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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07화 (107/541)

대공황(7)

안세규의 표정에 의심과 흥미가 뒤섞인다.

“아직은 ‘색깔’이 없는 도시, 라.”

그럴싸하다며 끄덕이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저 납득하기엔 의문이 많다.

“카라코룸으로 천도한다는 정보를 나에게 미리 알려주면, 나는 거기에 대비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지. 하지만 주 국장, 자네나 태사 각하는 어떤가? 제국입헌당의 기반이 확고한 동명을 떠난다는 건, 상당한 손해 아닌가?”

오랜 시간 불법 단체로 탄압당해 온 고려국민당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제국입헌당에는 아니다.

“저희도 고려국민당처럼 카라코룸에 저희의 색깔을 입힐 기회가 주어지겠죠. 새로운 무대에서,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하게 될 겁니다.”

“그 정도 이익이, 이미 동명에서 다진 기반을 포기할만한 이유가 되진 않으리라고 보네. 자네 제안은 우리가 듣기엔 아주 좋은 말이지만, 자네 쪽이 거둘 이익이 확실치 않다는 점에서 의심스러운 말이기도 하지. 그저 달콤한 말로 날 설득할 셈인가?”

견하는 고개를 저었다.

“전제 자체를 오해하셨군요. 저는 ‘제국입헌당’의 이득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태사 각하의 이익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당과는 분리된, 태사 개인의 이익이라는 말인가?”

“장관님께서도 한 번 해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랬다. 소년감찰국의 힘을 빌려, 고려국민당 내에서 제3제국 체제를 부정하며 안세규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자들을 쳐냈다.

주견하는, 그와 비슷한 일을 하겠다는 뜻인가?

“이대로 있으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황제는 제국입헌당과 타협…… 아니 영합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 들 겁니다. 이건 장관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고, 태사께도 좋지 않습니다. 제국입헌당 전체로 따지면 확실히 이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역시, 전에 느꼈던 대로 이 주견하라는 소년은 똑똑하다. 슬며시 미소가 떠오르려는 걸 누르며, 세규는 일부러 답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소년에게 묻는다.

“왜 태사께 좋지 않은지, 한 번 설명해보게.”

“황제 폐하 같은 권위와 위상을 지닌 분이…… 지나치게 당과 밀접해지려 하시면, 그 당은 폐하의 당이 되려 할 겁니다.”

우두머리를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태사 미리안에서, 황제 루우로.

“제국입헌당 자체는 폐하의 권위를 통해 가장 강력한 정당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주도권 다툼이 일어날 겁니다. 폐하와 태사 사이에. 그리고 이 다툼은……”

“태사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겠지.”

“그렇습니다.”

미리안이 역적이 되기로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어쨌든 군주 대 신하의 싸움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그 권위를 이길 수 없다.

두 사람이 대립만 해도, 미리안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안세규가 전에도 우려한 적 있는, 황제의 전제군주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겠지.

사적으로야 견하는 리안도, 루우도 모두 친하지만, 그런 순간이 오면 미리안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애초에 그런 상황이 되지 않게 하려면, 황제가 ‘자신의 당’을 가지려는 시도를 봉쇄해야 한다.

“황제를 제국입헌당에서 떼어놓는다. 그러기 위해 카라코룸으로 천도해, 권력의 판도 자체를 다시 짠다. 주 국장의 생각은 이해했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군. 자네가 우려하는 일은, 수년, 혹은 수십 년 뒤 카라코룸에서도 또 일어날 수 있네. 단순히 시간 끌기 아닌가?”

“옳은 말씀이십니다. 시간 끌기죠. 하지만 그렇게 끈 시간 동안 다음 대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안세규의 눈에서 의심은 상당히 걷혔다. 이제는 흥미가 가득하다. 계속 이야기해보라는 눈빛을 보낸다.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에도 있는 ‘연방의회’를 이용하는 겁니다. 연방의회의 규모와 권한을 대폭 확대하면서, 동시에 황제를 법 아래의 존재로 묶어두는 거죠.”

제국최고회의도 이전 시대에 비하면 상당한 진전이지만, 황제와는 추대-승인의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그 한계가 명백했다.

하지만 「계획」의 연방의회라면, 제국최고회의라는 중간단계에서 더 나아가, 황제권과 완전히 분리된 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

견하의 말대로 황제의 권력을 법 아래에 눌러두는 것도 가능하고, 세규가 꿈꾸는 공화국의 이상도 노려볼만하다.

“주 국장의 입장은 충분히 알겠네. 그러면, 우리는 제국최고회의에서 움직여보도록 하지. 정확한 숙군 범위에 대한 정보를 부탁하네.”

***

안세규는 약간의 피곤함과 만족감을 안고, 구 야별초 건물, 지금은 정치경찰실이 된 곳을 나섰다.

“주견하가 모든 걸 말하진 않았겠지.”

감추고 있는 게 분명 한 두 개쯤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얻은 정보로도 충분했다. 주견하가 당장 이빨을 드러낼 일은 없고, 고려국민당은 느긋하게 대처하면 된다.

그보다는, 당장 눈앞에 다가온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자.

숙군(肅軍).

즉, 군의…… 숙청.

이단 관련 기술 문제부터 시작해서, 내전에서 지지부진한 움직임까지, 군에 대한 태사 미리안의 불만은 꽤 컸던 모양이다.

그래도 미리안이 정면에서 숙군에 착수하면, 군도 저항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전 중 저지른 전쟁범죄 조사라는 구실을 붙여서 숙청해야 한다.

실제로 이 숙청은 미리안 정권이 안게 될 부담을 줄여줄 것이다. 어쨌든 미리안은 자기 편의 치부를 눈감아주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그 전쟁범죄 조사를 고려국민당의 이름으로 제안해야 한다, 라.

