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군(3)
병사들은 의아함과 호기심에 찬 눈길로 동명역에 나타난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러고 나서는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동료들의 눈에서 자신과 같은 감정을 읽고선, 피식 웃었다.
소년감찰국의 활동을 그냥 내버려 두고, 일절 관계치 말라는 상관의 지시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명령이 없었어도 병사들은 말없이 지켜만 봤을 것이다.
교복도 군복도 아닌 제복. 그런 옷을 걸친 소년 소녀들은 그저, 서성일 뿐이었으니까.
뭔가 대단한 무장을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병사들을 염탐하는 것도 아니고, 동명역의 시설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도 아니다. 그냥 거기에 있을 뿐이다.
이건 대체 또 무슨 보여주기식 행사인가, 그런 생각에 병사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양수영은 그런 병사들의 시선을 느끼며,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아무리 그래도 애들은 애들이야.”
불평 정도는 입술 사이로 작게 내뱉었지만.
수영은 바람이 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귓불이 빨개진 것도 날씨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
“기강을 잡아본다고는 했지만 천손민족협회 소년부 수준에도 못 미쳐, 아직은. 엘리트 군사집단까지는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그래도 군을 상대하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중얼거리다, 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걱정을 하는 건지.”
어쨌든 주견하의 협박에 굴복해서 강제로 들어온 조직이 아닌가. 그걸 제대로 꾸려보겠다고 생각하는 게 웃겼다.
아니면, 벌써 과거는 다 잊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걸까?
고개를 젓는 대신, 수영은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눈앞의 일에 집중하자.
군의 정보 관계자들에게서 얻은 자료는 충분히 검토했다.
황제 루우는 귀국할 때 태사의 전용 열차를 타고 온다고 했다. 여기에는 마중을 나간 배영훈 소령 등이 함께 탈 테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짐작했다.
문제가 있다 해도, 어떻게 손 쓸 수는 없겠지.
그러니 수영의 손이 미치는 곳, 그리고 음모꾼들의 수작이 미치는 곳은, 역시 동명역이 될 수밖에 없다.
“주견하는, 이렇게 하면 상대의 반응이 둘 중 하나일 거라고 했지.”
소년감찰국 직원들이 움직이는 것 자체는 아무런 실질적 효과도 없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효과가 있다.
만약 정말로 정변을 획책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은 적어도 ‘이번에는’ 정변을 단념할 수 있다. 그들의 눈에는 소년감찰국도 ‘증원’된 것으로 보일 테고, 그렇다면 정보가 새어나가 경계가 삼엄해진 것으로 해석할지도 모른다.
정변을 실행하기보다는 정보가 새어나간 출처를 파악하고, 내부 단속에 힘을 기울이겠지.
혹은, 이렇게 된 이상 ‘내친김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주견하의 소년감찰국까지 동원됐으니 꼬리를 밟혔다고 생각한다면, 정변 실행 말고는 다른 답이 없겠지.
하지만 이 두 번째 가정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주견하는 적절한 시점에 빼겠다고 했지만, 그 적절한 시점이 대체 언제지?”
아까 중얼거렸던 것처럼, 소년감찰국은 그냥 위기 상황에 익숙한 애들 집단일 뿐이다. 군인들과 정면으로 붙어서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유지나와 함께 고려국민당 간부들을 체포했을 때를 떠올려 본다. 그때 같은 경험이 계속 쌓인다면 좀 달라지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만약, 주견하가 적절한 시점에 빼겠다고 했던 말이 거짓이라면?
“……그럴 일이 없길 바라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어.”
그때는 어떻게든 혼자서라도 도망쳐야겠지.
물론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다. 주견하의 말대로, 지금은 조직을 불려 나가는 단계다. 아무리 오합지졸이라 해도, 몇 달 치 경험이 있는 조직원들을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다.
그 모든 걸 날려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은…….
주견하가 처음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고 협박해 올 때처럼, 팔에 소름이 돋는다.
