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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81화 (81/541)

친려파(9)

돌파구 확대. 적의 후방으로 우회, 포위, 섬멸한다는 작전은 교과서적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4개국 연합군 사령부가 경악할 소식이 승전보와 동시에 도착했다.

-적은 항복을 거부하고 끝까지 저항.

물론 소수지만 항복을 선택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적 대부분은, 끝까지 저항했다.

총알이 떨어지면 소총 끝의 대검으로, 그마저 부러지거나 떨어뜨리면 맨주먹으로.

수류탄만 들고 돌진해와서 모조리 저승길 동무로 삼는 자도 있었다.

이 때문에 포위 섬멸을 통해 적을 글자 그대로 ‘몰살’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또다시 그런 적을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장교들도 부하들의 희생이 큰 작전을 꺼리게 된 눈치였다.

“무슨 공산주의 군대 수준으로 세뇌라도 한 건가.”

“붉은 군대든 십자군이든, 신념이 종교의 경지에 이르면 그렇게 되곤 하죠. 이 경우는……”

사령부에 있는 모두가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동주’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인가.”

“게다가 서부군은 허동주가 자식처럼 길러낸 군대입니다. ‘복수’…… 신수덕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자’고 선동하면 피 끓는 젊은이들은 우리를 향해 부모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달려드는 거죠.”

“하긴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는데 죽음을 두려워할 자식은 없겠지. 반란군의 다른 부대들처럼 금방 와해하리라 생각한 게 오산이었군.”

4개국 연합군 사령부는 일단 하루라도 병사들에게 휴식과 정비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 후에 고려령 산동의 수도인 치청을 포위한 채로, 천천히, 신중하게 진격하기로 한다.

“적의 주력 자체는 와해했지만, 치청을 방위할 병력 정도는 남아 있을 겁니다.”

“수가 적어도, 도시에서 농성하면서 맹렬히 저항하면 쉽지 않습니다.”

“피해도 만만치 않겠지.”

만약 적이 저격수를 곳곳에 심어두면, 도시 내 모든 건물의 방 하나하나를 다 확인할 때까지 전투는 끝나지 않는다.

진입 중인 아군 위로 건물을 무너뜨린다든가 하는 술수를 쓸 수도 있다.

도시 자체를 소멸시킬 정도로 파괴하지 않는 이상, 시가전은 그렇게 골치 아프다.

이제 치청만 함락시키면 내전도 끝나고, 4개국이 정상적인 통치를 시작해야 하는데, 무고한 민간인을 그렇게 대량으로 휘말리게 할 수는 없다.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전쟁에 임하는 자는 반드시 전쟁 이후의 일상을 대비해야 한다. 일상을 보내는 인간이 전쟁에 대비해야 하듯이.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일단 육로도, 바다도, 하늘도 봉쇄했으니 누군가는 반드시 살길을 찾겠지. 우리는 그런 자들의 항복을 받아서 도시 중심부로 진입, 장악합니다. 잔당은 좀 남겠지만 그렇게 되면 승리를 선언할 수 있겠죠.”

***

게레센제는 낭키아스의 수도 응천에서 따로 부대를 지휘하며 북상, 4개국 연합군 사령부와는 거리를 둔 채 치청으로 접근했다.

연합군 사령부에 파견된 장군들로부터 받은 보고는, 게레센제의 예상대로였다.

탓할 수는 없다. 지휘관들로서는 그 방법 외에 다른 걸 택하긴 어렵다.

지휘관들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지휘관으로서 기본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부하 장병의 생환이기 때문이다.

신수덕의 강요로 진격 속도를 늦춘 꼴이지만, 자존심만 생각하다 부하를 죽게 만드는 자는 사령부가 아니라 교수대로 보내야 한다. 그런 놈은 총살을 받을 자격도 없다.

“결국 누가 반란군과 협상해서 도시로 먼저 진입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됐군.”

아무도 신수덕 본인의 항복을 받아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아니, 신수덕의 사형은 정해진 것과 다름없다. 사형이 아니라면 사살하거나 총독부 건물째로 날려버리거나……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어쨌든 저들은 신수덕을 살려둘 생각이 없다.

