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코룸(7)
재연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다음, 설명을 시작했다.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은, 황제 폐하의 제안으로 작성했지만, 그 안에 내 의향이 많이 반영된 건 사실이야.”
견하는 잠자코 들었다.
“‘다이온 연방’에서는 고려 민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해. 그렇기에 미래에 재탄생할 ‘다이온’은, 실제로는 고려가 몽골을 일방적으로 합병하는 것에 가깝지.”
몽골 내 각 학교에 고려어 교육의 의무화. 고려의 ‘도’ 단위 행정체제를 몽골에도 도입. 고려인 행정관, 혹은 자문위원의 파견.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방의 수도가 될 동명특별시.
견하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걸 실현하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지.”
가장 큰 문제는, 일단 당사자인 몽골인들이 그런 통합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것.
민족문제라는 장벽은 결코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견하는 산동 파견 임무를 겪으며 그걸 확실히 느꼈다.
재연은 수긍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몇 가지 장치를 도입했어.”
첫째는, 연방 내 한족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 그리고 그 통제권의 일부를 몽골인들에게 주는 것.
“몽골인들에게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는 계급’을 줌으로써, 고려인에 대한 불만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거지.”
견하는 산동 식민지가 개편된 ‘발해도’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지금 재연이 말하는 정책은, 견하가 세운 발해도 정책과는 반대된다.
재연의 계획을 폐기할 것인가, 아니면 발해도의 한족들과 맺은 약속을 폐기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지역별로 한족 정책을 달리할 것인가.
견하는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기로 했다. ‘다이온 연방’은 아직 먼일이다.
재연은 계속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장치는, ‘알타이 민족’이라는 가상의 개념이야.”
고려인과 몽골인이 실은 하나의 뿌리, 하나의 민족이라는 선전을 하면서, 서서히 통합을 노린다.
그게 학문적으로 사실인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루우의 정치적 필요와, 재연의 사상적 필요일 뿐.
“몽골에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범 알타이 인민동맹’이라고. 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빌렸어.”
“잘하면, 그 사람들이 먼저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을 수도 있다, 그런 계산이야?”
재연은 끄덕였다.
몽골 내의 몽골 민족 제일주의자들이 ‘알타이 민족’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그걸 선전해둔다면, 역으로 고려가 몽골을 통합했을 때의 반발을 줄이는 데 써먹을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장치는, ‘우리가 몽골에 통합되는 겉모양을 취할 것’.”
즉, 실질적으로는 고려가 몽골을 흡수하는 것일지라도, 겉으로는 몽골이 고려를 통합하는 형식을 취해, 몽골인들의 반발을 무마한다.
지식인 계층은 눈 가리고 아웅에 코웃음 치겠지만, 일반 민중들에게는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민족문제는, 절반은 자존심 문제니까.
“구체적으로는, 먼저 국호가 ‘고려’가 아니라 ‘다이온’인 점을 들 수 있겠지.”
다이온, 고려 말로는 대원(大元).
예케 몽골 울루스, 즉 대몽골 제국이 한족을 지배하면서, 한족들에게 익숙한 통치 방식을 펼치기 위해 만든, 한문 국호다.
이런 국호는 몽골이 세계를 지배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니, 몽골인들을 달래기엔 아주 적절한 국호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제국최고회의’가, 몽골의 ‘쿠릴타이’에 통합되는 형태가 될 거야.”
쿠릴타이라는 몽골 전통의 이름 아래, 고려의 제국최고회의가 통합된다. 이 말만 놓고 보면 몽골이 고려를 합병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선거구로 장난을 칠 셈인가.”
“쿠릴타이 내 고려인 의원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한 방법이지.”
선거구를 고려 쪽이 더 많게 조절해서, 고려인 의원을 대거 당선시키면, 실질적으로 쿠릴타이는, 제국최고회의에 몽골인들 일부를 포섭한 것과 같은 형태가 된다.
“하지만 그건 너무 눈에 띄는 장난이야. 나는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봤어.”
