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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42화 (142/541)

재정비(1)

거리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웃었다.

동명특별시에서의 실험은 성공적이다. 많은 것을 얻었다.

파멸인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파멸인을 제압하고, 그것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원인까지 제거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파멸인에 대한 대처법을 알아내면, 역으로 그 대처법을 망가뜨릴 방법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요컨대, 다른 곳, 즉 ‘본 무대’에서는, 그런 문제에 충분히 대처하고 파멸인들을 내보낼 것이다. 오늘처럼 쉽게 제압되지 않는 방식으로, 더 은밀하고 더 철저하게.

그리고 더 대량으로.

‘본 무대’에서의 공연은 장대할 것이다.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파멸인을 막기에도 급급한 행정력은 사람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파멸인을 막으려는 창의적이고 민첩한 아이디어와 시도들은 분쇄될 것이다.

그렇게 혼돈을 불어넣고 나면, 그 틈을 파고든다.

‘누군가’의 웃음이 더 깊어졌다.

죽어 마땅한 자들의 하수인들을 제거하고, 죽어 마땅한 자들까지 모조리 제거하고 나면 그들만이 새로운 대안이다. 그들이 주도권을 쥐는 세상이 온다.

흥미로운 실전 자료를 제공해 준 고려 제국의 태사 각하와 황제 폐하께 감사를 드리자.

‘누군가’는 반쯤은 조롱을, 또 반쯤은 진심으로 감사를 섞어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만,

거기서 그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있었다. 고려 제3제국 태사부, 정치경찰실, 감찰국의 국장이라는 소년. 주견하라는 그 아이에게 일어난 변화.

인간의 몸에 달린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기계 덩어리가 튀어나왔다가, 천천히 줄어들어, 형태만큼은 인간의 팔과 같은…… 기계 팔이 되었다.

아니, 이단의 능력을 구사하는 걸 보면 기능적인 면에서도 별다른 차이는 없는가.

어쨌든 기이한 광경이었다.

이것은 변수다.

‘본 무대’에서도 이런 일이 생길 것인가.

그러나 이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용하는지,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그 ‘누군가’가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위에 있는 자에게 보고를 보냈고, 그자가 판단을 내리도록 맡겼다. 설명하면서도 제대로 설명할 표현을 찾기 힘들었다.

목격한 광경이 사실인지 질문이 한 번 내려왔지만, 그렇다는 대답을 올려보내자 더는 묻지 않는다.

그걸로 됐다.

무시하기로 했든, 뭔가 대책을 세우기로 했든, 그의 손아귀에선 벗어난 일이다.

‘누군가’는 앞으로 벌어진 ‘본 무대’를 준비하기로 했다.

***

견하는 왼팔의 질감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오른손으로 만져보면, 왼팔 이두근 아래는 완전히 금속처럼 딱딱하고 매끄럽다.

이렇게 변해버리고 나니, 조금 우습지만, 평소 피부의 감촉을 좀 더 잘 느껴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처음 며칠 간은 거의 꼼짝없이 자리에 누워 있어야 했지만, 그 후로는 조금씩 몸이 회복됐다.

왼팔은 그 표면을 일부러 만졌을 때를 제외하면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뜨겁고 차가운 걸 느끼는 등, 감각엔 큰 문제가 없었고, 시험 삼아 오른 주먹으로 때렸을 때는 아팠다.

가장 길고 복잡했으며, 심지어 의사소통까지 했던 세 번째 붉은 꿈의 충격도 시간이 지나자 차차 사그라들었다.

작년부터 늘 꿔 왔던 부모님에 관한 악몽들처럼, 그것도 ‘그런 꿈을 꿨었지’ 같은 느낌으로 일상의 한구석으로 밀려났다.

견하는 리안과 효윤의 반대에도 예정보다 일찍 자기 자리로 복귀했다. 바쁜 일상이 다시 시작됐다.

바쁜 일상은, 팔의 변화와 기이한 꿈에 대한 고민도 미뤄놓게 한다.

