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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52화 (152/541)

카간의 도시(2)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오니, 수영은 미리 효윤의 짐까지 다 정돈해 놓고 있었다.

“아…… 고마워.”

효윤이 어색하게 감사를 표하자 수영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수영은 안쪽 침대에 자기 짐을 풀었다. 효윤의 자리는 창가 쪽인 모양이었다. 효윤은 자기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낯선 방 안을 말 없이 두리번거렸다.

말없이 각자 알아서 쉬는 동안, 시간이 느릿느릿 지나간다.

이렇게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다음 일정을 기다리기만 하는 건 좀 그런데.

뭔가 이야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할만한 이야기는 전에 다 했다. 화제를 만들어가며 수다를 떨기엔 그렇게 친하다고 할 순 없다.

루우와는 그럭저럭 친해졌지만, 아니, 친해졌다고 할 수 있나? 그렇다고 하자.

그렇지만 수영과는 아니다.

루우와 효윤의 사이에는, 어쨌든 ‘적’이었던 기억은 없다.

그러나 수영은…… 분명히 ‘적의’가 오갔던 기억이 있다.

수영은 어느 날 갑자기 감찰국 직원, 견하의 부하가 되어 나타났고, 지금은 견하의 용무를 대리해 효윤을 따라왔다.

너희들 성격이라면 임무를 수행하면서 알아서들 친해질 수 있을 거야, 라니.

신뢰인가, 아니면 신뢰를 빙자한 방임인가.

다행히 수영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

“조유관 대장한테서는 별말 없었어?”

아까 서부군 사령부에서 차출할 인원을 검토할 때, 뭔가 이야기가 더 나온 게 없냐는 물음이었다.

“그냥 칸발리크에 떠도는 이야기 같은 거? 그리고 추가 지원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해주겠다고, 말만 하라던데.”

대답이 없다. 돌아보니 수영은 벽 한구석을 노려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이윽고 생각이 끝났는지 효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고려는 개입이 아니라 ‘구조대’ 형식으로 가는 거지?”

“그렇지.”

“구조대 자격으로 입국할 수 있는 사람 수에는 제한이 있을 거고.”

“그래.”

“그럼 서부군 사령관에게 상당한 재량이 있다고 해도, 멋대로 국경 너머로 병력이랑 물자를 보낼 수는 없지 않을까?”

그것도 그렇다. 효윤도 조유관에게 웃는 얼굴로 답하긴 했지만, 그의 호의를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었다.

“……중앙 정부의 눈을 속인다면 또 모르겠지만.”

효윤도 리안의 어깨너머로 수년간 ‘속내를 감춘 대화’를 배워 온 사람이다.

그 ‘속내’를 짐작하지는 못하지만, ‘속내’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차라리 어린 여자애를 보고 짓는 능글맞은 웃음이었다면, 그건 너무 뻔하니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조유관은 정말로 ‘인자한 할아버지’의 웃음을 지었다. 내전 때 동명에서 몇 번 마주친 걸 제외하면 거의 친분이 없는데.

순수하게 효윤을 위해 그런 미소와 호의를 보여준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분명 ‘파악하기 어려운’ 속내가 있다.

‘하얀 괴물’, 파멸인에 대해서도 은근슬쩍 물어보던데, 그것과 관련이 있을까.

뭘까.

“지금 내 선에서 알아내긴 힘들겠지.”

효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명목상 ‘구조대’인 칸발리크 파견대를 잘 이끄는 것.

그러므로 효윤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조유관이 칸발리크에 출현한 괴물에 대해 물었다. 요청하지도 않은 적극적인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의도를 파악하기 바란다’, 이렇게 네 상관한테 보고해줘.”

감찰국 요원에게 부탁해, 감찰국 본부에서 조사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

“태사 각하껜 나도 따로 보고드리겠지만, 주견하에게도 그렇게 보고해 두면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겠지.”

