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5)
루우는 이야기하며 눈을 빛냈다.
지나는 황제가 지금 이 화제를 정말로 즐거워하고 있음을 알았다.
“다이온, 다른 말로 예케 몽골 울루스는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국가였어. 그러다 보니 세계 각지의 문물이 수도 카라코룸이나 칸발리크로 모여들었고, 당연히 학자들도, 그렇게 모여든 문물을 한 자리에서 연구해 볼 수 있었지.”
어느새 루우는 신이 나서 설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지나는 가만히 듣기로 했다.
어쨌든 권력의 최심부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니, 기억해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다가 몇몇 문서에서 공통점이 있는 걸 발견한 거야. 이야기 구조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까지, 묘하게 공통된 부분들이 많았지.”
처음에는 그저 인간의 상상력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증거로만 여겨졌다.
세계 각지의 신화가 창조, 대홍수, 멸망, 그리고 세상을 구할 영웅의 등장이라는 구조를 공유하듯이.
이는 그 신화가 사실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화를 창작해 낸 인간의 상상력에 얼마나 닮은 부분이 많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문서들이 공통적으로 ‘이단’에 관한 연구를 담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몽골 황실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시작해. 문서들을 몰수하고, 학자들을 감금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 아까 말한 마르코 폴로 같은 인물들을 제국 각지로 파견해 자료를 수집했지.”
“지금 세계 각국에서 하는 이단 연구 같은 거네요.”
“음, 조금 달라. 지금 이단 연구는 군사 분야 등 실용적인 목적이 강하다면, 당시의 이단 연구는 철학적인 목적이 강하다고나 할까. 몽골 황실은 그 문서들이 이단의 ‘기원’에 관련된 것들임을 알자 관심을 보였거든.”
기원……. 무엇이 이단을 만드는가. 견하 선배는 ‘하얀 괴물’이 인위적으로 이단을 만든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그 하얀 괴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자연적으로’ 이단이 되는 사람들은 대체 뭐지?
“칭기스 카간을 비롯해 몽골 황실에도 종종 출현했던 이단들…… 아 물론 ‘이단’이라는 명칭은 성리학의 융성 이후에 붙은 거니까 당시 몽골에서는 다르게 불렀겠지만. 어쨌든, 쿠빌라이 카간은 처음에는 가문의 기원을, 그다음에는 전 세계 초능력자들의 기원을 찾는 이 사업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어.”
지나는 머릿속으로 환도시 전투에서 활약한 루우의 사진과 영상을 떠올렸다. 그, 용과 늑대와 사슴을 섞은 하얀 형체…… 는 대체 뭐였을까.
“이단의 기원에 대해 알 수 있다면, 무엇이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 이단이 함께 태어나도록 했는지 알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겠지. 「쿠빌라이 문서」에는 바로 그런 가치가 있어.”
“그럼, 그 「쿠빌라이 문서」를 통해 이단의 기원이 밝혀진 게…….”
“아, 유감스럽게도 거의 없어.”
“넷?”
“우습지. 「쿠빌라이 문서」는 이단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수집된 문서지만, 그런 기원을 밝혀내려 했다는 것과, 진실에 접근했다는 것만 확실해. ‘밝혀낸 진실’ 부분은 소실됐거나, 아니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문서들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그럼, 지금은 큰 의미 없는 게 아닐까요.”
루우는 턱을 괴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아. 사람이 어떤 일을 하다 보면 목적했던 것 외에, ‘의외의 성과’를 거두기 마련이잖아? 쿠빌라이 카간도 그랬고, 「쿠빌라이 문서」를 발견하고 연구하게 된 우리도 그렇지.”
“‘의외의 성과’요……?”
***
쿠빌라이 카간은 이단의 기원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자료를 세계 각지에서 수집했다.
마르코 폴로를 비롯한 비밀스러운 측근들과 머리를 맞대고 자료를 탐구하다, 그는 별로 관심 없던 ‘또 다른 진실’에 닿고 말았다.
기원을 찾는 일은, 그 반대의 일도 가능케 했던 게 아닐까.
쿠빌라이 카간과 측근들은 인간의 ‘멸망’ 가능성을 엿보고 말았다.
카간은 직접 이런 글을 남겼다.
“……아무리 전쟁을 거듭한다 해도 인간은 끝없이 태어난다고 믿어 왔다. 전쟁의 역사 한편에는 번영의 역사가 이어지므로. 그러나 짐의 그런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짐은 모래알처럼 많은 인간이 한순간에 모조리 죽을 수도 있음을 확인했다.
마르코는 우리의 연구를 폐기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연구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가 폐기된다면 누구도 파멸로 향하는 길을 열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은 창의적인 존재다. 분명 후대의 누군가는 우리가 닿았던 이 지식에 반드시 도달하고 말 것이다. 짐의 대에서 세상 모든 땅을 정복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바랄 수 없겠지.
그렇다면 우리의 연구 성과들은 봉인된 채로, 최대한 엄중하게 관리돼야 한다. 봉인에는 마르코가 믿는 종교의 주술을 쓰기로 했다. 그의 종교는 금서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요령이 있으니까.
봉인할 장소를 선정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 마르코는 몇 가지 장소를 제안했다. 유사시에 짐이나 마르코의 후계자가 접근하기에 쉬운 곳으로.
몽골은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다. 이 연구는 세계를 지배하는 종족이 책임져야 한다.
만약 우리의 노력이 헛되어 멸망을 막지 못한다면, 가장 먼저 멸망하는 민족은 몽골이어야 한다. 그러나 몽골이 멸망하더라도 누군가 인간의 멸망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만 남겨두셨지. 내 먼 조상님은.”
