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군(7)
전쟁성 장관 강태훈은 반란 진압 축하연에서 조유관 대장과 마주했다.
숙군이 한창인 지금 상황에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기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면 이렇게 공식적인 연회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기서도 따로 구석으로 불러내면, 오히려 시선을 더 끈다. 다들 들으라는 듯 껄껄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그래야 사람들은 이 대화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시선을 거둔다. 사람들이 듣고, 수군거리고 싶어하는 건 어두운 곳에서의 속삭임이지, 밝은 곳에서의 의례적인 농담이 아니다
.“이제 이걸로 확실히, 내전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강태훈의 말에 조유관은 동의를 표하듯, 끄덕였다. 수염이 그 끄덕임에 맞춰 옷깃을 쓰담는다.
강태훈과 조유관, 두 사람은 그렇게까지 살가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는 아니다. 비록 십수 년 전에는 둘 다 아직 새파란 장교에 불과했지만, 그래서 결정권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색함은 남아있다.
한쪽은 중앙에서 착실하게 출세 가도를 밟아 왔고, 다른 한쪽은 유배지에서 썩어가고 있었으니까.
물론 중년을 지나 노년을 바라보는 지금, 그런 앙금은 뒷세대를 위해 털어버려야 한다고, 두 사람 다 느끼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상처를 봉합하고 나라를 재건하는 방향을 생각해봐야죠. 군도 거기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불과 수개월 만에 끝난 내전이지만, 그래도 전쟁은 전쟁이고, 당연히 상처는 크다.
미리안과 허동주, 두 편으로 나뉘었던 사람들을 다시 하나로 묶는 것, 민국 정부와 제국 정부의 대립을 극복하고 진정한 하나의 나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과제다.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문제지.
술잔을 기울이던 강태훈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술을 뗐다.
“참 많은…… 아까운 인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네, 그랬지요.”
“미래의 고려군을 이끌 젊은 피였는데 말이죠.”
강태훈은 강조하듯, 다시 한번 그렇게 말한다. 조유관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무슨 의도인가. 단순히 내전에서 희생된 장병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건가?
허동주 측으로 넘어간, 호전적이고 재능있던 장교들을 애도하는 건가?
혹은 얼마 전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줄줄이 처형 또는 체포를 당한 장교들을?
어느 쪽이든, 강태훈의 말에 동의를 표하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조유관은 이렇게 말하며 술잔을 살짝 들었다.
“황제 폐하와 태사 각하께 충성을 다하고 산화한 장병들을 위해.”
그 말에 강태훈의 씁쓸한 미소가 돌아온다. 조유관의 의도는 전해졌다.
그나저나 대체 뭐지, 하는 의문이 조유관의 머리를 맴돌았다.
강태훈 정도 되는 사람이 조유관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수작을 부리진 않을 것이다. 분명, 다른 할 이야기가 있는 듯한데…….
“너무 많은 유능한 인재를 잃어서, 내전이 끝난 기쁨이 오래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그제야 조유관은 조금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군 전력의 약화…… 는 피할 수 없는 일이겠죠. 그 정도 장교들을 다시 길러서 빈자리를 채우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물론 실전을 체험한 장교들이 많으니 반드시 전체적인 전력이 약화되었다,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겁니다.
종전 후 19년 만에, 세계대전 때보다 발달한 기술로 현대전을 치렀으니 교리도 더욱 발전하는 쪽으로 수정되겠죠.”
“하지만, 역시 그걸 수행할 사람이 문제입니다. 병사를 통솔하고, 상급자의 명령을 이해하고, 실전에서 두려움을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건, 사관학교에서 몇 년 보낸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네, 그래서…….”
강태훈은 잠깐 뜸을 들였다. 조유관은 침착하게,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태사께서도 그 부분을 우려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전쟁성에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셨죠. 몇 가지 안이 올라왔습니다만, 그중에 태사께서 선택하신 건, 좀, 특수합니다.”
