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100화 (100/541)

대공황(1)

“이렇게 긴 비행은 자주 하고 싶지 않군.”

고려의 재무장관, 여준설은 카스키남포 공항에 내리자마자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돌아간다. 아즈텍 연방 재무성 사람들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즈텍 측은, 일단은 미소로 맞아준다. 조금 뒤에는 서로 험악하게 으르렁거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그렇다. 외교는 외무성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즈텍의 재무장관, 야마시타 테조조목이 악수를 청한다.

“이것 참, 부탁드리는 입장인 제가 먼저 고려에 방문했어야 하는 건데. 잘 오셨습니다.”

“아닙니다. 지금 쿠아우테목에 다른 재무장관님들도 와 계시다죠?”

“예. 브리튼하고 신성 제국에서요. 로마 제국에선 며칠 뒤에 온다고 했습니다.”

여준설은 고개를 끄덕이고, 테조조목의 안내를 받아 차에 올랐다.

야마시타, 라는 성은 아마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겠지. 조상이 수백 년 전 일본인 이주민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일본인 같은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적지 않은 아즈텍인들이 일본식 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아즈텍 연방의 중세사와 관련이 있다.

몽골과 고려 연합군의 3차 일본 원정이 성공하면서, 일본은 한 번 완전히 멸망한 적이 있다.

몽골인들의 지배를 받던 일본인들은, 주로 무역에 종사하면서 마닐라나 라타나코신, 더 나아가 인도양 일대로도 나갔는데, 몇몇 이들은 동쪽 태평양으로도 나갔다.

거기서 일본인들은 섬 원주민들의 항해 지식을 토대로, 점점 더 먼 바다로 나가, 아즈텍 대륙에 도달했다.

그런 이들이 건설한 도시가 지금 아즈텍 연방의 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타카마가하라다.

일본이 몽골의 지배에서 독립하기 전까지, 많은 일본인들이 압제를 피해 타카마가하라로 이주했다.

타카마가하라는 이후 남쪽의 아즈텍인들과 교류 혹은 대립하면서 점차 성장하다가, 틀락스칼라 혁명 이후 아즈텍 연방에 가입하게 된다. 야마시타 테조조목 같은 이들은 바로 그때 아즈텍 연방에 가입한 일본인들의 후손이다.

“로마 제국은 왜 따로……?”

신성 제국이나 브리튼의 재무장관과 함께 올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시간 차이를 두고 온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준설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뭐, 경제 바깥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역시 아프리카 문제입니까?”

“그것도 그렇고…… 참,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테조조목은 그렇게 말하곤 입을 다물었다. 여준설은 차창 밖을 보기로 했다. 차는 공항을 떠나, 아즈텍 연방의 수도, 쿠아우테목 시로 향하고 있다.

원래 아즈텍 연방의 수도는 테노치티틀란이었지만, 이 도시는 제국 시절의 흔적이 너무 강하게 남아있었다.

테노치티틀란인들의 인신공양 풍습으로 인해, 사실상 인육을 제공하는 가축 취급받던 틀락스칼라인들은 일본인들과 손을 잡고 혁명을 일으켰고, 그렇게 아즈텍 제국은 연방으로 거듭났다.

혁명을 주도한 틀락스칼라인들은 그 후 새로운 수도를 모색했고, 대륙 중심부를 흐르는 거대한 강, 미시시피강에 새로운 수도를 마련하고자 했다.

아즈텍 연방은 성립 후 북방 평원의 성읍 국가들을 연방에 가입시켜나갔는데, 이 흐름을 가속한 건, 대륙 바깥에서 온 적의 등장이었다.

에스파냐, 브리튼 등 ‘신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한 유럽인들.

이들의 무자비한 침략에 맞서, 이로쿼이, 체로키 등 북방 민족들과, 아즈텍 연방은 힘을 합쳤다. 밀고 밀리는 전쟁과 휴전을 반복하다가, 결국 거대한 전쟁으로 터진 것이 ‘대서양 대전’이다.

