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코룸(3)
카간 시레문은 비행선에서 카라코룸에 건설될 신시가지를 내려다봤다.
중심이 되는 옛 시가지를 빙글 돌듯 철도가 뻗어 나와, 사방으로.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어진다.
이 철도들을 지하화하고, 그 위에 새로운 주택이나 상업지구를 건설한다.
여기엔 동부 국경 너머, 즉 고려의 서북부에서 이주한 몽골계 주민들이 정착할 것이다.
“주민들의 국적 문제는?”
유리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시레문은 그렇게 물었다. 관료 하나가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고려 측의 협력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고려는 고려문으로 작성된 문서들에서 필요한 정보들만 최대한 빨리 몽골문으로 번역, 몽골 정부에 전달했다.
어쨌든 고려로선 부담을 더는 일이니, 협력을 아낄 이유가 없다.
“그다음은 취업 문제요. 각 기업과의 협의는 어떻게 됐습니까.”
“흥미를 보이는 기업도 있습니다만, 보다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되기 전에는 신중하게 행동하자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구미가 당길만한 그럴싸한 계획을 보여줘야겠군.”
시레문은 몸을 돌렸다.
비행선의 넓은 회의실 가운데, 카라코룸 시가지를 그린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여기엔 건설 중인 도시의 모습뿐만 아니라, 앞으로 건설될 시가지에 대한 계획도 담겼다.
“카라코룸에 사업을 확대하면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장기적인 투자가 큰 이익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제시해야죠.
카라코룸이 미래 아시아 물류의 중심 기지이자, 에너지 분야, 중공업 등을 망라한 거대 산업도시로 성장한다는 계획을 적극적으로 홍보합시다.”
“간담회 개최 등을 논의해보겠습니다.”
관료의 대답에 시레문은 끄덕였다.
지도 위의 철도들은 지도의 경계선까지 이어져 있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듯, 지도 밖으로도 이어져 있음을 시레문은 안다.
아시아 물류의 중심 기지로 키우겠다는 야망은 바로 이 철도를 근거로 한 것이다.
카라코룸이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때는, 다이온 예케 몽골 울루스(대원 대몽골 제국) 초기와 제국 붕괴 시기 정도다.
초원 제국이 유목과 농경을 모두 아우르는 제국으로 거듭나고자 했을 때, 몽골은 수도를 칸발리크로 옮겼다.
이후 다이온에서 독립한 명나라의 진격이 칸발리크에서 저지당하자, 명나라는 몽골 배후의 말 공급지인 초원을 직접 공략하기로 했다. 이때 카라코룸은 저항의 거점으로 다시 한번 활약한다.
어쨌든 몽골의 역사 중 대부분, 카라코룸의 중요성은 칸발리크에 밀리는 편이었다
지금의 탕구트, 혹은 하서회랑이라 불리는 서방 무역로도 키타이를 거쳐 칸발리크에 닿았다.
이 무역로는 다시 동쪽의 고려나 남쪽의 임안, 아니면 황해를 통해 더 넓은 바다로 이어졌다.
장강 하구에서 발명된 원시 증기기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원시적 철도. 몽골의 첫 철도는 칸발리크와 하서회랑을 잇는 것이었다.
고려 출신 명장 이성계가 제국을 재통합한 후에는, 옛 실크로드 위에 놓인 철의 실크로드가 제국 경제의 골격이 되었다.
서방 무역로는 탕구트를 지나, 알티샤흐르를 거쳐, 왼쪽으로는 티베트 고원을 끼고 페르시아로 나간다.
페르시아에서는 다시 바그다드를 지나, 남쪽으로는 이집트, 북쪽으로는 로마 제국으로 가고, 똑바로 서쪽으로 가면 팔레스티나에서 지중해로 나가게 된다.
이 원대한 무역망은 세계대전 이후 끊어졌다.
가장 큰 원인은 무굴의 붕괴와 바라트 공산주의 혁명의 성공이다.
