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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09화 (109/541)

숙군(2)

집무실로 돌아온 견하는 생각에 잠겼다.

정변이 실제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시나리오상의 대비는 분명히 해둬야 한다.

“루우가 정변 세력에게 붙잡힐 경우, 리안 누나의 말대로 루우는 그걸 뿌리치지 못해.”

효윤을 배치해서 대비를 해뒀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돌아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정말로 황제가 잡힌다면 효윤의 목숨도 위험하다. 효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루우와 리안의 대립은 타협 가능한 선을 넘게 된다.

“당장 황제를 폐위하거나 제정을 폐지하는 식으로 나가진 않겠지만…….”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가 아닐 수 없다.

리안이 실각하는 경우도 문제지만, 루우가 몰락하는 것도 문제다. 입헌군주제와 제국최고회의, 제국입헌당으로 이어지는 안정이 완전히 부서지게 된다.

“그러니까, 나도 이중 삼중으로 대비를 해둬야겠지.”

지나는 맡겨둔 일이 너무 많아 바쁘다. 이 이상 혹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리안에게 반대해 정변을 벌일 세력에 기꺼이 대립해 줄 수 있고, 입장 상 배신할 수 없는 사람을 고르자.

견하는 양수영을 호출했다.

수영은 이번엔 또 무슨, 같은 말을 얼굴로 하듯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집무실에 들어왔다.

견하는 그런 그녀의 표정은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황제가 돌아올 경로와 동명역 인근의 경호에 대해서 좀 알아봐 줘. 가능하면 그 경호에 소년감찰국이 개입할 수는 없는지도.”

수영은 견하의 의도를 조금은 알겠다는 듯한, 애매하게 찡그리는 표정을 지었다.

“황제를 꼭 확보해야 할 일이라도 생긴 거야?”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수준이야. 그래도 일어난다면 반드시 확보해야 해.”

“권한만 준다면 못할 일도 아니지. 하지만 기껏해야 중학생, 고등학생인 우리 소년감찰국 애들이, 훈련받은 성인인 군인들을 상대할 수는 없어.”

천손민족협회에 있던 사람들은 총질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그 외에는 그냥 제복을 입고 서 있는 것 정도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 싶으면 뺄 거야. 나도 기껏 모은 내 조직원들을 허무하게 잃고 싶진 않으니까. 너희는 그저…… 거기에 소년감찰국이 있었다, 라는 것만 보여주면 돼.”

견하의 눈이 수영을 똑바로 향했다.

“실제 전투는 나 혼자 맡아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그 자리엔 효윤이도 있을 거야.”

수영은 이해했다. 두 사람이라면 일반인 병사들은 얼마든지 상대하고도 남는다. 그러니까 소년감찰국 제복을 걸친 직원들을 노출시키는 건 일종의 ‘홍보’다.

우리의 영향력이 이 정도다, 하는 식의.

사람들 사이에서 소년감찰국이 영향력 있는 조직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면, 그런 인식 자체가 영향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여기에 제복은 엘리트 같은 느낌을 풍길 테고, 그런 느낌과 출세를 향한 욕망 때문에 소년감찰국에 채용되고자 하는 지원자들도 늘어나겠지.

“알겠어. 곧 알아보고 올게. 서류나 권한 문제만 해결해 줘.”

“그러지. 부탁할게.”

수영이 집무실을 나가자, 견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도, 같은 방법으로 조직 규모를 불릴 수 있을까?

배신자 집안이라 죽을 위기에 처한 아이들, 천손민족협회 출신이라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소년감찰국에 받아들였듯이, 숙청 위기에 처한 젊은 군인들을 받아들여 볼 수는 없을까?

곧 고개를 저었다.

위험성이 너무 크다. 전쟁범죄라는 구실로 숙청의 대상이 된 사람들을 함부로 구해줬다간, 어마어마한 오명을 뒤집어쓴다.

허동주와 미리안의 갈등은 권력 다툼이고, 따라서 말단들이야 항복하면 충분히 자비를 베풀 여지가 있지만, 이번 숙청은 아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엔, 견하의 조직은 상당히 커졌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보자.