당장 먼저 닥친 문제는, 한재연의 일이었다.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의 두 번째 안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재연이 황제 루우의 명령을 받아 시작한 이 작업은, 견하의 계획이 덧대어져 점차 구체성을 띠고 있었다.

이를테면, 연방의 새 수도로 카라코룸을 선정한 것이라든가.

“고려와 몽골, 두 나라가 통합되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야겠지. 카라코룸으로 천도하게 되면 그 정부가 있을 자리도 만들어야 할 테고. 견하 네가 말한 대로 그 경우 먼저 두 나라 의회를 어떻게 통합할지에 대해 구상해봤어.”

견하는 대답 없이 재연의 표정만 빤히 살폈다. 재연은 그 앞에서 사무적인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견하의 집무실 안에는 견하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울린다. 주기적인 소리였지만 간혹 견하가 앞장을 되넘겨볼 때마다 소리의 간격에 변화가 일어났다.

“글, 전보다 잘 읽히네.”

“계속 쓰다보니.”

재연은 원래 고등학생치고는 글을 잘 쓰는 편이었다. 그랬던 글솜씨가 요즘은 단련이 된 건지 더욱 정돈됐다.

그 글솜씨 때문에 천손민족협회 소년부 시절에 허동주의 사상에 대한 글을 많이 썼고, 또 그로 인해 반란에 깊이 가담한 자로 취급받아 여전히 고등학생으로 돌아가진 못하고 있었지만.

견하는 몇 번인가 리안에게 재연의 전향을 인정하고 사면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절했다.

-명령 때문에 총칼을 들고 맞서 싸운 사람은 용서할 수 있어. 하지만 사상적으로 허동주에게 동조한 인간은 용서할 수 없지. 지금 목숨 붙여서 견하 네 옆에 두도록 허락하는 것만으로 특혜야. 그런 애매한 지위 이상은 허용 못 해.

그 점에 대해서는 효윤도 의견을 같이했다.

-나는 너랑 같이 한재연, 양수영과 협상하러 나가 본 적이 있잖아. 그때 내가 본 한재연 인상은 보통이 아니었어. 그런 광신도 드물어. 그 애, 우리한테 항복했어도 자기 사상은 포기 안 했다고 봐.

결국 태사와 그 최측근의 반발에 부딪힌 견하는, 재연의 고등학교 복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리안과 효윤은 태사와 그 최측근이기 전에, 견하가 의견을 가장 존중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이런 사정으로 견하는 재연의 고등학교 공부를 위해 교과서나 다른 책들을 따로 구해서 갖다 줘야 했다.

어쨌든 재연을 부려야 하는 견하의 입장 상, 중학교 졸업으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재연의 하루 중 상당 부분은 독학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따라가는 것으로 채워진다.

재연도 견하 못지않게 머리는 좋기에, 공부 시간은 생각보다 효율적으로 돌아간다. 열심히 해야만 하는 동기도 있었고.

공부를 끝내고 나면 다시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의 집필 작업에 뛰어든다. 각종 자료를 읽고, 그걸 이해하는 데 필요한 추가 공부를 더 하고, 자신의 사상에 다른 사람의 사상을 참조하고 덧붙인다.

이걸 다시 황제 루우나 감찰국 국장 주견하가 만족할만한 물건으로 다듬어내는, 상당한 끈기가 필요한 작업의 반복.

물론 여기에 필요한 자료도, 그 자료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도 주견하와 감찰국에서 내놓는다.

견하를 따라 몽골과 아즈텍에 다녀오고, 또 견하가 병상에 누웠다가 다시 회복하는 기간에도 집필 작업은 계속됐다.

그렇게 첫 번째 안에서 제시한 아이디어들을 보강한 두 번째 안이 완성된 것이다.

“……참의원과 민의원?”

「계획」을 읽어내려가던 견하의 손길이 멈춘다. 견하는 눈살을 찌푸린다. 못마땅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이해해 시간이 걸려서다.

“양원제 입법부는 어떨까 싶어서.”