하지만 게레센제의 생각은 달랐다.

“고려의 입장에서나 역적이지, 우리로서는 타협하지 못할 것도 없다.”

신수덕이 한족 주민들에게 벌인 짓은, 게레센제 역시 악행이라고 생각한다.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분노와 정의감을 만족시키기 위해 내 나라 군인들이 죽어야 하는가?

거기에 대해서 게레센제는 단호하게 아니, 라고 말할 수 있다.

낭키아스 군인의 죽음은 오직 낭키아스와 그 국민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게레센제는 키타이나 몽골, 고려가 모르게 신수덕에게 타협안을 제시했고, 그 응답이 왔다.

게레센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차에서 내리는 남자를 본다.

“칸을 뵙습니다.”

누구의 신하도 아닌 남자는, 딱 그 정도의 예를 표했다.

“신수덕 총독, 생각보다 결단이 빠르시군.”

사나운 눈매를 번들거리며, 신수덕은 쿡쿡 웃었다.

“망설여봤자 남는 게 있겠습니까.”

“남은 부대 전원의 무장해제, 그리고 우리 낭키아스군의 치청 무혈입성. 두 가지 조건은 확실하게 지켰겠지?”

“지키지 않을 거라면 이렇게 나오지도 않았죠. 그보다, 칸께서도 약속하신 걸 지키셔야 합니다.”

“에스파냐령 마카오까지 안전한 이동을 보장. 그리고 당신의 행방에 대해 끝까지 모르는 척할 것. 걱정은 마시게. 약속은 지킬 테니.”

잠깐이지만 조카, 루우의 나라 고려를 위해 약속을 철회하고 신수덕의 시신만 넘길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조카에 대한 사랑보다는 낭키아스의 국익이 우선이다. 그는 그런 국가원수였다.

“저도 제 안전을 위한 장치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세 번째 조건인 ‘이단 관련 연구 성과’는 마카오에서 넘겨드리겠습니다.”

이단의 위력은 이번 산동 반란군 진압 작전을 통해서 다시 한번 드러났다. 게레센제의 조카가 직접 선두에 서서 적을 돌파했다.

전차와 항공기의 전쟁터에서, 냉병기 싸움을 벌이는 ‘소녀’라니. 그것도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물론 루우 테무르가 특출나게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런 전투를 가능케 하는 것이 ‘이단’의 기술이다. 전 세계 국가들이 탐내고, 기꺼이 국력을 쏟아붓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나저나 에스파냐령까지 가서 넘긴다, 라.

마카오까지 가려면 낭키아스와 보우슈엥의 국경, 그 너머 보우슈엥과 에스파냐 국경까지 두 개의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굳이 에스파냐령까지 가서 넘기겠다는 건, 아마 국경을 넘는 중에 제거되지 않을 만한, 무언가 수단을 마련해뒀다는 것이겠지.

“그쪽이 안전을 염려하는 만큼, 우리도 당신네한테 ‘가치 있는’ 이단 기술이 있다는 보장을 받고 싶은데.”

막상 받고 보니 별다른 가치도 없는 자료였다든가, 보우슈엥이나 에스파냐령에서 입을 싹 씻어버리거나 하면 득보다 손실이 더 크다.

게레센제는 이번 일로 다른 동맹국과의 단교까지 각오하고 나왔으니까.

“이해합니다. 일단은 우리가 얼마나 ‘가치 있는’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는지 조금은 보여드려야겠죠.”

신수덕은 옆에 있던 장교에게 고갯짓했다. 장교는 병사들에게 트럭에서 상자들을 내리라 명령했다.

게레센제 측 장교와 병사들은 그 상자들을 인수해 내용물을 확인했다. 서류와, 몇가지 복잡한 기계 장치들이 들어 있었다.

참모들과 함께 서류를 확인한다.

“‘척준경 프로젝트’……? 이건……!”

