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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89화 (89/541)

카라코룸(1)

안세규는 황제 루우의 호출에 황궁으로 급히 향하면서, 머릿속으로 추측들을 정리했다.

‘외무장관으로 부른 것인가, 아니면 고려국민당 당수로 부른 것인가…….’

외무장관 안세규를 부른 것이라면, 루우의 용건을 몇 가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태평양에서 점차 활발해지는 아즈텍 연방의 해군 활동이다.

이건 태사 미리안이 휴가를 마치고 복귀해야 더 자세한 논의를 할 수 있겠지만, 황제가 원한다면 현황 보고 정도는 해야 한다.

전에 재무장관 여준설도 지적했듯이, 이는 아즈텍 연방의 내부 사정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둘째는 서북부 지역의 몽골군 철수 문제. 이건 현안 중 가장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서북부의 몽골계 주민들은 고려와 몽골 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몽골 내륙으로 이주 중이다.

시레문 카간은 이들을 구 황도인 카라코룸에 정착시켜, 내륙지역 산업 개발의 동력으로 삼을 생각인 듯하다.

셋째는 산동을 진압한 4개국 연합군과 신수덕의 행방 문제다. 이 문제는 지금 가장 예민하게 다뤄지고 있다. 각국이 협의했던 대로 산동을 분할, 군정을 실시하고 있긴 한데, 이 군정을 언제 끝낼지에 대해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각국의 재량에 맡기자는 의견과, 4국이 동시에 군정을 마치자는 의견이 대립하는 것이다.

군정의 종료와 영토 분할은 신수덕의 행방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치청 및 총독부 건물을 조사한 결과, 외부에서의 도움이 없다면 이렇게 완전히 자취를 감춘 탈출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도움을 줬는가, 하는 물음이 다시 솟아난다. 고려인이야 자살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몽골, 키타이, 낭키아스 3국에 범인이 있을 텐데, 신수덕의 탈출에 협조한 나라는 엄연한 배신자이니, 산동 영토를 분할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산동에 4개국 군대가 집결한 상황에서, 그런 문제를 들먹이는 건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신수덕의 행방에 관한 갈등이 군사적 충돌, 그리고 새로운 전쟁으로 발전하는 그림은, 그리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물론 범인을 좁힐 수 없는 것은 아닌데…….’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범인은 낭키아스의 게레센제 칸, 이 유력하다.

몽골과 키타이는 산동 분할로 얻을 게 많다. 특히 내륙 국가인 키타이는 바다로 진출할 항구를 확보할 수 있기에 이번 작전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따라서 몽골과 키타이가 쓸데없이 위험을 감수하며 신수덕을 빼돌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낭키아스의 사정은 다르다.

‘게레센제 칸은 자국 내 한족의 안정을 위해 개입했을 뿐, 영토 확장으로 얻을 이익은 적다.’

낭키아스의 국토는 남동쪽 바다를 향해 활짝 열려 있다. 고려령 산동의 일부를 받아봤자, 통제할 한족 인구가 증가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을 뿐이다. 그 지역의 산업시설이나 자원을 생각해도 큰 이익이라 보긴 어렵다.

‘게다가 바다로 열린 국토는, 바다를 통한 망명을 가능케 한다.’

물론 바다가 아니어도, 낭키아스는 대예나 보유슈엥과도 국경을 접했다.

고생스럽기야 하겠지만, 신수덕이 내륙을 향해 도망쳤다면 추적은 거의 불가능하겠지.

티베트, 라타나코신, 베트남, 에스파냐령 마카오, 탕구트, 그리고 그 너머의 알티샤흐르, 버마 등…… 도망칠 나라는 무궁무진하다.

‘일단 어디로 도망쳤는지라도 알아야 그 나라에 인도를 요청할 수 있겠지…….’

지금으로서는 더 추적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루우가 묻는다면 이 정도 선에서 답변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다면 이번엔, 루우가 자신을 ‘고려국민당 당수’로서 불렀다면 그 목적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여기서도 두 가지 목적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고려 제3제국 체제에서 황제의 권력 문제다.

루우는 이걸 자꾸만 늘리려 한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야망을 위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권력 확대는 세규의 이상과는 어긋난다.

지금이야 입헌군주제라는 타협을 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고려는 공화국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 첫 단계로 다당제와 선거, 제국최고회의 등을 도입했다. 다음 단계로는 태사와 제국최고회의 의장을 분리해, 행정과 입법이 서로를 견제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황제권은 그 과정에서 점차 소멸해야 하고.

루우는 억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태사 미리안이나 제국입헌당의 권력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루우가 세력을 키우고, 절대군주가 될 위험성이 있다.

루우의 두 번째 목적은, 아마, 역시, 몽골의 황위 계승 문제겠지.

이번 즉위식이나 대관식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루우는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몽골 황위를 향한 야심을 포기한 건 아니다.

루우가 왜 몽골 황위에 집착하는지, 그 동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게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가 하는 것이다.

몽골과 고려의 동군연합. 더 나아가 합병…… 게다가 몽골 황위는 어쨌든 키타이와 낭키아스의 종주국임을 의미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만만치 않은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카자흐, 알티샤흐르, 탕구트, 티베트도 전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것이고, 특히 아즈텍 연방은 북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니 심하게 반발하리라.

‘하지만 아직 시레문 카간은 젊다.’

