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코룸(11)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요.”
견하가 말을 꺼내자 중위가 고개를 돌렸다. 물어보시라는 듯한 표정이다.
“저 커다란 건물은 뭐죠?”
탑, 혹은 신전처럼 솟아 있는 기묘한 구조물을 가리킨다.
물론 탑이나 신전보다는 훨씬 투박하다. 멀리서도 각종 배관을 볼 수 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 저건 발전소입니다. 카라코룸 시내에 전력을 공급하는 시설이죠.”
중위의 대답에 재연이 고개를 갸웃한다.
“발전소…… 가 원래 저렇게 큰가요?”
소년들이 발전소를 자주 본 건 아니지만, 저렇게 공장들 사이에서 눈에 띌 정도로 높이 솟을 건물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하하, 굉장히 눈에 띄는 건물이긴 하죠. 원래대로라면 역사적 유적인 카라코룸 본궁이나, 전쟁 후에 건설된 화려한 별궁이 카라코룸의 상징이어야겠지만…… 도시의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저 발전소가 상징물처럼 자리 잡았죠.”
카라코룸이라는 도시의 성격.
철저한 계획하에 성장한 중공업 도시.
그 중공업에 소모될 막대한 전력을 떠받치는, 발전소.
“발전소는 전력만 공급하는 게 아닙니다. 도시민들에게 온수, 난방을 공급하는 역할도 맡고 있죠.”
대륙 북부 한복판에 위치한 카라코룸의 겨울은 가혹하다.
‘조드’라 불리는 혹한이라도 닥치면, 유목민들의 가축은 떼죽음을 당한다.
가축뿐만이 아니다. 차가운 건물 안 사람도 위험하다. 게다가 이 시기는 무척 건조해서 때문에 물도 귀해진다.
그런 도시민들에게 온수와 난방을 공급하는 건, 쾌적한 생활을 유지해준다는 개념을 넘어서는 일이다. 시민들의 생명 그 자체를 지속시킴을 의미한다.
그 정도로 중요한 시설이기에, 우구데이 카간이 건설한 카라코룸 본궁이나, 현 카간인 시레문이 건설한 별궁을 제치고 도시의 상징물이 된 거겠지.
“그 ‘조드’라는 재해는 얼마나 심한 거죠?”
“가축들이 수십만, 수백만 마리씩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유목 생활은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시골 사람들은 가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인데, 조드 한 번 당하고 나면 생계는 완전히 끊어진다고 봐야겠죠.”
“그럼 그 사람들은…….”
“이른바 ‘조드 빈민’이 되죠.”
생계 기반을 잃어버린 빈민들이 종종 그러하듯, 그들도 도시로, 특히 수도로 몰려든다.
뭔가 목숨을 이어갈 일거리라도 있겠거니,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며.
“조드 빈민촌은 신시가지 맞은편에 있습니다. 몽골의 부끄러운 면모지만…… 굳이 보시겠다면……?”
안내해 줄 수는 있지만 그다지 달갑지는 않다는 듯 제안한다.
굳이 중위를 불쾌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견하는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견하 혼자 왔다면 모를까, 일반인인 재연까지 데리고 빈민촌을 둘러보는 건 좋지 않다.
외국인, 그것도 중앙정부의 관료인 견하가 이런 곳에서 사고에 휘말리면 외교적인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
그러니 그런 곳에 빈민가가 있다, 그 정도로 도시의 사정이나 분위기를 짐작하는 선에서 그치는 게 좋다.
자세한 실정 파악은 다음 기회에.
이번 여행은 이 정도면 충분한 수확을 거둔 셈이다.
***
숙소로 돌아온 견하와 재연은 각자 편하게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몸은 느긋한 자세로 쉬고 있었지만, 뇌와 입은 지금까지의 일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을 의논한다.
“카라코룸은 성장하는 도시지만, 성장하는 만큼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
견하가 그렇게 입을 연다. 재연은 하나하나, 문제점을 꼬집어본다.
“가혹한 자연환경, 즉 조드에서 비롯된 조드 빈민, 고려령 서북부에서 강제 이주된 사람들, 세계대전 중 급격한 중공업화와 함께 도시 노동자가 된 사람들…….”
“문제, 라고 돌려 말할 것도 없겠지. 불만으로 들끓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안은 도시다.”
“몽골 내륙 개발, 새로운 무역로의 중심도시로서 개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지만, 그 이면엔 그런 부작용이 있었어.”
“그럼 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
견하는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천장을 보며 잠깐 생각에 잠긴다.
“만약, 전에 내가 말한 대로 카라코룸으로 천도한다면, 즉, 다이온 연방의 수도를 카라코룸으로 정한다면, 이런 도시민들의 문제를 끌어안아야겠지.”
재연은 의자에 앉은 채 끄덕인다. 누워있는 견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스스로도 수긍하듯 그렇게 한다.
“높은 위험성을 떠안는 거야. 이런 종류의 불만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향한 지지로 연결되겠지.”
“혹은 정반대로 범 알타이 인민동맹을 향한 지지로 연결될 수도 있어. 그 단체가 천손민족협회와 비슷한 성격의 단체라면 말이지.”
견하의 말에 재연은 주춤한다.
잊어버리려고 애썼던 사실이 다시 떠오른다. 견하가…… 허동주를 죽였다는 사실.
