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식(5)
몽골 제국의 2대 카간, 우구데이 카간은 제국의 수도 ‘카라코룸’을 건설하면서, 거기에 ‘카라코룸 총대주교좌’도 설치했다.
이에 따라 바그다드가 아직 몽골 제국의 영역이 아니었던 시절에는, 카라코룸이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누군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그랬던가.
바그다드 총대주교좌가 설치된 후, 바그다드와 카라코룸의 총대주교 사이에 주도권 다툼이 시작됐다.
마치 콘스탄티누폴리가 세워지고, 기존의 로마 총대주교와 콘스탄티누폴리 총대주교 간 갈등이 시작됐던 것처럼.
이번에도 비등한 권위를 지닌 두 도시의 종교지도자 사이에 다툼이 생겼다.
바그다드는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전통을 이야기하며 카라코룸에 옛 권위를 따르라 했다.
카라코룸은 신앙의 자유를 되찾아준 성스러운 카간이 계신 도시의 총대주교라며 이를 거부했다.
바그다드는 카라코룸이 세속 권력과 영합하려 든다고 비판하면서, 신앙의 터전을 마련하려고 고생했던 교부들의 뜻을 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라코룸은 네스토리우스가 있던 안티오크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바그다드도 결국 망명지 중 하나일 뿐이지 않으냐, 따지고 보면 이슬람의 중심지에 엉덩이를 붙인 게 아니냐고 반박했다.
“다행스럽게도 로마와 콘스탄티누폴리의 동서대분열처럼 화려하게 서로를 파문하는 지경까지 가진 않았어.
신의 뜻으로 이교도를 정벌하는 카간의 권위는 십이사도만큼 절대적이었으니까. 시민 중 일인자인 로마 황제와 유목 사회의 카간이 전혀 성격이 다른 군주인 것도 한몫했고.
어쨌든 역대 카간들은 자신의 권위로 갈등을 수면 아래로 찍어눌렀지.”
이후 페르시아 일대가 불교 국가화된 것도 갈등을 덮어버렸다.
바그다드 총대주교는 훌레구 울루스의 칸, 티무르 왕조 칸들의 눈 밖에 나지 않는 게 급했기에, 카라코룸을 상대로 권위를 세우는 일은 멀리 치워버렸다.
카라코룸도 카라코룸대로, 쿠빌라이 카간이 칸발리크로 천도하면서 국내문제 쪽에 더 집중하게 됐다.
이렇게 수백 년간 두 총대주교좌는 뜻하지 않은 평화를 맞이했다.
“두 도시 사이의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세계대전 이후야.
이제 크테시폰 총대주교가 된 분은 콘스탄티누폴리와 공식적으로 화해하고 두 종파 사이의 교리 차이를 줄여나가거나 서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하지만 카라코룸 총대주교는 지금까지 죽 몽골 카간들의 대관식을 해오면서, 나름대로 전통을 이어나갔어. 고대 크리스트교의 방식도 보존하면서, 다소는 몽골식이 섞인, 그런 방식으로 말이야.”
루우는 그렇게 말하며 견하의 눈을 들여다봤다.
“이번에 내가 치를 대관식은, 황제 일가의 아주 사적인 의식이 될 거야.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건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타이시(太師)의 의견도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다른 문제도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해.”
견하는 그 금빛 눈동자를 보며 묘한 긴장감을 느끼다, 침을 삼켰다.
“다른 문제라면…… 혹시 이 대관식이 로마 제국과 외교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는 건가?”
루우는 고개를 저었다.
“로마 제국은 정교회 국가고, 아시리아 동방교회는 거리가 있는 만큼 로마 제국 정부와 외교적 문제를 만들진 않을 거야.
다만 카라코룸 총대주교는 아바마마…… 몽골 카간과 나, 이렇게 두 사람에게 대관식을 치러준 것을, 카라코룸의 영향력을 확장할 기회로 볼 거야.
장기적으로 그의 권위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선을 확실히 그어둬야 해.”
