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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12화 (112/541)

숙군(6)

“전부터 말했던 건데,”

열차에서 내리며, 루우는 그렇게 입을 뗐다. 불만 사항이 있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불필요하게 잔인한 방식을 선호해.”

그런 루우의 곁에 붙은 효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쓴웃음도 지을 수 없었다.

동명역의 높은 돔 형 천장까지 튀어 오른 핏자국을 보면, 마치 역 안에서 거대한 짐승이라도 도축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천장이 그 지경이니, 바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신발 바닥을 적시는 피, 그 비린내가 진동해 콧등을 얼얼하게 한다.

아니, 피비린내뿐만이 아니다. 살과 내장에서 터져 나온 악취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리안 언니의 판단일까…….”

“태사가 필요할 때는 잔인해질 수도 있는 정치가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야. 이건 불필요한 잔인함이지.”

루우는 혀를 찼다.

“주견하의 독단적 행동이라고 봐야겠지. 그 나름대로는 필요한 ‘공포감 조성’이라고 판단했겠지만.”

두 사람은 다른 군인들의 경호를 받으며 조심스레 역 안을 걸었다. 자칫 자기들의 발걸음에 피가 튀어 옷에 묻을지도 모르니까.

아무리 잔혹한 전투에 익숙해져 있다고 해도, 일부러 피를 자기 옷에 묻히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얼마쯤 걸어가자, 그녀들이 이야기하던 사람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소년은 서 있었다.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것 같은 깔끔한 제복 코트를 걸친 옆모습. 그걸 보며 두 소녀 모두 동시에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 피바다를 만들어놓고, 저렇게 단정하다는 건, 분명 견하의 실력이 정교해졌음을 보여준다. 이단으로서의 능력을 다루는 데도 한결 능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성장’이, 긍정적이라고 받아들이긴 힘들다.

선천적으로 이단의 힘을 얻은 루우나 효윤과는 달리, 견하는 후천적으로, 뜻하지 않게 이단이 된 사람이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면모들이 일반적으로 양산된 이단과는 다르다.

참고할만한 선례가 거의 없다 보니, 앞으로 견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상당히 빠르게 늘어나는 지적 능력, 성격의 변화는…… 물론 부모를 잃고 일종의 ‘각성’을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단 능력의 침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라…….

효윤은 루우가 들려줬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침을 삼켰다.

그녀들이 다가가자 견하도 고개를 돌린다. 그가 들고 있던 하얀 검이 연기처럼 흩어져 손바닥 안으로 사라진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을 향해, 그 또래 소년처럼 반가움을 담아 활짝 웃었다.

“오셨습니까.”

황제에 대한 예법을 간단한 목인사로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제국 내에 몇 사람 되지 않는다. 견하는 그 사람들 중 하나다. 이는 견하가 차지한 위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황제 루우가 자기 사람들과 얼마나 격의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을 인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상황은 끝났나요?”

물론 보는 눈들이 있으니 황제도 견하를 향해 반말까지 할 수는 없다.

“동명역에서의 상황은 거의 끝났습니다. 아직 주변에서는 도망치는 역적들을 상대로 추격전이 펼쳐지는 모양입니다만, 그마저도 곧 끝날 겁니다. 더 남은 문제가 있다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정도라.”

견하가 딱 그런 말을 할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병사 두 명이 반란군 측 병사의 시체를 질질 끌어갔다.

핏자국들 위에 궤적을 남기며 끌려간 시체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절단된 팔다리나, 코 위쪽, 가슴팍 아래쪽이 없는 시체의 ‘일부’ 같은 것들도 아무렇게나 치워지고 있었다.

루우와 효윤은 그 광경을 곁눈질하다, 눈을 돌려 다시 견하의 얼굴을 봤다.

왜 그러냐는 듯이 미소로 마주 바라보는 소년은, 능청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망가졌다고 해야 할까.

“……우리 세 사람끼리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루우의 말에 견하는 공손하게 안내하는 몸짓을 했다. 현 정권에서 손꼽히는 이단 두 사람이 황제를 호위하는 것이기에, 다른 경호 병력은 물러났다.

