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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61화 (61/541)

제국최고회의(7)

수영을 집무실에서 내보내고 나서, 견하는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양치하면서, 이번에는 전쟁범죄 조사 문제에 생각을 기울인다.

리안의 명령은 분명 군에 대한 숙청 작업의 일부겠지. 정말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그 대상이겠지만, 그중에서도 먼저 처리될 인간은 확실히 있다.

무능한 자, 만족스러운 충성을 보이지 않은 자, 군공의 대가로 분에 넘치는 권력을 바라는 자…….

고려국민당이 군의 반발을 짊어지기로 했다. 이건 좋은 일이었다.

숙청에는 반발과 함께 공포심이 따른다.

-숙청이라니, 너무하다!

이런 반응 뒤에는, 다음과 같은 본심이 숨겨져 있다.

-제발 나는 숙청 대상이 아니었으면.

반발을 고려국민당이 가져가면, 공포는 소년감찰국이 얻는다. 소년감찰국은 이 기회에 철저한 정보력, 무자비함 혹은 냉혹함이라는 이미지를 얻도록 한다.

그리고 정의를 실현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열광은 고려국민당과 ‘나눠 갖는다’.

입을 헹군 물을 세면대에 뱉어냈다.

“그렇지만,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겠지.”

견하는 책상 앞으로 걸어가 두툼한 서류 뭉치를 집어 들었다.

제국 정부의 문장이 찍힌 그 문서들은, 몇 달 전 어느 골목에서 한재연이 들고 있던 것과 거의 같은 것이었다.

세계대전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고려 안에서 멀쩡히 살아가는 태평천국 군인들의 명단.

그들 중에는 세계대전 이후 어쩌다 보니 귀국을 포기하고 눌러앉은 자도 있고, 전쟁이 끝나고 본국의 경제 사정이 나빠지자 먹고 살기 위해 고려로 다시 들어온 자도 있다.

“어느 쪽이 됐든, 소년감찰국이 공평함을 내세우려면, 이들에게도 같은 일을 할 수밖에 없어.”

때론 철저한 공평함이 공포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공포는 지금 견하가 가장 얻고 싶어 하는 자원이었다.

“하지만 이래서야…… 그때 재연이가 한 일과 결과적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잘못 끼운 단추의 시작점을 더듬어 찾아 나가듯 생각하다, 견하는 그 생각을 접어두고, 서류를 다시 내려놓았다.

아직은 먼일이다. 아니 그렇게 두고 싶었다.

***

“루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리안은 견하와 효윤의 보고를 받으며, 전선에서 올라온 보고들을 책상 한편으로 치웠다.

서부군의 저항은 생각보다 훨씬 격렬했다.

남부 전선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조금씩 밀어내고는 있었지만, 반란군은 아예 자포자기라도 한 건지 퇴각할 때 머물렀던 거점 주변을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그 때문에 민간인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이 이야기들은 조금 있다가 임시 제국최고회의와 혁명군 사령부에서 다시 논의해야 할 것들이었다. 견하와 효윤에게는 지금 말해봤자 ‘내가 이만큼 고민이 많다’ 수준의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논의가 마무리돼야 이 두 사람에게도 뭔가 일을 맡길 수 있겠지.

그러니 지금은 견하와 효윤의 보고를 듣자.

“네. 저도 루우가 그런 말을 한 의도에 대해서 몇 가지 짐작은 하지만, 확실하게 소년감찰국의 방침을 정하려면 먼저 각하께서 어떤 생각이신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내 생각이라…….

견하가 소년감찰국을 만들게 한 것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열너덧 살짜리 아이가 성년이 되는 데에는 5, 6년밖에 안 걸린다. 따라서 지금 이 시기에 확실하게 태사 미리안에게 충성하도록 장악해 두면, 그들에게 투표권이 생겼을 때 큰 힘이 된다.

허동주도 그럴 생각으로 천손민족협회에 소년부를 뒀겠지.

만약 루우 또한 허동주, 미리안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면,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녀 역시 ‘황제라는 자신’을 학생들에게 알리고 지지해줄 세력을 만들어볼 심산일까.

“노골적으로 우리를 방해하기보다는 우리의 정책에 함께 묻어가겠다는 생각인 것 같아. 뭘 하는지 계속 지켜볼 필요는 있겠지만, 루우가 지나치게 엇나가지만 않는다면 어느 정도 협력해줘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어.”

“그 말씀은…… 앞으로 황제와 태사 사이에 협조적인 관계를 만드시겠다는 건가요?”

“그래. 루우는 일단 고려로 들어올 때는 안세규를 이용했지만, 이제는 안세규의 영향에서 벗어나 우리 쪽에 협력을 구할 생각인 것 같아. 그러면서도 그저 허수아비 황제로 머물진 않으려고, 자신의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려 하겠지.”

견하는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리안은 그런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바빠서 같이 시간을 보낼 틈이 잘 나지 않는 게 아쉬웠다. 같이 캠퍼스 산책이라도 하고 싶은데.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고자 한다. 그럼, 우리는 어디까지 루우의 세력 확장을 용인해 주면 될까요?”

리안은 생각을 털어내고 견하의 질문에 답했다.