재연의 첫 구상은 고려의 의회인 제국최고회의가 몽골의 의회인 쿠릴타이 안으로 통합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몽골의 체제가 우위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어 몽골인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되, 기존 몽골의 정당들은 고려의 제국입헌당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면 제국입헌당과, 그 당수이자 의장 겸 태사인 미리안의 실질적 권력도 강화된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재연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듯하다.

“몽골인들도 가만히 의도대로 놀아나 줄 사람들이 아니니까.”

권력의 줄타기에 선 사람들은 그 정도 머리쯤은 굴릴 줄 아는 법이다.

재연의 첫 구상을 역으로 이용해서, 몽골인들이 도리어 제국입헌당의 주도권을 빼앗으려 들 수도 있다.

제국입헌당의 주도권을 차지한 몽골인 의원들이 새로운 당수와 의장을 선출하면, 태사가 타이시가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그러면 동군연합의 주도권은 완전히 몽골에 넘어간다.

“그래서 상원과 하원을 나누는 거지. 실권은 하원에 주고, 명예는 상원에 주고, 우리는 하원을 차지하는 거야.”

“브리튼이나 신성 제국의 양원제를 참조했나?”

“뭐 그것도 있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두 개의 의회, 상원과 하원은 귀족정과 민주정 사이에 이루어진 타협의 결과다.

귀족은 귀족의 특권을 양보하되 상원이라는 의결 기구로 명예와 품위, 영향력을 유지한다.

평민은 평민들이 원하는 민주정의 실현을 위해 하원을 통해 국가 정치에 개입한다.

“본래 쿠릴타이도 몽골 왕공귀족들의 회의였지. 지금은 상당히 확대되긴 했지만 그 귀족적인 성격을 완전히 잃어버린 게 아니야. 그 점에 착안한 건가?”

역시, 견하도 몽골식 입헌군주정의 특징을 잘 알고 있다. 재연은 새삼 견하의 무서움에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우리는 완전히 국민을 기반으로 첫 출발한 의회를 만들었어. 제국최고회의의 귀족적 성격은, 쿠릴타이에 비하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다면 몽골인 의원들을 일차적으로 제국입헌당에 끌어들이고, 이차적으로 상원에 배치하는 거야. 귀족의 명예와 실권, 약간의 영향력은 유지하도록 해주는 거지.

제국최고회의에 있었던 의원들은 하원으로 보내고, 하원에는 법률과 예산을 하원이 먼저 심의할 수 있는 권리를 줘서, 실권을 고려인들이 쥐게 할 생각이야.”

그리고 상원에는 참의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하원에는 민의원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러면 마치 몽골인들이 고려인들의 윗선에 선 듯한 모양새가 만들어진다.

대략 이런 식으로 포장된 계획이다.

“전에도 말했던 장치들의 효과가 더해지면, 몽골인들의 불만을 최소화할 완충지대를 충분히 마련하면서 동군연합을 실행에 옮길 수 있어.”

‘전에도 말했던 장치들’은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몽골인들에게 확실히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는 계급’을 만들어 줄 것.

재연은 몽골인에게 한족의 통제권을 쥔 자리를 일부 넘겨줌으로써 몽골인들이 그런 민족적 우월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몽골인과 고려인의 합작에 의한 한족 통치라.”

물론 견하는 ‘발해도’ 문제로 선뜻 동의하긴 어려운 상황이지만.

두 번째 장치는 ‘범 알타이 인민동맹’이 만든 ‘알타이 민족’이라는 가상의 개념.

“본래는 ‘범 알타이 인민동맹’이 언젠가 고려를 병합하는 날이 오면 써먹을 생각으로 만들어 둔 거지만, 역으로 우리가 몽골을 병합할 때도 써먹을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더라고.”

대략적인 내용은 전에도 들었지만, 그 구체적인 실상에 대해서는 이번 안을 통해서 처음 본다.

견하는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다시 멈춘다. 눈을 들어 재연의 얼굴을 노려본다.

“이거, 원래 허동주의 생각이지?”

뻔뻔할 정도로 태연하게, 반듯하게 허리를 세운 채, 재연은 대답했다.

“유용하다면 뭐든 못 써먹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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