대서양 대전은 남방의 잉카 공화국도 아즈텍 연방과 손을 잡아, 그야말로 유럽 대 신대륙 구도로 전개됐다. 길고 처참한 전쟁 끝에 신대륙 측은 유럽군을 완전히 물리치고, 유럽계 식민지들을 병합, 지금과 같은 강국이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때 활약한 전쟁 영웅 쿠아우테목의 이름을 따, 미시시피강 중간 즈음, 다른 큰 강들이 합류하는 곳에 연방의 새로운 수도가 건설된다.

이 쿠아우테목 시는, 미시시피강을 따라 수운업이나 교통을 발달시키며 크게 성장해 왔다, 지금도 미시시피강 하구의 치티마차 항구는, 대서양 무역의 중심지다.

그렇게 도시의 역사와 경제를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테조조목이 입을 열었다.

“아프리카 문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모양입니다. 로마 제국은, 에티오피아 제국과 협력하면서 브리튼, 에스파냐의 식민지 확장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들거든요.

브리튼과 에스파냐는 대서양 대전에서 잃은 식민지들을 아프리카에서 벌충해야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고.”

“신성 제국은 어떤 입장입니까.”

“별생각 없는 듯합니다. 중립, 이라고 봐야 할까요. 이쪽도 브리튼에서 에이레가 독립하도록 뒤에서 손을 쓴 자들이라 완전히 중립이라 하긴 어렵지만.”

고려에서 출발하기 전, 여준설은 이 문제에 대해 안세규와 상의했다.

아프리카 문제는 꽤 복잡했다.

로마 제국은 세계대전에서 신 이슬람 제국을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부터 이집트, 카르타고에 이르는 광대한 식민지를 새로 얻었다.

이슬람 세력 때문에 몇 번이고 멸망의 문턱까지 갔던 로마 제국은, 종교 문제에 대해 병적으로 민감해졌다.

이 때문에 식민지에서의 종교 탄압은 문명국의 행위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하다고 했다. 운이 좋아야 아라비아 칼리프국으로 추방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여기에는 로마 제국 편에 붙어서, 동아프리카에서 크게 영토를 확장한 에티오피아 제국도 거들고 있다.

이렇게 두 크리스트교 제국의 잔인함 때문에, 아프리카 식민지의 통치는 폭력과 불안으로 점철된 듯하다.

여기에, 브리튼 왕국이 아프리카 식민지를 점차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기존에 독립국이었던 몇몇 소왕국들에 고문을 보내거나 하는 식으로 내정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로마 제국은 아프리카 원주민계 왕국들에 독립을 보장해주는 조약을 체결하며 맞서고 있다. 로마 황제 및 시민들과 조약을 맺은 나라를 위협하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는 엄포는 덤이다.

“로마가 강하게 나오니 브리튼도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국가의 자존심을 세우는 문제는 정권의 안정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식민지 확장이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이득이 되는 계층도 그 정책을 지지하지만, 전혀 혜택을 받지 않는 계층도 그 정책을 지지한다.

‘국가’라는 단위의 이득과 상류층의 이득이, 마치 자신의 영광인양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 착각, 비합리적 관념이, 경제의 균형을 깨뜨리는 원인이 된다.

“브리튼이 반발했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했다는 겁니까?”

“세계대전 당시 차관이며 무기 대여며, 당장 갚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죠. 대서양 전쟁이나, 바라트 혁명, 에이레 독립으로 상당한 식민지를 상실하긴 했지만, 그래도 한때는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금융 강국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라…….”

테조조목의 말대로, 브리튼의 식민지는 여전히 아프리카 대륙의 절반가량, 대서양과 인도양, 태평양의 섬 곳곳에 드넓게 펼쳐져 있다.

이를 토대로 브리튼은 세계 해상 무역의 상당 부분을 선점하고 경제를 키워, 세계 제일의 금융 강국으로 성장 ‘했었다’.

세계대전 전까지는.

무굴 제국에서 공산 혁명이 일어나면서, 바라트 지역에 있던 적지 않은 식민지와 조차지가 날아갔다.

