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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05화 (105/541)

대공황(5)

머리가 좀 돌아가는 이라면, 경제와 정치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분야임은 잘 알 것이다.

순전한 정치 문제라는 게 없듯, 순전한 경제 문제라는 것도 없다.

앞에는 경제라는 얼굴을 앞세워도, 뒤로는 정치적 의도를 품고 있다.

울제이는 지금 관세동맹 문제가 바로 그런 것이라 여겼다.

“키타이의 주력 산업은 기껏해야 농업뿐입니다. 그런데 그 농산물의 국제 가격이 어떻게 됐는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겠죠.”

“몽골의 식량 자급률은 말할 것도 없고, 내전을 겪고 난 고려에도 싼값에 식량을 수출할 기회 아니냐.”

“식량만 생각해보면 그렇죠. 하지만 곡물 생산량은 낭키아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관세는 양방향으로 작용하는 겁니다, 형님. 우리는 수출 문제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수입 문제도 생각해야죠.”

다른 산업도 충분히 발달한 고려, 몽골, 낭키아스의 상품이 별다른 가격 제한 없이 무분별하게 수입된다면, 키타이의 경제에는 좋지 않다.

무역 수지 흑자가 반드시 좋은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계획에 없는 적자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게다가…….”

경제 이야기를 한 뒤, 울제이는 비로소 본론을 배치했다.

그 덩치와 인상 때문에 간과하기 쉽지만, 울제이 역시 형들만큼 계산에 철저한 남자다.

“형님께서 말씀하신 아즈텍 연방의 정치적 불안정, 그리고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씀은 얼핏 듣기엔 옳은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저는 선뜻 관세동맹에 참여하긴 어렵습니다.”

시레문은 울제이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관세동맹을 맺으면 몽골, 고려, 키타이, 낭키아스 4국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더 굳건하게 묶일 겁니다. 말하자면 경제적으로 통합되는 셈이지요.

그런데 형님,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의 경제적 통합이, 정치적 통합의 밑거름이라는 건, 고등학교만 나와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시레문은 계속 침묵을 지켰다. 울제이의 눈이 번뜩인다.

“누구를 위한 경제적 통합입니까. 형님에겐 4국의 정치적 통합 의도가 전혀 없다고, 자신하실 수 있으십니까?”

“울제이.”

“4국 중 누군가는 통합을 주도하고 우두머리 자리를 가져갑니다. 그건 아마 이번 관세동맹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쪽이겠죠. 경제 규모도 그만큼 튼튼할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 4국의 수장들 중, 형님과 루우 테무르, 두 사람만 부녀 관계 아닙니까.”

“……내가 루우 테무르에게 카간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이 관세동맹을 들고 나왔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냐?”

“아닙니까?”

시레문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후계자 논의는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그건 형님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루우 테무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해 왔습니다.”

만약 보르지긴 황족들이 전부 칸발리크의 궁정에 머무르고 있었다면, 이런 갈등은 전통이나 옛 법에 따라 처리됐을 것이다.

하지만 루우가 고려의 황제가 되고, 울제이와 게레센제가 각각 키타이와 낭키아스의 칸이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계승권 문제는 국가 간의 일이 됐다.

“형제끼리 나누기엔 지나치게 날이 선 말이구나.”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건 국가 간 일입니다. 저는 제 ‘조국’인 키타이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 간의 문제라는 말은, 결국 몽골 황위 계승권은 각국이 국력을 겨루는 사인이라는 뜻이다.

루우 테무르가 궁정의 공주님이라면 모를까, 세계 5위의 경제 강국 고려의 황제가 된 이상, 견제할 수밖에 없다.

노골적으로 딸의 편을 들겠다면 더더욱.

“게레센제 형이 신수덕과 내통한 혐의를 덮겠다면, 저는 키타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자로서, 낭키아스와의 단교도 생각해야 합니다.”

“울제이,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냐.”

국제 사회에서는 각각 국가 대우를 받고 있지만, 몽골의 법으로 키타이아 낭키아스는 일종의 ‘자치령’이다. 더 직접 말하자면 식민지라 할 수 있고, 울제이와 게레센제, 두 칸은 ‘총독’인 셈이다.

물론 키타이와 낭키아스 모두 군사력 행사나 외교권을 인정받고 있으므로, 단순히 식민지라고 말하긴 어렵고, 깊이 들어가면 꽤 복잡하다. 어쨌든 몽골의 법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충분히 알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키타이가 낭키아스와 단교하겠다는 건, 몽골과 키타이 사이의 현 법적 관계도 부정하겠다는 뜻.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관세동맹만을 강요하시겠다면, 저는 키타이 제국을 선언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겠습니다.”

시레문은 손바닥을 이마에 갖다 댔다. 이대로 대화를 계속했다간 싸움만 날 것이다.

“오늘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자, 울제이. 너도 머리를 좀 식히고, 나도 네가 만족할만한 방안을 찾아봐야겠구나.”

***

게레센제는 신수덕 문제를 불문에 부치는 것으로 관세동맹에 동의했기 때문에, 문제의 초점은 울제이에게 옮겨갔다.

“아즈텍 등 국제 정세 문제나, 경제 문제만으로 울제이를 설득하긴 어려울 것 같구나.”

시레문도 ‘파멸인류’ 문제로 고려와 원활히 협력하기 위해 관세동맹에 찬성 의사를 표했지만, 그의 찬성이 오히려 울제이를 자극한 듯하다.

“게다가 울제이는, 네가 게레센제를 설득한 앞뒤 정황도 의심할 수 있어.”

예를 들자면, 신수덕 일을 덮는 대가로 황위 계승에서 고려의 우위를 인정한다거나.

루우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시레문은 그런 딸의 모습을 바라본다.