“언제든 숙청당해도 이상하지 않긴 하지.”
만약 동명역에서 황제를 납치할 시도가 일어난다면, 그 와중에 자신이나 다른 동료들이 죽는다면, 주견하는 자기 손은 더럽히지 않은 채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긴장, 늦추지 말자.”
수영은 다짐하듯 말하며, 팔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
수영의 걱정은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렸다.
견하는 부하들을 헛되이 희생시킬 생각은 없었다. 수영이나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을 숙청할 생각도 없었다. 어쨌든 그들은 지금 견하의 소중한 기반이니까.
다만, 수영에게 말한 것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긴 했다.
그 방향이 양수영이 아니었을 뿐이지.
“정변 시도 정황이 포착됐고, 그게 이번에 귀국하는 황제 폐하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 실행 장소로는 동명역이 의심된다.”
견하의 앞에 앉은 재연은 그렇게 읊조렸다. 그리고 뒤이어 묻는다.
“그런 곳에 양수영을 보낸 거야?”
견하는 고개를 들고, 재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두 사람, 교제를 시작했다며?”
물론 견하가 말하는 ‘교제’는 일반적인 교류나 친목이 아니다. 연인으로서의 교제를 말한다.
재연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
“그것 때문이야.”
“그게 지금 일과 무슨 상관인데?”
덤덤한 어조로 묻고 있지만, 추궁이나 다를 바 없다. 물론 견하도 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두 사람 다 천손민족협회 출신이지. 그런 사람들이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특별히 내가 간섭할 생각은 없지만 적절한 메시지를 보내 둘 필요는 있었어.”
견하는 펜 끝을 재연 쪽으로 향했다.
“너한테.”
수영의 예상과 달리, 견하는 ‘재연에게’ 경고를 보낼 생각으로 그런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협박인가? 양수영을 언제든 사지로 내몰 수 있다, 그러니까 행동 조심하라, 그런 경고야?”
견하는 펜을 거두고, 끄덕였다.
“그 말대로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어? 나는 지금 견하 너를 위협하지 못해.”
“필요가 있었고,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할지 몰라도 앞으로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어.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눈과 귀가 안 미치는 곳에서 황제의 뜻에 따라 행동했잖아?”
재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지금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와는 별개로, 나는 이런 면모를 보여줄 수밖에 없어. 너에게든, 다른 사람들에게든. 적어도 소년감찰국, 아니 정치경찰실 소속이라면 내가 항상 지켜본다는 걸 알아야 해.”
재연은 계속 말이 없다가, 견하가 나가보라고 말하기 직전에, 물음을 던졌다.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친구라는 사실이, 한 조각이라도 견하 네 마음속에 남아있기는 해? 아니면 그런 걸 가정해서 나를 붙들어둘 뿐인 거야?”
“감정과 현실은 별개야. 우리가 친구라는 사실이, 서로 반대 진영에 속해서 죽일 듯이 싸우는 걸 막아주진 못했어.”
그 말이 맞았다. 우정과 ‘입장’은 별개다. 아무리 깊은 우정도, 그들이 처한 ‘입장’이 손아귀를 뻗어오면 허망하게 뭉그러진다.
그래도, 하면서 견하는 말을 이었다.
“산동에 다녀오고 나서는 의심을 풀어가는 중이긴 해. 하지만 그걸로는 아직 부족해. 이건 나에게만 달린 문제가 아니야. 너는 황제에게도, 태사에게도, 제국입헌당에도, 그 외에 너를 지켜보는 모든 눈길에 너의 ‘충성’을 증명해야 해.”
충성은 공적인 것이다. 사적인 마음과는 별개다.
공적인 것은…… 공적인 ‘실적’에 의해서만 측량된다.
“지금 하는 일, 한번 잘 해봐. 조금은 평가가 올라갈지도 모르지. 천손민족협회에서도 이론으로 주목받았었다면서?”
