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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36화 (136/541)

지하(4)

어두운 터널 속 전등 빛이, 공사 현장을 부옇게 밝히고 있었다.

괴물체에 대한 보고가 올라온 것 치고는, 그냥 일반적인 지하철 공사 현장이다.

여기저기 손상된 철로나 설비를 손보고는 사람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

시끄러우면서도, 생업의 열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동하는 공간에, 정체불명의 괴물이 나타난다, 라.

리안은 공사장을 둘러보며 그런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뒤에 현장 책임자와 인부 두 명이 다가왔다.

장교들의 안내를 받아 리안 앞에 온 그들은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인사했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리안은 곧장 질문을 던졌다. 지체할 시간은 없었으니까.

“당신이 목격한 건가?”

현장 책임자는 손을 내저으며 뒤따라오는 두 인부를 가리켰다.

“아, 아닙니다. 여기 두 사람이……”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인부들에게 리안은 턱짓하며 물었다.

“이미 보고는 받았지만, 직접 목격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고 싶은데.”

“예, 저, 각하, 그게……”

더듬더듬, 두 사람은 서로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러했다.

지하철 복구공사를 진행하면서, 좀 더 깊은 곳에도 손상된 부분은 없는지, 앞으로의 공사는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지 살펴보러 들어갔었다고 한다.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어딘가 약해져 있던 부분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 본 것이다.

희끄무레한 뭔가가, 손전등이 비춘 자리의 한편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 것을.

처음에는 헛것을 봤나 싶었다. 그러나 마주 본 동료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헛것은 아니었다.

그다음으로 든 생각은, 지하철에 무단 침입한 부랑자나 불량 학생. 당연히 그런 사람들은 무섭다.

거기 누구요? 여기 공사 중이라 위험하니까 빨리 나가요. 경찰에 신고는 안 할 테니까.

그러나 하얀 형상이 지나간 곳 너머에서는 아무런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인간은 은근히 현실주의자다. 그러니까 상상이나 망상도 자신이 겪었던 현실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많다.

대답이 없다는 것은,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 왜 대답을 못 할까. 왜 그냥 나와서 도망치지 않을까.

혹시, 내전 중에 탈영한 병사나 아직 남아있던 허동주 잔당은 아닐까? 그런 생각에 이르자 등줄기에 소름이 좍 돋았다. 두 사람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을 불러와야 하나? 책임자에게 알려야 하나? 하지만 단순한 오해라면 그건 또 그것대로 공사 현장에 폐를 끼치는 일이다. 좀 더 확실하게 살펴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손전등을 끄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려 좀 더 접근해보기로 했다.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자기들 발소리에 움찔거리기를 수차례.

생각보다 멀었는지, 가까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어떤 경로로 거기까지 갔는지만 기억날 뿐.

나머지 상세한 기억들은 지워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것을 봤으니까.

길이도, 높이도 대략 2미터 정도 되는 하얀 괴물체. 그 어둠 속에서도 색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하얬다. 표면은 매끄러웠다.

난생처음 보는 그 괴물 앞에서, 당연히 두 인부는 굳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괴물이 기묘하게 떨며, 기괴한 움직임을 보이기 전까지는.

그것이 대체 어떤 의도로 그런 동작을 했는지는 모르나, 두 인부는 명백히 그것이 자신들을 ‘바라봤다’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정신없이 뒤돌아 뛰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뛰어서, 빛이 있는 곳, 동료들이 있는 공사 현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달렸다.

사색이 되어 돌아온 두 인부의 보고를 받은 현장 책임자는 반신반의했지만 일단은 상부에 보고.

상부의 상부, 그 상부의 구성원들 사이에 나오는 잡담 등을 거쳐…… 이 정보에 주의해야겠다고 판단한 배영훈이나 군의 정보 담당자들은 태사에게 상세한 보고를 올렸다. 여기까지 며칠 걸리지 않았다.

그런 보고를 들은 태사가 직접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현장 책임자를 비롯한 인부들은 꽤 당황한 듯했다. 자신들이 목격한 것이 그 정도로 큰일인가 새삼 놀라기도 하면서.

목격담이 끝나자 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교들을 보면서 일단 취해야 할 조치를 하기로 했다.

“함구령을 내려둡시다. 그렇다고 해서 소문이 퍼지는 걸 완전히 막진 못하겠지만. 현장 책임자와 두 인부에게는 포상금과 휴가를 주면서 최대한 입을 다물게 하죠.”

이런 경우 협박만 하는 것보다는 돈을 섞는 게 더 효력이 좋다.

그리고 연구원들을 가까이 부른다. 그들의 얼굴에도 의심보다는 확신이 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리안도 그랬고.

“헛소문이길 기대하면서 왔는데 목격자 진술은 우리가 아는 ‘그것’의 특징과 상당히 일치합니다. 직접 탐사를 시작해야겠어요.”

“위험성이 높으니 군인들을 전면에 배치하시고 천천히 나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뒤로는 이곳을 본부로 삼고, 연락이 끊어지지 않도록 통신선도 확보하고요.”

합리적이고 무난한 진언이다. 리안은 끄덕이고, 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

인부들은 처음에는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그 후엔 불을 끄고 접근했다고 한다. 리안은 그와는 반대로 나가기로 했다.

동원할 수 있는 불빛은 모두 동원한 상태에서, 대규모 인원을 한꺼번에 움직인다.

“우리가 다가간다는 걸 저쪽에서 눈치채겠지만, 저쪽도 이렇게 강한 불빛 속에 있는 우리를 구별하긴 힘들겠지.”

물론 그 괴물들에게 ‘시각’이라는 게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런 생각을 거듭하다간 끝이 없으니 잠시 치워두기로 한다.

일반 군인에게든 이단에게든, ‘하얀 괴물’ 혹은 ‘파멸인’의 외양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해둔다.

