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68화 (68/541)

즉위식(4)

의사당 논의가 마무리될 무렵, 황제 루우를 중심으로 한 최고위층은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있었다.

바로 루우가 원했던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식 대관식.

리안도 동의했기에, 루우는 카라코룸 총대주교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카라코룸 총대주교인 레오 6세는 지금 몽골 대사관에 머물고 있다.

당장 황궁에서 대관식을 열고 모두가 축하하면 모든 게 좋게 끝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대관식을 준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의 반대에 부딪혔다.

먼저 법무성 장관 류성일이 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황제가 하늘 아래 몸을 굽혀 제사를 올리는 것은, 그 모호한 ‘하늘’로 상징되는 도덕, 윤리, 질서 앞에 겸손을 표하는 것입니다. 특정 신을 섬긴다는 의미가 아니기에, 최대한 종교적인 색채를 뺀 의식입니다.

그런데 다른 신앙 앞에 무릎을 꿇고 관을 받는 건, 제국 내 모든 종교의 평등을 추구해야 할 황제가 특정 종교를 편애한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전쟁성 장관 강태훈도 국가 위신 문제라며 반대 의견을 덧붙였다.

“몽골 카간도 카라코룸 총대주교의 대관식을 받는다고 압니다. 우리 폐하께서 카라코룸 총대주교의 대관식을 받으면, 몽골과 함께 카라코룸 총대주교의 영향권 아래 들어간다는 뜻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폐하께서 몸을 굽힐 수 있는 건, 고려의 전통과 헌법뿐입니다. 총대주교의 종교적 권위 앞에 고려의 상징께서 무릎 꿇을 순 없습니다.”

태사 미리안과 외무성 장관 안세규는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대관식을 계기로, 총대주교의 중재 아래 지금 서북부 몽골군 주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외교에는 실무자들끼리의 조정도 중요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몸짓 역시 중요하다는 걸, 장관님들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국가 원수가 개인적인 신앙을 갖는 것이 불법도 아니고, 또 이웃한 국가 원수들이 같은 신앙을 갖는 것만으로도 화해의 계기를 찾을 수 있다면, 역시 실리를 추구하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서북부 문제는 내전의 흐름을 유리하게 바꾸려고 몽골군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여기서 또 한 발짝 물러난다면 원만하게 해결되겠습니까? 또 총대주교의 중재안이라는 게 반드시 고려에 유리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대관식 다 끝나고 나서, 총대주교가 폐하더러 서북부를 양보하라고 하면, 아무리 부탁의 형태를 취한다 해도 사제의 말을 신자가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안세규의 말이 끝나자마자 반대 측에서 반박이 쏟아진다. 리안은 일단 찬성 의사만 드러내고 별다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논의가 오갈 만큼 오간 다음에야, 리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서, 저는 대관식을 열고 싶어 하시는 폐하의 마음을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봅니다. 폐하께선 지금 당장 대관식을 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잠시 미뤄두고 싶다 하셨습니다.”

반대 측에서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폐하께서 치르고 싶어 하시는 대관식 아닙니까. 그런데 미루다니요?”

“신성 제국도 그렇고 로마 제국도 그렇지만, 보통 대관식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치른다더군요.”

관료들은 리안의 말을 곱씹어본다. 잠깐 시간을 두고, 관료들 사이로 술렁임이 퍼졌다.

“가족들…… 이라면, 몽골 황족들을 초청하겠다는……?”

“하긴 지금 폐하께는 고려 내에 따로 가족이 없으니까…… 황족이라면 저쪽에서 불러와야겠지요.”

리안은 팔짱을 끼고, 입술에 힘을 준다. 입꼬리가 처진다. 그렇게 고심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쩌면, 부황(父皇)이신 몽골 카간 폐하를 초청할지도 모릅니다.”

아까보다 더 큰 술렁임이 지나갔다.

“태사…… 그렇다는 이야기는?”

“몽골 카간과 고려 황제 간, 일종의 정상회담이 우리 폐하의 첫 업적이 되겠죠.”

서북부 문제가 두 국가원수 간 회담 자리의 의제로 올라간다. 그렇다면 이것은 회담이 끝날 때까지 내각의 손도, 제국최고회의의 손도 벗어난다.

관료들과 의원들은 드높고 신성한 자리에서 옥음이 들려올 때까지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강태훈이 몸을 바싹 기울였다.

“각하, 그렇다면 이건 더 큰 문제입니다. 폐하가 몽골의 공주이심이 국민에게 알려지면, 마치 몽골의 괴뢰 정권인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가능한 비밀리에,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실 수 있도록 해야겠죠. 그러니까 대관식도 개인적으로 치르는 거고.”

“그 비밀이 지켜지겠습니까?”

“안 지켜진다면 정면으로 돌파하는 수밖에요. 고려의 황위는 몽골, 키타이, 낭키아스 황족의 직계에게는 영원히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할 겁니다.

고려 황제와 몽골 카간의 회담도, 비록 부녀간의 회담일지라도 통역을 두고 고려어와 몽골어로 이루어질 거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요.”

“……그게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리안은 눈썹을 찡그렸다.

“여러분, 우리가 안고 있는 시급한 문제는 단순히 이런 국가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산동의 일을 해결하려면 몽골 카간과 우리 폐하의 회담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대관식에 찬성하는 거고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산동. 거기서 전해진 무시무시한 학살 소식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감당할 역량이 없을 때는 더더욱.

