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52화 (52/541)

용과 늑대와 사슴(5)

정오가 되기 전에 의료진은 허동주의 시신을 수습했다.

상반신의 뼈가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형물을 채워 넣어 그럴싸한 모양을 갖추게 했다. 여기저기 꿰매고 피를 닦아내는 등의 작업을 마치자, 마치 잠든 것 같은 허동주의 시신이 완성됐다.

“누가 옷을 입히라고 했지. 나는 장례를 치르라고 한 적이 없는데.”

리안은 수습된 시신을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도는 격노에, 의료진은 손을 떨며 시신에서 옷을 벗겨냈다.

시신이 나체가 되자 비로소 리안의 눈에서 노기가 가셨다.

“아직 강 건너편으로 안 간 기자들 있으면 들어오라고 해요.”

감이 좋은 기자들은 여전히 남아서 더 자극적인 기삿거리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태사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기자들은 허동주의 시신을 카메라에 담았다.

시신은 눈을 위로 홉뜨고, 입도 반쯤 벌어져 있었다.

“기사를 낼 때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저 얼굴이 선명하게 나오도록 해서, 가리는 구석 하나 없이 내보낼 것. 가짜 시체라느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죠.”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기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때 권력 서열 2위, 그리고 1위에 도전해 나라의 반을 차지했던 자의 초라한 나체 시신.

이것보다 더 반역자의 말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어디 있을까?

그렇게 찍힌 사진은 신문사로, 고려 내에 있는 외국 기자들에게로, 각국 대사관으로 퍼져나갔다.

리안이 얼마나 잔인하고…… 강철같은 의지를 가진 여자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시체는 이대로 황궁 앞 광장에 전시할 겁니다. 이런 꼴이 되기 싫으면, 서둘러 항복하라고 적에게 전하세요.”

그렇게 명령을 내려놓고, 리안도 강을 건너 수도로 돌아갔다.

***

오후가 되자 호외가 하나둘 나왔다.

신문팔이 소년들이 “호외요!”라는 상투적인 문구를 외쳤고,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냈다.

하늘에 떠서 용을 조종하는 이단 소녀의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사진이 1면에 실려 있었다.

황제의 귀환.

소녀는 용의 혈통이라는 전설처럼, 기이한 이단의 능력을 발휘했다.

거만한 황족이 아니라, 환란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몸소 전선에 나선, 공주.

시민들이 모두 이런 선전을 믿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황제가 없던 제국이 황제가 있는 제국으로 변해간다. 황제 후보자의 귀환 소식은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선거를 앞두고 싱숭생숭한 사람들의 마음에 균형을 잡아줬다.

조금 뒤에 나온 신문들은 허동주의 시체 사진을 함께 실었다.

사람들은 검열되지 않은 그 시체 사진에 섬뜩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황제께 반역하니까 그런 꼴이 되지’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섬뜩함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그 시체는 시체가 될만해서 시체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보다 좋은 소식, 마음을 기댈만한 소식에 좀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저녁쯤 되자 사람들은 친구끼리, 직장 동료끼리, 가족끼리 모였다. 그들은 내전이 끝나리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배급제가 끝나고 경제가 정상화되리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곧 그들의 황제가 될 아름다운 공주님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설령 내전이 쉽게 끝나지 않더라도 국민의 불만은 이제 정부를 향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감히 황제를 따르지 않고 계속 저항하며, 나머지 국민의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반란군을 원망할 것이다.

리안은 집무실에서 두 손을 입 앞에 모으고 그런 상념에 잡혀있다가, 견하와 효윤을 호출했다.

“루우의 ‘고려 혈통’을 강조할 방안을 좀 생각해봤으면 해. 누가 먼저 손을 쓰기 전에 말이지.”

***

허동주 시신은 아무런 방부처리 없이, 6월의 태양 아래 광장에 방치됐다.

썩어가는 냄새나 벌레를 막는 조치도 전혀 취해지지 않았다. 시체가 뒤틀리고 가스가 차오르는, 시체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현상도 절대로 수습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조치는 나름의 효과를 거뒀다. 그래도 사자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인간부터, 숨어 있던 추종자까지 양지로 기어 나왔다.

설마 애도까지 못 하게 막겠는가 하는 기분으로 튀어나온 자도 있었고, 죽음을 각오한 자도 있었다.

물론 후자의 예상이 좀 더 진실에 가까웠다.

이 색출작업의 선봉에는 소년감찰국 국장, 주견하가 있었다. 물론 주견하가 직접 드러난 건 아니다. 아직 일반 시민들은 소년감찰국 같은 기구가 있는지도 모른다. 주견하가 활용한 인원도 군에서 뽑아낸 인원이었다.

다만 직접 행동 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조치들은 소년감찰국에서 맡았다.

6월 7일, 허동주가 죽은 지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소년감찰국의 조직은 조금씩 확대될 기미를 보인다.

“선배, 전에도 이런 일 해본 적 있는 거예요?”

유지나의 질문에 견하는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냐는 표정을 돌려주었다.

“아니 궁금할 수도 있지 표정이……. 그냥, 너무 익숙하게 이런 작업을 하시니까요.”

지나가 말하는 ‘이런 작업’이란 체포된 사람들의 자녀를 조사하고, 다시 협박과 회유를 통해 소년감찰국에 순종하도록 끌어들이는 것을 말했다.

