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4)
세계 경제의 책임자들이자 석학들이었던 사람들의 죽음.
쿠아우테목의 중앙은행장이며 재무장관이며, 그리고 그들을 보좌하기 위해 보냈던 전문가들이 폭탄 하나에 죽거나, 혹은 사경을 헤맨다.
당연히 각국의 재무성 등 경제 관련 기관의 기능은 마비.
급히 차관급 인사나, 대학의 경제학 교수들로 자리를 메워보려 하지만, 혼란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전임자가 물러날 때는, 일정한 업무 인계 과정을 거쳐서, 후임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게 한다.
그러면 문제가 생겨도, 전임자가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후임자를 보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폭탄 테러는 그 모든 시스템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 인계도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테러 전후의 상황 파악도 늦어지고 있다.
“단순히 경제 문제로 끝날 일이 아니야.”
리안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피로가 그녀의 눈가에 검은 물을 들였다.
“물론 경제 문제가 아닌 것도 아니지. 테러로 주가 폭락이나 무역 등 문제에 대응할 전문가들이 죽은 데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경제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높아지고 있어. 그 불안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태사 미리안은 기자들을 불러 거짓말이라도 해야 했다. 정부는 이 사태에 냉정하게 대처하고 있으며, 재무성의 업무에 혼란은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그런 말이 여준설 장관을 되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투자는 더욱 위축된다. 즉, 시장에 돈이 풀리지 않는다. 주가 폭락이 멈추지 않는다. 은행들의 불안 때문에 대출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기업도 신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물건이 안 팔린다. 이대로라면 대량 해고 사태는 예정된 일이다. 그러면 그다음엔 수요가 줄고, 그럼 기업은 더 허리띠를 조이고…….
악순환이다.
카라코룸에서 연락을 받고 급히 돌아온 견하는, 유지나까지 데리고 태사부에 들어왔다. 유지나에게도 지금 대화를 듣게 할 필요가 있었다.
소년감찰국, 더 나아가 정치경찰실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시국이었으니까.
“저희는, 이번 테러에 호응한 움직임이 국내에서 일어나진 않는지, 감시망을 펼치도록 할게요.”
리안은 담담한 견하의 말에,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귀국하자마자.”
“저는 괜찮아요. 다만 황제는, 저렇게 몽골에 둬도 괜찮은 걸까요?”
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대로라면 쿠아우테목에서 각국이 대책을 합의하고, 그 결과에 따라 칸발리크에서 4개국 관세동맹 논의가 진전을 볼 예정이었지. 재무성와 외무성이 실무 회담에 나서고.
하지만 이번 테러로 재무성의 기능이 상당히 손상됐기 때문에, 일단은 황제가 몽골에서 계속 다른 3국을 설득하는 일을 맡아줘야 해.”
하지만 안세규가 얼마나 이 일에 협조적으로 나올지는 미지수다.
안세규는 황제의 계획에 협력하겠다고는 했지만. 속내는 아마 다를 것이다. 루우의 영향력이 다른 나라까지 퍼지는 걸 별로 반기지 않을 테니까.
“안세규 역시, 다소는 감시할 필요가 있겠죠.”
“모든 방향을 부지런히 감시해야 해. 견하 네가 말하는 바를 모르는 건 아니야. 안세규가 자기 휘하의 청년 조직을 움직여서 혼란을 가중하려 들 수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건 다른 정당도 마찬가지야. 아즈텍에서의 테러는 아직 배후가 밝혀지지 않았으니, 어떤 방향을 특정 짓고 다른 곳에 소홀해선 곤란해.”
그리고…… 리안은 말을 삼킨다.
견하의 부모님을 죽인 암살자들. 그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견하가 이성을 잃고…… 복수를 하겠다고 엉뚱한 곳을 찌르는 일은 막아야 한다. 물론, 범인이 확실해진다면 그의 복수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지만.
그러니 일단 제대로 된 방침을 주자.
“감시는 하되 직접 행동에 나서는 건 삼가도록. 소년감찰국의 조직 규모로는 전국에 감시망을 펼치기는커녕, 동명만 감시하는 것도 무리야. 일단은 군 내부의 정보당국과 협력해서 일하는 요령을 배우도록 해.”
