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획책(13)
정치경찰실 시찰. 좀 더 정확하게는, 감찰국 시찰.
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제홍 실장의 경례를 받았다. 나제홍에게 불만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저 요즘 리안의 마음이 웃음을 보일 만큼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제홍은 그런 리안의 눈치를 살피며 옆에서 따라 걷는다.
“정치경찰실, 그리고 감찰국의 성장은 순조롭습니다. 계속 이렇게만 나아간다면 수년 이내에 옛 야별초의 규모나 기능을 넘어설 것으로 생각됩니다.”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셨군요. 군에 계실 적의 경력을 보고 이 일을 부탁드린 보람이 있네요.”
“제가 하는 일은 거의 거들어주는 것 정도고, 실제 중심 역할을 하는 건 주견하 국장입니다. 주 국장이 귀국한다면 아마 좀 더 상세한 계획을 들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리안은 나제홍을 곁눈질했다. 정말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의 사내. 그런 남자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자신을 주견하의 꼭두각시로 세워둔 데에 불만이라도 품은 걸까?
그런 리안의 시선을 받으면서, 나제홍은 부드럽게 웃는다.
“각하, 저는 분수를 아는 사람입니다. 군에서 정보 관련 일을 하면서 그 정도 눈치는 키웠습니다.”
“……? 그게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할만한 것이던가요? 뭐 좋습니다. 계속 이야기해보세요.”
“예, 황송합니다만…… 저는 제가 맡은 역할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향후 정치경찰실이 구 야별초만큼 성장하면, 그때는 충분한 연공을 쌓은 주견하 국장에게 조직을 인계하고 떠나는 것이라고…….
그때까지 조직을 잘 키워놓을 뿐만 아니라, 주 국장이 경험을 제대로 쌓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리안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고 물었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편이, 처세에는 더 이롭지 않은가요?”
“저는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쪽을 각하께서 선호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음, 그게 오판은 아니긴 한데.”
그제야 리안은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나제홍은 안도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제가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명확한 지시를 받는 게 이롭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넌지시 암시만 받는 방식으로는, 제가 각하나 주 국장의 뜻을 오해하고 선을 넘을 수도 있으니까요.”
리안은 끄덕인다. 일이 잘 풀려간다는 신호다.
“동의합니다. 그러면 오늘은 뭔가 묻고 싶은 게 있는 건가요?”
“예. 음…… 주 국장의 계획으로는 이후 감찰국 외에도 사상국 등의 기구를 추가 설치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방첩국이나 친위국 등도 설치해서, 국내 치안과 관련된 모든 일을 총괄하는 기구로 정치경찰실을 거듭나게 할 계획이라고…….”
“방첩국에 친위국이라…… 상당히 업무의 범위가 넓어지겠네요.”
“아마 주 국장의 계획 속에는 일반 경찰 업무도 장악하는 것까지 들어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방첩국, 즉 국내 첩보 분야의 일을 장악한다면, 필연적으로 국외, 또는 군사 정보 관련 일에도 관여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리안은 나제홍이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한 듯했다.
“특히 군사 정보 관련 업무를 건들게 되면, 제국정보사령부와 마찰을 빚을 수도…… 그게 우려되는 겁니까?”
“예. 주 국장이 앞으로 정치경찰실을 맡을 때, 아무래도 정치경찰실은 야별초를 완전히 없애고 만들어진 신생 조직이다 보니, 여러모로 곤란한 점이 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군과 불필요한 마찰을 빚는다면…….”
“주견하의 경력에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겠죠. 물론, 주견하를 키우려 했던 태사의 판단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나제홍은 말없이 허리를 조아린다. 긍정은 하지만, 말은 아낀다. 현명한 태도다.
“따라서 주 국장의 조직이 성장할 때, 군과 충돌하지 않도록, 반대로 군이 주 국장과 충돌하지 않도록, 서로 영역을 확실히 구분 지어 주십사 하는 의견을 올리고 싶습니다.”
“타당한 의견이군요. 주견하가 올라오는 기반을 확실히 다져줄 필요도 있지만, 적절히 어디까지가 네 영역이다, 한계를 지어 주는 것도 필요하겠죠.”
리안은 끄덕이며 걸어나간다. 이제 감찰국 직원들과 마주할 차례다.
나아가다 말고 문득, 리안은 고개를 돌려 나제홍에게 묻는다.
“그럼, 나제홍 실장이 이런 진언을 하고 바라는 건 뭐죠?”
“저는 약간의 재산과…… 제국최고회의 의원직 하나면 만족합니다. 각하께서 저를 꿰뚫어 보신 그대로, 넉넉하게 오래 살면 그걸로 만족하는 인간이니까요.”
흐음, 짧게 말하고, 리안은 나제홍을 훑어본 후, 대답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제홍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도열한 감찰국 직원들 앞에서 그들을 격려하는 연설을 한다.
그런 형식적인 절차를 마친 후, 리안은 견하의 집무실에서 유지나, 양수영, 이익서 이렇게 세 사람과 대면했다.
이른바 감찰국의 간부급이라 말할 수 있는 면면들이다.
“유지나 국장 대리와는 종종 만났지만, 이렇게 내 쪽에서 찾아온 건 처음이지?”
“네.”
가볍게 미소를 지어준 뒤, 리안은 양수영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적응’은 잘 되어 가고 있나?”
수영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다, 간신히 지나와 같은 답을 골랐다.
“……예.”
“지난번 쿠데타 진압에서는 공을 세웠다고 들었어. 이미 주 국장에게 적절한 치하의 말을 들었겠지만, 태사로서 한 번 더 감사를 전하고 싶군.”