“일단 내 목표는 고려 제3제국의 정계에서 제1세력의 자리를 굳히는 거야. 그러기 위해선 안세규와 루우 사이를 갈라놓고, 루우의 권위를 이용해야 해. 루우도 처음엔 여기 협력하겠지만, 어느 정도 자기 세를 불리면 나와 안세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할 거야.

안세규도 2대나 3대 의장 자리에 도전하려 들겠지. 나와 안세규가 의장직을 사이좋게 주고받는 동안 루우는 황제의 권력을 굳힐 테고…….”

리안은 손끝으로 이마를 만졌다.

자신이 생각해도 모호한 표현밖에 내놓을 수 없었다.

‘권력’이란 분명히 어딘가엔 있는 것이지만, 저울에 달아보려 하면 흩어진다.

“그러니 루우가 나와 안세규 사이에서 균형자가 될 만큼 성장하는 건 막아야 해. 뭐 구체적으로 그게 어디쯤인지 말하긴 어렵지만, 견하 군이 곁에서 루우를 지켜보면서 계속 보고를 올려줘.”

견하도 관자놀이 부근을 눌렀다. 루우 문제는 다시 자신에게 돌아왔다.

어쨌든 안세규와 리안 모두 루우를 견제한다.

루우가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는 걸 용인하되, 다시 안세규와 손잡고 리안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안세규의 영향력도 확실히 줄여야 하고.

내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권력의 배분을 두고 이렇게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간다.

내전이 완전히 끝난 뒤에는 대체 얼마만큼 치열한 권력 다툼이 기다리고 있을까.

“알겠어요. 일단은 지켜보도록 할게요.”

***

견하는 리안의 집무실을 나왔다. 뒤따라 나온 효윤과 함께 복도를 걷는다.

“보고해도 괜찮았던 걸까?”

반쯤은 자기 자신에게 되묻는 효윤의 질문에, 견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가 하지 않았으면 네가 결국 하지 않았을까.”

“그랬겠지만…….”

견하는 효윤의 얼굴을 바라봤다. 학교 친구라는 사적인 관계와, 권력 구조상 견제할 수밖에 없는 공적인 관계 사이의 거리감.

그 거리감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건, 견하도 마찬가지였다.

충고가 필요할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마음에 어떤 갈등이 있든 효윤의 최우선 순위는 리안이니까.

“견제한다고 해서 당장 적대관계가 되는 건 아니니까. 서로 용인할 수 없는 선만 넘지 않게 하면 돼.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아봐야지.”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서로 적대할지도 모른다는 문제가 아니야.”

견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이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뭐 정치가들이 서로를 견제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하지만 나는…… 과연 루우와 각하의 관계를 일반적인 정치가들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거야.”

“일반적인 정치가끼리의 견제로 볼 수 없다는 말이야?”

“주견하. 루우는 황제야.”

그제야 비로소 견하는 효윤이 하고 싶은 말을 이해했다.

그랬다. 루우는 황제가 된다. 실질적인 권력의 배분이야 어찌 되든, 그녀는 곧 모든 고려인의 주군이 된다.

“선거를 하고 거기서 의장을 선출한다 해도, 그리고 거기서 다시 황제를 추대한다고 해도, 황제는 그런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

맞는 말이다. 황제, 군주는 그냥 제도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천명’이라든가 하는, 모호한 무언가에 발을 걸친 존재다. 이걸 미신이라고만 치부하면 절대 합리주의자라 할 수 없다.

미신이 실제로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고, 사람이 그 마음을 따라 실제로 힘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미신은 사실이 된다.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우습게 보는 것은 몽상가나 할 일이다.

군주의 권위에는 ‘신하’인 미리안은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루우와 리안이 대립한다고 해도, 결국 불리해지는 쪽은 리안이다.

제국최고회의와 리안의 자리는 국민의 지지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루우의 권위에도 기대고 있다.

아니, 애초에 국민의 지지는 루우에게 국민들이 바치는 지지이기도 하다.

루우가 당장 리안을 해임하진 않겠지만, 리안에게 어떤 정치적인 위기가 닥쳐온다면, 그때도 그럴까?

루우가 국민의 요구라는 구실로 리안에게 태사나 의장직에서 물러나라 말한다면 리안은 그걸 거부하고 버틸 수 있나?

루우를 감금하고 완전히 허수아비를 만들거나 폐위할 순 없나?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지금 황위엔 루우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

안세규가 우려하던 것처럼 루우가 직접 전제 황권을 휘두르려 마음먹고 세를 불린다면…… 지금으로서는 뚜렷한 대응책이 없다.

루우가 정식으로 즉위하고 뭔가 일을 꾸미기 전에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루우는 미리안을 황제로 만들려던 계획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까.

목덜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허동주나 반란군이 그걸 이용하는 게 아니라, 루우가 그걸 이용하려 든다면?

안일하게 생각할 틈이 없다.

황제의 권력은, 일단 철저하게 봉쇄해야 한다.

“견하야?”

“미완성된 생각이라, 나중에 건의할 거였는데, 지금 바로 해야겠어. 다시 각하께 가자.”

견하는 효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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