듣는 귀가 없다 싶어졌을 때, 효윤이 먼저 질문을 꺼냈다.

“적의 저항이 격렬하기라도 했던 거야? 이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어?”

질문을 꺼내면서, 효윤은 그게 책망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 견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그 자신도 자책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은 내전 때와는 상황이 달라. 물론 내전 때도 충분히 잔인하긴 했지만…… 여기선 좀 더 확실한 잔인함을 보여줘야 했어.”

“어째서 그렇지?”

루우는 황금빛 눈동자만을 견하에게 향했다. 효윤은 마음속으로 이런, 하며 탄식했다. 루우의 어조는 명백한 추궁이다.

“이미 충분한 자비를 보여준 뒤에 터진 배신이기 때문이지.”

전혀 위축되지 않고, 견하는 루우의 질문에 답했다.

“충분한 자비를 이미 보여줬다?”

“이번 쿠데타 시도의 직접적인 계기는 물론 숙군이지만, 그 원동력은 허동주의 잔당들이야. 반군의 주력 부대들에 일전의 ‘세 발 까마귀’ 완장이 보급된 걸 확인했어.”

“그러니까 네 말은, ‘두 번의 용서는 없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는 거지?”

“그래. 두 번째 용서는, ‘아, 자비를 보여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약하구나’라는 인상만 심어줄 뿐이야.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적은 그렇게 많지 않아.”

루우는 입을 다물었다가, 탐탁지 않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 말 자체에는 동의해.”

용서는 대승적 관점에서 ‘모두의 이익’이라든가, ‘화합’, ‘화해’, ‘조화’ 같은 명분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용서를 받은 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용서해 준 사람의 멍청함과 나약함을 비웃는다. 그리고 반격의 그 날을 기다린다.

따라서 철저한 보복이 오히려 훗날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견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루우도 그게 틀렸다고 반론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지나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은 남아.”

“어느 정도가 적절한 잔혹함인가, 하는 건 견해차가 있겠지만…… 그 점은 황제께서 추궁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네.”

견하는 깨끗하게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하며 말을 잇는다.

“변명처럼 들려도 할 수 없지만, 정권이 강한 결의를 품었다는 건 보여줘야 했어. 루우 네가 이번에 맺은 협약도 상당히 어려웠다고 들었는데, 이번 일로 저쪽에서 딴소리하진 못하게 해야 할 것 아냐.”

“……그렇지.”

루우는 울제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렇게 떠올리기만 해도 두통이 나는 것 같다. 진지하게, 숙부라 해도 언젠가는 죽여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추궁은 됐고, 앞으로는 잔혹한 조치는 삼가도록 해. 이건 황제의 권고야.”

“그럴게.”

“그런데 말이지, 주견하.”

견하는 진지한 다짐과 의아함이 뒤섞인 얼굴로 루우를 바라봤다.

“이번 일, 네 사적인 욕심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어?”

견하는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 루우와 견하 사이에 아주 잠깐이지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효윤은 조금, 불안을 느꼈다.

“……물론, 있지.”

“소년감찰국과 정치경찰실의 이름, 특히 공포의 대상으로서의 명성을 바란 건가?”

“그래. 내 조직이니, 그렇게 키우고 싶어.”

“태사에게 그 정도로 날카로운 발톱이 있다는 선전도 된다, 그런 명분도 있을 테고.”

견하는 피식 웃었다. 루우의 명석함에는 못 당하겠다는 얼굴이다.

“좋아, 이것도 용인할 수 있는 선이니까, 지금은 넘어가자. 하지만 ‘선’은 넘지 마, 주견하.”

차라리 털어놓아서 홀가분하다는 얼굴로, 견하는 끄덕였다.

“그럼, 주 국장, 이다음에 짐이 해야 할 일은 뭐지? 어디로 안내할 텐가?”

친구에서 다시 황제로 돌아온 루우는 그렇게 물었다.

견하는 기다렸다는 듯 능숙하게 대답했다.

“방송국입니다, 폐하. 가셔서, 역적 주살의 칙령을 담은 옥음을 들려주셔야 합니다.”