신 이슬람 제국 해군이 에스파냐와 신성 제국의 해안을 위협하자 이들을 돕기 위해 병력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경제적 부담 또한 대신 져 줘야 했다.

멸망의 문턱까지 갔던 로마 제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태평천국이 해체되면서 키타이나 낭키아스는 그 계승을 부정했고, 고려나 몽골도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에 태평천국이 맺고 있던 대부분의 국채나 해외 경제 관계도 허공으로 증발했다.

모든 국제적 상황이 브리튼 경제에 좋지 않게 돌아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준설은 질문을 던져본다.

“‘금융 강국’으로서 세계 경제의 부담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를 수습하던 강국 브리튼은 이제 찾아볼 수 없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죠. 100년 전이나 150년 전 같으면, 아니, 하다못해 세계대전 전 같아도 지금의 경제위기는 브리튼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수습했겠습니다만…….”

세계 경제의 지도자는 그런 자리다.

자국의 손해를 다소 감수하더라도, 관용적인 이자율, 관세, 차관 기한 연장, 탕감 등을 통해 경제위기에 빠진 나라들을 돕는다.

그것은 경제 지도자 국가가 특별히 자비로워서가 아니다.

경제가 취약한 나라가 아예 망하면 국제 경제에는 더 큰 손실과 혼란이 뒤따른다. 즉, 지도자 국가 자신을 비롯한 세계 경제 시스템 자체의 유지를, 자국 무역의 흑자보다 우선시하는 것이다.

“브리튼은 이제, 그런 역할을 맡지 않겠죠.”

“맡고 싶어도 무리입니다. 10년 전 위기 상황을 떠올려보십시오.”

테조조목의 말에 여준설은 기억을 되짚어 본다.

10년 전…… 1919년 위기.

세계대전이 끝난 지 9년 만에, 에이레인들이 브리튼 왕국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에이레인들이 세계대전에 참전하면 독립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아주 가벼운 자치권만 주는 바람에 일어난 반란이었다.

여기에 신성 제국이 개입해, 해상에서 양국 해군이 대치하는 일이 일어났다.

신성 제국이 이단까지 동원해 에이레 반군을 돕자, 브리튼의 동맹인 에스파냐와 칼마르가 즉각 병력을 국경으로 전진 배치했다.

9년 만에 2차 세계대전이 터지는가, 싶을 정도의 위기였다.

결과는 경제적 부담, 9년 만에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는 압박감에 브리튼이 양보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에이레는 독립했다.

“전 세계에 브리튼이 예전 같지 않다고 광고한 꼴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쟁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브리튼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구겨진 자존심 때문에 ‘더는 당신들 뒤치다꺼리는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품은 게 아닌가 싶군요.”

테조조목의 말을 들으며, 여준설은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세계 경제의 지도국 자리가 10년 가까이 비어있었다면, 이제 누군가는 그 역할을 맡아야 할 때 아니겠습니까. 이런 불안정한 상태로…… 세계 경제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저는 그게 걱정됩니다.”

말을 꺼내고 슬쩍, 테조조목의 눈치를 본다. 테조조목은 태연한 얼굴이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준설의 말을 받았다.

“그렇지요. 저로서는 국내 상황이 가장 안정된 신성 제국이 그 역할을 맡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신성 제국의 국내 문제라고 해봤자 게르만계, 이탈리아계의 독립 움직임이지만, 그렇게 거세지는 않죠. 해외 식민지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그렇게 넘기는 건가. 여준설은 별 대답하지 않고, 속으로만 비웃음을 날렸다.

경제 1위의 대국이면서, 그런 부담은 절대 안 지려고 한다. 이들의 사고는 대서양 전쟁 이전 시대에 머물러 있다.

고려에 관세 인하 요구를 해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아니면, 그 정도로 아즈텍 연방은 궁지에 몰려 있나?

여준설은 브리튼, 신성 제국의 재무장관들과 길고 진지한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체류 기간도 좀 늘려서 로마 제국의 재무장관과도 이야기를 해봐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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