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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73화 (73/541)

친려파(1)

다시 리안의 집무실에 모인 소년 소녀들은, 앞으로의 대책을 이야기했다.

이 모임은 점차 리안의 태사 최측근들의 회의 비슷하게 되어 갔다.

루우까지 참석하기 때문에, 밖에는 ‘황제와 태사의 사이가 아주 돈독하다’는 선전 효과도 있었고.

“사진과 영상의 적절한 편집, 언론의 기가 막힌 필치. 덕분에 루우의 대관식은 국민들에겐 ‘우리 황제 폐하의 국위선양’ 정도로 비치는 모양이야. 생각보다 잘 됐어.”

리안은 만족스럽게 상황에 대한 논평을 내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루우의 ‘몽골계 혈통’을 문제 삼는 세력은 없는지 지속해서 감시할 필요는 있어요.”

견하의 의견을 효윤이 보충했다.

“감시도 좋지만, 감시 자체로는 그런 소문들을 막을 수 없지 않을까. 지금처럼 선전을 계속하면서, 루우를 반대하는 세력이 파고들 여지 자체를 최소화해야 해.”

“두 사람 의견 모두 일리가 있어. 그렇게 진행하도록 할게. 그리고…… 산동 반란군 진압 작전 말인데.”

리안은 루우 쪽에 시선을 던졌다.

“약속이야 했지만, 다른 세 나라는 고려가 먼저 군을 동원하기 전에는 쉽게 움직이려 들지 않을 거야. 그런데 우리도 빨리 움직이기는 좀 힘들고…… 그래서, 루우와 견하, 두 사람이 먼저 산동에 들어가 줬으면 좋겠어.”

루우는 고개를 갸웃했고, 견하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저야 잠입이나 공작이 이제 본업이라고 하지만, 루우는 ‘황제 폐하’인데요?”

전에는 한족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는 게 목표였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전장으로 가는 것이다.

“황제가 직접 움직이면 적어도 몽골 쪽에서는 군을 움직이겠지. 그러면 키타이나 낭키아스도 가만히 있진 못할 테고. 특히 키타이는 우리가 ‘너희는 뭘 했냐. 해안에 면한 영토를 준다는 약속은 없던 일로 하자’고 할까 봐 전전긍긍할걸.”

리안은 ‘어때?’하는 시선을 루우에게 보냈다. 루우는 어깨 근육을 가볍게 움직였다. 효윤은 그녀의 전사다운 날렵한 맵시를 다시 느꼈다.

루우는 몸풀기를 멈추고 대답했다.

“슬슬 예복이 질리긴 했어. 몸 좀 풀고 와야지.”

***

8월 초의 더위 속에서 루우와 견하는 열차를 기다렸다.

루우는 어깨와 허리가 드러나는 가벼운 차림을 하고 몸을 풀고 있었다.

견하는 그런 루우의 배꼽이나 겨드랑이로 시선을 보내지 않으려 하면서 먼 철로 쪽을 응시했다.

“진짜 덥네.”

루우는 콧등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손등으로 쓱 닦아냈다. 그들이 있는 곳은 햇볕을 막을 작은 차양 하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아직은 적지인 산동의 허허벌판. 역에서 열차에 오를 수 없으니 지나가는 열차를 이렇게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데 열차를 어떻게 멈출 거야? 아니 네가 그 ‘용’ 같은 걸 소환해서 어떻게 멈춘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멈추면 탈선할 거야. 그러면……”

“‘승객’들도 위험해진다는 거지. 하지만 주견하, 나는 그렇게 무식하게 쓸어버리는 걸 좋아하진 않아. 지난번에는 화려한 걸 보여줄 필요가 있어서였고, 내가 좋아하는 싸움 형태는 아니야.”

“그래, 지난번에 분명 ‘효율적으로 싸우라’고 알려줬었지.”

“잘 기억하고 있네. 맞아. 이를테면 이렇게 말이야.”

허공에서 빛과 함께 루우의 언월도가 소환되었다. 긴 자루와 칼날 사이, 둘을 연결하고 있는 부분이 환도시에서 보았던 ‘용’의 머리와 비슷하다. 용의 ‘갈기’라고 해야 할 부분이 몽롱한 하얀 빛을 흩뿌리며 일렁인다.

길이는 루우 키의 절반 정도 될까? 루우가 한 번 휘두르자 그녀를 감싸는 긴 천 장식처럼 언월도의 궤적을 따랐다.

이렇게 보면 무기가 아니라, 먼 옛날 샤먼들의, 장식 술이 많은 지팡이 같기도 하다.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든, 나의 힘이라는 건 같아. 이 언월도는 그 용의 압축판인 셈이지.”

음, 전투 전 수업인가. 견하는 새겨듣기로 한다.

“정리되지 않은 힘으로 뚫어버리거나 짓이기는…… 네 힘 자체는 대단하지만, 세심한 작업을 할 때는 좋지 않아. 무력화는 시키되 숨은 붙여놔야 하는 적을 상대한다든가, 아군과 적이 뒤섞여 있는 상황이라거나.”

견하는 끄덕였다. 환도시 전투에서 그 점은 확실히 느꼈다. 아군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견하 혼자 앞으로 나가서 수많은 적을 상대하는 방식으로 싸워야 했다.

“그래서 이단들의 무기는 자기가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형태를 취하지. 최효윤의 경우엔 박도, 나는 언월도 같은 식이지. 음, 하지만…….”

루우는 언월도를 앞으로 뻗었다. 자루가 넓어지는 듯하더니 루우의 오른팔을 감쌌고, 칼날은 납작해지더니 총구 비슷한 형태가 됐다.

