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비(6)
리안은 말해보라며 고개를 가볍게 까닥였다.
“섣부른 군사 개입은, 엉뚱한 일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리안은 의심을 섞어 되물었다.
“엉뚱한 일?”
“우리 군의 개입으로 고려에 우호적인 정권이 무사히 들어선다면 이상적인 결말이겠습니다만, 예를 들면, 황제 폐하께서 흉중에 품은 뜻을 펼치려 하신다거나……”
돌려 말하긴 했지만, ‘루우가 그 틈을 타서 몽골의 황위를 계승하거나 몽골을 합병하려 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좋은 기회 아닌가요? 폐하는 야심을 만족시키고, 고려 제국은 영토와 인구를 확대하고.”
세규는 여기서 곧바로 반박하지 않기로 했다. 고려의 전제화를 저지하는 것, 고려의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 것은 세규나 고려국민당의 야망일 뿐이다.
리안은 자신의 권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상 그쪽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그러니 세규는 자신의 본뜻은 감추고, 다른 변명을 앞세운다.
“일이 잘 풀린다면 그것도 이상적인 결말 중 하나겠습니다만……, 잘 풀리지 않았을 경우가 문제입니다.”
“섣불리 개입했다가 이도 저도 아니게 될 수 있다, 그런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가능성은 차치하고, 고려가 몽골을 무사히 병합한다면 나쁜 결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레문 카간의 근황파나 혁명 세력 모두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고려가 개입했다가 혼란만 더욱 깊어진다면?
또는 몽골인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부르주아 시민정부를 건설했는데, 루우가 괜히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된다면?
“그러면 현 정부, 또는 몽골의 새로운 정부와도 관계가 악화될 겁니다. 몽골의 일반 민중들도 크게 반발하겠죠.
어찌어찌 합병한다고 치더라도, 반 고려 봉기가 빗발치듯 일어날 겁니다. 합병에 따른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큰 상황이 될 거라고…… 외무성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섣불리 개입하지 말고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민중의 분노로 일어난 혁명이라도, 부르주아 계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유도한 혁명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지금의 신성 제국, 보나파르트 황실을 낳은 프랑스 혁명을 들 수 있다.
“혁명 초기에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하더라도, 혁명의 완수를 위해선 노선을 변경하고 부르주아 계층과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기는 편에 손을 내미는 거죠.”
“……외무성의 신중론은 잘 알겠습니다. 일단 군사 개입은 보류하는 쪽으로, 저도 생각해보죠. 다만, 몽골에서 일어날 혁명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나아간다거나, 고려에 적대적인 정권이 들어설 기미가 보이는 경우엔, 우리도 개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규와 리안 모두 개입을 원하지 않더라도 전쟁성 쪽에서 개입을 강력하게 주장할 것이다. 황제 루우가 그런 전쟁성에 힘을 실어주면 더 막을 방법이 없다.
“예. 저희도 그 정도는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신중론은 어디까지나 현재 상황이 불투명하기에 드리는 것입니다.”
리안은 끄덕였다. 독대는 그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세규는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 만족하며 리안의 집무실을 나섰다.
***
안세규가 나가자, 리안은 옆 방에서 대기 중이던 효윤을 불렀다.
소녀의 얼굴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안세규는 이번 칸발리크 테러가 ‘파멸인’에 의한 것인 줄은 아직 모르는 것 같아.”
“파멸인, 파멸인류, 그리고 그것들과 이단의 관계…… 이 모두에 대한 정보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봐야겠어요.”
“하지만 곧 몽골에서 자세한 첩보가 들어오는 대로 각료 회의에 참석할 장관들은 전부 알게 되겠지. ‘파멸인’이라는 것 정도는 알려줘야 할 거야. 고려민국 임시정부는 이단의 인위적 양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니…… 안세규 정도 되는 사람은 금방 중요한 정보들을 유추해내겠지.”
“……정보 제공을 최소화하는 수밖에는 없겠네요.”
이 정보의 밧줄을 끝까지 타고 올라가면 주견하에게 닿는다.
