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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30화 (130/541)

혼돈획책(17)

암살조는 견하가 생각한 것처럼 신수덕이 테노치티틀란에 있을 것이라 예상했고, 그래서 남쪽으로 향했다.

테노치티틀란은 아즈텍이 아직 중세 제국이었던 시절의 수도이자, 식민도시의 주민들을 도살해서 잡아먹던 광란의 소굴이었다.

그런 잔혹한 현실은, 몽골의 침략과 압정을 견디지 못한 일본인들이 태평양의 여러 섬을 거쳐 이 대륙에 왔을 때 깨지기 시작했다.

식민도시들은 망명자들로부터 철제 무기를 받고, 테노치티틀란이 전염병으로 괴로워하는 동안 아시아의 의술을 전해 받았다.

그리고 식민도시 중 틀락스칼라가 선두가 되어, 테노치티틀란의 압제에 저항하는 혁명을 일으켰다. 이것이 ‘틀락스칼라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이다.

틀락스칼라 혁명 이후 아즈텍은 공화국이 되었고, 혁명에 협력했던 대륙 서해안의 일본계 영주들도 여기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 갈등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공화국은 이후 찾아올 유럽의 침략자들에 맞설 힘을 갖춰나갔다.

혁명 이후에도 공화국은 한동안 테노치티틀란을 수도로 삼았다. 물론 식인의 의식을 주도한 황실과 사제들은 남김없이 처형하고, 제단과 신전도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등,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진 뒤였다.

유럽의 식민자들 건설한 대륙 동부 해안의 식민지는, 북부의 초원인들, 미시시피강 유역의 성읍 국가들과 충돌했다. 그 소식이 들려오자 아즈텍 연방도 대책을 세워야 했다.

아즈텍은 북방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출병, 유럽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북방인들도 연방에 가담했다.

전쟁과 화평이 반복되며 투쟁의 시대가 길어졌고, 아즈텍의 국토도 대륙 북방으로 크게 확장됐다.

이때 아즈텍 사람들은 테노치티틀란이 국토의 남쪽에 치우쳐 있고, 그래서 전쟁을 수행하는 데 적당한 위치도 아니며, 새로 연방에 가담한 북방인들을 끌어안는 데에도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즈텍 연방은 수도를 미시시피강 유역의 쿠아우테목으로 옮겼다. 큰 강 유역이기에 농업을 비롯한 각종 산업의 육성에도 적당했기 때문이다.

쿠아우테목으로 천도한 이후 테노치티틀란은 호수 한가운데에 떠 있는 조용한 도시로 남았다. 그 풍광과 역사 덕분에 테노치티틀란은 관광도시로 거듭나, 지금까지 그 위치를 지키고 있다.

세계 각지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도시이기에, 암살조도 관광객으로 위장하고 도시에 들어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도, 유심히 어딘가를 살펴도 그 누구도 수상쩍게 여기지 않았다.

미리 정보를 접한 ‘철혈의 꽃’을 제외하면.

“감 하나는 좋은 사람들이군.”

그렇게 말하며 신수덕은 웃었다. 타카마가하라에 계속 머물면 꼬리가 밟힐 가능성이 있어서 더 안전한 테노치티틀란에 내려왔는데, 그걸 또 냄새를 맡고 몰려올 줄이야.

“신수덕 고문께서 해를 입는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가 시도한 암살이 실패한 마당에, 고문께서 암살을 당하신다면 체면이 이만저만 깎이는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철혈의 꽃’의 간부는 그렇게 말했다.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 중에서 철혈의 꽃이 대표로 주도권을 잡으려면 그 무엇보다도 ‘체면’이 중요하다. 그리고 저들의 암살을 저지하는 데 성공하면, 대외적으로 철혈의 꽃이 정부와 대등한 힘을 지녔다는 식의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렇기에 신수덕을 지켜야 한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그저 앉아서 보호만 받는 것보다는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군요.”

