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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79화 (79/541)

친려파(7)

“전쟁은 결국 일어났습니다. 평양 폭격 계획은 실행됐죠.”

“그분은, 전쟁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셨나요?”

“그것도 죄책감의 한 이유였겠죠. 하지만 그는, 혹시 그냥 계획으로만 끝날 수 있었던 일이, 자신의 돌발행동으로 현실이 된 게 아닌가, 그런 죄책감 속에 살았던 모양입니다.”

“……지나치게 곧은 사람이었군요.”

전쟁 중에, 그는 친구인 리안의 아버지를 찾아 고려로 왔다. 그리고 고려인으로 귀화했다.

친구가 계속 살아있었다면, 시간은 걸릴지 몰라도 마음의 흉터를 묻어둔 채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 리안의 아버지는, 서안평 탈환전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서안평은 가장 처절한 전장 중 하나였다. 태평천국군은 전선의 완전한 붕괴를 막기 위해 격렬하게 저항했다.

고려군은 적이 점령한 평양을 포위, 탈환하기 위해 피해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돌격했다.

효윤의 아버지는 그것도 자신의 탓이라 생각했다.

“그의 괴로움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이어졌습니다. 조국은 몽골과 고려에 의해 삼분할 되었고, 동포들은 주권을 완전히 상실했죠. 허동주가 태평천국 황실을 몰살시켰을 때는 주변도 신경 쓰지 않고 통곡했다 들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의 기준에서는 무엇 하나 지켜내지 못한, 불충 불의한 자였던 거죠. 그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리안의 백부, 미승휴는 동생의 친구를 불쌍히 여겼다. 그래서 수년간 곁에 두고 동생처럼 대했다. 고려인 여성과 결혼도 주선하고, 정착해서 마음 잡고 살기를 바랐지만…….

“실종됐다고 했죠.”

“예.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최효윤 양과, 그 모친을 남기고.”

끝내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최효윤은 그 성도 이름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백부, 미승휴는 동생 친구의 딸이 자라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아버지의 흔적을 지웠다. 효윤이 물려받은 것은 육신과…….

“그분도 이단이었나요.”

“그랬습니다. 상당한 실력자였죠. 그래서 더 무력감과 절망감이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제아무리 중대에 필적한 전투력을 갖췄다 해도, 시대의 흐름 앞에서는 그냥 흘러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요.”

깊은 산 속, 유서, 옷가지를 남기고, 효윤의 아버지는 행적을 감췄다. 자살했다고 봐야겠지.

리안은 눈을 감았다.

“최효윤 중장도, 이걸 알고 있나요?”

“아마도…… 대략은 알 겁니다.”

알면서도 3년을,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묵묵하게, 내 곁에 있었던 건가.

상관이자, 제국의 태사이자, 지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정치가이자, 그리고 동지로서, 리안은 효윤을 감싸야 한다.

그 삶에 더 이상의 상처가 있어선 안 된다.

“이야기, 들려주셔서 고마워요, 법무장관님.”

“……늙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은 했을 뿐입니다.”

공손히 인사하고 류성일이 물러나자, 방 안에는 리안만 남았다.

***

며칠 뒤, 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유지나의 보고를 읽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때 그 사람들의 감정을, 짐작해보려 한다.

말하자면 효윤의 아버지도 친려파의 길을 걸은 것이다. 양심과 조국 사이에서, 그는 양심을 택했고, 파멸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일이다.

양심과 조국, 혹은 동포들을 저울에 올려놓고, 한족 독립운동가들 눈앞에서 흔들며, 갈등하게 만든다.

옆에서 다른 사무를 돕고 있는 효윤을 흘끔, 바라본다.

효윤은 내 가족이다. 효윤에겐 특별대우를 하면서, 효윤의 아버지가 파멸한 길을 다른 이들에게 걸으라 강요한다.

이 얼마나 모순되고, 죄스러운 길인가.

시선을 느꼈는지, 효윤이 고개를 들어 리안을 본다.

“각하?”

“……그러고 보니, 효윤이 너랑 함께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네.”

“그렇…… 죠?”

“만난 지 1년 도 안 된 견하 군만 ‘누나’라고 부르게 하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해서 말인데,”

효윤의 눈이 커졌다. 약간, 그렁거리는 것도 같다.

“중장이 원한다면 사적인 자리에서는 ‘언니’라고 불러도 좋아.”

얼굴이 빨개진다. 새삼, 아, 정말 귀여운 아이였구나, 하고 느낀다. 딱 그 나이대의 여고생다운.

“대충 마무리하고, 오늘 저녁은 좀 맛있는 걸 먹자. 황궁이라고 해서 건강에 나쁜 음식을 못 만들진 않겠지.”

“……네.”

잠깐 망설였다가, 효윤은 덧붙인다.

“언니.”

***

견하는 리안의 평가가 첨부된 지나의 보고를 읽고, 매우 만족스럽다는 답신을 보냈다.

한족 독립운동가들을 발해도의 관리로 임명해서, 사태가 진정되면 바로 파견할 준비를 할 것.

단, 협력하기로 한 자들만이 아니라, 협조하지 않기로 한 이들도 강제로 절반 정도 섞을 것.

“악랄하네.”

루우는 그런 감상을 남겼다.

“제3제국이 강제로 자신을 관직에 앉히려 들면, 자결해버리지 않을까?”

견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물었다. 견하에게 그런 답신을 보내라는 의견은 재연이 낸 것이었다.

“어차피 처형되거나 세금만 축낼 목숨, 그렇게 해주면 차라리 낫지.”

“……그건 그렇다 쳐도, 그런 구성이면 발해도의 행정이 제대로 굴러갈까?”

