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24화 (124/541)

혼돈획책(11)

몽골 내에서 일어날, 반(反) 군주제 혁명.

성공만 한다면, 세규에겐 매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꿈은 아니라고 자각했다.

그래서 세규는 현실적인 방법을 택했다.

사라진 황실을 부활시켜, 입헌군주제의 길을 가는 것.

군주의 통치는 일반적으로 군사 지도자의 통치보다는 부드럽다. 게다가 입헌군주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군주의 권력이 약해지며, 행정부나 입법부의 권력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갑자기 민주공화정을 도입하는 것보다는 현실성 있는 방향이다.

그래서 세규는 몽골에서 볼로드와 타협해 루우를 고려로 데려왔고, 그녀를 황제로 만들어줬다.

이제 수십 년에 걸쳐 황제는 하나의 상징으로 남겨놓고, 국민이 선출한 공무원들이 정치를 담당하는 민주정 체제로 나아가면, 세규는 자신의 역할을 다 한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 뒤에는 군주제도를 폐지하고 민주공화국이 되든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충분히 민주적인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루우가, 자기 의사대로 움직이기 전까진.

루우는 혼자서 미리안과 접촉해,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황제가 되는 데 필요한 협력을 얻어냈다.

만약 루우를 계속 자신의 영향 아래 둘 수 있었다면, 미리안과 협력해서 정권의 지분을 더 많이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우가 단독으로 미리안과 협상함으로써, 미리안이 유지한 지분은 예상보다 더 커졌다. 세규가 얻어낸 지분은 예상보다 작아졌고.

그리고, 루우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직 어떤 세력을 형성한 건 아니었지만,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구 제국 정부나 민국 정부와는 전혀 별개의, 제3의 세력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첫째, 국민들은 황실을 동정했다. 태평천국의 공격에 불타버린 평양과 같이 사라져버린 황실을.

그들은 평양 시민들을 먼저 피난시키다가 장렬히 전사했다는 신화로 남아있었다. 국민들은 루우를 그 동정심의 대상으로 삼았다.

둘째, 루우 자신이 내전을 끝내는 전투에 몸소 나섰다. 루우는 영리하게도 여기에 언론의 힘을 이용했다.

그 덕분에 루우는 내전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병사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최전선에 나타난 황제라는 이미지를, 국민들 머릿속에 심어줄 수 있었다.

게다가 이는 평양에서 국민들을 위해 희생한 구 황실과 그녀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고, 그녀는 손쉽게 황위를 손에 넣었다.

미리안 정권과는 관계없이, 루우 테무르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절대적이다.

이런 강력한 지지를 루우도 알기 때문에, 그녀는 황제가 되자마자 다음 일에 착수했다.

그냥 공주로 있었다면 얻지 못했을, 몽골 카간의 자리를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

실현 가능성도 의문인 계획이지만, 실현된다고 해도, 안세규에겐 반가울 게 없는 계획이다.

다이온 연방이 실제로 태어난다면, 거대한 다민족 국가가 될 것이다.

‘민주정을 이루어가는 데에 모든 역량을 기울여도 될까 말까인데, 민족문제까지 겹치면 민주정의 달성은 멀어지고 만다.’

다민족 국가가 지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히려 민주정과는 정반대의, 중앙집권적 정부가 탄생할 수도 있다.

그것도 그냥 중앙집권적인 게 아니라, 상당히 폭압적인.

‘주견하…… 그 소년은 루우의 의향대로 행동해주면서, 동시에 루우의 권력이 더 커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상당히 똑똑한 의견이었다. 그럴싸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견하의 의도를 표면에 드러난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주견하는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에 약간 수정을 가해서, 카라코룸으로 천도할 구상을 말했었다.

그 누구의 색깔도 칠해지지 않은 신도시라고 하면서.

그곳은 루우는 고향인 칸발리크도 아니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동명도 아니다. 태사 미리안은 거기서 제국입헌당을 자신만의 당으로 재편한다.

카라코룸에는 안세규가 이끄는 고려국민당의 색을 칠할 수도 있고, 그 외 다른 정당의 색을 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차선책이다.

「계획」이 실현됐을 때의 차선책.

최선책은, 애초에 그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세규의 눈앞에는, 그렇게 해줄 제안이 있다.

몽골에서 혁명이 일어나 군주제가 폐지되면, 루우는 황위 계승을 구실로 몽골 합병을 추진하기가 어려워진다.

몽골의 신정부와 전쟁이라도 일으키지 않으면 불가능에 가깝다. 그때가 오면 세규 자신은 반전 여론을 일으켜, 루우의 야망을 좌절시키면 된다.

고려 제3제국에 필요한 건, 더 넓은 영토가 아니라, 내실을 다질 시간이다.

‘범 알타이 인민동맹’에서 보낸 몽골인은, 어떻냐는 듯이, 양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좋습니다. 협력하죠.”

미소를 짓는 몽골인이 섣부른 대답을 하기 전에, 세규는 쐐기부터 박았다.

“외무성이 쓸 수 있는 자금 선에서 협력해드릴 겁니다. 다시 말해, 서류상으로는 합법적인 선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볼로드 타이시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진 않겠지만, 당신들 혁명의 성공을 위해 정보 공유는 중단하겠다는 것은 약속드리죠.”

그 외에도, 라고 말하며 세규는 숨을 들이켰다.

“지난 내전에서 노획한 반란군의 물자들이 좀 있을 겁니다. 이들 중 일부는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망가진 것으로 처리할 수도 있겠죠. 이것들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옛 민국 정부 계열 장교들 몇 명도 군사 고문으로 보내드리죠.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안 장관님. 몽골의 신정부는 장관님께 진 빚을 잊지 않을 겁니다.”