무굴은 바라트의 언어로 ‘몽골’을 뜻하기도 하고, 또 무굴의 티무르 왕조는 보르지긴 황실과도 혈연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시레문은 그 붕괴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티무르 황실 구성원 중 상당수는 처형됐지만, 일부는 알티샤흐르나 몽골에 망명 중이다.
이처럼 바라트 사회주의 연방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도 있지만,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시레문은 몽골과 바라트 간 교류를 중단했다.
바라트도 자기네 특유의 경제체제를 성장시킨다며 세계 경제에서 이탈하고, 문을 걸어 잠갔다.
여기서 그쳤다면 좋았겠지만, 바라트는 서쪽의 후라산, 카불, 페르시아를 공산화하면서 그들 지역을 지나던 무역로도 끊어버렸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한 로마 제국도 공산주의의 확산을 두려워해 페르시아 쪽 국경을 봉쇄하면서, 수백 년간 활용했던 무역로가 단절되어 버렸다.
그러니,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여기,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북방 무역로를…….’
시레문은 지도 위에 손가락 놓고, 철도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였다. 손가락은 금세 지도 가장자리에 닿았다.
그러나 시레문의 머릿속에는 그 너머로 이어지는 거대한 땅과, 그 위에 놓인 철도가 계속 이어졌다.
‘카자흐를 지나, 카잔과 사라이를 거쳐, 루스를 관통하는 무역로!’
지금까지 이 무역로는 페르시아를 통과해 콘스탄티누폴리나 그 너머로 향하는 무역로에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주치 울루스를 계승한 사라이를 거쳐 흑해로 나가는 무역로는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루스계 공국들이 동방 개척을 시도하면서 오랜 세월 단절되고 말았다.
‘그것도 근세의 일이고, 북방 국경이 확립된 지금은 다시 무역로를 열 때가 왔지.’
사라이를 통과한 무역로는 흑해로 나가도 좋다. 이 경우에도 콘스탄티누폴리에 닿을 수 있다. 사라이 입장에서도 흑해 무역량 증가는 국가적으로 이득이다.
사라이 무역로는 더 서쪽으로 나가면 키예프에 닿고, 키예프에서도 더 먼 서쪽까지 무역로를 연결할 수 있다.
카잔을 통과한 무역로는 모스크바에 직접 닿는다. 이 무역로는 바르샤바나 베를린뿐만 아니라, 신성 제국의 수도, 엑스라샤펠까지 이어질 수 있다.
대륙 북부 전체를 잇는 거대한 혈관.
아니, 구대륙뿐만 아니라, 바다를 통하면 신대륙까지 닿는다. 신성 제국은 대서양을 통해 아즈텍 동부에, 몽골은 칸발리크에서 황해로 나가 일본을 거쳐 아즈텍 서부에 닿는다.
지구 전체가 하나의 고리 위에서 경제를 순환시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카라코룸이 제 역할을 해 줘야 한다.’
새로운 주민들이 카라코룸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시레문은 이 주민들을 카라코룸 주변부의 빈민으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들을 건전한 경제 주체로 키우려면, 기업들의 카라코룸 투자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자연도 극복해야 한다.
시레문은 유리창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카라코룸이 칸발리크에 비해 제국의 수도로서 중요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치나 경제적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사나운 자연도 카라코룸의 성장을 막아왔다.
조드. 가축들이 떼죽음 당하는 혹한.
인명 피해까지 속출하는 자연재해. 그런 자연재해를 겨울마다 걱정해야 하는 몽골 초원은, 세계 제국의 수도를 두기에 적절한 땅은 아니었다.
반면 칸발리크는 상대적으로 바다에 가까웠고, 덕분에 기후도 온화했다.
하지만 인간의 기술이 카라코룸의 거친 자연을 극복할 수 있다면?
시레문의 눈이 구시가의 중심에 닿았다. 중심부에는 먼 옛날 황금 천막의 모습을 본뜬 황궁이 있었다. 세계대전 당시 칸발리크가 함락되고, 카라코룸이 임시수도로서의 위상을 확립하자, 전쟁 후에 건설된 별궁이다.
이 별궁 서북쪽 끄트머리에, 높고 거대한 강철 구조물이 보인다.