“……더욱,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리안은 고개를 끄덕인다. 양수영이 말한 ‘충성’에 대해서는 전혀 믿고 있지 않지만, 대답 자체에는 만족한 듯하다.
태사의 시선은 이익서에게 향했다.
“청년과 창설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지?”
“예, 각하. 아직 대학 내 동기들과 친목을 다져나가는 정도긴 합니다만……”
“계속 수고해주게.”
리안은 세 사람과 몇 마디 더 잡담을 나누곤, 양수영과 이익서는 내보냈다.
태사 리안과 국장 대리 유지나, 두 사람만이 남았다.
지나는 견하에게서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압박감을 느낀다.
“시찰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잠깐 둘러보는 것만으로 모든 걸 파악하긴 어렵지. 그래서 의견을 듣고 싶은데, 국장 대리는 저 두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이었기에, 지나는 준비된 대답을 한다.
“양수영 쪽은, 그러니까 그녀와 비슷한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은 어쩔 수 없이 감찰국 직원으로 살아야 합니다만, 점차 그 점을 받아들여 가는 듯합니다.
‘어쩔 수 없이 배반했다’에서, ‘원래부터 감찰국에 충성했었다’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해나간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안은 귀여운 목소리가 발음하는 딱딱한 경어를 감상하듯 들었다. 그러면서도 지나의 말에 대한 분석을 늦추진 않는다.
“지금 한 이야기는 한재연이라는 자에게도 해당하나?”
지나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잠깐 멈칫했다. 하지만 곧 대답을 마련했다.
“한재연에 대해서는…… 저는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저희 국장이 직접 관리를 맡으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견하 국장이 직접 관리를…….”
친구로서의 애정인가, 아니면 한재연의 위험도가 그만큼 높다고 보는 건가.
아니면 꽤 쓸만한 인재라 견하도 나름 키워보려는 걸까.
판단의 재료가 부족했다. 이 점은 견하가 귀국한 뒤 따로 물어봐야 한다.
리안은 질문의 초점을 양수영에서 이익서로 옮겼다.
“이익서에 대해서는?”
“알게 된 기간도 짧고, 업무상 교류도 많지 않아서 제대로 파악했다곤 할 수 없습니다만…… 상당히 성실한 군인이라는 인상은 받았습니다.”
음,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닐까 유지나 양. 그런 말이 미소와 함께 떠오를 뻔 했지만 리안은 참았다.
그녀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핵심적 질문은 양수영이나 이익서에 대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즉, 지금부터 좀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익서를 주 국장과 비교했을 땐 어떻지?”
이 질문은 지나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기에, 그녀는 멍한 어조로 되물었다.
“……예?”
“굳이 비교해본다면 말이야.”
“비교라니, 어떤 측면에서……”
“음, 질문이 애매하긴 했네. 그래, 지적인 측면에서는 어떨까?”
지나는 생각에 잠긴다. 리안은 그 얼굴을 보며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주견하 국장이 확실히 더 똑똑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듯합니다.”
리안은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이 말한다.
“그 말은…… 이익서가 멍청하다는 뜻은 아니겠지?”
“예. 저희 국장이 이례적으로 영리하다는 뜻입니다.”
지나의 답을 듣고 나서 리안은 생각에 잠겼다. 루우의 말을 떠올려본다.
이단의 지능은 평균적으로 높다. 그러나 견하의 지능은 그런 점을 감안해도 이상할 정도로 높다. 이것이 뭔가 좋지 않은 징후가 아닐까, 염려된다.
하지만 지금 리안의 눈앞에 있는 유지나라는 소녀도, 이단이 아니지만 상당히 총명하다. 그렇다면 그냥 견하도 일종의 천재 같은 게 아닐까?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까?
“요즘 주견하 국장에게 이상한 점은 없었나?”
“이상한 점이라고 하신다면……?”
“피로라든가, 고민이라든가.”
질문을 던지면서도 리안은, 유지나에게 이런 식으로 자신의 걱정을 노출해도 될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그런 문제보다는 역시, 견하의 일이 중요하다.
“가끔, 피로해 보이긴 합니다. 특히 전투가 있고 나서는…….”
“전투 이후에?”
“예. 허동주를 주살했던, 그, 신환도역 전투라든가, 산동 전역 이후로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 최근에는 동명역에서의 진압 작전 이후에도.”
“어떤 식으로 피로해 보였지?”
지나는 리안이 대체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걸 말하기로 한다.
“조금, 그러니까 감정적으로 동요할 법한 일에도 무뎌진다고 해야 할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지나는 견하를 감싸듯 말을 덧붙인다. 태사가 뭔가 견하를 추궁할 점을 찾아내려는 건 아닌가 오해한 듯하다. 리안은 그런 오해를 풀어줄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그보다는, 지나가 말한, ‘감정적으로 무뎌지는 듯하다’는 말이 리안의 고막 위를 맴돈다.
-불필요한, 지나친 잔혹성.
그 점도 루우가 우려했던 것이다.
평소 견하가 리안이나 효윤, 루우 등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투에서 보이는 결과물은 다르다.
-견하 자신에게 이상이 있는 걸까, 아니면…….
작년 4월의 그 날 이후로, 자신이 그 소년을 뭔가, 잘못된 길로 이끌어 간 건 아닐까.
뭐든 잘 배우는 총명한 아이, 든든한 측근이라고만 생각하고, 가르치면 안 되는 걸 가르치지 않았나? 맡기면 안 되는 일을 맡긴 건 아닌가?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리안은 간신히 미소를 꺼냈다.
“오늘 시찰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 계속 수고해줘, 유지나 국장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