“알겠어요.”
소년의 그런 대답을 들으며 리안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리안 못지않게 피곤한 얼굴이지만, 또 그런 수척함이 조금 매력적이다.
여자친구로서 어울리는 말을 들려줄까 하는 생각을 조금 해본다.
견하의 뒤쪽에서 유지나가 눈치를 보고 있다.
“흠, 좋아. 일단은 이 정도로 방침을 정하고, 제국최고회의에서도 논의를 좀 해봐야겠어. 황제와의 연락도 끊기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겠고.
무엇보다도 테러가 일어난 당사국인 아즈텍의 동향도 신경 써야겠지.”
그렇게 얼버무리듯 말하며 리안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곤 걸어 나와 견하의 어깨를 두드렸다.
손이라도 잡고 싶지만, 지금은 자제하자.
***
황궁 밖으로 나서는 소년의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진다. 11월 중순에 접어드니 날씨도 꽤 추워졌다.
군모에 코트를 걸친 모습이, 이제는 제법 군인다운 태가 났다. 까다롭고 냉혹한 장교 같은 인상이다.
지나는, 그런 견하의 옆모습이 조금 멋있다고 생각했다. 소년이 쑥쑥 성장해서 남자가 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고나 할까.
소년은 잠깐 멈춰서,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한 하늘을 보다가, 말했다.
“가자.”
두 사람은 대기 중이던 차에 올랐다.
곧바로 지나의 보고가 이어졌다. 견하를 잘 보좌하려면, 계속 머리를 굴리고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그런 의무감이 지나의 등을 밀고 있었다.
“한재연과 양수영,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한 모양이에요.”
“……위기 상황에 몰리면서 서로 의지하게 된 건가?”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내전 전부터 양수영 쪽에서 호감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견하는 잠깐 말이 없었다. 지나가 전한 사실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계산해보는 듯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한재연은 요즘 정서가 불안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안정시켜줄 요인이 있다면, 조금 마음을 놓아도 되겠어.”
루우가 한재연을 관찰한 후 들려주는 이야기나, 지나의 보고를 통해서, 견하는 그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다.
신념이 무너지는 데서 오는 좌절감.
자신의 신념이 권력 다툼의 수단에 불과했다는 충격.
나름 멋지게 세웠던 이론이 한순간에 애들 놀이가 되어버렸다는 한심함.
재연이 그런 것들에 짓눌려 무너진다면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카라코룸 답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 생각보다 멀쩡하다.
그래, 양수영이 버팀목이 되고 있었나.
견하의 감상에 지나는 의견을 덧붙였다.
“하지만 저는 조금 경계할 필요도 있다고 봐요. 소년감찰국 내에서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이 이런 식으로 단합하다 보면……”
“일종의 ‘파벌’이 생기는 건 아닐까, 그게 걱정된다는 거지?”
“네.”
지나의 걱정은 일리가 있었다. 소년감찰국은 견하의 조직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재연이 양수영을 앞세워 천손민족협회 출신들로 파벌을 만들려 한다면, 조직은 갈등하다 둘로 쪼개질 수 있다.
지금이야 루우나 리안 모두 재연을 마땅찮아라 했지만, 재연은 이미 루우의 이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만약 재연이 루우의 ‘필요’를 충족해 어떤 자리를 얻어낸다면? 그래서 소년감찰국을 나눠서 한재연 역시 어떤 ‘국장’이 된다면?
별로 좋지 않다. 견하의 계획은 그런 게 아니다. 그 전에 견제하긴 해야 한다.
“발상을 좀 바꿔보자.”
“어떻게요?”
“두 사람의 유대가 튼튼해졌다는 건, 동시에 서로 약점이 됐다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일단 너는 양수영하고 최대한 친밀하게 지내면서 포섭하는 한편으로, 넌지시, 한재연을 인질로 삼을 수 있음을 내비쳐야해. 나는 반대로 양수영을 인질 삼을 수 있다는 걸 재연이한테 보여줘야겠고.”
지나는 씩 웃었다.
“선배 약점이 태사 각하인 것처럼요?”
견하도 피식 웃었다. 이 귀여운 후배의 머리를 쓰다듬어줄까, 아니면 꿀밤을 먹일까 살짝 고민하면서.