아무리 루우의 야심이 크다 해도, 살아있는 시레문 카간을 상대로 황위를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랬다간 당장 몽골의 국민부터 반대할 테고, 이를 기회로 숙부들이 루우를 패륜아로 몰며 계승권을 확고히 할 테니까.

그러니까, 루우의 황위 계승은 시레문 카간의 죽음을 전제로 한다.

시레문 카간이 살아있는 동안 루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황위 계승을 위한 여론 조성 정도다. 고려인에게는 영토 확장을 약속하고, 몽골인들에게는 새 시대를 약속하는.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무력 충돌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조금은 협력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협력의 대가로 황제권의 축소를 유도한다면?’

말 그대로, 몽골과 고려 양국의 황제로 군림은 하되, 통치에서는 한발 물러나게 한다.

루우도 몽골 황위를 얻어내려면 고려 내부의 적극적 지지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녀도 일단은 동군연합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권력에서는 양보하면서 다른 기회를 노리자는 계산을 할 수도 있다.

“그 방향으로 진행해보지.”

세규는 비서에게 짧게 말했다.

“범 알타이 인민동맹에 연락을 취하게.”

***

황제를 알현하게 된 세규는 다시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한 사람은 이미 얼굴을 아는 소녀, 유지나다. 지난번에 고려국민당 일부 파벌의 숙청 때 협력하면서 알게 됐다.

다른 한 사람은…… 모른다. 하지만 유지나와 같은 하얀 제복을 입은 소년이다. 유약한 인상이지만, 상당한 미소년이기도 하다.

황제와 함께 들어온 두 사람 모두, 소년감찰국 소속인가.

그렇다면 루우의 손길은 소년감찰국까지 뻗은 걸까. 국장인 주견하의 허락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면, 주견하는 루우와 어느 정도 협력하면서 손익을 계산하고 있다는 뜻이다.

주견하의 허락이 없다면, 이는 루우의 일방적인 침입이겠지.

어쨌든 독대가 아니다. 지금은 철저하게 신하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

세규가 공손히 앉자 맞은편 자리에서 루우가 찻잔을 들었다. 그러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외무장관께서는 고려와 몽골의 동군연합 수립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런 꾸밈말 없이 곧바로 이렇게 찌르고 들어오는 건가. 어쨌든 생각해둔 범위 내의 일이니, 세규는 당황하지 않고 대응했다.

“황제 폐하의 영명하심 아래 두 나라의 신민이 하나 될 수 있다면 크나큰 복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그 전에 ‘제국최고회의’의 권한을 확고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생각됩니다.”

루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어째서 그렇죠?”

동군연합과 제국최고회의를 둘러싼 권력 구조가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녀는 그렇게 묻는다.

“동군연합이 성립하려면 우리의 의사뿐만 아니라, 몽골 국민의 의사도 중요합니다. 몽골인들이 폐하를 새로운 카간으로 받아들일 때 거부감이 없어야만 합니다.”

“계속 이야기해보세요.”

“몽골인들은 폐하를 자신들의 카간으로 모실 수는 있지만, 그 형식이 고려에 합병되는 것이어서는 결사적으로 반대할 겁니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기구, 쿠릴타이가 있으니까요.”

쿠릴타이. 원래는 몽골 주요 귀족들의 회의체다. 근대를 거치며 이 쿠릴타이의 문턱은 점차 낮아졌고, 현대에는 다른 나라의 의회와 거의 차이가 없는 기구가 됐다.

“쿠릴타이, 즉 몽골만의 정치를 가능케 할 기구의 확고한 존속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동군연합은 어려울 것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몽골 고유의 정치 풍토는 짐도 존중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그게 제국최고회의와는 어떤 관련이 있죠?”

“몽골인들의 생각은 그대로 고려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폐하께선 위대한 보르지긴의 혈통을 타고 나셨고, 또 지금 카간 폐하의 공주이셨습니다.

때문에 고려 국민은 동군연합이 ‘고려가 몽골에 합병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불안을 잘 달래야 합니다.”

루우는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몽골의 쿠릴타이를 존중해 몽골의 독립적 정치를 보장하듯이, 고려에서는 제국최고회의의 권한을 확고히 하여 고려의 독립적 정치를 보장해야 한다.

세규의 노림수는 짐작할 수 있다. 세규는 몽골과 고려를 동군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두되, 끝내 별개의 나라로 남겨, 루우의 존재를 붕 뜨게 만들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루우의 권력은 자연히 약화한다. 루우는 국가원수라는 이름을 지녔을 뿐, 실제 정치 권력은 각 나라 의회에 있으니까.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국최고회의의 권한을 확고히 안다는 거죠?”

“최종적으로는 태사부와 제국최고회의가 분리되는 형태를 취해야 합니다만, 지금은 시국이 불안한 데다 헌법도 미비하니, 당장 이를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는, 제국최고회의에서 의결된 법안에 대한 폐하의 거부권에 대해, 폐하께서 결단을 내려주시는 것이 가장 유효한 방법이 될 듯합니다.”

루우는 입을 다물었다. 거부권. 태사 미리안이나 황제 루우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다. 여기에 제한을 둔다면, 루우의 권력을 향한 싸움은 상당히 힘겨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규는 이미 거부권 제한에 대해 루우와 리안 사이에 이야기가 오간 걸 모른다. 루우는 그 정도는 이미 내주는 패로 여기고 있었다.

루우는 세규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뒤에 선 한재연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한재연은 탁자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서류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표지에 적힌 글자를 본 세규의 눈썹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졌다.

“「다이온(大元) 연방 창설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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