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15화 (115/541)

혼돈획책(2)

식민지.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자면, ‘백성을 심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뜻대로, 식민지를 만드는 나라는 자기네 국민들이, 본토의 정체성 그대로 그 땅을 자국화하기를 기대한다.

몽골의 카간 시레문과, 몽골 정부가 구 태평천국의 영토에서 기대한 것도 이와 같다.

그래서 카간의 두 동생인 게레센제, 울제이를 비롯한 관료들을 파견해 정부를 수립하게 했다.

만약 아즈텍이나 일본의 반발이 아니었다면 정식으로 식민지로 삼고 총독을 파견했겠지만, 이미 로마의 식민지 정책 실패를 맛본 아즈텍이나 신성 제국은 그런 상황을 용인하지 않았다.

로마 제국은 북부 아프리카와 메소포타미아에 걸친 넓은 영토를 식민화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페르시아 일대에 권력 공백이 생겼고, 바라트의 지원을 받은 공산주의의 물결이 이 일대를 휩쓸었다.

그 결과가 카불, 후라산, 페르시아의 공산화.

연합국은 그 이상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구 태평천국 영토에 키타이와 낭키아스라는 위성국가를 설립했다. 식민지배보다는 한족의 불만을 조금이라도 덜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족의 불만은 공산주의의 좋은 자양분이 될 테니까.

이 키타이와 낭키아스가 다시 대리, 버마, 라타나코신, 베트남, 보우슈엥 등의 정부를 지원했다. 이런 방식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공산권의 확대를 저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20년 세월이 흐르자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본래 두 아우에게 기대한 것은 식민지 ‘총독’의 역할이었네.”

시레문은 넋두리를 하듯, 몽골의 타이시(太師)인 볼로드에게 그렇게 말했다.

볼로드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

“하지만 두 분의 직함은 총독이 아니라 ‘칸’이셨죠.”

“아즈텍과 일본, 고려도 몽골의 속령이 아닌, 별개의 독립국으로 대우했지.”

“그랬기 때문에…… 지난 20년간 두 분 모두 훌륭한 통치를 해 오시지 않았습니까.”

“훌륭한 통치와 맞바꿔…… 아우들은 몽골의 황족이라는 자각이 약해져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되네.”

식민지 통치는 그 자체로 모순을 안고 있다.

식민지 주민들에게는 본국의 국민이 될 것을 강요하면서도, 원래 국민이었던 자들과 차별을 한다.

왜냐하면 식민지의 지배자들에게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피지배자들에게 동화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물론 일반적으로는 승자인 지배자들의 문화가 우위에 선다. 하지만 문화의 교류나 융합, 변화는 그렇게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어쨌든 두 문화가 하나의 국가 안에서 만나면, 그 영향은 쌍방향으로 작용한다.

피지배자들은 지배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지배자들의 문화를 배우려 한다.

지배자들은 식민지의 환경에서 살아가기에 편리한 피지배자들의 문화를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는 양쪽 모두 경멸감을 드러내지만, 그런 것은 수 세대에 걸쳐 두 문화가 융화하며 사라진다.

지배자는 완전히 피지배자들과 동화되진 않으면서도, ‘본토’와는 다른, ‘식민지’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결국 대제국은 붕괴한다.

따라서 제국이 되고자 하는 나라에겐 선택이 강요된다.

제국이 정복한 모든 문화를 평등하게 인정하고, 그 교류를 통해, 옛 정체성과는 결별하고 제국의 ‘새로운 정체성’을 탄생시킬 것인가.

아니면 철저한 차별과 분리정책을 유지하면서, 피지배자들이 일방적으로 지배자의 문화를 받아들여 동화될 때까지 버틸 것인가.

“……후자를 택했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후자를 택했다면 두 아우의 나라는 일찌감치 무너졌을 수도 있지. 이건 괴로운 모순일세.”

타이시 볼로드는 말을 삼켰다. 지금 하려던 말은 울제이와 게레센제에게 큰 실례가 될 수 있으므로.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소수의 몽골인으로 한족들을 다시 통제하는 데 성공한 건, 두 아우가 얼마나 고생을 거듭했을지 말해주지. 짐도 아네.

옛 다이온도 이 정도로 한족을 잘 통치하진 못했을 걸세. 허나 아우들은…… 짐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네.”

작년, 고려령 산동의 신수덕을 토벌하면서, 그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게레센제는 예케 몽골 울루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다스리는 낭키아스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네. 몽골의 황족이 아니라, 낭키아스의 군주로서.”

신수덕이 살아있는 것이 명확해진 이상, 게레센제의 혐의는 벗기 힘들다. 물론 게레센제가 신수덕을 탈출시켜줬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기에, 울제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강한 항의 정도겠지만.

거기서 게레센제가 ‘경계를 소홀히 했다’며 사과한다면, 그 이상 따지고 들 수도 없다. 사건은 그걸로 마무리되겠지.

그러나 게레센제가 ‘낭키아스만을 위해’ 행동했다는 사실 자체는 남는다.

이것이, 어쩌면 군주들이 형제라는 구실로 묶어 둔, 몽골, 키타이, 낭키아스의 분열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적어도 그 시작을 나타내는 표지는 아닐까.

“울제이 역시, 몽골의 카간인 짐의 부탁이 아니라, ‘키타이의 군주’로서 게레센제와 대립하려 들었네.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키타이의 황제를 칭하고 짐에게서 독립하겠다고까지 했지.”

두 아우가 몽골인이 아니라, 키타이인과 낭키아스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건 아닌가. 혹은, 의도적으로 그런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시레문은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타이시, 그대가 짐에게 이 문제에 대해 조언해 줄 것은 없는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폐하. 해답을 내기도 어렵고, 해답을 낸다 해도…… 그것을 입 밖에 내기가 어렵습니다.”