그 생각은 넘겨버리고, 대신 다른 대책들을 늘어놓기로 한다.
“오늘 태사께 들은 말 생각나지? 지금 조직 규모로는 전국은커녕 동명시 하나도 제대로 감당 못 한다는 거.”
“네. 덩치를 불려 나가곤 있지만, 아무래도 고등학생이 수장인 조직은 한계가 있죠.”
지나의 말은 아프지만 사실이다. 대령 계급에, 태사의 신임, 거기서 주어지는 막대한 권한으로도 겨우 이 정도까지다.
“시간을 좀 더 들여야 하는 일이겠지만, 이번 기회에 국내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규모를 좀 확장해볼까 해. 신수덕이 잡히지 않은 지금, 천손민족협회 잔당을 색출한다는 구실 정도면 충분하겠지.”
천손민족협회 출신 소년감찰국 직원이, 천손민족협회 잔당을 색출한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면 천손민족협회 출신자들은 자신의 출신을 내세우길 꺼리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함께 뭉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기존 인원들이 제국입헌당 당원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이런 식으로 ‘소년감찰국’의 구성원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할 필요가 있어.”
더 나아가 ‘정치경찰실’ 구성원으로서의 정체감도 느껴야겠지.
“규모를 확장하시려면, 새로운 인원을 들여야 하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생각해두신 게 있으신가요?”
“내전이 끝났으니 곧 전역자가 쏟아질 거야. 그중에 대학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을 조사하고, 또 그중에서도 우리와 성향이 맞는 사람들을 선별해서, 청년과를 맡길 생각이야.”
“하긴 지금까진, 안세규 장관의 청년 조직에 비해 열세였죠.”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시간이 너무 걸려. 조급한 결정일지 모르지만, 우리도 대학에 조직을 확장해서 저들에 맞서야 해.”
안세규는 그런 조직을 활용하고 확장한 지 오래다. 내버려 두면 다음 선거와 정권 유지에 악영향을 초래한다.
“그간 ‘숙군’ 명단을 뽑을 겸 조사해 둔 게 있으니까. 한 번 작업해보자고.”
지나는 살짝 한숨을 내쉰다. 역시, 이 사람과 함께라면 또 일이 밀려오는구나.
함께 밤새워 일하다 보면 즐겁기도 하지만, 그래도 휴가를 다녀온 국장께서 부하도 조금은 배려해줬으면 좋겠다.
“이번 일 끝나면 지나도 휴가 한 번 다녀와. 내가 수도에 있으면 불안 요소들은 직접 통제할 수 있으니까.”
지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빈틈이 없는 사람이다, 정말.
***
한숨을 쉬는 사람은 미리안, 유지나뿐만이 아니었다.
카간 시레문도, 제대로 풀리지 않는 문제 때문에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울제이를 설득했나 싶었는데, 아즈텍의 수도에서 테러가 터지는 바람에, 울제이는 ‘일단은 사태를 관망한다’는 태도로 돌아가 버렸다.
“울제이, 아즈텍의 상황이 불안정해진 지금이야말로 더더욱, 4국이 합심해서 상황을 헤쳐나가야 해.”
시레문은 그렇게 설득해봤지만 울제이의 태도는 완강했다.
“저는 정치적 불안정보다 경제 불안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게다가 몽골이나 고려와 달리, 키타이가 관세동맹으로 어떤 이익을 본다고 확신하긴 힘듭니다.”
울제이의 말대로였다. 내륙이든 해양이든 무역이 활성화되어 있고, 산업 기반이 탄탄한 고려나 몽골과 달리, 키타이의 산업 기반은 취약하다.
게다가 키타이는 이제 겨우 내륙국 신세에서 벗어나, 항만 시설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다.
“정치문제를 따진다고 해도, 저는 신수덕 토벌 일이 해결되지 않는 한, 게레센제 형을 무작정 신용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고려의 황제인, 루우 테무르에게도 이번 관세동맹을 제안한 저의를 묻고 싶습니다. 이건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국가 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옳은 말이지만, 울제이의 시선은, 게레센제와 루우를 지나 시레문에게 의심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