견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밀고한 군인, 그중에서도 젊거나 어린 군인. 이들을 포섭하는 게 더 낫다. ‘고발’ 정신은 확실히 소년감찰국에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된다.

뒤를 밟아, 증거를 모으고, 마침내 적을 파멸시키는 활동.

종이 구석에 ‘소년감찰국’ 다섯 글자를 적어본다.

대학에 진학해 본 적이 없는 자라도, 나이가 적당하다면 소년감찰국 청년과에 배치해서 써먹어 볼 수 있다. 대학 내에 조직을 침투시키고, 확장하도록 한다.

안세규의 조직에 대항할 수 있는 규모만 되어도 정치적인 방향으로 확실히 도움이 되겠지.

견하는 ‘소년감찰국’의 앞 두 글자를 지웠다. 연령대가 확장되면 ‘소년’ 두 글자는 적절하지 않다.

감찰국.

간결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제홍 실장과 태사께 명칭 변경을 제안해보자.

***

내전이 끝난 후, 혁명군 사령부는 해산했고, 장병들은 각기 정상적인 편제로 재배치 되었다.

김천열은 황성방위군에서 요직을 맡게 됐고, 조유관과 구 극북방위군은 새로운 서부군의 중추가 되는 식이었다.

극북 지역의 방어를 맡을 새 극북방위군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좋은 대우를 받는 지원자들로 채워져 갈 것이다.

“세금 감면 혹은 면제, 주택 지급, 자녀뿐만 아니라 본인까지 교육 혜택을 준다더군. 군사대학 진학에도 가산점이 있고, 유학도 지원해주는 모양이야.”

전쟁성 장관 강태훈은 그렇게 말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혁명군 사령부에서 일하며 손발을 맞춘 게 인연이 되어, 김천열은 종종 이렇게 강태훈과 교류했다.

주점이 아니라 찻집을 찾은 건, 숙청의 칼바람이 부는 요즘 분위기상 조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유배지였던 극북인데, 이제는 고생은 좀 하더라도 엘리트 코스가 되겠군요.”

“엘리트 코스뿐이겠나. 요즘엔…… 피난처로도 쓰이지.”

김천열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번 숙군에 새로운 극북방위군은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즉, 감옥에 가는 대신 극북에서 조용히 지낸다면 죄를 묻지 않겠다는 이야기.

때문에 칼바람을 피하려고 극북으로 배치되길 원하는 장교들의 청원이 계속 이어졌다.

“옛 극북방위군, 아니, 지금의 서부군도 숙군에서 예외가 아닌 걸 봐선…… 꽤 광범위한 사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공이 크고, 지지하는 동지들도 많은 조유관은 아마 무사히 넘길 테지만, 미리안이 측근 몇 명 정도는 걸고넘어지는 듯하다.

“태사 각하께서 이걸로 뭘 원하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 발의 자체는 고려국민당 쪽에서 나왔지만, 태사 각하의 동의 없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테지.”

강태훈은 달착지근한 과자를 집어 씹는다. 입안에서 쌀과 물엿의 배합물이 부서지는 고소한 소리가 났다.

장성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다과를 먹는 광경은, 얼핏 보기엔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요즘 상황은 그런 달콤한 과자라도 먹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쓰디쓰다.

그리고, 술과 안주를 먹으며 호탕함을 드러내는 것보다 그냥 과자나 씹는 게 신상에 이롭다. 두 사람 모두 선대 미승휴의 통치를 거친 사람들이다. 뭘 조심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바싹 엎드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지요?”

“그렇겠지. 그래서 말인데, 김 장군.”

강태훈은 일단 김천열을 부르긴 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이는 눈치다.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장관님 이야기는 저만 들어두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함부로 발설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김천열이 조심한다고 해서 다른 ‘듣는 귀’가 없다곤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김천열과 강태훈이 같은 운명을 질 수는 있다.

김천열의 말을 통해 결심을 세웠는지, 강태훈이 말을 이었다.

