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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59화 (59/541)

제국최고회의(5)

셋이서 했던 점심 약속은 반장인 양수영에 후배 유지나까지 끼어, 다섯이서 함께하는 다소 활기찬 모임이 되었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는 수영이 집에서 가져온 과자를 후식으로 먹자고 했다. 루우의 적극적인 동의로 운동장 근처 그늘진 곳에서, 남은 점심시간 동안 작은 다과회가 열렸다.

나무 그늘, 소녀들이 다리를 편하게 뻗고 앉은 가운데, 견하도 자리를 잡았다.

분위기상 이 다과회를 반대할 수는 없었지만, 견하는 할 수 있다면 반대하고 싶었다.

일단 수영은 천손민족협회 출신이고, 지금도 어쩌면 비밀리에 연락을 유지하는지도 모를 사람이다. 강제로 소년감찰국에 집어넣긴 했지만, 계속 다른 조직원들을 통해 감시하는 중이다.

혹시라도 천손민족협회의 잔당과 접촉한다면 그녀를 미끼로 잔당을 캐낼 생각이다. 그래서 일단은 풀어놓고 있다. 그런 그녀가 루우나 효윤 같은 고위급 인사와 접촉하는 건 다소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수영 선배, 제가 도와드릴게요.”

“고마워. 손놀림이 굉장히 야무지네.”

유지나는 수영과 저렇게 느긋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물론 ‘보여주는’ 모습이 그렇다는 거지, 저 사이에 얼마만큼의 신경전이 오가는지는 견하도 모른다.

견하는 지나를 꽤 믿음직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만, 지나가 실수로 중요한 정보를 수영에게 흘리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정보는 루우나 효윤, 리안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

견하는 소년감찰국을 만들어 가면서, 루우나 리안의 손이 닿지 않는 견하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얼마 전부터 하기 시작한 생각이다.

처음 시작할 때 시험 삼아 쓰게 했던 보고서는, 누적되자 꽤 많은 정보를 전해주었다. 그 안에 담긴 정보 자체도 쓸만했지만, 그 보고서를 쓴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자연스레 묻어난다는 점이 더 유용했다.

견하는 그걸 통해 누가 믿을만하고 쓸만한 인간인지 대충 걸러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다소 다듬어 새롭게 편입한 인원들에게도 적용했다.

요즘 수영에게선 천손민족협회의 조직 관리법을 조금 들어보고 있다. 이제는 소년감찰국뿐만 아니라, 아마도 구 민국 정부, 그러니까 사회민주당, 공산당, 고려국민당도 소년 조직을 만들어 뿌리내리려 할 것이다.

그런 세력들에게 대항하려면, 적어도 그보다 못한 조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루우가 과자를 우물거리며 묻는다.

“하는 일은 잘 돼 가?”

그냥 무심히 던진 물음이었지만, 견하는 그 질문이 던져진 순간 효윤, 수영, 지나의 귀가 전부 견하의 입에 집중한다는 걸 느꼈다.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정도라, 잘 돼 가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전체적인 평가를 하긴 어려워.”

이 정도가 견하가 ‘안전하게’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이겠지. 루우는 말없이 물을 한 모금 마시다가, 이번에는 지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후배님 생각에는 어때? 선배랑 손발은 잘 맞아?”

“아, 저야 뭐, 간신히 견하 선배한테 폐를 끼치지 않는 정도죠…….”

“기특하네. 생각보다 까탈스러운 남잔데.”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고는, 다시 무심하게 한 마디를 얹는다.

“태사부, 그 아래에 정치경찰실, 그리고 그 아래에 소년감찰국이 있는 거던가?”

“그렇지.”

“하지만 정치경찰실의 지시를 따로 받고 움직이는 건 아니지?”

견하는 대답하지 않고, 루우가 그렇듯이 그냥 웃었다. 이건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

“지금 태사의 지시로 어떤 일을 받아서 움직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소 여유가 있다면 부탁 하나 해도 될까?”

“부탁? 어떤 건데?”

“지금 당장 부탁할 거리가 있는 건 아니야. 다만 나중에 부탁할 거리가 생겼을 때, 들어줄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거지. 그때는 황제 후보가 아니라 황제겠지만.”

견하는 머리를 굴린다. 분명히 소년감찰국은 정치경찰실 아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견하는 정치경찰실장의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견하와 리안의 특수한 관계 덕분에 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말하자면, 상당히 ‘독립적’인 조직이다.

루우는 그 틈을 파고든 것이다. 정치경찰실에서 자유롭다면 태사부에서도 자유롭다. 그렇다면 루우는 황제가 됐을 때, 태사부와 정치경찰실을 거치지 않고 소년감찰국에 직접 자신의 의사를 전할 수도 있다.

대체 무엇을 노리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지금 이렇게 다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했다는 건 리안의 귀에 들어가도 상관없다는 말이지. 아니, 오히려 효윤을 통해 들어가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가.

그럼 이건 리안과 합의가 된 행동인가, 혹은 리안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나 견제 같은 걸까?

물론 견하는 리안의 신뢰와…… 애정을, 배신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대답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태사 각하께 이야기는 해볼게.”