“어떤 방법이지?”
“제국입헌당에 몽골인 의원을 가입시키는 거지.”
재연의 생각은 이랬다. 고려인 의원을 쿠릴타이에 많이 진출시킨다 해도, 그 고려인 의원들이 사회민주당이나 공산당원이라면 별 의미가 없다.
게다가 만약 그런 의원들이 몽골계 의원들과 손을 잡아 버린다면? 같은 고려인 의원이라 해도 재연의 생각에 동조해 준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발상을 달리해서, 몽골계 의원, 혹은 유력 정당들을 고려의 제국입헌당으로 포섭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른바 ‘친려파’로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니, 실제로 쿠릴타이에 몽골인 의원이 많이 남는다고 해도 제국입헌당의 영향력은 극대화된다.
말하자면, 몽골인 의원들을 고려 여당의 꼭두각시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재연의 입장에서는, 제국입헌당은 기댈 수 있는 언덕이다. 재연은 고려국민당이나 사회민주당, 공산당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인물이므로.
견하는 눈을 감았다.
재연의 욕망과 루우의 욕망, 그리고 고려의 이익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은 계획이다. 재연, 루우, 그리고 고려라는 국가 모두 만족할 방안이다.
일단은 이 정도로 넘어가도록 할까.
“좋아.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 루우의 지시대로 계속 진행해 나가도록 해. 하지만 이후로는 루우에게 올라간 보고와 같은 보고가 내 책상에도 올라와야 할 거야.”
“알겠어.”
재연의 다짐을 받은 후, 견하는 눈을 떴다. 자,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루우를 제어할 고삐를 만들어낸다?
틈, 틈을 찾아보자. 재연의 계획은 아직 초안 수준이다. 허술한 부분, 파고들 부분은 없나? 어색한 부분은?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을 뒤적이다 문득, ‘다이온 연방’의 수도에 대한 계획이 눈에 들어왔다.
연방의 수도는 동명특별시……?
“몽골인들 불만을 무마하는 김에 말이지, 아예 수도도 옮기면 어떨까?”
덤덤하게 중얼거리는 견하의 말에, 재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천도를 하자는 거야?”
“그래. 동명특별시로는 몽골인들도 불만이고, 그렇다고 해서 칸발리크로 하면 고려 내에서 반발이 있겠지. 그러니까, 아예 새로운 도시를 선정해서 연방의 수도로 삼는 거야.”
“두 민족 모두 만족할 적당한 곳이 있을까?”
견하는 생각을 밀어붙였다. 머리가 좀 더 빨리 돈다.
“듣자 하니 시레문 카간이 요즘 카라코룸의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던데.”
서북부 몽골계 주민들 문제가 한창일 때 들은 이야기다.
견하는 눈을 들어 재연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봤다.
“짓고 있는 도시라면, 고려의 색으로 물들인 도시로 탈바꿈시킬 수도 있지 않겠어?”
재연은 팔짱을 꼈다. 그는 견하 앞에 놓인 서류에 시선을 줬다.
“일단 황제 폐하와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그분도 천도에 찬성하신다면, 한 번 계획을 수정해 볼게.”
견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재연은 그런 견하를 뒤로 하고 방을 나갔다.
아예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는 동안, 그 도시를 태사 미리안의 것으로 만들어 둔다면, 혹은 정치경찰실이나, 그 아래 소년감찰국이 도시를 완전히 장악해 둘 수 있다면, 루우를 적절히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견하는 견하 나름대로, 몽골, 특히 카라코룸에 대해 잘 아는 자와 접촉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
안동에서 발견된 ‘파멸인류’ 및 ‘이단’ 관련 연구에 대해 몽골의 협력을 구하는 문제.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관세동맹’ 등 경제협력 문제.
그리고, 루우의 몽골 황위 계승권이나 동군연합론에서 이어지는, 「다이온 연방 창설 계획」의 구체화 문제.