“낭키아스와 키타이까지 엮인 복잡한 문제가 될 겁니다. 폐하는 이 나라의 칸들도 동명에 초청할 계획이십니다. 우리는 이걸 폐하 개인의 가족 행사로 철저히 감추면서도, 폐하가 세 국가원수를 상대로 유리한 협상 결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한숨을 내쉬고, 리안은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장관님들은 휴일 반납하세요.”

***

로마 제국의 신학자 네스토리우스는 사소한 문구 해석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끝에 동방으로 망명했다.

이때의 크리스트교는 로마 제국의 국교로 인정받으면서 서서히 정치 권력과 결합하는 중이었다.

그러자 당연히 ‘누가 제국 종교의 주도권을 쥘 것인가’하는 문제가 떠올랐다. 다툼이 시작됐고, 서로가 서로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파문하는 일이 반복됐다.

네스토리우스의 망명도 그런 혼란의 연장선에 있었다.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 혹은 ‘아시리아 동방교회’라 불리는 이들은 페르시아에서 그럭저럭 정착했지만, 여기서도 박해를 피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서는 조로아스터교의, 이후에는 이슬람의 박해를 받았다.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도들 중 일부가, 박해를 피해 머나먼 동방으로 떠났다. 그들은 이른바 ‘중원’이라 불리는 땅에서 포교 활동을 하기도 했고, 또 북방 초원의 유목민들 사이로 섞여들기도 했다.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는, 칭기스 카간이 거란을 참공, 중원 북부를 불태우며 ‘초원화’ 시키던 무렵에 몽골 제국의 종교로 받아들여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여러 종교의 평등을 강조하고 관용을 내세우던 칭기스 카간의 정책은, 이때를 계기로 완전히 달라졌다.

학자들은 그것이 거란과의 전쟁이 길어지고, 잔혹함과 치열함이 날로 더해가면서, ‘성전(聖戰)’이라는 이념이 필요했던 칭기스 카간의 정책 변화에 따른 것이라 했다.

또 다른 학자들은 몽골 초원에서 믿던 천신(天神) ‘텡그리’의 사제들을 견제하고 카간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를 선택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몽골 초원에서 네스토리우스파 사제들의 행동은 ‘개종’을 권유한 것이라기보다는, 몽골인들이 이미 믿던 ‘텡그리’가 크리스트교의 신을 몽골식으로 부르는 것이라 해석하고, 이를 로마식으로 ‘개혁’하려던 것에 가까웠다.

네스토리우스파 사제들은 몽골인들의 전통 신앙에 이미 크리스트교가 내재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해석을 통해 성공적으로 몽골 제국의 국교로 정착했다.

칭기스 카간 사후에는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 대신 불교를 믿는 카간들도 있었고, 또 황족 중 상당수도 불교 신자였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훌레구 울루스는 이 지역을 불교 국가로 변모시켰고, 이슬람을 약화시키기 위해 네스트리우스파 크리스트교, 즉 아시리아 동방교회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이는 이후 불교 광신도였던 티무르의 시대를 지나면서 신흥 이슬람 제국의 대대적인 반란과 세계대전의 불씨가 된다.

어쨌든 당시에는 훌레구 울루스의 정책에 따라, 바그다드에는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총대주교좌가 설치됐다.

바그다드 총대주교는 훌레구 울루스의 칸을 설득해 로마 제국과 동맹을 성사시키고, 투르크인의 공격으로 멸망의 위기에 빠진 로마 제국을 여러 번 구해냈다.

이는 에티오피아의 콥트 교회, 로마 제국의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가 화해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대전에서 신흥 이슬람 제국의 야욕을 분쇄한 동맹도 이 화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로마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하면서 고대 도시 크테시폰을 재건했다. 전쟁 동안 콘스탄티누폴리로 망명했던 바그다드 총대주교는 크테시폰으로 옮겨갔는데, 이것이 현 크테시폰 총대주교좌다.

바그다드는 이슬람 전쟁범죄의 상징으로 취급받아, 훌레구 울루스가 파괴한 이후 다시 한번 철저하게 파괴됐다. 지금은 거주 자체가 금지돼 작은 마을조차 남아 있지 않다.

“여기까지 들으면 마치 크리스트교 세계의 굳건한 단합과,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화려한 부활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아?”

“그래. 그렇게 들리네.”

루우가 긴 설명 끝에 물음을 던지자, 견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세린전에 있는, 황제를 알현할 수 있는 이 방은 견하도 처음 들어와 본다. 세린전의 몇몇 방들은 리안도 감히 쓸 생각을 못 했던 곳이다.

이렇게 오로지 주인만이 문을 열고 개인적인 손님을 들일 수 있는 곳이니까.

현통전이나 자운전에 있는 화려한 옥좌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황제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옥좌에 루우는 앉았다.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서 아직 갈아입지 않은 건지, 루우는 여전히 교복 차림이었다.

치마 아래로 늘씬하게 뻗은 다리 끝에, 양말 신은 발이 다소곳이 모여 있다.

그 다리로 시선을 주지 않게 조심하면서, 견하는 루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쉽게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종교는 결국 인간의 정신 활동인 만큼, 또 다른 인간 정신의 활동인 정치, 즉 권력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

소수 종파로 박해를 받을 때 가장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참 아이러니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