지금 리안과 효윤은 주견하를 안세규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고 있다.
“네 말대로 정보를 최소한만 제공한다고 해도, 결국 시간 끌기에 지나지 않을 거야. 다른 대책을 세워둬야지.”
“감찰국의 세력을 외무성이 범접하지 못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거나, 안 장관을 실각시킨다거나……”
그러나 효윤이 내놓은 두 가지 안은 모두 실행하기 어렵다.
감찰국의 세력은 지금 주견하의 역량으로도 버거울 만큼 비대화되어 있다. 여기서 세력을 더 키우려면 아예 견하를 정치경찰실장으로 승진시켜야겠지만, 그러려면 적어도 견하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진 기다려야 한다.
“안세규를 지금 실각시킬 수는 없어. 구실도 없고, 제국최고회의는 우리 제국입헌당과 고려국민당의 연합으로 유지되는 중이라는 걸 잊어선 안돼.”
안 그래도 허동주 세력 축출, 쿠데타 진압 등으로 혼란스러웠는데, 다시 고려국민당과 싸움을 시작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한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이 있다고 한다면…… 안세규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보내는 게 있겠지.”
지금은 발해도로 재편된 산동 전역 파견, 재무장관을 수행했던 아즈텍 파견 등이 그 예다. 안세규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해외까지 미치진 않는다.
“아니면…… 폐하께 부탁해보는 건 어떨까요?”
종이를 만지던 리안의 손이 멈춘다.
황제의 권위에 기댈 수 있는 적당한 자리로…… 즉, 황제 직속의 적당한 직함을 하나 줘서 안세규가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위치로 올려둔다……? 꽤 그럴싸한 말이지만,
리안은 선뜻 좋은 의견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왜지?
감정이 허락하지 않으니까.
페르시아계나 투르크계에서 비롯되었을 색이 옅은 머리칼. 이단의 능력을 발휘할 때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지닌 소녀.
리안은 그 여자를 완전히 믿지는 못했다.
아니, 믿고 말고 이전에 그 여자와 견하가 하나의 조직으로 묶인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가 않다.
“……기각이야.”
단 한마디일 뿐이지만, 리안의 목소리에선 완강한 거부 이상의 것이 느껴졌다. 효윤은 더 말하지 않기로 했다.
“황제 밑에 정식 조직을 내어줄 수는 없어. 황제가 권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권력’을 갖게 해선 안 돼.”
물론 그 말도 사실이긴 했지만, 리안은 지금 변명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화제를 돌린다.
“그보단 이번 칸발리크 테러 말인데.”
혁명으로 발전할 역량 따윈 없는, 극단주의자들의 우발적 공격일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 경우에는 별달리 논의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다만, ‘파멸인’을 사용했다는 점은 우리도 주의를 기울여야겠지.”
“칸발리크에 지원 물자 같은 걸 보내시면서, 진상 조사를 위한 인원들도 함께 보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 부분은 효윤이 네가 수고를 좀 해줬으면 좋겠어.”
효윤은 끄덕였다. 진지한 끄덕임과 달리 긴 포니테일은 가볍게 흔들린다.
“그런데 말이죠, 언니. 만약 안 장관 말대로, 이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혁명으로 발전한다면…… 그 사람들은 ‘파멸인’을 다루는 정보를 어디서 받은 걸까요?”
질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효윤의 가늘어진 눈은 특정한 용의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리안도 같은 생각이었다.
“고려 내 사회민주당이나 공산당이 지원하고 있진 않을까?”
“만약 몽골의 테러리스트들이 사회민주당이나 공산당의 지원을 받는다면, 지난번에 지하철에서 출몰한 파멸인류 역시…….”
사회민주당이나 공산당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 효윤이 삼켜버린 말에는 그런 의미가 담겼다.
세규가 ‘범 알타이 인민동맹’에 대한 정보를 내놓지 않았기에, 두 사람의 생각은 그 방향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뒤를 좀 캐보는 게 좋겠어. 제국최고회의에서 합법 활동을 인정해주는 대신 혁명을 통한 국가 전복은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 협약이었는데. 그자들이 동명시 지하철에서 그런 짓을 했다면 이는 명백한 협약 파기야.”