그렇게 말하고 신수덕은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 간부는 그의 다음 말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고려 측 암살자들은 아마 여기서 이런저런 조사를 하고 다닐 겁니다. 철혈의 꽃과 어떻게 접촉할 수 있는지, 혹은 그들과 어울리는 고려인을 보진 못했는지……. 그러다 보면 시간이 걸리겠죠. 우리 쪽에서 그 시간을 줄여줍시다.”

간부는 빠르게 신수덕의 의도를 추리해냈다.

암살자들이 ‘철혈의 꽃’의 거점과 신수덕 보호 여부를 알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여주겠다는 건, 일정한 정보를 흘리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일부러 정보를 흘린다는 건…….

“우리 쪽에서 함정을 파두겠다는 거군요.”

“철혈의 꽃 여러분께서 튼튼한 정보망을 구축해둔 덕분입니다.”

빈말로 하는 칭찬은 아니었다. 아즈텍 정부와 군부 내에 철혈의 꽃에 동조하는 자들을 많이 심어둔 덕분에 적들보다 앞서서 행동할 수 있게 된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신수덕 고문께서 말씀하신 대로 작전을 짜보겠습니다. 남은 일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아, 그것도 말인데…… 저들에게 정보를 흘리고 끌어들이는 일은 전적으로 철혈의 꽃에서 해주시고, 저들을 처리하는 일에는 제가 좀 참견을 해도 괜찮을지요?”

그렇게 묻는 신수덕에게 간부는 시선으로 의문을 던졌다.

“제가 드린 ‘선물’의 성능을 시험해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 선물의 실전성도 입증해서 제 체면도 세우고, 철혈의 꽃은 인력 낭비를 막는 거죠.”

고려의 재무장관 차무룡과 그 일행에 대한 암살을 시도할 때 이미 스무 명의 희생을 냈다. 철혈의 꽃이 동의했다고는 하지만, 신수덕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일이었던 만큼, 더는 신수덕 때문에 희생이 있어선 안 된다.

“게다가 이번 일은 ‘정치적으로 활용’하기가 꽤 좋습니다.”

“정치적 활용이라고 하시면……?”

“여기, 테노치티틀란은 아즈텍 연방의 옛 터전이죠. 아직 유럽인들이 오기 전인, 고전 시대의 아즈텍을 상징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철혈의 꽃도 여길 주요 거점으로 고른 것 아니겠습니까?”

“그야 그렇죠.”

“저는 아즈텍 선주민족의 혁명이 시작된다면, 이곳이 봉기의 주요 출발점이자, 혁명 시기의 수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도시에서 외국인 암살자들을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제압한다, 상당히 멋진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신수덕은 수긍하는 눈빛으로 끄덕이는 간부의 얼굴을 보며 계속 말했다.

“거기다 이런 식의 선전도 할 수 있죠. ‘아즈텍 정부는 해외의 암살자들과 협력해 자국민을 살해하려 했다’는 식으로.”

아즈텍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부인하는 말든 상관없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했을뿐더러, 중요한 점은 그 말을 들은 아즈텍 국민 다수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었으므로.

철혈의 꽃이 아즈텍 정부에겐 반역자들이나 다름없는 집단이라고 해도, 외국의 힘을 빌려 그들을 처리하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좋을 게 전혀 없었다.

어찌 되었든 비열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다. 자기들의 힘으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무능한 인상도 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철혈의 꽃이 저지른 테러가 그런 정부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간부는 끄덕였다.

“말씀하신 부분, 동지들과 의논해보겠습니다.”

***

함정일 가능성도 충분히 경계했었는데.

신수덕 암살 임무를 받고 아즈텍에 온 고려의 군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몸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다쳤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런 몸으로 질척이는 웅덩이 위에서 버둥거려본다.

죽어가고 있는 남자는, 그 웅덩이가 자신의 피로 이루어진 웅덩이라는 건 알지 못했다. 생명이 꺼져가면서,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으니까.

“아아…….”

아직은 비교적 멀쩡한 자들도, 그렇게 탄식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그들은 고려에서 최상급 훈련을 받은 정예들이었다. 태사 미리안이 반드시 신수덕의 수급을 받길 원했으니까.