“행정의 효율은 상관없어. 불협화음을 일으키면 오히려 더 좋지. 한족 주민과 무능한 상층부가 갈등을 일으키면서 독립 역량을 깎아 먹으면 우리는 어쨌든 이득이야.”

거기까지 재연의 답을 들었을 때, 견하도 깨달았다.

루우의 말대로 악랄한 방식이긴 하지만 제국이 피정복민을 다스리는 효과적인 방식이기도 했다.

강경 독립파와 제국 협력파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서로 암살이라도 해준다면, 어쨌든 한족의 독립 역량은 줄어드니 이득이다.

“민족문제는 그런 방향으로 수습하고…….”

견하는 기지개를 켰다. 무기를 소환한다.

검, 그리고 하얀 촉수 사이에서 애매한 형태를 취하다가, 확고하게 검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루우도 그 모습을 보다가 언월도를 소환한다. 재연은 소총의 상태를 살폈다.

멀지 않은 곳에, 적이 있다.

이미 몽골과 고려 연합군 선두는 교전에 들어간 듯하다. 보고에 따르면 반란군 최정예, 서부군과 맞닥뜨렸다.

“이단이 나서서 적을 돌파해줘야겠지.”

“황제가 전선에 나서면 사기도 꽤 오를걸.”

“폐하의 부황께서도, 급하게 움직이시려나요?”

재연의 물음에, 루우는 지난번보다는 조금 덜 날카롭게 대답했다.

“뭐, 아마 그러시겠지.”

세 사람은 차량에 올랐다. 소규모 접전이 아닌, 대규모 전장은 그들 모두 처음이었다.

“황제가 직접 전장의 냄새를 맡아두는 것도, 통치에 도움이 될 거야.”

그런 말을 하는 소녀의 몸에선, 어떻게 청결을 유지하는지는 몰라도, 부드러운 향기가 났다.

살짝 어지러워질 것 같은 기분을 누르며, 견하는 루우의 말에 답했다.

“통치도 좋지만 방심하진 마. 혹시라도 다치면 태사가 날 어떻게 질책할지 모르니까.”

하, 하고 루우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런 점에선 연인이기 이전에 엄격한 상관이구나.”

견하는 이마를 긁적였다.

***

전쟁은, 어차피 죽고 죽이는 것이니 지금까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한정된 장소에서 싸우는 것과, 탁 트인 전장에서 싸우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일단은 왼쪽에서 오른쪽, 싸움터가 눈길 닿는 곳까지 이어져 있다.

사람들이 저 멀리서부터 여기까지, 그리고 반대편 멀리까지 늘어서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임을 당한다.

사기를 북돋는 함성이 아니다. 죽이러 가는 쪽도 기괴한 비명을 지르고, 죽임을 당하는 쪽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는 비명을 지른다.

인간은 그저 짐승이 된다. 아니면 짐승이었던 본 모습을 드러내거나.

살인자도, 시체도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발광한다.

눈앞의 적만, 사람만 상대한다면 조금 나았을까?

하지만 어디서 날아오는지 감도 오지 않는 포격은,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내리꽂혀,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을 그냥, 파편조차도 아닌 무언가로 만들어 버린다.

굳이 비유하자면, 가루 형태로 빻아서 흙을 섞은 고기.

참호는 땅으로 파고든 성벽 같다. 거기에 기대고 있을 때는 근거 없는 안도가, 조금은 든다.

하지만 적을 향해 돌격할 때는 다르다. 적의 총알이나 대검에 죽임을 당하는 것도 두렵지만, 그보다도 뒤에 있는 어떤 멍청한 포병의 사격에 휘말려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온몸의 털을 쭈뼛 서게 한다.

그저 오발 하나에도 날아갈 수 있을 만큼, 하찮은 목숨값.

자신의 목숨이 별로 안타깝지도 않은 목숨이라는 사실, 너무나도 가볍다는 사실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

견하와 루우, 그리고 재연은 적의 전선을 돌파하는 공세의 선두에 참가했다.

연합 공군의 맹렬한 폭격이 적의 육신과 의욕을 망가뜨리고, 화포와 물자를 파괴했다.

기갑 전력과 이단이 집중된 선봉이 그런 적의 전선을 돌파한다.

돌파가 성공하고 나서는 진지 구축에 들어간다. 역으로 포위당하지 않도록, 적의 반격에 다시 물러나지 않도록.

진지가 구축되기도 전에 반격이 들어왔다.

견하는 촉수를 뻗어 꽤 거리가 떨어진 적 보병들을 꿰뚫었지만, 적의 서부군은 역시 최정예 부대여서인지 맹렬한 기세로 돌격해 온다.

무기를 검의 형태로 전환한다.

백병전.

적의 총검을 피한다. 힘껏 찌르려다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적의 두 다리를 뒤에서 절단했다. 돌아서면서 또 한 놈의 목.

이마를 노리는 적은 촉수로 온몸에 구멍을 뚫어준다.

비명도 못 지르고 피 흘리는 구멍투성이 시체가 된 적을 옆으로 밀어내고, 다시 베고 찌르고 뚫어버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견하는 검을 마지막 적의 몸에서 빼내며 중얼거렸다. 검은 적에게 꽂힌 후, 안쪽에서 하얀 촉수들을 뿜어내며 적의 목숨을 끊었다.

견하는 적의 시체를 참호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단의 힘도 자신의 힘이지만, 이 힘을 쓸 때마다 자신이 계속 낯설게 느껴진다.

견하보다 한두 살 정도 많은 군인이 숨을 헉헉 몰아쉬며 견하를 올려다본다. 견하는 말없이 마주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루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참호와 병사들의 상태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런 지옥을 굳이 찾아가겠다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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