멸망에 대한 공포감만 있다. 도대체 그 멸망이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전혀 없다.
물론 쿠빌라이 카간과 마르코 폴로가 자신들의 연구를 어디에 봉인했는지도 알 수 없다.
“중세 사람들이 생각할만한 ‘멸망’이니, 지금 우리가 보기엔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정말로 인류가 끝장날 일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파악해야 해. 별일 아니라면 그렇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안심이 되지 않겠어?”
지나는 끄덕였다. 눈앞의 황제처럼 막강한 힘을 지닌 이단도 막기 힘든 ‘멸망’이라면, 거기엔 확실히 대비가 필요하다.
이거, 국내 정치문제보다 규모가 터무니없이 큰일이 주어질 듯하다.
“일단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쿠빌라이 문서」를 수집하는 거야. 우리가 지금 보유한 「문서」에서 누락된 부분을 찾아서, 거기에 또 다른 단서는 없는지 알아봐야지.”
“폐하의 뜻은 알겠지만…… 소년감찰국은 그런 일을 맡기엔 좀…….”
“나도 그건 알아. 기껏해야 이제 막 범위를 넓혀가는 조직에 그런 세계 규모의 탐사는 어렵겠지. 하지만 견하도 언젠가는 조직 규모를 대폭 확대할 생각이니, 그때는 「쿠빌라이 문서」 수집이 어렵진 않을 거야.”
“그렇다면 폐하는, 그때를 대비해 조직 개편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으라, 그렇게 분부하시는 건가요?”
“맞아. 소년감찰국은 단순히 중, 고등학생의 여론을 감시하는 걸 넘어 대학생을 비롯한 모든 국민의 여론을 수집하고 감시하는 집단으로 성장해야 해.
그리고 그런 조직망을 갖춘다면, 국민 감시 외의 다른 기능들도 수행할 수 있겠지. 「쿠빌라이 문서」에 관한 일은 그런 기능 중 하나가 될 거야.”
지나는 머리를 굴렸다. 주견하 국장이 언젠가 정치경찰실 실장이 된다면, 자신이 물려받을 소년감찰국을 아예 ‘감찰국’으로 개편하고, 그 외에 다른 국을 설치해보면 어떨까 하고.
그런 제2, 제3의 기관들이 각각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오늘 루우의 말처럼 「쿠빌라이 문서」를 찾아 나선다든가…….
거기까지 생각하다, 지나는 몸을 굳혔다.
정치경찰실은 어디까지나 태사부의 하위 조직이다. 그런데 여기에 황제의 의사가 개입한다?
그렇다면, 이는 태사의 권력에 황제가 간섭하는 모양이 된다.
황제가 정치경찰실 내부에 자신의 조직을 심어 놓으려 든다면, 태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거, 문제가 되진 않을까?
지나는 루우의 눈을 봤다. 황제는 웃고 있다.
그제야 지나는 왜 황제가, 소년감찰국 소속 일개 과장인 자신을 직접 불러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한재연이나 양수영에게 비밀로 하고 견하를 도우라는 의도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태사 미리안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이런 계획을 주견하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단 루우는, 미래를 위한 씨앗을 몰래, 지나를 통해 소년감찰국에 심어두는 것이다.
“일단 그 정도로만 알고 있어. 다른 계획이 떠오르거나 상황이 변하면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 짐은 무척 즐거웠다, 유지나 과장.”
***
하지만 루우의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리안이 안동에서 보낸 새로운 보고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건…….”
보고서를 읽는 루우의 눈길이 험악해졌다. 첨부된 사진에는 그녀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욱 기괴한 물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모르겠어.”
모르는 물체다. 모르니까 무섭다. 사람의 상상력은 종종 극단적인 가정을 향해 달려간다. 모르는 것을 봤을 때는 그 상상에 한계가 없다.
흑백사진이지만, 보고서에는 핏물 같은 질감의 구체, 라고 쓰여 있으니, 붉은색이겠지. 신체 기관들이 튀어나온 이 둥근 물체는, 루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대체 무슨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던 거지.”
하회탈 같은 얼굴의 하얀 괴물…… 아, ‘파멸인류’라 부른다고. 그게 이 구체에서 나왔을 것 같다, 라.
파멸인류, 그게 루우가 종종 목격했던 ‘얼굴 없는 하얀 괴물’들과 같은 종류인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좀 더 파악해봐야겠지만,
만약 같은 종이라면?
문제는 루우가 막연히 짐작하고 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
지금 세계 각국은 이단의 인위적 양성을 목표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몽골이나 아즈텍은 고려와 비슷한 수준에 이미 도달했다고 봐야겠지. 다른 강대국들도 곧 도달할 테고.
그렇다면…… 이런 기괴한 구체가, 연구 중인 나라마다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구체는, 단 한 마리로 연구소를 궤멸시킬 만큼 강력한 괴물을 뱉어낸다. 한 마리뿐이라면 이렇게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희생은 컸지만.
그런데 이 구체가 날뛰기 시작해서, 수천, 수백 마리를 쏟아낸다면? 그것도 어느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서 그런 사고가 터진다면?
누군가 이 사실을 알고 전 세계 동시다발적 사고를 ‘일부러’ 일으킨다면?
“쿠빌라이 카간…….”
그가 우려한 것은, 후대인들의 끝 모를 욕심이 결국 멸망의 문을 여는 것, 이었을까?
대응책이 필요하다.
고려 혼자만의 힘으로는 무리다. 적어도 인근 국가들과 협력해서, 국제적인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
루우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지난번에 왔던 유지나 과장한테, 다시 입궐하라고 해줘. 아, 한재연도 데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