입 밖에 내기 어려운 말. 시레문이 그것을 몰라서 물어본 것은 아니다. 시레문과 볼로드 모두, 그게 어떤 말인지는 알고 있다.

“짐이 좀 더 냉철한 군주였다면, 벌써 두 칸을 숙청하고, 키타이와 낭키아스에 대해 본격적인 식민화 작업에 들어갔겠지.”

“그러셨다면 다시 한번 큰 전쟁을 겪어야 했을 겁니다.”

“몽골군이라면 키타이와 낭키아스의 군대 정도는 손쉽게 격파할 수 있네.”

애초에 두 나라의 군대는 몽골 본토의 지원으로 유지된다. 최근에는 몽골 문화에 동화됐다고 판단된 한족도 일부 군대에 들어가는 모양이지만, 그들의 충성은 의심스럽기에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

“아즈텍과 일본이 용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강력한 항의나 무역 제재에 그쳤겠지. 그것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네. 차후 외교적 노력으로 풀어가도 될 문제고.”

“만약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러신다면…… 고려의 황제와도 부딪히셔야 할 겁니다.”

“짐이 좀 더 냉철한 군주였다면 딸과 전쟁을 벌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걸세.”

이 문답은 시레문과 볼로드,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한 채 오가는 것이다. 어떤 질문을 할지, 어떤 답을 할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고, 따라서 그저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 문답은, 실로 ‘넋두리’에 가깝다.

볼로드는 카간과 풀리지 않는 문답을 나누기보다는, 화제의 방향을 조금 틀어보기로 했다.

“신이 우려하는 것은, 누군가 두 분 칸의 행동에 자신들의 이익을 끼워 맞추려 들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란…… 한족 독립운동가들이겠지?”

“그러합니다. 한족들만의 독립된 민족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지만, 20년이나 계속된 몽골인의 통치라는, 그 현실을 인정하고, 타협해야 한다는 온건파 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신수덕의 한족 학살은 강경파의 입장을 강화했다. 하지만 동시에, 고려는 산동 식민지를 ‘발해도’로 재편성하고 높은 수준의 자치를 부여함으로써, 온건파의 입장을 지지해줬다.

낭키아스와 키타이가 신수덕 진압을 위해 군을 움직인 것 역시, 자국 내 한족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행동 역시 어쩌면, 낭키아스와 키타이 내 ‘온건파’의 입지를 다져줬을 수 있다.

“그 두 나라 내 한족 온건파와, 두 아우가 서로 타협을 본다, 라…….”

“두 분 칸은 한족들과 타협해 독립 국가 수장으로서 자신들의 지위를 확립할 수 있습니다. 한족들은, 비록 완전한 독립은 아니지만, 적어도 몽골의 식민지는 아니라는 ‘독립의 차선책’을 받아들일 수 있지요.

‘군주가 몽골인’인 상태만 참을 수 있고, 실상 독립한 것과 다름없는 수준의 자유를 누린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차선책입니다.”

시레문은 눈을 감았다.

그렇게 된다면 한족 국가의 부활은 막을 수 없다.

시레문 역시 다시는 한족의 정체성을 지닌 국가가 세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쿠빌라이 카간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야심도 있다. 이건 몽골의 카간이라면 누구나 품는 것이다.

그러나 키타이와 낭키아스가, 각각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한 독립 국가로 재탄생한다면?

적어도 1세대인 울제이와 키타이, 그 주변 관료들은 몽골인의 정체성을 유지는 하겠지.

하지만 2세대, 3세대로 넘어가면? 그때도 그런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완전히 한족에 동화되는 것은 아닐까? 그때쯤 되면, 몽골어를 기억은 할까?

-막아야만 한다.

시레문은 눈을 떴다.

“타이시 볼로드. 그대가 그런 한 조언에는,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도 포함된 것이겠지.”

“두 분 칸과 한족 주민의 정치적 타협이, 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그 정치적 타협을 저지해야 할 테고, 저지 방법 역시, 정치적 접근이 되겠군.”

“실로 그러합니다.”

시레문은 다시 고민에 잠겼다. 하지만 이번 고민은 앞의 것보다는 들인 시간이 짧았다.

“키타이와 낭키아스 군부에서, 몽골 고국에 대한 충성심, 몽골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특히 강한 인사들을 파악해야겠네. 한족에 대한 경멸감이나 적개심이 강한 인사라면 더욱 좋고.

그 외에도 한족 독립운동 세력 내에서 온건파에 반대하는 강경파 무리와 접촉할 수 있도록 해주게.”

애석하게도 이런 독립운동은, 어떤 경우에는 지배 민족보다, 노선이 다른 동포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강경파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하면서, 온건파의 목소리의 목소리를 줄여나가야겠지. 또 한편으로는 몽골인 군부를 동원해서 온건파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고.”

물론 여기서 ‘적절한’ 수준이란, 울제이와 게레센제의 통치 기반 자체가 무너지지는 않을 수준을 의미한다.

타이시 볼로드는 여기에 몇 가지 의견을 덧붙인다.

카간의 재상이자, 관료의 우두머리다운 날카로움을 빛내면서.

“그 일과 동시에, 적절한 시점에 두 분 칸을 압박, 예케 몽골 울루스가 직접 키타이와 낭키아스를 통치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겠습니다. 4국의 관세동맹은 이 과정에서 큰 보탬이 되겠지요.”

볼로드의 말에 시레문은 짧게 끄덕였다.

이 비밀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도록 몇 가지 변장을 했다. 가짜 수염을 붙이거나 도수 없는 안경부터 시작해서, 푹 눌러 쓸 수 있는 모자나 두건, 목도리, 깃이 높은 외투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