게레센제와 참모들의 눈이 커진다. 이단의 능력과 생존율을 증폭시켜주는 기계 갑옷, ‘기갑사’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기술. 이걸로 고려의 이단 관련 군사력은 몇 발짝 앞서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신기술이 눈앞에 있다.

“그 정도면 믿으시겠습니까?”

“처음부터 너무 큰 걸 꺼내는 게 아닌가?”

“믿음을 드리려면 화려한 게 좋긴 하죠. 하지만 제가 에스파냐령까지 무사히 도착하면 드릴 것들은 더 대단하답니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신수덕도 안다. 이러면 게레센제 칸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신수덕이 또 제공할 무언가가 궁금한 만큼 신수덕의 안전은 보장된다.

신수덕은 검지로 자기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드릴 물건은 치청에 있고, 그 정확한 위치는 제 머리 안에 있습니다. 제가 따로 알려드리지 않으면 영원히 찾지 못할 곳이죠.”

“……알겠네.”

고문으로 알아낼 수도 없겠지. 신수덕도 그렇게 궁지에 몰릴 때를 대비해 자살할 수단쯤은 마련해뒀을 것이다.

물론 신수덕이 자살하면 그가 제공할 ‘더 가치 있는 기술들’은 날아간다.

신수덕과 측근들, 그리고 그들을 호위할 군인들은, 낭키아스 측이 준비한 차에 올랐다.

문득, 게레센제는 신수덕이 자기 사람들을 장악한 비법이 궁금해졌다. 신수덕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것처럼 비쳤을 텐데.

“부하들의 충성심이 대단하군. 죽으라는 명령, 무장해제하고 항복하라는 명령을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이던가.”

갑자기, 히죽대던 신수덕의 표정이 굳었다.

“칸께서는 ‘전우’라는 말을 아십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쏘아본다. 칸은 말없이 그 눈빛을 받아냈다.

그 정도면 이해하는 데는 충분했다.

***

1929년 9월 7일, 4개국 연합군은 치청에 입성했다.

가장 먼저 입성한 군대는 조유관이 지휘하는 고려군이었다. 다른 삼국의 군대도 뒤이어 치청에 입성. 치안을 유지할 구역을 나누고, 항복한 반란군 장병들의 무장해제를 감독했다.

“……없습니다. 시체도.”

“빠져나갔다고밖에 볼 수 없겠습니다.”

연합군 사령부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물론 신수덕을 산 채로 잡아 전범 재판으로 넘길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자결한 시체 정도는 찾거나, 총독부에 불을 지르며 끝까지 저항할 줄 알았는데, 신수덕의 행방 자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치청은 이상할 정도로 얌전히 항복했다.

“빠져나갔다, 라면 도대체 어떻게, 어디로 빠져나갔느냐가 문제겠죠.”

그렇게 말하며 루우는 장군들의 얼굴을 살폈다.

리안의 기분을 조금 알 것 같군.

원하는 성과는 잘 안 나오고, 그렇다고 해서 부하들이 게으르거나 무능하냐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 라는 이 느낌은 정말…… 좋지 않다.

“지금 가장 가능성 큰 탈출 방법은, 지하 갱도를 통한 탈출이 아닌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총독부를 중심으로, 비밀 지하 갱도가 있는지 탐색 중입니다. 폐하께선 너무 심려치 마시길.”

루우는 일단 예의상 끄덕였다.

이 자리에 있는 장성 중 4분의 3은 외국군의 장성이다. 그들이 표할 수 있는 예의도 외국 군주에 대한 예의 정도로 제한된다.

루우가 그들에게 의견을 말하는 것도 역시 외국 군주로서 하는 부탁 형식만 가능하다.

그보다도, 지하 갱도라. 동명특별시가 그렇듯 허동주나 신수덕이 치청 지하에 비밀스런 공간을 마련해뒀을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경우 분명히 어디로 도망쳤는지 흔적이 남는다.

추격을 당할 수도 있고, 적이 지하 시설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으며, 적이 목적지를 짐작할 수 있다면 미리 그곳에 가서 대기할 수도 있다.

루우는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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