여기에 관련된 루우, 미리안, 주견하, 유지나, 한재연, 안세규, 시레문, 토칸, 여준설 등, 모두의 생각과 행동이 맞물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려를 중심으로 오가는 복잡한 문제들. 그 문제들에 대한 답을 모색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시레문 카간이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이제 막 10월로 접어들었으니, 지난번 정상회담으로부터 불과 석 달 만의 일이었다. 물론 그때는 루우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와 겸한 것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번과 다르게, 고려나 몽골 양국 국민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할 회담이었다.
“지난번에는 시레문 카간이 고려를 방문했으니, 이번에는 우리 황제 폐하께서 칸발리크에 방문하는 게 맞지 않는가, 하는 거지.”
리안은 그렇게 말하곤 웃음을 띄웠다. 조금 짜증스러워 보이는 루우의 얼굴이 재미있어서였다.
“이 시점에 대체 아버지는 무슨 볼일로……. 그냥 태사급 회담으로 하면 안 돼?”
타이시는 휴가까지 다녀왔잖아, 라고 루우는 중얼거렸다.
황제가 되고 싶어 했던 것과는 별개로, 루우는 황제가 된 이후로 한 번도 공식적으로 휴가를 간 적이 없다.
리안은 견하, 효윤을 데리고 휴가를 다녀왔지만, 루우는 황궁에 남아야만 했다.
아무리 일이 좋고 권력이 좋다고 해도 기분전환은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시위라도 하듯, 루우는 편한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아무리 사복이라지만, 친구들 앞이라지만 황제가 저 정도 노출을 해도 되는 걸까, 견하는 그렇게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휴가를 온전히 다 즐기고 온 건 아니야. 보고서 받았잖아?”
리안의 말에 루우는 양손을 깍지 껴 뒷머리를 받쳤다. 팔꿈치에서 겨드랑이를 거쳐 옆구리로 이어지는 매끈한 선이 드러났다. 옆 가슴이 보일 듯 말 듯 한 바람에, 견하는 눈을 돌렸다.
“휴가를 아예 못 즐긴 건 아니잖아? 고기도 구워 먹고 물놀이도 했다면서?”
리안은 견하를 노려봤다. 견하는 고개를 저었다. 리안과 견하 모두 효윤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효윤은 천장 쪽으로 눈을 돌렸다.
리안은 한숨을 내쉬곤,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황제가 외국에 답방한다면, 이번엔 태사가 나라를 지키고 있어야 해. 대신 경호로 효윤이를 보내줄 테니까, 둘이서 칸발리크 관광이라도 좀 하고 오든지.”
“내 고향이 칸발리크인데 무슨 관광?”
“……알았어. 귀국하면 어떻게든 황제 폐하가 휴가를 다녀오실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해 볼게.”
리안의 한숨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견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번에 저도 몽골에 좀 다녀오고 싶은데요.”
모두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아, 칸발리크에 따라가는 건 아니고, 카라코룸에 좀 다녀올까 하고요.”
“카라코룸에는 왜?”
“고려에서 이주시킨 몽골계 주민들이 어떻게 정착하고 있는지, 새로 건설되는 도시의 모습은 어떤지, 눈에 담아두고 싶어서요. 다녀오는 김에 몽골어도 조금 익혀두고요.”
“네가 몽골로 가면 누가 날 보좌하지?”
“유지나를 남겨둘게요. 하지만 유지나가 혼자서 양수영, 한재연 두 사람을 감당할 수는 없을 테니 한재연은 제가 데려가고요.”
리안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허락할게. 하지만 그, 한재연에 대해서는 언제 한 번 이야기 좀 해야겠어.”
견하는 끄덕였다. 한재연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소년감찰국의 방향에 관한 몇 가지 말도 듣게 될 것이다.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
루우가 리안을 올려다보듯 허리를 낮추곤, 가벼운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견하랑 오순도순 황궁에 남고 싶었어?”
정말 오랜만에, 리안의 얼굴이 확 빨개졌다.
“폐하가 상관하실 일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