공격성이 강해 무척 위험한 괴물이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총알 몇 발 정도로는 죽지 않으니 집중적으로 사격해야 한다는 것.

이단도 이 괴물들의 공격에 피격당하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이’와 다른 ‘이’가 충돌해 이의 붕괴, 더 나아가 ‘기’인 신체의 붕괴로 이어진다고, 반복적으로 경고를 하달한다.

미지의 괴물에 대한 두려움, 호기심, 긴장감이 뒤섞인 채, 두 인부가 말해준 경로를 따라 태사의 부대는 공사 현장에서 좀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혹시라도 고립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정 거리마다 공사 현장에 둔 본부와 연결된 통신장비를 설치한다. 통신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하고, 신중하게 나아간다.

괴물을 상대하는 나약한 인간은, 가능한 모든 문명의 산물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리안은 본부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역시 호기심으로 가득한 몇몇 연구원들과 함께, 괴물 추적 부대의 뒤를 따랐다. 연구원들은 호기심보다는 ‘학문적 관심’이라고 말하는 쪽을 선호하지만.

“……안 나오는데.”

연구원 중 한 사람이 그렇게 중얼거린다. 차분한 어조지만 왠지 모르게 괴물이 나오지 않아서 실망했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도 주의를 주기엔 애매해서 잠자코 듣고만 있는데, 다른 연구원이 그 말을 받는다.

“이상하네. 도산서원의 사례와는 다르지 않아요?”

“……? 뭐가?”

“거기선 엄청 공격성을 보였다고 했잖아요. 근데 여기선 인부든 누구든 다친 사람 하나 없고.”

“인부들이 잘 도망친 거 아니야?”

“보고서에는 파멸인들의 속도가 인간의 달리기쯤은 손쉽게 따라잡는다고 되어 있잖아요.”

“개체별 차이일 수도 있지.”

“아무리 개체별 차이가 있다고 해도 인간이 호랑이한테서 달리기로 도망칠 수는 없어요.”

“음…….”

리안은 두 연구원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도산서원 근처 지하의 비밀 시설에서 일어난 참극. 그 끔찍한 광경은 파멸인이라는 괴물이 얼마나 공격적이며,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잘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목격 사례는 다르다.

공격해오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괴물의 공격에서 운 좋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목격만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다.

괴물의 습격을 받아서 ‘목격한 것을 전달할 수 없게 된’ 사람이나 실종자에 대한 보고는 아직 없었다.

처음에는 파멸인류라는 게 이성이 전혀 없는 괴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판단’이 가능한 걸까? 어떤 경우에는 공격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공격하지 않는다는 기준이 있는…….

판단이 가능하다면 ‘의도’도 있다.

그 괴물들은 어떤 의도로 황도의 지하에 나타난 걸까?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리안은 숨을 삼켰다.

파멸인이 도산서원의 지하 시설에서 나타난 것은 무언가 ‘의도’가 개입했기 때문일까? 아니 애초에…… 그걸 그 자리에 나타나게 한 ‘구체’는 대체 언제부터 거기 있었지?

구체가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다고 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걸까?

만약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면…… 역시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그 구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렇다면 구체에서 나온 파멸인들의 행동 패턴도 ‘의도’대로 조종할 수 있는가?

아니, 아니, 아니.

애초에 누가 황도 지하에 파멸인을 풀어놓은 거지?

자연적으로…… 아주 먼 옛날부터 동명시 지하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동명시와 안동 도산서원 모두, 그 지하에 파멸인류를 품고 있었다고? 우연히? 그런 우연의 일치가 가능할 것 같나?

누군가 파멸인을 소환하도록…… 어딘가에 ‘구체’를 만들어뒀다고 생각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

그렇다면 그 구체는 어디에? 지하철 어딘가에 있긴 하나?

지하철…… 지하철은 이런 일반 노선만 있는 게 아니다.

더 깊은 곳에는, 제3제국의 핵심층만 이용할 수 있는 ‘비밀노선’이 있다.

나, 미리안은 비밀노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내가 아는 게 다라고 할 수 있을까? 리안은 그런 질문을 되뇐다.

전부 알진 못한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야, 저거 뭐냐?”

병사 하나가 천장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리안의 생각은 끊겼다.

리안의 시선도 병사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간다.

부대가 들고 온 조명도 터널 천장을 향한다.

거대한 터널의, 둥근 천장. 리안이 이끌고 온 부대의 행렬 한가운데, 바로 머리 위.

대여섯 개의…… 하얀 덩어리.

아니, 천장이 높아서 덩어리 정도로 보이는 거지, 눈앞에 두면 거대한 짐승 정도의 크기일 터.

그것들이 부르르 떨 듯, 기괴한 움직임을 보인다. 사지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저게 저 괴물들의 사지일지, 그것부터가 의문이다.

그러니 아예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기괴한 움직임이라고 할 밖에.

기괴한 움직임 끝에, 괴물들이 일제히 ‘얼굴’을 이쪽으로 향했다.

탈처럼 웃는, 소름 끼치는 얼굴을.

아니 얼굴이기는 한가?

“이런 씨……!”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사격이 시작된다.

하지만 맞는 건지 어떤지 판단하기도 전에 그 파멸인 하나가 그대로 천장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그대로 밑에 있던, 처음 ‘저게 뭐냐’고 했던 병사를 짓뭉개 터트린다. 붉은 과육을 섞은 음료수를 엎지른 것처럼 되어버렸다.

파멸인은 그대로 어색한 고갯짓을 한다.

고갯짓…… 그 탈처럼 생긴 부위가 얼굴이라면 그렇게 부르는 게 맞겠지만, 어쨌든 그 고갯짓의 직선 방향에는,

태사 미리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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