지금 눈을 뜨겁게 만드는 이 감각은, 복수심인가, 아니면 패배감인가.
간신히 억누르며 말한다.
“지금 몽골 내에서 붉은 세력들이나 범 알타이 인민동맹이 얼마나 힘을 키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들로 인해 소요가 일어난다면…….”
카라코룸을 연방의 수도로 삼는 안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재연은 그런 말을 넌지시 전한다.
그러나 견하는 재연의 말에는 답하지 않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난 몇 달간, 견하는 재연이 이해하지 못하는 곳까지 나아간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대체 어디에 닿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견하는 갑자기 다시 입을 열었다.
“반대로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반대로?”
“그래. 반대로.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에는 언젠가, 기회가 오면, 이라는 식으로 실현할 날을 애매하게 잡고 있지만, 이 도시에서 소요가 일어난다면 상당히 구체적으로 그날을 잡을 수 있어.”
재연의 두뇌가 맹렬히 회전한다. 친구의 생각을 따라잡으려 한다.
“카라코룸에서 뭔가 소요가 일어날 때를 기회로 삼아, 몽골 정세에 개입하고, 합병한다?”
견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긴 하지만, 뭐, 틀리진 않았어.”
카라코룸은 어쨌든 몽골 내에서 손꼽히는 도시다. 여기서 소요가 일어났다면, 단순히 도시 하나가 혼돈에 휩싸인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가적으로도 상당한 혼란이 일어난 뒤일 것이다.
“어느 쪽에서 일으킨 ‘혁명’이든 간에, 혁명은 폭풍처럼 불필요한 요소를 쓸어내고, 남은 것들을 정리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우리들의 황제는 그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면 되는 거야.”
그때는 좀 더 구체적인 도시 및 국가 재건 ‘계획’이 필요하겠지만, 이라고 말하며 견하는 몸을 일으켰다.
헛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내가 루우의 몽골 황위 계승을 간절히 원한다는 듯이 이야기했네.”
소년은 왜 그랬지, 라며 고개를 갸웃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리안을 위한 새로운 무대였을 텐데.
답을 떠올릴 수 없는 의문을 던져두고, 견하는 화제를 전환한다.
“음, 그리고 여기까지 와보니까 알겠는데, 동명에서 카라코룸까지 정말 멀리 떨어져 있어.”
“그야 몽골의 영토가 넓으니까.”
“그래, 바로 그거야. 그게 또 하나의 문제라는 거지.”
이번에는 재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이 실현되면, 고려는 이 넓은 몽골을 합병하는 거야. 넓은 국토를 확보한다는 건 동시에, 국경선이 길어진다는 말하고 똑같고.”
긴 국경선에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국방비가 들어간다.
“우리 고려는 그렇게 확보한 국토를 다스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진지하게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어.”
견하의 머릿속에는, 광대한 북극의 창공을 넘나들며 아즈텍 공군과 대결하는 고려 공군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싸움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그걸 지속할 국력이 고려에 있나?
재연도 되짚어본다.
몇 달간이었다고 해도 내전을 치른 고려에, 몽골을 병합할 역량이 있기는 한가?
“생각보다 가까운 시점에 카라코룸, 그리고 몽골의 정세가 급변하든, 혹은 먼 훗날 그런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그날을 대비해야 해.”
정말로 몽골 합병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독립된 두 나라가 형식적인 동군연합으로 묶일지, 그것도 아니라면 몽골의 혼란이 고려 내부로 번지지 않도록 방비를 강화할지.
어느 쪽이든 착실히 내실을 다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도 들어.”
견하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 표정에는, 견하 자신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혼란이 서려 있었다.
“우리의 이런 상상, 혹은 가정, 혹은 ‘대비하는’ 것만으로, 먼 훗날의 일이라고 해도 고려의 운명을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끌고 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
두 소년 모두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견하는 잠을 청하고, 재연은 의자에 계속 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책을 손에 들고는 있지만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식당에서 들은, 고려에서 살다가 몽골로 강제 이주된 사람들의 말이 떠오른다.
그들이 생각하는 ‘민족’ 개념은, 재연이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민족 개념이 있기는 한 걸까.
고려 민족 제일주의를 고수하는 자신이 그 몽골인들더러 “민족의식을 가지라” 윽박지르기도 우스운 노릇이라 가만히 있었지만, 재연은, 그게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언젠가 ‘알타이 민족’으로 통합될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민족의식이 희미한 쪽이 낫나…….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고려 민족 역시 민족의식이 희미한 편이 낫다는 말도 된다.
-나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허동주의 죽음 이후로 계속 표류한다.
루우 황제에게 휘둘리고만 있는 것 같다.
막연하게 ‘민족 의식’을 강화하고…… 그게 다이온 연방이 실제로 탄생했을 때 뭔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저 ‘고려 민족’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니까, ‘고려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느낌이다.
왜 민족 개념을 확립하고자 하는가? 민족 개념은 중요하니까.
왜 민족 개념이 중요한가? 민족 개념을 확립해야 하니까.
……전형적인 순환논리다.
포기해야 할까?
나는 틀린 걸까?
이렇게 계속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 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이긴 한가?
재연은 풀리지 않는 고민에 짓눌려 잠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