루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짧은 다과회는 다시 소녀들을 재잘대는 이야기로 채워졌다가, 점심시간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끝났다.

***

오후 수업은 루우의 말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보며 보냈다. 견하는 학교가 끝나고 지나, 수영과 함께 소년감찰국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날 밤’ 이후 견하는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는 아예 집무실을 자취방처럼 썼다. 아니면 황궁, 또는 리안의 ‘기숙사’로 가거나.

가방을 대충 벗어놓고 소파에 앉는다. 수영도 앉았다. 지나는 자기 집무실에서 대기.

오늘은 수영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 볼 생각이었다. 지금은 경계하고 있지만, 천손민족협회 출신들을 정말로 전향시켜 소년감찰국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 소년감찰국의 조직은 훨씬 튼튼해질 것이다.

물론 그 극단적인 민족주의나 파시즘적 성향은 세척할 필요가 있지만. 정 안되면 도저히 쓸 데가 없으니 역시 제거해야겠지.

견하가 입을 열려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빼꼼 들여다보는 사람은 지나였다.

“선배, 아니 국장. 손님이 왔어요.”

“손님?”

“그…… 좀 거물인데. 바로 들여보낼까요, 아니면 맞이할 준비를 하는 동안 대기시킬까요?”

“누군데?”

“안세규 외무장관이요.”

안세규가 왔다? 의외의 인물이 언급되자 견하는 놀랐다.

대체 왜 구 민국 정부의 수장이 나를 찾지?

사전에 연락도 없었다. 리안이나 효윤, 루우 모두 안세규가 방문할 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리안과 효윤은 그렇다 쳐도 루우까지…… 그렇다면 루우는 안세규가 하는 일을 모른다는 건가.

안세규가 그만큼 보안에 신경을 쓴다는 뜻인지, 아니면 루우와 안세규 사이의 거래에 이상이 생겼다는 뜻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성급히 단정해선 안 되겠지만, 어느 쪽으로도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는 있겠다.

“바로 들어오시라고 해. 격식을 차려서 맞이하는 건 그쪽도 기대하지 않았을 거야.”

수영이 말없이 견하의 얼굴을 본다. ‘그럼 나는 오늘은 그만 갈까?’하고 묻는 얼굴이었다.

“반장도 여기 있어 줘.”

안세규가 들어오는 짧은 시간 동안 견하는 생각했다. 만약 안세규가 지금 자신이 맡은 외교 업무에 대한 일로 견하를 찾아온다면, 리안이 모를 리가 없다. 먼저 리안과 이야기를 하고, 리안이 견하에게 전해주고, 그다음에 안세규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연락도 없이 안세규가 찾아왔다는 건 외교 업무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뜻. 아마…… 고려 제3제국의 권력 질서에 관련된 일이겠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일까? 리안을 배신하고 자신 쪽에 붙으라는 회유? 아니면 루우를 설득해서 구 민국 정부 세력과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도록 협력을 요구할까?

하긴 오늘 루우의 행동을 보면, 루우 역시 ‘황제만의 독자적인 세력 구축’을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짧은 시간 동안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안세규가 들어왔다.

“연락도 없이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정말 미안하게 됐네, 주 국장.”

평온하게 이야기하는데도 온 방 안을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큰 키, 뿔테 안경. 한때 ‘정부의 수장’이었던 자 다운 위풍이다. 견하는 일단 친절한 미소를 보이기로 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대접해드릴 만한 게 없어서…….”

“아, 염치없게 그런 것까지 바랄 수는 없지. 그리고 오래 있을 것도 아니니까. 오늘은, 좀 개인적으로 부탁할 게 있어서 이렇게 국장을 찾아왔네.”

“저한테 부탁이라니……. 일단 앉으십시오.”

견하는 소파에서 상석을 안세규에게 양보했다. 그러고는 수영과 나란히 다른 소파에 앉았다.

“그쪽 아가씨는……?”

안세규는 주견하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 듯했다.

“업무 특성상 구체적으로 맡은 일을 밝히긴 어렵지만, 소년감찰국에서 나름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정중하게 말하긴 했지만, ‘연락도 없이 찾아온 주제에 내 방에 내가 있으라고 허락한 사람까지 간섭하진 말아라’라는 이야기였다.

무조건 고개 숙이고 들어갈 만큼 안세규와 주견하 사이가 돈독하진 않으므로.

굳이 말하자면 견하는 태사 측 사람이니 안세규에게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낸다 해도, 안세규는 할 말이 없다.

안세규가 고개를 끄덕인 것을 확인한 견하는 흘끔, 수영을 곁눈질했다.

그러고 보니 구 고려민국 임시정부와 허동주의 천손민족협회는, 고려의 정치 무대에서 이념적으로 가장 대립하는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구 제국 정부가 둘 중 어느 쪽이든 타협의 여지가 있었던 반면, 이 두 세력 사이엔 절멸 말고는 다른 관계를 만들 수가 없다.

진지한 얼굴로 안세규의 말을 들어줄 태도를 보이면서, 견하는 생각했다.

수영이나 천손민족협회 출신자들을 써먹을 곳이 떠올랐다.

이 안세규, 더 나아가 구 민국 정부 측을 견제하는데 써보면 어떨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써먹을지는 일단 안세규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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