발전기.
도시 전체에 ‘열’을 공급해줄 기계 장치.
“발전소 확장 공사의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이번에는 다른 관료가 대답했다.
“도시 난방 공급은 앞으로 도시 규모가 두 배 정도 확장돼도 문제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카간께서 말씀하신 대로 ‘물’을 공급하는 기능까지 제대로 확보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듯합니다.”
조드는 그 추위와 건조함으로 식수까지 부족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지하수를 만들어서라도, 도시민들에게 ‘따뜻한 물’을 공급할 준비를 해야 한다.
겨울이 되면 씻지도 못하는 도시에 누가 와서 살고, 또 사업에 투자하겠는가. 카라코룸을 키우려면, 카라코룸에서의 ‘생활’이 쾌적해야 한다.
“질책하는 것은 아닙니다. 괜히 서둘렀다가 안전 문제를 일으키면 본전도 못 찾습니다. 나사 하나에도 신중을 기하도록, 이라는 카간의 방침을 전해주십시오.”
관료는 머리를 숙였다.
***
비행선은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그것은 칸발리크로 귀환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비행선은 카라코룸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군 비행장에 착륙했다.
지상으로 내려온 카간을, 기지 사령관이 경례로 맞이했다.
“분부하신 대로,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시레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수고하셨습니다. 바로 안내를 부탁합니다, 장군.”
투글룩 소장은 외람되지만 그 전에,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폐하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군인으로서 먼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저희의 목숨은 생각하지 마시고, 카간의 체통도 생각하지 마시고 곧바로 뒤로 돌아 도망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가 폐하께 죽는 한이 있어도 폐하를 업고 뒤로 달리겠습니다.”
시레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일개 소장이 국가 원수 앞에서 이 정도의 발언을 한다는 건, 지금 그들이 향할 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짐작케 한다.
“그 정도입니까?”
“……폐하, 저는 이제 지옥의 존재를 믿습니다.”
시레문은 다시 한번 끄덕이고는, 투글룩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만약 벌어진다면, 그때 내가 넋 놓고 있으면 따귀 한 대 정도는 용납하겠습니다.”
투글룩의 안내를 받아 카간과 그 측근들이 향한 곳은 지하 사원이었다.
작은 언덕에 기대듯 박혀 있는 사원 입구에는, 시레문이 모르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고대 위구르인의 문자나 뭐 그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시레문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몇 차례인가 검문소 비슷한 시설과, 두꺼운 철제문을 지났다.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 시레문은 코를 싸쥘 수밖에 없었다. 상상 이상의 악취가 저 너머에서 풍겨왔기 때문에.
시체, 그리고 그 시체가 쏟은 피와 기타 액체의 냄새다. 세계대전을 겪은 시레문은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문을 통과하자마자, 시레문은 눈을 질끈 감지 않기 위해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했다.
갈기갈기 찢긴 시체들. 그리고, 그 주변에 죽어 있는 ‘파멸인류’라는 이름의 괴물들.
얼마나 총을 갈겨댔는지, 총알 자국이 없는 곳이 없었다.
시레문은 시체들에 너무 오래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보다는, 역겨울 정도로 꿀렁대는 거대한 핏빛 구체에 집중했다.
눈알, 손, 눈알, 눈알 여러 개, 이번에는 발…….
시체들을 넣고 국을 끓이면 저럴까 싶을 정도로 역겨운 광경이었다.
“그래도 한 번 저지한 경험이 있어, 이 정도의 희생으로 끝냈습니다…….”
투글룩이 씁쓸하게 설명한다. 그도 안다. 저 붉은 구체가 정말 ‘운 좋게’ 활동을 중지하고 파멸인류를 뱉어내는 걸 멈췄기에 이 정도로 끝났다는 것을.
만약 구체가 활동을 계속했다면, 아무리 파멸인에 대한 전투 교리가 확립되어 있어도, 절망적인 결과를 피할 수 없다.
암담했다.
딸, 루우 테무르도 「쿠빌라이 문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지.
다시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가능한 한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