“특수하다, 라? 그래도 전쟁성에서 마련한 안 중 하나일 것 아닙니까? 그런 게 특수하다는 건…….”
조유관은 말꼬리를 흐렸다가, 다시 가닥을 잡는다.
“태사 각하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안, 이라는 뜻이군요.”
강태훈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각하께선, 어떤 의사를 내비치셨습니까?”
“바라트 연방의…… 군제 개혁을 참고해달라고.”
“사회주의 국가의 군제 개혁 말입니까.”
이번에는 조유관도 침묵했다. 말을 삼킨 게 아니다. 말을 만들기 전에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바라트 이전, 무굴 제국의 군대는, 여느 군주국의 군대와 다르지 않았다.
신분에 따른 차별이 있었다. 귀한 신분은 장교가 되고, 천한 신분은 아무리 노력해봤자 부사관을 벗어나기 어렵다.
사회주의 혁명 정부는, 혁명에 뒤따른 내전에서, 먼저 그 문제부터 손을 댔다. 혁명에 반대하는 장교들을 대거 숙청하고, 병사들에게 자신들을 지휘할 장교의 선출권을 준 것이다.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군제 개혁이죠. ‘장교의 전문성’에 대해 정면에서 반기를 드는 조치이기도 하고, 그런 선출 과정이 단순한 인기투표로 끝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고.”
조유관의 말을 들으며, 강태훈은 동의를 표하면서도, 덧붙였다.
“여전히 그런 우려는 계속되는 모양입니다만, 반드시 군 전력 약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반론도 강한 모양입니다. 병사들이 지휘관 선출이라는 생소한 일을 받아들이게 된 배경에는, 기존 장교들의 무능함이 깔려 있으니까요.”
동쪽으로는 태평천국, 서쪽으로는 다르 알 이슬람.
양면전선에서 소모되면서, 아니, 패배를 거듭하면서, 무굴 병사들에겐 이런 인식이 퍼졌던 모양이다.
저 장교들만 믿다간 개죽음을 면치 못한다.
귀족 출신 장교들은 평민 병사들의 목숨을 조금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저들은 전우가 아니다.
“즉, 병사들이야말로 자신들을 승리로 이끌 똑똑한 지휘관을 누구보다도 잘 찾아낸다는 거죠. 어쨌든 목숨이 달린 일이니, 이겨서 목숨을 건지게 해줄 지휘관을 고르지, 단순히 성격 좋고 군 생활 편하게 해줄 지휘관을 고르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그렇게 선출된 장교 중에는 세계대전이나, 바라트 내전에서 큰 공을 세운 자들도 있고.”
무엇보다도, 우리 고려에도 그런 사례가.
라면서, 강태훈은 말끝을 흐렸다.
그 말대로다, 라고 생각하며 조유관은 술을 삼켰다. 당장 허동주가 그런 사례 아닌가.
“태사 각하는 여기에 더해, 그렇게 선출된 장교들을 사관학교에서 ‘재교육’을 하는 과정을 추가하면, 전문성 문제도 어느 정도는 해결되지 않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처럼 쉬운가, 하면 아니겠지만.
말이 되는가 안 되는가를 따지면, 일단 말은 된다.
“그런데 조 장군, 제가 걱정하는 건 장교의 질이 떨어진다거나, 군의 전력이 약화된다거나, 하는 것 너머의 일입니다.”
“그 너머의 일이라고 하신다면……?”
“그렇게 해서 양성된 장교들이, 또 어떤 하나의 파벌을 형성하지 않을까 하는…….”
파벌, 이라.
조유관은 다시 술을 삼켰다. 파벌. 썩 좋은 말은 아니다.
“아직, 뽑히지도 않은 장교들의, 형성되지도 않은 파벌을 우려할 것까진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누군가가 그런 파벌을 만들기를 강하게 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조유관은 술을 따르려던 손을 멈칫했다. 누군가? 군 내부에 새로운 파벌이 만들어지기를 원하는 누군가란 대체 누구인가?