장기적으로, 라면…… 역시 그건가.
몽골 카간의 계승.
리안에게 전해 들었는데, 정말로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군.
하지만 리안이나 루우가 거기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루우는 몽골 카간과 고려 황제를 겸하는, 즉 두 나라 모두의 상징적 국가원수가 되는 데서 만족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두 나라를 완전히 통합한 후, 그 통합된 나라의 군주가 되려는 것일까.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전자는 두 나라가 그냥 헌법에 공통 군주를 박아넣고, 나라 살림은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완전히 합병하는 걸 의미한다. 루우는 고려의 황제니까, 이 경우에는 아마도 고려가 몽골을 합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전까지 치른 고려가 키타이나 낭키아스의 반대를 물리치고 몽골 합병을 실행할 역량이 있을지도 의심스럽지만, 대체 루우나 리안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진심이기는 한지도 의문이다.
어떤 경우든, 루우는 카라코룸 총대주교가 자신의 야망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할 심산이다.
근대 이후 종교에 대한 세속의 우위가 확보됐으니 총대주교가 감히 대관식을 거부한다거나 황제를 파문하는 일 따위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라는 말이 있으니까.
견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교복 차림의, 겉으로 보기엔 화장과 연애에 관심 많을 미소녀가 이렇게 권력과 야망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자니, 기분이 묘했다.
물론 리안도 권력과 야망에 있어 절대 뒤지지 않는 미소녀였지만, 루우는 리안과는 조금 달랐다.
리안이 귀족적인 분위기를 풀풀 풍긴다면 지금 루우의 모습은…… 좀 더 야생적인 느낌.
권력을 추구하는 삶의 모습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아니, 두 나라 모두 군주가 ‘상징’임을 생각하면, 권력욕이 아니라, ‘명예욕’에 좀 더 가까울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문인데, 너희 아버지, 그러니까 시레문 카간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시레문…… ‘솔로몬’의 몽골식 발음이다. 실로 크리스트교도 다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견하의 질문을 받은 루우는 처음으로, 견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바마마 생각은 몰라. 내 숙부 중 한 명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지, 아니면 지금도 내 남동생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는지.
그러면 당신께선 시레문 1세가 되시고 그 애는 시레문 2세가 되려나. 뭐 그것도 아니라면 차기 황위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시선을 돌린 루우의 옆얼굴에서, 견하는 문득 ‘소녀’를 봤다. 아버지의 이해를 구하지도 못하고, 낯선 타국에서 홀로서야 했던 한 ‘소녀’의 모습을…….
그러고 보니 루우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나눠 본 적이 없던가.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한번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 보자.
“시레문 카간께선 네 생각을 알고 계시는 거야?”
루우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왼손으로 턱을 괴었다. 시선은 여전히 옆으로 둔 채.
공허할 정도로 넓은 방 안 어디에 시선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견하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루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모르겠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고려에서 제멋대로 날뛰어도 그냥 내버려 두는 걸지도 몰라. 너는 거기, 고려 황위로 만족해라. 하지만 몽골 황위는 넘보지 마라, 이런 식으로.
어쩌면 이번에 내 대관식에 와서는 아예 대놓고 ‘몽골 황위는 공주인 너에게는 넘길 수 없다’고 선언할지도.”
루우는 아주 잠깐 더, 침묵을 이었다.
견하가 잠시 루우의 종아리 근처에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도 시선을 돌려 견하의 눈을 다시 마주 보았다.
황금빛 눈동자에 아까보다 더 선명한 빛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할 거야. 숙부든, 아니면 태어날 계획인 남동생이든, 혈육의 손에 자기 피를 묻히기 싫으면 내 앞을 가로막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
재연이 소년감찰국을 찾아온 것은, 견하에겐 한가지 고민을 덜어주는 일이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고민을 던져주는 일이었다.