수영은 다시 한번 말없이 끄덕였다.

***

효윤은 조유관이 준 목록에서 몇 사람을 골라냈다.

작년 태사 암살 미수 사건, 신환도역 전투, 올해 지하철 전투 등의 경험을 토대로 선정 기준을 잡았다.

효윤이 고른 사람들을 조유관이 다시 검토, 최종 선발된 사람들을 작전 회의실로 보냈다.

효윤도 양수영을 데리고 회의실에 들어가, 그들과 악수를 나눴다.

어리다고 얕보는 기색은 없다. 상당히 건조한 사람들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임무에만 집중하는 사람들. 주어진 명령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의 행동을 할 전문가들이다.

다만 이런 사람들은…… 전우애나 그에 따른 희생적인 행동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 점은 염두에 두도록 하자.

형식적인 인사가 끝나고 다들 자리에 앉아 브리핑을 듣는다.

“칸발리크는 현재 산발적인 테러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귀관들은 공식적인 ‘구조대’로서 우방국의 수도에 파견되어, 테러를 제압하고 민간인들을 구출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브리핑을 맡은 조유관은, 곁에 선 중령에게 턱짓했다. 중령이 미리 준비된 지도나 작전도를 넘기자 조유관은 설명을 계속했다.

“현재 칸발리크의 황궁을 중심으로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몽골의 카간과 황실이 최우선 보호 대상이기 때문이다. 방어선 안쪽에서는 아직까진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기에, 몽골 측 대책은 성공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또 다른 지도가 사람들 눈앞에 펼쳐졌다. 칸발리크 시내를 나타낸 지도였다. 중앙부의 질서정연한 황궁과 관청 및 사무지구 밀집 지역이 눈에 띈다.

그 윤곽을 따라 몽골군이 배치한 방어선 때문에 더더욱.

그러나 방어선 바깥에는 붉은 점이 몇 개 찍혀 있다. 이 점은 도시 외곽일수록, 밀도가 점점 높아졌다.

물론 그 수는 40을 넘진 않는다.

아직까지는.

“붉은 점은 지금까지 ‘괴물’이 출현한 장소를 나타낸다. ‘괴물’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따로 설명하도록 하고, 테러 집단은 무슨 수단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괴물을 소환해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

조유관은 자기 앞에 놓인 서류를 넘긴다. 그러면서 선발된 구조대원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차분하게들 앉아 있었지만, 최효윤을 제외한 모두의 눈에 의아함이 감돈다.

“괴물은 하루에 최소 한 개체. 많으면 다섯 개체가 출현하기도 한다. 신고를 받은 경찰, 그리고 경찰의 지원 요청을 받은 군이 최대한 빨리 출동해서 제압하지만…… 다소간 사망자가 나오는 것은 막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을 숙지하고 임무 시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사망자. 괴물에게 당한 민간인 희생자도 있겠지만, 작전 중에 사망한 경찰이나 군인도 있겠지.

대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짙어진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괴물은 현재 야간에만, 그것도 후미진 골목이나 빈민가에만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대와 장소를 특정할 수 있기 때문에, 첫 사례를 제외하면 큰 돌발 상황은 아직까지 없다.”

‘구조대’ 중 한 사람이 손을 든다. 조유관은 질문을 허락했다.

“칸발리크에서 몽골의 카간 폐하를 탈출시킬 계획은 없는 겁니까? 제 판단으로는 저런 위험한 도시에 국가 원수를 계속 머무르게 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새너두(上都) 등으로 카간과 정부를 피난시키지는 않는 건지…….”

타당한 의견이었다. 단순히 카간이나 몽골 정부를 걱정해서라기보다는, 임무를 수행하는 데 변수가 적은 편이 편하기 때문이었다.

막상 칸발리크에 들어갔더니 카간과 정부가 허겁지겁 피난길에 오른다든가, 아니면 카간의 신변에 정말 무슨 일이 생겨서 도시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든가.

