까지 모두의 피로는 시간이 갈수록 함께 늘어나는 상황.
“일단은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계속 다음 파멸인 출현까지 긴장하다 출동하는 것보다는 조금 나을 겁니다.”
“……그럴게요.”
다행히 몽골군 장교들이 앉으려고 가져온 간이의자 몇 개를 빌릴 수 있었다.
효윤은 간이의자에 주저앉아 반쯤 졸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반쯤은 생각에 잠겼다. 묘한 감각이다.
리안과 견하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구석으로 밀어내버리고, 눈앞에 닥친 일을 생각한다.
효윤은 동명에서의 경험을 살려 몽골 측 책임자에게 지하철 등을 수색해보라고 제안했다.
그 제안대로 상당히 열심히 수색하는 듯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효윤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태주갑이 자신의 추측을 말한다.
“파멸인이 태어나는 건…… 그, 구체에서 나오는지는 몰라도, 정확한 이동 방식은 밝혀진 게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황당한 생각이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런 괴물이 나온 마당에 더 이상 황당한 상상과 상식적인 추측 사이에 뚜렷한 구분선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말씀해보세요.”
“순간이동, 같은 걸 하는 건 아닐까 합니다.”
“순간이동?”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싶었고, 그다음엔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괴물이 무슨 마법처럼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리안이든 루우든 시레문 카간이든 누구든, 안전한 곳은 없다.
효윤은 살짝 몸을 떨며,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다시 입을 열며 고개를 저었다.
“순간이동은 아닐 거예요. 그랬다면 그냥 카간을 시해하고 도시를, 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다음, 목적을 달성하면 될 테니까.”
“그것도 그렇군요.”
태주갑은 빠르게 인정했다.
그때, 구조대원 하나가 효윤 앞으로 뛰어왔다.
“중장님, 또……”
효윤은 혀를 차며 머리를 격하게 흔들었다. 긴 포니테일도 격하게 좌우로 흔들린다.
“봐주는 법은 절대 없네요.”
소녀의 말에 태주갑은 쓴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