“설마, 장관께서 우려하시는 건,”
태사 미리안의 의도인가.
장교가 아니었던 자들, 평범한 병사에서 전공과 재능을 인정받아 발탁된 자들의 충성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오롯이 태사에게 향하지 않을까.
태사가 기댄 무력, 예를 들어 강태훈이나 김천열 같은 사람들은 선대 태사인 미승휴가 남긴 인재들이다. 미리안 본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내전에서 허동주가 아닌 미리안을 택하긴 했지만, 그건 미승휴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허동주 쪽으로 가긴 싫었을 뿐이니까.
조유관 같은 이들은…… 옛 민국 정부의 사면, 그리고 정치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가담한 것이지, 역시 미리안의 충성스러운 군대라 보긴 어렵다.
당장 조유관만 해도, 만약 안세규와 미리안 사이에 다툼이 일어난다면 안세규 쪽을 지지할 생각이니까.
그러니까 미리안은, 자신에게만 충성할 군대를, 특히 장교진을 필요로 하고 있고, 그런 사람들을 대거 양성할 계획이라는 말이다.
“이번 숙군은, 그 밑 작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 낮춰서 속삭이는 강태훈의 말.
하지만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조유관도 목소리를 낮춘다.
“그렇게 양성된 장교들은, 출세가 보장되겠군요.”
“빈자리를 그들로 채울 예정이시니, 말도 안 될 정도의 고속 진급도 볼 수 있겠죠.”
“거기에 누군가 불만을 품는다면, 제2, 제3의 숙군도.”
“더 나가서 그런 환경에서 전역한 자들이나, 그런 환경에 놓인 군필자들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태사께는 확실히 도움이 되겠죠.”
일반 병사의 입장에서, 일반 병사를 위한 정책을 펼친다는 이미지. 반드시 도움이 된다.
“견제를 시도할 수는…… 없겠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길은…… 그렇게 발탁된 인재들과 친목을 다지는 정도일까요?”
“혹은 실력을 입증하거나.”
조유관의 말에, 이번에는 강태훈의 눈가가 떨린다.
“실력 입증이라고 하시면……?”
“군인이 실력을 입증할 곳이 따로 있겠습니까. 대규모 육해공 합동 연습이라든가, 전쟁터가 되겠죠.”
조유관의 말대로, 아무리 미리안이 자기 파벌을 군 내에서 키우려 한다 해도, 압도적인 전공을 세운 영웅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영웅들은 병사와 민중의 지지를 받으니까.
문제는 그런 전쟁터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니, 전쟁터라니, 대체 조유관은 무슨 의도로…… 라며 강태훈은 긴장한다.
“관세동맹이다, 태평천국을 멸망시킨 전우의 나라다, 전통적인 우방이다 뭐다 하지만, 영원한 친구는 없는 법이죠. 그게 국제정세, 외교 무대 아니겠습니까?
물론 군인이 그런 걸 입에 담는 게 바람직하진 않겠지만, 군인이니까, 그런 ‘만약’에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겠죠.”
조유관의, 의도를 드러낼 듯 말 듯 한 말에, 강태훈은 일단 동의를 표했다.
“아, 네, 뭐, 군인이라면 그래야죠.”
다소 정보를 흘리면서 의견을 들어볼 생각이었는데, 예상외로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강태훈은 조유관에 대해 그런 평가를 했다. 좋은 말로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속에는 구 제국 정부 군인들에 대한 적대감이나 질투가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게 없다고 해도 민국 정부 계열 군인의 수장이니만큼, 군부에서의 주도권에 대한 열망은 꽤 강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지.
강태훈은 가벼운 고갯짓으로 인사하고 다른 고관들 쪽으로 향했다.
내전은 끝났어도 제국의 수도는 여전히 바로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곳이다. 살아남는 방편을 매일 새롭게 세워야 한다, 그렇게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