“일단 재연이 네 전적 때문에 학교에 보내준다거나 할 수는 없어. 나도 태사 각하나 황제 폐하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
재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감찰국에서 공식적인 자리를 줄 수도 없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숙소를 제공해주는 정도야. 항상 감시가 붙을 거고, 안전은 보장할 수 있지만, 자유는 내 소관 밖이야.”
재연은 계속 눈을 내리깐 채였다.
그를 책상 앞에 세워두고, 견하는 집무실 의자에 앉아 올려다봤다.
책상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거리가, 지금 두 사람의 마음속 거리를 보여주는 듯했다.
견하는 적어도 한동안은 고위 공직자와 지명수배자의 관계를 청산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재연은 물었다.
“태사나 황제야 그렇다 쳐도, 견하 네 생각은 어때?”
친구로서 아주 조금이라도 믿음이 남아 있는가, 그런 질문이었다.
견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네가 정말 날 친구로 생각했다면, 내가 널 믿을 거라 생각하면 안 되지. 지금 너한테 믿음을 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너는 날 친구가 아니라 멍청이로 보고 있다는 뜻이니까.”
재연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
재연은 다소나마 견하보다 조직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에 대해 경험이 많았다. 때문에 그를 곁에 두고 여러 가지 조언을 듣는 일은 꽤 도움이 됐다.
“소년감찰국 국장이라는 공식적인 직함을 갖고 있긴 하지만, 학생조직을 따로 만들고 거기 수장을 겸하는 게 좋겠어.”
“고등학교나 중학교야 내가 그렇게 관리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대학생이 아니야.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고, 어떻게 조직을 만들어야 효과적일지도 잘 감이 안 잡혀.”
“나도 천손민족협회의 청년부 조직을 어깨너머로 배운 걸 이야기해줄 수밖에 없겠지만…… 대학생인 태사나, 아직도 민주주의 계열 학생조직을 운영 중인 외무장관의 조언을 받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
후자가 순순히 조언해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넌지시 말을 붙여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섣불리 제국입헌당 당원으로 편입시키는 것보다는, 처음에는 가볍게 동아리 활동을 제안하는 형식으로 접근해야 해. 물론 각 학교의 협력을 구해야겠지.
그렇게 다과회나 독서 토론 같은 가벼운 활동부터 시작해서, 점차 캠핑 같은 적극적인 활동으로 발전해나가는 거야.”
“그런 과정을 통해 선별된 인원을 당원이나 소년감찰국에 들인다?”
“두 곳 모두에 들여야겠지. 그렇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견하 너의 중고등학교 장악을 더욱 튼튼하게 하고, 또 제국입헌당 내에서 태사를 지지하는 젊은 당원을 늘려나가는 거야.”
그런 말을 하는 재연의 얼굴을 보니 견하는 그가 보냈던 시간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천손민족협회 내에서의 파벌 싸움은 상당히 격렬했겠지.
일단 제국입헌당이라는 조직이 생긴 이상, 그리고 황제가 추대된 이상, 분명 누군가는 제국입헌당의 당수나 차기 태사를 노릴 것이다.
그렇다면 당내, 혹은 정부 내 주도권 싸움에서 최대한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그 지지자들은 적극적으로 행동할 열정이 뒷받침되는,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회의 주류를 차지할 젊은 당원들이 좋다.
당장의 이득을 노리는 정치장사꾼이 아니라, 수십 년 뒤의 강력한 권력을 생각하는 야심가라면 그런 선택을 해야겠지.
“대학교에 둘 소년감찰국 산하의 ‘조직’은…… 정말 적당한 인간을 골라야 해. 적당히 유능하고, 적당히 의욕도 있고.
하지만 절대로 견하 네 자리를 넘보지는 못할 인간. 어쩌면 견하 네가 연하라고 얕볼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바로 ‘제거’할 안전장치를 마련해둬야지.”
언제든 가동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 좋은 발상이다. 견하는 재연의 의견을 머릿속에 잘 넣어두었다.
“그래, 그럼…… 나제홍 실장 같은 인간을 구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