갓난아기 공주일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저렇게 늘씬한 소녀가 되어서, 이웃 나라인 고려의 황제로, 아버지와 대등한 자리에서 마주보고 있다.

잘 컸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의문을 헤매는 사이, 루우가 입을 열었다.

“울제이 숙부를 달래겠다고 게레센제 숙부에게 약속한 일을 되물릴 수는 없어요. 그러면 울제이 숙부를 설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게레센제 숙부가 다시 돌아서겠죠.”

울제이의 키타이를 내버려 두고 나머지 3국이 관세동맹을 먼저 맺는다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울제이는 자신이 선언한 대로 황제 즉위를 선포하고 독립 제국의 길을 걸어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 4국 외교는 망가진다.

4국 외교의 균형은, 전쟁 범죄 민족인 한족을 억제하고, 한족의 독립국가 건설을 영구히 저지한다는 목적으로 설계됐다.

키타이가 여기서 떨어져 나가면, 한족 억제 전략은 무너진다.

울제이가 키타이를 한족 독립국이되 국가원수만 몽골인인 식으로 타협을 본다면, 몽골 남부, 산동, 낭키아스 뿐만 아니라, 탕구트, 대예, 보우슈엥의 한족 지배도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키타이는 이 관세동맹에 필요해요.”

키타이는 북쪽의 몽골과 고려, 그리고 남쪽의 낭키아스를 잇는, 이른바 ‘화북’ 지역에 있다.

관세동맹이 제대로 된 효과를 보려면 북쪽과 남쪽이 육로로 이어져, 자유롭고 활발한 물자 유통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런데 키타이가 여기에 어깃장을 놓는다면, 관세동맹의 효과도 그만큼 줄어든다.

게다가 루우가 고려에서 비밀리에 추진하는,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에도 키타이는 필요하다.

시레문은 수염을 쓸고, 대답했다.

“신수덕에 관해서 양보를 얻어낼 만큼, 큰 이득을 안겨줄 제안을 해야겠지.”

“저는, 이미 울제이 숙부의 말에 요구사항이 들어 있다고 봐요.”

시레문은 슬며시 미소를 띄웠다. 어쨌든 딸의 총명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네. 경제 문제이자, 정치 문제이기도 하다고 했다면, 울제이 숙부는 경제적 이득과 정치적 이득 둘 다 요구하고 있는 거죠.”

취약한 산업 기반을 언급했다면, 이에 대한 지원을 바라는 것이다.

“관세동맹에 예외 조항을 둬서, 몽골이나 고려가 키타이의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수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보면 어떨까요.”

“좋은 방법이구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거다.”

“이제 막 내륙국 신세를 벗어난 키타이에겐 다른 무엇보다도 바다에 관한 문제가 아쉬울 거예요.

산동 식민지에서 할양해준 해안 영토에 해군기지, 무역항 등의 건설을 지원하고…… 더 나아가 해군 창설에도 도움을 주는 등의 혜택을 제공해야겠죠.

키타이가 경공업, 중공업을 증강하는 데에서도 협력해 줘야겠고.”

이쯤 되면 상당한 특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울제이가 원하는 또 다른 분야, 정치적 이득에 관한 목마름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루우는 잠깐 망설인다. 하얀 목이 침을 삼키는지 살짝 떨린다. 그만큼 소녀는 긴장하고 있었다.

“저도 답을 듣고 싶어요, 아버지.”

“……계승 문제, 말이냐.”

“네. 아버지의 속내가 뭔지. 정말로 남성 상속을 우선해서 숙부 중 한 명에게 카간 자리를 줄 건지, 아니면,”

딸을 더 생각할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아버지는 막내아들이라도 낳아 볼 생각이신 건지.”

소녀의 눈이 금빛으로 빛난다.

이단이 아닌 시레문은 그 눈빛을 볼 때마다 마음이 어지러웠다.

보르지긴 가문 사람 중에는 종종 이단이 나타난다고는 하지만, 어떤 우연이 작용한 건지, 시레문 세대에는 이단이 없었다. 울제이와 게레센제도 모두 이단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다음 세대 중, 살아있는 보르지긴 가문 사람 중 유일한 이단이 태어났다.

바로 보르지긴 루우 테무르, 고려 이름 왕서라.

그녀의 막대한 힘과 뛰어난 재능만 생각한다면, 성별에 구애되지 않고 곧바로 그녀를 후계자로 지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물론 동생들도 있었지만,

시레문 자신이 루우에게 저지른 ‘죄’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대답을 하면 정말 못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직 나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단다. 조금 더 기다려줄 순 없겠니.”

루우는 한숨을 내쉰다. 자세를 흐트러트리고 두 손으로 뒷머리를 받친다. 그제야 그 또래 말괄량이 소녀 같은 모습이 된다.

“저야 상관없어요. 인내심이 바닥나면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힘으로 도전할 테니까. 하지만 울제이 숙부는 그런 말씀에 납득하지 않을 거예요. 더 구체적인 대답을 내놓으셔야 해요.”

시레문은 끄덕였다.

“카간 계승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것보다, 에둘러 선언하는 게 어떨까 싶구나. 이를테면 4개국 간에는 영구히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4개국의 독립적 주권은 영구히 보장된다.”

“울제이 숙부의 두려움에는, 카간 계승을 빼앗기는 것도 있지만, 카간이 된 경쟁자에게 종속되는 것도 있으니까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버지, 그래도 언젠가는 울제이 숙부든 게레센제 숙부든 인내심이 다 할 거예요.”

“후계자 문제를 성급히 확정 짓는 건 카간의 권위와 권력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그렇게 경고해야지.

짐에게도 양보 못 할 선이 있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아마 두 사람도 그 정도 선에서 물러날 거다. 네 말대로 ‘시간 끌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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