두 정당 중 하나의 짓이라면 더 볼 것도 없이, 다시 탄압의 시대로 돌아갈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는데,”
이번엔 효윤의 눈에 의문이 떠오른다.
“안세규는 ‘4국 간 관세동맹’이 받을 타격에 대해선 우려하지 않았어. 한 마디도 꺼내지 않더군.”
“그건……?”
“애초에 4개국 관세동맹은 그 남자에겐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지. 관세동맹이 파탄나도 상관없다, 그렇게 여기고 있을걸.
짐작은 했지만 안세규, 루우의 몽골 황위 계승이나 고려의 영토 확장은 최선을 다해 막을 생각이야.”
안세규가 감춘다고 해서 의중을 읽지 못할 리안이 아니다. ‘범 알타이 인민동맹’에 대해서는 떠올리지 못했지만, 안세규의 말에 농락당하고만 있진 않는다.
“경제 문제니만큼 재무장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번 테러 이후 키타이나 낭키아스에서 개입할 가능성에 대해서까지 외무장관이 언급하지 않는다는 건 부자연스럽지. 이야기가 4개국 관세동맹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어떻게든 피한 거야.”
리안의 얼굴에 씩, 하고 오랜만에 그 ‘권력자의 웃음’이 떠오른다.
“테러의 배후는 안세규일 수도 있어.”
숨을 삼키는 효윤을 보며 리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지금은 속아 넘어간 척해주자고.”
***
혁명과 봉기를 촉구하는 전단지가 도시 곳곳에 굴러다니지 않았다면, 다들 테러가 아니라 ‘사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혹은 괴담, 이나.
섬뜩하게 웃는 사람의 얼굴. 기괴하게 뒤틀린 몸을 지닌 하얀색 괴물은, 처음에는 한낮에 칸발리크 한복판에 나타났다.
군과 경찰이 괴물을 처치했을 때는 이미 30명 이상의 시민들이 희생된 뒤였다.
그것으로 끝나는가 싶은 사건이었지만, 이후 괴물은 ‘한밤중’에 ‘으슥한 골목’에서 출현하는 식으로 행동 양상을 바꾸었다.
지금도 어떤 으슥한 골목에서 나타나, 취객 하나를 습격한다.
괴물의 촉수가 남자의 다리를 공격해,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상처를 입힌다. 남자의 취기는 그 순간에 싹 사라졌다.
다리를 절뚝이며 도망치려는 남자의 뒤통수를 괴물의 촉수가 꿰뚫는다. 그것으로 남자의 얼굴까지 날아갔다.
비명을 들은 주민들은 즉각 신고했고, 몽골군은 그 신고에 신속히 응해 골목에 도착했다.
전쟁이라도 벌어진 듯한 총성이 골목을 울린다. 괴물은 쓰러졌다.
“……전에 한낮에 출현했던 것까지 합치면 이번에 일곱 번째.”
소대장이 괴물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디서 계속 튀어나오는 건지.”
“그래도 이런 게 하나씩만 나와서 다행입니다. 만약 수십 마리가 떼 지어 나오기라도 했다면……”
소대원의 말에 소대장도 살짝 몸을 떨었다.
“죽은 사람에겐 안 된 말이지만, 다행인 건 맞아.”
“그런데 테러 배후라는 작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난들 알겠나. 중대장님도 그렇고 대대장님도 뭔가 아시는 것 같진 않아. 적어도 사단급은 올라가야 뭔가 나오지 않을까 싶긴 한데.”
말을 뱉어놓고 나서 소대장은 혀를 찼다. 지쳐서 그런지, 부하를 상대로 말이 너무 많았다.
“경찰 애들 오면 시체 정리하고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소대장은 골목 틈으로 보이는 좁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언론 통제로 오늘밤과 같은 일이 보도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문은 막을 수 없다. 언론을 통해 확인되지 않는 소문은 괴담이 된다.
몽골의 수도 칸발리크는, 기괴한 분위기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