고려국민당도 이건 부담스럽기 때문에, 미리 숙청의 범위에 대해 주견하와 협상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고려국민당을 지지하는 부대, 즉 구 극북 방위군의 피해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비할 수 있다.

정국 불안정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그렇게 우려를 표했지만, 주견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에 쿠아우테목에서 일어난 테러, 그리고 경제 대공황의 파도가 밀려오면, 그쪽이 더 불안해질 겁니다. 그 전에 군의 기강을 잡아둬야겠죠.”

그리고 아마, 그런 숙청을 통해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 국민들의 이목도 끌 생각이겠지.

주견하나 미리안은, 최소 수천 명, 정도의 희생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미리안의 생각이긴 할까? 주견하만의 생각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주견하는, ‘저희’가 카라코룸에서 기회를 잡는다고 말했었다.

저희? 저희…… ‘저희’의 범위가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무심코 그것이 태사 미리안을 중심으로 한 파벌이나, 제국입헌당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의심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 ‘저희’라는 말…….”

만약, 주견하 본인을 중심으로 한 소년감찰국을 말하는 것이라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혹시 카라코룸을, 소년감찰국 단독으로, 수중에 넣을 생각일까? 그러면 그 소년은 언젠가, 미리안에게서 독립해서 태사부와 대립할 속셈일까?

그렇다면 황제도, 태사도 모두 물리치고, 제국입헌당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할 마음을 품은 건, 정작 주견하가 아닌가?

“지나친 생각이군.”

성장도 빠르고, 총명한 소년이긴 해도,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다. 내년에는 3학년이 되겠지. 대학물도 먹지 못했고, 사회를 경험해 본 것도 아니다.

안세규는, 딱히 주견하를 얕보진 않는다. 그는 상식선에서, 정확하게 주견하의 성장을 계산했다.

문제는 그 상식선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

주견하에겐 부모님의 처참한 죽음과, 내전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요소가, 성장을 촉진하고 있음을 계산에 넣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주견하를 얕봤다기보다는, 자신을 지나치게 믿었다.

그래서 안세규는 떠오른 생각을 치워버리고, 다시 당장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

타카마가하라 시의 어느 뒷골목, 어느 건물의 지하에는, 비밀 조직의 지부가 있다.

이름은 있었지만, 조직 자체가 대놓고 드러낼 만한 것이 아니어서, 실상 이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시는 오래전, 몽골의 탄압에서 벗어나 태평양 무역에 뛰어들었던 바닷사람들의 정착지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 일본계 상인들은, 신대륙에 발을 딛고 그 경관에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자신들의 신화에 나오는 신성한 장소의 이름을 붙였다.

그런 만큼 타카마가하라는 일본 색이 강한 도시였지만, 어디까지나 빛 아래 드러난 거리의 이야기다.

뒷골목은 사정이 달랐다. 어둡고, 뜨내기들이 뒤섞이는 바람에 문화적 정체성도 확실하지 않다. 바람을 막을 벽과 비를 막을 지붕에는, 딱히 어떤 문화의 정체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성과는 확실합니다. 경제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고, 혼란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겠죠. 그걸 수습할 인간들은 죽었으니까.”

그곳에 스며든 비밀 조직의 누군가가 말했다. 그가 말하는 ‘성과’란, 그들이 얼마 전에 저지른 일의 결과다.

그랬다. 이 조직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들이 저지른 행동은 중요했다.

“연방 정부는 테러의 배후를 캐내려 혈안이 됐지만, 찾아낼 수 없을 겁니다. 의거를 실행한 우리 동지는 용감하게 자결을 택했으니까요.”

다른 누군가가 말한다. 방 안의 모두가 결의를 다지듯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도 그 동지를 본받아야 합니다. 아니, 본받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 동지의 장렬한 최후가 헛되지 않도록, 다음 계획을 차근차근 이어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아즈텍 대륙 선주민들의 ‘민족혁명’이라는 과업을 이룰 수 있도록.”

“유럽계 민족들에게 우리 민족들의 이권을 빼앗겨선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과거 ‘식민지’를 건설하며 침략해왔고, 패배하여 복속된 자들에게 우리의 확실한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이런 모순을, 더는 참아선 안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조직이 방황하고 있을 때, 귀한 조언을 해주신 손님이 있었습니다. 신수덕 씨, 일어나주십시오. 당신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신수덕은 일어났다. 그 날카로운 눈에 웃음 비슷한 것을 만들며, 겸손한 태도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들였다.

에스파냐령 마카오에서 출발한 신수덕 잔당은, 둘로 나뉘어, 하나는 서쪽으로, 다른 하나는 동쪽으로 향했다. 신수덕은 동쪽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고, 이렇게 타카마가하라에 왔다.

그리고 쿠아우테목 테러에 대한 조언을, 이 조직에 해주었다.

“저는 그저 패배한 군인, 망명객일 뿐입니다. 그런 저를 이렇게 대우해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혀로 살짝 입술을 적시고, 말을 잇는다.

“하지만 저는 패배한 만큼, 무엇을 하면 ‘패배하는가’, 그것 하나만큼은 여러분께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승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패배하지 않는 법, 우월한 상대를 끝까지 괴롭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문가라 할 수 있습니다.”

우호적인 웃음이 방안을 휘감는다.

“신수덕 씨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적절한 조언 덕분에, 우리는 실로 정확한 시점에 일을 벌이고, 그 효과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본부에서도 덕분에 조직의 규모와 영향력을 크게 키울 수 있었다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신수덕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자, 그러면 저는 이제 ‘민족혁명’에서 기존 정부를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손으로, 순결한 민족국가를 건설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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