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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31화 (131/541)

혼돈획책(18)

골치 아픈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본국에 소식을 전한 직후, 아즈텍 측 관료가 와서 이른 시일 내에 고려로 돌아가 줄 것을 요청했다.

“철혈의 꽃이 여론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고려와 결탁해서 자국민을 살해하려 했다고.”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죠?”

견하의 질문에 관료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그런데도 번들거림이 가시지 않는다.

“테노치티틀란에서는 시위가, 아니 폭동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당신네 사람들 시신을 훼손하기까지 했지만, 그걸 어떻게 돌려받을 방법도 없습니다.

테노치티틀란에서 정부의 행정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군을 투입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거짓말은 정부 관료의 의무다.

상황이 통제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통제하고 있다’고 말해야 하며, 못해도 ‘최선을 다해 상황을 수습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정부 관료는 정부의 약점을 감춰서 정부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겉모습을 꾸며야 한다. 그런 거짓 안정을 통해, 진짜 안정을 구하는 것이 정부 관료가 할 일이다.

그런 관료가 ‘도시에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즉, 상황은 저 관료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군을 투입해 진압하겠다’라는 말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투입해도 진압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칠까?

또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자면, 손님들더러 갑자기 ‘나가달라’고 말하는 게 미안해서 하는 변명일 수 있다. 우리의 상황이 이렇게 안 좋다, 미안하다, 양해해달라.

견하는 일단은 여기서 예의를 갖추기로 했다. 귀국할 때가 되기도 했고.

“본국에서 연락이 오는 대로 돌아갈 겁니다. 아마 본국 정부도 현 상황에서는 철수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단하겠죠.”

그렇게 말하고 나서, 견하는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철혈의 꽃은 강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야겠죠.”

“고려의 현 정부는…… 어디까지나 비상조치이긴 했지만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도 끌어안는 방식으로 입지를 강화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내전에서 졌을지도 모릅니다.

아즈텍 정부도, 양쪽에서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적어도 어느 한쪽과는 잠시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지막 조언이었다.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견하는 본국으로 돌아가서는 국내 문제에만 신경 쓸 생각이었다.

아즈텍 정권이 어떻게 되든 그건 외무성과 다른 관료들의 몫이고, 자신은 차라리 그 시간 동안 미리안의 권력을 강화하는 게 낫다고 봤다.

혹은, 루우의 계획에 협력하든가.

아즈텍 관료는 지난번과 달리 조금은 귀담아듣는 표정을 짓다가, 역시 고개를 저었다.

“주 국장께서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역시 우리는 그런 길을 택할 순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고려에는 복원할 황실이라도 있었지만, 우리 아즈텍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견하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렇다. 고려와 아즈텍 사이에 그런 차이가 있다는 걸, 견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고려의 새로운 황제 폐하께선, 존재하시는 것만으로도 여러 정치 세력의 균형을 잡아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백 년 전에 황실 자체를 전멸시켜버렸습니다. 다른 도시의 사람들을 납치해 와서, 노예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잔혹하게 잡아먹고, 백성들까지 그런 광란의 식인 잔치로 몰아넣은 그런 황실은, 멸망시켜 마땅한 자들이었죠.”

아즈텍 관료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오른다.

아니, 쓴웃음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다. 그것은 꿋꿋한, 자기네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다.

“우리는 틀락스칼라 혁명 이후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연방제도로 수많은 민족을 한 가족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수백 년 전에, 전통을 부정하고 잘라낸 우리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수백 년을 보냈습니다.”

“그런 걸 하루아침에 바꿀 순 없겠죠.”

“네. 물론 개혁도 변화도 좋습니다. 하지만 변화해선 안 될 것도 있고, 개혁해선 안 될 것도 있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지금 좌익이든 우익이든 어느 쪽 극단주의자들과 손잡아도, 희망찬 미래가 펼쳐질 것 같진 않습니다. 손을 잡은 순간 휘둘릴 뿐이겠죠. 계급투쟁에 미친 나라가 되든지,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이라곤 없는 야만인들의 나라가 되든지, 그럴 겁니다.”

공화국과 연방제라는 전통. 그것을 지키는 길은, 그 체제를 고수하며 홀로 맞서 싸우는 것뿐이다. 황제라는 기댈 언덕도 없는 아즈텍 연방은 더욱 그렇다.

견하는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고려인의 기준으로만 생각했다고 반성한다.

아즈텍엔 아즈텍의 역사와 전통이 있고,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가치관이 있다. 그 가치관이 옳은지 그른지, 그 가치관을 고수하는 게 옳은지 그른지는 여기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그걸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고, 견하는 거기에 존중과 경의를 표해야 한다.

멸망하는 걸 지켜보기만 할지라도.

관료는 견하의 앞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즈텍의 역사는 늘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잘 극복해냈죠. 대서양 전쟁도 이보다 더 어려웠으면 어려웠지, 쉽진 않았을 겁니다. 이번에도 우리는 극복할 겁니다. 자, 악수나 할까요.”

관료가 손을 내민다. 견하는 그 손을 맞잡았다.

“제가 보기에 주 국장께선 나이는 젊지만, 분명 고려 제국에서 큰 역할을 하실 분이 될 겁니다. 그 나이에 그 정도 식견을 가진 사람은 드무니까요.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

투글룩 소장은 조금 긴장한 채 카간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카라코룸 근처에 있는 이단 연구시설과, 그 근처 군사 기지를 책임지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종종 직접 보고를 하러 황궁에 나와야 한다.