그러면 임무 역시 수행하기 어렵다.

조유관은 질문에 답했다.

“몽골 정부에서는 민심의 이반이나 혼란을 염려해 비밀에 부치고 있지만, 피난 계획 자체는 수립되어 있다. 괴물의 수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거나, 그렇게 불어난 괴물들이 일제히 황궁을 목표로 전진할 경우엔 도시를 포기한다는 계획이지.

귀관의 말대로 새너두를 임시 수도로 삼게 될 것이다. 아마 비행선을 통해 카간과 정부 요인들을 피난시키겠지. 그러나 카간 폐하께서는 그런 순간이 오기 전까진 절대로 수도를 버리지 않겠다고 뜻을 밝히셨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그 피난 작전이 실행될 가능성은 미미하다.”

효윤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면서도,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낀다.

역시 조유관은 그냥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수염 때문에 그렇게 보이긴 하지만 일단은 노년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몽골 군부 내에서도 극소수만 알 법한 정보에까지 접근할 수 있다면…… 전에 보여준 ‘소문으로만 들어서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하는 태도는 연기라고 봐야겠지.

그럼 하얀 괴물, 파멸인에 대한 정보나, 동명시의 돌아가는 사정도 상당히 많이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

조유관의 눈이 효윤을 향했다. 조유관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효윤더러 나오라고 손짓했다.

“‘괴물’에 대한 정보는 서부군 사령부에서도 그리 많이 파악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는 전문가의 견해를 듣는 게 더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최효윤 중장, 나와주게.”

효윤이 앞으로 나오자 조유관이 옆으로 비켜선다. 수영이 미리 준비했던 자료를 대원들에게 나눠줬다. 몇 번 펄럭여보더니 눈빛들이 더욱 진지해진다.

견하를 공격해 이단으로 만든 ‘하얀 괴물’과, 도산서원 등에서 출현한 ‘파멸인’, 그리고 ‘구체’의 사진이 박혀 있는 문서였으니까.

“괴물은 세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정식 명칭 없이 그저 ‘하얀 괴물’이라고만 부르는 것으로, 인위적으로 양성된 이단의 사망 시 그 몸에서 확률적으로 출현합니다.

이단이 아닌 일반인이 이 괴물의 공격을 받으면 외상없이 의식만 잃게 되며, 일정 시간 후에는 이단이 됩니다.”

누군가 질문을 하려 했지만 효윤은 질문을 받지 않았다. 효윤이 이 자리에서 공개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는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이 하얀 괴물의 공격을 이단이 받게 되면, 신체가 붕괴하며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아직 칸발리크에서 하얀 괴물이 목격된 사례는 없으나, 만에 하나 조우하게 될 경우, 이단 대원들은 극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효윤은 자신이 들고 있던 자료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녀의 손길에 맞춰 대원들도 페이지를 넘긴다.

“두 번째 괴물은 ‘파멸인’이라는 정식 명칭이 있습니다. 하얀 괴물은 이 파멸인이 열화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파멸인이 하얀 괴물의 공격방식을 사용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통은 물리적인 공격을 통해 피해를 입힙니다.

두 가지 공격방식을 원하는 대로 전환할 수 있는데,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거나 동작을 취할 경우 공격방식을 전환하는 신호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웬만큼 화력을 퍼붓거나 이단의 공격으로 치명적 피해를 않는 이상, 잘 쓰러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동료 대원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마지막으로, 라면서 효윤은 페이지를 넘겼다. 조용한 가운데 여러 사람이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퍼진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역겨운 사진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대원들도 다 비슷한 소감인 듯했다.

“세 번째 괴물은 두 번째 괴물과 묶어 ‘파멸인류’라는 정식 명칭으로 부르기도 합니다만, 파멸인과 구분 짓기 위해 ‘구체’라는 비공식적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 괴물이…… 이번 칸발리크 파견 임무의 목표라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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