그렇기에 이단을 포함해 사람을 상대로 한 전투였다면, 그들은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눈앞에 있는 적은, 사람이 아니었다.

여기 있을 거라는 예상도 하지 못했고, 여기 있어서도 안 되는 적.

무표정한 얼굴의 이단을 감싼, 거대한 철의 갑주.

아니, 혹시 세상에 개인용 소형 전차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은 외양이다.

“기갑사…….”

고려의 것과는 다르지만, 저 형태와 성능은 분명 기갑사였다.

하지만 저건 허동주 휘하 군 연구소에서 개발한 병기고, 지금은 미리안 정권의 전유물이어야 할 텐데.

“신수덕 이 새끼.”

팔았구나. 암살조의 리더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를 갈았다. 조국의 기밀을 외국에 팔아넘기고 보호를 청했구나. 자신의 적이 지배하는 조국은 더는 조국이 아니라는 건가?

신수덕이 아즈텍에 망명한 기간은 저렇게 조잡한 기갑사 두어 기를 만드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물론 조잡하다고는 해도 기갑사는 기갑사다. 일반 이단보다 훨씬 튼튼하고 무장도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빠르기까지 하다.

“온다!”

두 기의 기갑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계들 사이로 살짝 드러난 얼굴 쪽에 사격을 가하지만 표적이 너무 작다. 그리고 기갑사는 어렵지 않게 탄환을 튕겨내기까지 한다.

암살조는 이미 이단을 포함해 절반이 쓰러진 상황.

리더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다 살아서 갈 수는 없다.

신수덕을 죽일 수도 없다.

리더는 가장 발이 빠른 부하 하나를 뒤로 밀어냈다.

“가라. 우리는 여기서 네 뒤를 지킬 테니까, 가서 지금 상황을 전해.”

“네?”

“기갑사 기술이 아즈텍에 들어간 건 보통 일이 아니야! 임무를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이거라도 전해야 한다! 어서 가!”

부하는 망설였다. 리더는 더 말하지 않고, 사나운 눈길만 돌려 노려봤다. 리더가 턱짓했다.

부하는 뒤돌아 달렸다. 달리는 그의 뒤에서 기계장치의 부품들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시에 동료들이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

쿠아우테목에 있던 견하와 재연이, 신수덕 암살 실패 보고를 받은 건 그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었다.

만신창이가 된 데다 탈진한 유일한 생존자는, 고려의 재무장관 일행이 머무는 숙소에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 시설을 이용할만한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대신 아즈텍 정부의 호의로 의료진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의식을 차린 생존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암살이 실패한 것과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한 것도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긴 했지만, 그다음에 나온 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처…… 철혈의 꽃은 기갑사 기술을 가졌습니다. 신수덕이 넘긴…… 것 같습니다.”

또박또박 말하려 애쓰는 생존자를 다시 자리에 눕히고, 견하와 재연은 방을 나왔다.

“기갑사 기술이 고려만의 것이 아니게 됐어.”

“이건 이제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선을 한참 넘었다고 봐야지.”

“그래. 본국에 보고하고, 다음 지시를 기다려보자.”

단순한 기술 유출이 아니다. 철혈의 꽃이 기갑사를 통해 전력을 대폭 증강하면, 그만큼 정부와 싸울 때 유리해진다. 자신감이 더 붙으면 혁명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철혈의 꽃이 최종적으로 승리할 가능성도 커진다.

“철혈의 꽃이 여러 파시스트 단체들 중 확실히 우위에 선 건 확실하겠지.”

견하가 그렇게 말하자, 재연도 동의했다.

“그들끼리 기술을 공유하진 않을 테고, 조직을 힘으로 통합하는 과정을 거치겠지.”

“그렇게 해서 통일된 조직체가 나타난다면, 확실히 현 아즈텍 정부에는 큰 위협이야.”

아즈텍 내부의 파시스트 혁명, 혹은 내전이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는 예감. 두 소년 모두 그 예감에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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