일개 소장에 불과한 투글룩이 그런 중요한 보고를, 카간과 직접 대면해서 해야 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카간은 꼭 그렇게 할 것을 명령했다.

이단 연구, 특히 카라코룸 근처에 있는 사원에 있는…… 그 ‘파멸인류’에 관한 것은, 카간은 최소한의 사람들과만 공유하고 싶어했다. 이단 전력을 카간이 독점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파멸인류에 대한 정보가 대중에 퍼져 혼란을 일으키는 걸 막기 위함이다.

그래서 카간은 현장 책임자인 투글룩을 매번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육성으로 보고를 듣는다.

투글룩에게는 통상적으로 소장 계급에 주어지는 것 이상의 특혜가 허락되었기에, 생활상의 불편함은 전혀 없다. 그 점에 만족하기에 투글룩도 이런 부담을 견디는 것이다.

겹겹이 배치된 근위병 사이를 지나 집무실로 들어서니, 안에는 카간 말고도 또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타이시 각하…….”

타이시(太師) 볼로드였다. 투글룩과 카간 시레문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투글룩 소장.”

볼로드와 투글룩은 눈빛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 나서 투글룩은 곧바로 시레문을 향해 경례를 올렸다.

시레문은 경례를 받아주고는, 보고를 시작하라는 고갯짓을 했다. 투글룩은 보고를 마치고 나면 잠깐 칸발리크에서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카라코룸 쪽 원래의 업무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복잡한 절차는 생략하고, 간결 명료한 보고를 받는 것이다.

“올해 초에도 별다른 변화는 없었습니다. ‘구체’의 활동은 상승과 침잠의 패턴을 계속 일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파멸인을 뱉어낸다든가 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파멸인이 출현하는 전조…… 그건 지난 사건들의 경험을 통해 알아낸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 ‘전조’라고 파악된 현상이, 정말 ‘전조’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다른 데이터가 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지금까지 확보된 데이터를 통한 추론으로는 그게 가장 확실합니다.”

‘구체’를 구성하는 역겨운 형상들이, 통상과는 다른 속도로 미친 듯이 움직이는 것. 그것이 파멸인이 출현하기 직전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 현상이 없다면, 특별히 보고해야 할 것도 거의 없다.

“하지만 전조 없이 파멸인이 출현하는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부정할 순 없겠죠.”

투글룩은 눈을 굴린다. 카간의 말대로다. 논리적으로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최초의 사례’가 언제든 일어날 수는 있습니다. 저희 역시 그런 사태가 일어나진 않을지 주시하는 중입니다.”

“계속 수고해주십시오, 투글룩 소장.”

“예. 그리고 여기……”

투글룩은 들고 온 문서들을 카간의 책상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쿠빌라이 문서」의 탐색에서 약간의 진전이 있었습니다. 연구원들도 따로 분석 중이지만, 이 분야에 소양이 깊으신 카간께서도 따로 살펴보셔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보충 자료 몇 가지를 첨부해서 가져와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물러나서 쉬십시오. 혹시 의문점이 생기면 또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번거로울지 모르지만 사흘 정도 칸발리크에서 대기해주겠습니까.”

“카간께 헌신하는 것은 몽골 군인의 의무입니다. 부탁 대신 명령해주시면 됩니다.”

“그래도 장군한테 너무 과한 책무를 떠넘긴 게 아닌가 싶어서. 어쨌든 알겠습니다.”

투글룩이 방에서 나가자, 이번에는 볼로드가 시레문의 정면에 섰다.

볼로드는 잠깐 투글룩이 올린 서류들에 시선을 줬지만, 곧바로 거뒀다. 그 내용까지 묻는 건 볼로드의 영역이 아니었다.

시레문은 국내외 정치 문제와 이단 관련 문제를 엄격하게 분리해서 관리한다. 볼로드가 자신의 영역이 아닌 이단 문제에 관심이라도 보인다면, 당장 시레문의 목에선 노성이 터져나올 것이다.

“카라코룸에서 소요가 발생하는 빈도가 늘었다고?”

시레문은 투글룩이 들어오기 전, 볼로드와 나누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예.”

“칸발리크에서도……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위에 불과하지만, 빈도 자체는 확실히 늘었네. 두 도시에서 커져가는 불만이 서로 관련이 있을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두 도시에서 각기 내세우는 불만 사항이나 구호의 성격은 상이하기에, 겉보기엔 관련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배후 세력이 다양한 방법으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는 것이라면 관련이 있다고 가정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주제든 정부에 반대하기만 하면 될 테니까. 그런 사람들 처지에선.”

시레문은 고민에 잠겼다. 여기서부턴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 어떤 질문을 해야 적절한 대답을 얻어내서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쓸 수 있을까.

“카라코룸 쪽 소요는…… 작년에 고려 서북부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일으키고 있나?”

“그들 대부분이 가담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주민들도 동조한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카라코룸의 확장, 개발 과정에서 목초지를 잃거나, 다른 도시에서 흘러들어온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파괴 행위의 정도는 어떻지?”

“지금은 가게 몇 개가 파손된 정도…… 우려할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위기라는 것은, 실제가 얼마나 심각한가와는 별 상관 없이 무르익기도 한다. 소요가 일어나고, 파괴 행위가 일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카라코룸의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도시에 그런 분위기가 퍼지면, 와야 할 사람들보다는 오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모여든다.

“카라코룸은 미래 몽골의 산업 중심지이자, 아시아 물류의 중심지가 되어야 하네. 지금 상황을 내버려 두면 그 구상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끼치겠지.”

시레문은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시찰을 나가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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