“……빚을 갚고 아니고 이전에,”

안세규의 눈이, 안경 뒤에서 번뜩였다.

“나도 도박을 하는 처지니만큼, 혁명, 그리고 군주제 폐지를 반드시 성공시키십시오.”

***

류성일은 방금 업무를 일단락하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지난해에 있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정계에서 물러나 제1대학교의 총장으로 있던 그는, 도망 중이던 태사 미리안을 보호하고, 다시 정계로 돌아왔다.

미리안은 그런 그에게 법무성 장관의 자리를 주었다. 백부의 동료이자, 믿을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그는 화려하게 정계로 복귀했다.

그에 대한 감회를 다시 떠올려보기 직전에, 비서가 손님의 방문을 알려왔다.

외무성 장관 안세규였다.

만남을 거절할 수는 없어서 일단 맞이할 준비는 했지만, 머릿속으로는 그 의도를 계산해 본다.

다소, 껄끄러운 상대긴 하다.

이윽고 집무실에 들어온 안세규는 류성일과 마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류성일이 무슨 일이냐는 눈빛을 보내자, 안세규는 대답했다.

“제3제국의 체제를 고안하신 분께 가르침을 구하고자 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류성일은 4월의 어느 날을 떠올렸다. 미리안도 총장실에 찾아와 비슷한 말을 했었지. 뛰어난 젊은이들이 내리는 판단에는 이렇게 비슷한 부분이 있다.

“어떤 자문을 듣고 싶으시오, 안 장관.”

“황제 폐하께서 지원하시는 정책 중에,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이 있다는 건 아시지요?”

“듣기는 했소만.”

들은 정도가 아니라 이미 자세히 살펴봤다. 다소 미숙하고 유치한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관찰과 판단을 보여주는 문건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안이 보강된다고 들었는데, 아마 몇 년 안에 꽤 그럴싸한 모습을 하고 공식적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그거, 법적으로 문제는 없겠습니까?”

류성일은 안세규의 의도를 읽는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그저 질문에만 응한다는 느낌이로 대답했다.

“이런 문제는 법적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문제요. 법으로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관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그런 해석을 관철할 힘이 있는가의 문제라.”

“그렇다는 건…… 황제 폐하께서 그럴 뜻을 강하게 품으시면, 진행 자체는 가능하다는 말이군요.”

“그렇소.”

“그 의지를 저지할 방법은 없겠습니까? 법무장관의 관점에서 말입니다.”

류성일은 왼쪽 눈썹을 치켰다. 굳이 그런 질문을 해야 하냐는, 작은 항의였다.

“입헌군주국에서 황제가 행정부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이 한정된다고는 해도, 어쨌든 나도 폐하의 신하요. 신하가 황제의 강력한 의지를 법적 논리를 들이대며 가로막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오.”

최소한 경질될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하긴, 간신히 정계에 복귀한 류 장관님 입장에서 그런 위험을 감당하시긴 어렵겠죠.”

“……상당히 불쾌한 말이구려, 안 장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류성일은 작은 찌푸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그의 노련함을 말해준다.

하지만 류성일이 노련하든, 노기를 드러내든, 안세규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말했다.

“제가 그 계획을 저지하는 데 지원을 요청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안 장관을 위해 위험을 감수해달라? 우리 사이에 그 정도로 의리를 지켜야 할만한 빚이 남아있었소?”

“류 장관께선 내전이 끝나면서 빚도 다 청산됐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애초에 빚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었지.”

“하지만 거래는 분명 있었죠.”

“안 장관 당신은 자신의 세력을 합법화하고 내각의 일원이 됐고, 나도 정계로 복귀했소. 이걸로 끝난 거래요.”

“아니, 아니죠. 다소 구차할 수 있겠습니다만, 하나하나 따져볼까요?”

그제야 류성일은 눈살을 찌푸렸다. 안세규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긴장하기 시작했다.

“세간에는 선대 태사 미승휴의 아래에서 충실히 일하다가, 물러날 때가 되었다며 겸허히 자리를 내놓으셨다, 그렇게 알려졌지만, 실상은 달랐지 않습니까.”

류성일도 미리안에겐 미승휴가 자신의 의견을 일부는 받아들이고, 일부는 거부하기도 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말과는 거리가 있었다.

류성일과 미승휴의 의견 충돌은 그렇게 원만한 게 아니었다. 정권의 초기 구성부터 류성일은 세 세력을 모두 규합하길 원한 반면, 미승휴는 민국 정부를 배제하길 원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갈등은 경제 정책, 국가의 미래 구상, 정치적 균형점, 군사력 투사 등 모든 측면에서 충돌을 만들어냈다.

결국 류성일은 정계에서 물러나 제1대학교의 총장이 되었다.

이는 실각, 혹은 ‘부드러운 숙청’이라 말할 만한 사건이었다.

“류 장관님께선 정계에서 한발 물러나고 나서도, 정권 내 원로들과 계속 연락을 취하시며, 복귀할 틈을 노리셨죠.”

“그리고 그때, 안 장관도 민국 정부가 처한 위기의 타개책이 필요했었소. 가능한 한 획기적인 것이.”

류성일은 의자 팔걸이에 팔꿈치를 기댄 채, 손만 앞으로 모았다.

“작년 4월 1일, 구 민국 정부가 저지른 제국태사 전용열차 습격 사건의 진상은 영원히 묻어둬야 할 비밀이오. 오히려 이 점에 있어선 안 장관이 내게 빚이 있는데.”

“우리의 계획을 알고 ‘묵인’해주면서…… 아니, 태사 각하를 제거할 방법도 슬쩍 ‘귀띔’해 주면서, 좋은 기회가 왔다고 미소 지으셨던 걸 벌써 잊진 않으셨겠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