견하가 말하는 ‘일’이란,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에 관한 것이다.
“……그래 볼게.”
그렇게 말하고 조금 머뭇거리다, 재연은 말했다.
“부탁 하나만 할게.”
“……뭔데?”
사뭇 진지한 어조에, 견하도 조금 긴장했다.
“나한테 보낸 경고로 충분하니까, 양수영에겐 이런 식으로 경고를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수영이, 라고 말하지 않는 건, 굳이 그런 친밀한 호칭으로 견하에게 트집잡히고 싶지 않아서인 걸까.
아주 잠깐 침묵했다가, 견하는 끄덕였다.
“그러지.”
***
“병신들.”
신수덕은 편지를 구겨서 던져버렸다. 총독 관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후줄근한 개인실. 그의 비웃음 가득한 욕설을 들을 사람은 없다.
“숨어서 테러나 게릴라식 저항을 하든지, 아니면 해외로 나가서 때를 노리라고 했지, 언제 설익은 쿠데타를 꾸미라고 했나.”
뇌까린 후, 편지의 내용을 되새겨본다.
태사 미리안의 숙군에 불만을 품은 군부의 인사들과 접촉.
황제 왕서라의 귀국에 맞춰서 정변을 실행.
왕서라의 신병을 확보한 후, 미리안 주살 조칙을 날조.
내전을 재개한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군. 애초에 문하시중 각하께선 루우 테무르의 황통을 인정하지도 않으셨다. 각하를 역적으로 규정한 황제의 정통성을 인정할 셈인가? 그걸 어쩔 수 없는 타협이라 부를 셈인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신수덕에겐 고려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보다, 허동주의 복수가 먼저였다.
“황제라는 계집이 그냥 계집도 아니고 이단인데, 쓸려나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우리 측에 협력해준다는 보장은 없다. 승자가 된 황제를 어떻게 해볼 명분도 없다. 그러면 대중적인 지지도 얻을 수 없다.
상황도, 구도도 읽을 줄 모르는 건가? 이런 미련한 사람들로 무슨 일을 꾸민다는 건가?”
한숨을 내쉰다.
“힘을 아끼고 비축해야 할 상황인데, 쓸데없이 아까운 여력만 낭비하게 생겼군.”
걱정해야 할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편지의 말미엔 ‘총독 각하 만세!’라고 적혀 있었다.
“……내 이름이 태사의 귀에 들어가겠군.”
신수덕은 최대한 오래 숨어서, ‘혹시 신수덕이 탈출한 게 아니라, 이미 전사해버린 건 아닌가’라는 소문이 퍼지길 바랐다.
하지만 이 멍청이들은 신수덕의 이름을 앞세워서 정변을 일으킬 테고, 그 와중에 신수덕의 이름이 오르내릴 것이다.
정변은 실패로 끝날 게 뻔하다. 그렇다면 포로로 잡힌 사람들의 입에서 분명 신수덕의 이름이 나올 테고…… 이런 식으로 아즈텍에 망명한 신수덕의 행방도 나오겠지.
게다가 미리안 정권은 정변의 배후에 신수덕이 있다고 판단할 테니, 경계의 수위를 한층 높일 것이다.
“……암살 시도에 대비해야겠어.”
자신이 미리안이라면 반드시 암살자를 아즈텍에 보낼 것이다.
정변 진압, 그리고 신수덕의 목을 자르는 데 성공한다면 미리안 정권의 안정성은 한층 더 높아진다. 이때는 잔당조차 남지 않고 완전히 흩어진다.
게다가 신수덕은 정식으로 망명을 신청해서 아즈텍에 들어온 게 아니라, 행방을 감추기 위해 밀항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도 아즈텍 정부에 보호를 요청한 게 아니라, 민족 간 갈등을 부추기는 반정부 테러 집단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암살당해도 아즈텍은 항의 서한 하나 안 보낼 것이다.
“아니면, 암살자가 입국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아즈텍 상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