루우 역시 미소지었다. 담긴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미소였다. 그런 미소를 지은 채 걸어 나가며, 흘끗, 효윤의 얼굴을 봤다.

언젠가 말해줘야 할까, 말아야 할까, 루우는 생각했지만, 쉽게 결론을 낼 수는 없었다.

주견하의 생각은 루우도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뻗어 있을 가능성이 높기에.

-언젠가는, 주견하가 태사의 정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날을 대비하라는 말은 동명역의 피비린내 나는 광경보다 잔혹했기에, 루우는 그냥 말을 삼키기로 했다.

***

전국에, 역적 주살을 명하는 루우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타고 퍼졌다.

물론 사태가 안정화되고 있으며, 국민들은 안심하라고 달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소녀의 깨끗한 음색에는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 목소리의 매력 자체에 끌린다.

또 어떤 이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아직 연소하신 황제 폐하를 동정했다. 그리고 그런 분을 귀국하시자마자 고생하게 만드는 역적들에 대한 적대감을 불태웠다.

반군이 필사적으로 황제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던 건, 바로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함이었다.

황제 확보에 실패했으니, 쿠데타는 실패다.

남은 것은 죽음 혹은 항복뿐.

죽음을 택한다면 어떻게 더 발악해볼까 하는 정도의 선택 외에는 불가능했다.

수도 주변에 배치되어 있던 사단들이 속속 시내로 진입, 황궁 주변을 포위한 반군을 다시 포위했다.

여기서 무력 진압을 시도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황제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충분히 퍼졌으니, 반군 측도 황제의 확보에 실패했다는 건 안다.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것도.

따라서 이렇게 포위한 채 가만히만 있어도, 반군 진영에서는 매 순간 총성이 울린다.

동요하는 병사를 처형하는 장교나 부사관의 총성에 이어, 그런 상관을 죽여 항복 선물로 바치려는 병사들의 총성이 울렸다.

배신과 항복의 연쇄로 반군은 스스로 무너졌고, 그렇게 항복한 부대들은 일단 구금되었다.

“배후를 캐내서, 숙군의 범위를 다소 넓히는 근거로 삼아야지.”

그게 항복한 자들을 살려두는 이유라고, 리안은 말했다.

그녀 앞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나는, 잠깐의 침묵이 지나간 뒤에 말했다.

“주 국장은 황제 폐하와 함께 방송국에서 대기 중인 듯합니다. 좀 더 구체적인 쿠데타 진압 방송을 하고 싶다고…… 지침을 하달해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음, 그래. 이번 쿠데타를 시도한 자들은 고려, 몽골, 키타이, 낭키아스 4국의 우호적 관세동맹에 반대하는 극단주의자들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런 내용으로 시작하자.”

공식 문서로 남길 수는 없는 사안이었기에, 지나는 열심히 받아적었다. 견하에게 전달한 뒤는 태워버려야 할 기록이다.

“그렇게 해서 관세동맹에 반대하는 자는 곧 역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게 중요해. 혹시라도 ‘정말로 관세동맹을 반대하는’ 무리의 불만을 이걸로 잠재울 수 있겠지. 아 그리고,”

리안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덧붙였다.

“‘우호적 관세동맹, 고려의 경제 회복 시도를 방해하는 그 어떠한 시도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꼭 포함하도록. 그렇게 전해줘.”

“알겠습니다.”

간결하게 대답하고, 기민한 몸놀림으로 방을 나가는 지나의 뒷모습을 보며, 리안은 미소 지었다.

이걸로 됐다. 이런 메시지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관세동맹 관련국들은 고려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겠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나라들은 고려가 이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판단할 것이다.

“자, 그림 이제 남은 과제는.”

리안은 책상 한쪽에 올려둔 서류로 눈길을 옮겼다. 전쟁성에서 올린 보고서는, 바라트 사회주의 연방의 군제 개혁 관련 자료를 담고 있었다.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까 하는 거지.”

톡톡, 리안의 손톱이 두꺼운 종이 뭉치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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