“이번 숙군에는 정말로 약탈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자도 포함되겠지만,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지 않은 자, 허동주나 신수덕 측 장교들과 가까웠던 자들이 우선 숙청 명단에 올라가는 듯하네.”

김천열 입장에서는 조금 안심이 되는 소식이다. 김천열이 참가한 삼한반도 전선에서는 반란군이 먼저 민간인 학살 등을 저질러놓는 바람에, 충격을 받은 장병들이 그 수습에 뛰어드느라 민간에 별다른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

게다가 김천열이 속한 파벌도 허동주 계열과는 거리가 있는 파벌인 데다, 김천열 자신이 친위 혁명이 일어나던 날부터 태사 측에 가담한 일등 공신이다.

물론 그게 그의 동료나 선배, 후배들의 경력이 끝장나는 걸 막아주진 못한다. 폭력이 가해지진 않았지만, 군복을 벗으라는 압박도 잔혹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실제 범죄를 저지른 병사나, 그들을 방조한 부사관, 혹은 위관급 장교들에겐 폭력이 행사된 모양이다.

“즉결 처형 이야기까지 돌고 있네. 괴담에 가까워서 사실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쟁성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언하지 못해.”

“장관님도 확인하기 어려우시다뇨?”

강태훈이 확인하기 어렵다면, 그건 중간에 다른 누군가가, 명령 체계를 끊어가면서 개입했다는 이야기.

“출세를 원하는 몇몇 장교들이 있네. 특히 배영훈 소령이라든가, 첩보 쪽 인간들. 나제홍이도 끼어든 듯하고. 아니, 나제홍이는 뒤에서 그 사내애의 조종을 받고 있지.”

사내애…… 주견하 대령. 허동주를 참살한 뛰어난 이단이기도 하다. 구 야별초를 작살낸 것도 그 아이였다지. 활약은 전해 들었다.

그 정도로 호전적인 아이가 이런 민감한 사태에 끼어드는 건,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다.

“주견하는 태사 각하의 최측근이니, 결국 태사 각하의 의지야, 이 모든 건.”

“태사 각하께서 숙청 명단을 정한 데에는 확실한 계획이 있다, 그런 말씀입니까?”

“그렇네. 문제는 우리뿐만 아니라, 엉뚱한 자들도 그 의도를 읽어내려 한다는 거지. 더 큰 문제는 그 의도에 자기네들 나름대로 대응해보려 한다는 데 있어.”

대응.

의미심장한 말이다. 김천열은 잠시 침묵하기로 한다.

“허동주나 신수덕 계열과 조금이라도 교류가 있었던 사람들은 다 조사 대상이 될 거야. 그중에서 전투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였던 사람들은 충성을 시험받겠지. 그러다가 더 깊은 친분이 확인되기라도 하면…… 끝이고.”

“내전은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죠. 반란군 측 장교들과 교류가 아예 없는 자는……”

“없지.”

강태훈은 그렇게 말을 끊으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김천열은 강태훈의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한다. 엉뚱한 자들이 태사의 의도를 읽고 대응하려 한다. 그 말은 곧…….

“숙군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 자들이, 일을 꾸미는 겁니까?”

“우리 같은 상식인들은 또다시 내전이 벌어지면 나라가 망할 것을 걱정하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네. 또 다른 정변을 일으키는 것도, 자기가 제2의 미리안이 되는 것도 다 가능하다고 보는 인간들이 있어. 그리고 그런 인간들에게……”

강태훈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허동주, 신수덕의 잔당이 접촉하는 정황이 포착됐네.”

김천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이 됐다.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 해도 상식적으로 할 수 있는 판단인가, 그게?

그런데…… 아까 분명 전쟁성 쪽의 정보 능력이 태사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소문이 강태훈의 입에서 나온다는 건…….

“이미 태사부에서는 파악을 끝낸 것 같더군.”

전쟁성 장관은 다시, 차를 마신다.

“태사께선 오히려 미끼를 풀고, 저들이 음지에서 기어 나오길 기다리시는 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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