“때에 따라서는 이렇게 싸우는 것도 좋아하지만 말이야. 마찬가지로 너도 꼭 그 하얀 ‘아이들’을 냉병기 형태로 만드는 데 집착할 필요는 없어. 상황에 따라 네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촉수들을 펼쳐서 공격하는 것도 방법이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라. 견하는 손 위에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하얀 괴물들 여러 가닥을 불러냈다.

꿈틀꿈틀 움직이던 그것들은 점차 윤곽이 곡선에서 직선으로 변했다. 그러더니 ‘금속적’인 질감과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마치 그때…… 허동주를 죽이고 나서 하얀 괴물들이 ‘먹어버린’ 기갑사를 닮기라도 하듯.

견하의 하얀 괴물들이 취한 최종적인 형태는, 굉장히 독특한 ‘검’이었다.

아니, 검이라고 부를 수는 있는 걸까.

복잡한 기계 같은 길쭉한 축을 중심으로, 두 개의 칼날이 좌우로 붙어 있다. 흰 칼날의 모서리는 부드러운 곡선이 아니라, 벌집의 모서리처럼 직선으로 꺾였다.

그 하얀 살덩어리들이 대체 어떻게 변하면 이렇게 기계적인 질감을 낼까 싶은 변화였다.

“취향 한 번 진짜 특이하네.”

루우는 그렇게 짤막한 감상을 마쳤다.

멀리서 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려온다. 루우와 견하가 습격을 계획한, 반란군의 열차다.

“열차 강도는 처음이지만, 가볼까.”

루우가 먼저 달리기 시작한다. 견하는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이단의 능력으로 강화된 다릿심. 땅을 박찰 때마다 흙과 풀뿌리를 퍼 올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순식간에 기관차 근처까지 접근한 루우는 그대로 도약. 공중에서 무기를 다시 언월도 형태로 바꾼다.

기관실 천장을 뚫으려면 얼마나 힘을 줘야 하는지 가늠해본다. 안에 든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 적어도 기관사는 살려둬야 열차를 안전하게 멈출 수 있다.

계산을 끝낸 루우는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기관차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

징발된 화물열차를 운전하고 있던 기관사는, 처음엔 천장이 뚫리는 굉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공포나 경악도, 일단 상상은 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머릿속에 들어온다. 하지만 사람이 기관실 천장을 뚫고 들어와 무기를 휘두르는 광경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당연히 기관사는 눈앞의 광경이 대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뇌를 써야 했다.

소녀가 언월도를 휘두르며 기관실에 함께 탄 반란군 장교와 병사들을 도륙했다.

몸은 꼿꼿하게 세운 채 팔만 움직이는 간결한 동작. 군인들은 총을 겨누지도 못한 채 죽었다.

튀어 오른 피가 귓가를 뜨뜻하게 적시자, 그제야 기관사의 얼굴이 시퍼레졌다.

루우는 언월도의 칼날을 기관사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세워.”

뒤이어 소년 한 명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걸 보고서야 기관사는 열차를 천천히 세웠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군인들이 타고 있었다.

소총을 든 군인이 소녀에게 경례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기관사는 비로소 상황을 이해했다.

그래, 신문에서 봤다. ‘이단’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제국의 새로운 황제 폐하.

금빛으로 빛나던 눈동자가 서서히 갈색으로 가라앉는 신비한 광경을 보면서, 기관사는 몸을 떨었다. 경외감이었다.

주견하는 군인들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기관사는 일단 묶어두세요. 저쪽 사정을 좀 들어봐야 하니까.”

그러고 나선, 군인들처럼 소총을 든 소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철모 아래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는 곱상한 얼굴, 한재연이었다.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는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역시 천손민족협회 활동을 하며 단련된 걸까.

하긴 이 정도로 지칠 체력이었으면 진즉에 견하에게 찾아오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견하는 뒤쪽 칸으로 달렸다. 루우가 가르쳐 준 것을 써먹어 봐야 한다.

기관차와 화물칸 사이에는 반란군 병사들이 타는 객차가 있었고, 견하는 그 안으로 뛰어들어 이번에 새로 만든 ‘검’을 휘둘렀다.

체계적인 검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병사를 의자째로 베어내는 건 ‘이단’의 힘만 사용하면 어렵지 않다. 그렇게 너덧 명이 앉은 채 죽었다.

반란군 병사 몇몇이 총구를 들이댔지만, 견하는 언제나 그랬듯이 촉수를 뻗어 적을 끔찍한 몰골로 만들어줬다.

칼인 줄 알았던 무기가 제멋대로 변해 예측할 수 없는 공격을 하니 일반인은 당할 수가 없다.

견하는 계속 달렸다. 화물칸 앞뒤로도 병사들이 경비를 설 수 있는 난간 비슷한 자리가 있다. 거기 선 병사들 베어내고 지붕 위로 뛰어오른다.

열차가 갑작스레 서자 이변을 직감한 병사들이 뛰어내린 게 보인다. 지붕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베어낸다.

칼날 가운데 기계장치가 무슨 짓을 하는지, 루우나 효윤이 베듯 깔끔하지가 않다.

베인 단면이 거친 무언가로 갈려 나간 듯하다. 견하는 구역질조차 느끼지 않는 자신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다 죽이진 않는다. 혼란과 공포면 충분하다.

비명이 퍼지게 하는 걸 잊지 않는다.

효과가 있었는지 반란군 병사 중 일부는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고, 다른 일부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도주한다.

한재연을 비롯한 아군이 그런 적병의 등 뒤에 대고 총을 쏴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벌판 위에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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