“기분이 이상하네요. 제가 당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한다는 게. 이렇게 해서 저도 선배랑 공범이 되는 걸까요?”

함께 소년감찰국 사무실의 책상에 앉아, 시선은 계속 서류를 들여다본다. 그러면서도 지나는 그렇게 감상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말대로, 지나 자신을 비롯한 소년감찰국의 소년 소녀들은 자신들이 소년감찰국에 들어올 때 받은 방법들을 그대로, 허동주 추종자들의 자녀들에게 적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견하가 그들을 자신의 부하로 삼았듯, 그들은 새로운 인원을 후배로 들이게 된다. 설령 지금 리안의 정부와 주견하에게 불만이 있던 자라 해도, 이런 일을 거치다 보면 같은 조직 내 ‘공범’이 되기 마련이다.

“부정하진 않을게.”

견하는 짧게 대답했다.

“뭔가 음험한 사람 같으면서도 또 이럴 땐 솔직하니까, 선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나는 한숨을 폭 내쉬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방과 후 아주 잠깐 사이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기에 집중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

견하는 그런 소녀의 옆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서류로 눈길을 내렸다.

음험하다는 지나의 평가는 옳았다. 견하는 지나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 단계 앞선 일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새로 들어온 조직원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구축해서, 그들을 기존 조직원들의 하부로 삼는 게 아니라, 기존 조직원들을 감시, 견제하게 만들 셈이었다. 물론 지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누군가 몇 달 전의 견하에게 “충성심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면, 견하는 “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견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견하는 “‘배신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견하는 배신하지 않는 것보다, 배신하지 ‘못하는’ 상태가 더 믿을만한 충성심의 표출이라 본다. 그럼 무엇이 ‘배신하지 못하게’ 하는가?

그것은 바로 감시와 견제다. 언제든 충성심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감시, 그리고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는 견제의 원리.

견하는 묵묵히 일해나갔다. 어쩌면 지나는 이런 생각까지 들여다보았을까?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되뇌며, 견하는 무언가 중독된 듯 자신의 조직을 확장하고 내실을 다지는 일에 몰두했다.

***

날씨는 점차 더워졌다. 병사들은 이제 얼지 않은 몸으로 전투에 나설 수 있었다.

당장 허동주의 사망 소식을 직접 접한 남부 전선에서는 적지 않은 수의 부대가 전선을 이탈해 후퇴하거나, 투항해왔다.

혁명군 사령부는 이들 중 고위 장교들은 가택연금에 처했고, 병사들은 무장해제 후 전역시켰다. 집이 적지에 있는 병사들은 지원금을 주고 임시로 직업과 거처를 구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남부 전선에서 반란군의 전력을 크게 깎아낸 덕분에, 혁명군은 전선을 대폭 전진시킬 수 있었다. 압록강 도하는 ‘부드럽게’ 이루어졌다.

청천강 전선, 즉 개마고원을 넘어 삼한반도가 좁아지는 곳까지 진격했다.

혁명군이 그쯤 진출할 무렵엔 반란군도 혼란을 수습했는지 방어선을 구축하고 저항했다.

그리고 슬슬 한두 기씩 보이기 시작하는 기갑사의 존재가 더 이상의 전진을 방해했다.

혁명군 사령부의 얼굴은 그리 밝아지지 않았다.

“적이 ‘혼란을 수습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지휘계통이 재확립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지요.”

“다시 말해, ‘허동주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자가 출현’했다는 의미겠군요.”

“예. 유력한 후보는, 산동총독 신수덕입니다.”

전쟁성 장관 강태훈의 추측이었다.

리안은 눈썹을 찌푸렸다.

산동에 있는 자가 바다 건너 전선에 이 정도의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까다로운 상대임에 틀림없다.

또 산동에 있다는 것은, 리안이 어떻게 해보기엔 너무 멀리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허동주 때와 달리, 리안은 이 신수덕이라는 인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대체 누구기에 후계자 다툼도 없이 이렇게 반란군 잔여 세력을 휘어잡은 거죠?”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엔 허동주 부대에 소속된 이등병에 지나지 않던 자였습니다만, 전쟁을 거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습니다. 허동주 휘하에서는 꽤 고참이라고 볼 수 있죠. 갓 마흔을 넘겼겠지만…….”

“어떻게 이등병이 다른 이들을 제치고 두각을 나타내며, 총독까지 해먹는 겁니까?”

“세계대전 당시에도 상당한 공을 세웠습니다만, 전쟁 이후에 더 화려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한족 분리주의자들의 검거로 시작했답니다. 여기서 여러 가지 정보를 캐내는 고문 기술을 높이 평가받고, 실제로 그 정보들로 공도 많이 세웠죠.

테러나 폭동이 일어났을 때 그걸 진압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런 계획을 예방, 저지하고, 더 나아가 한족 분리주의 조직들의 뿌리를 흔드는 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합니다.”

안세규가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그런 자가 고려 본국 내에서 활동하지 않은 게 구 민국 정부의 축복이었군요.”

강태훈은 그 말에 별 반응 없이, 덤덤하게 자신의 추측을 나열했다.

“그랬다면 아마…… 부하의 공로를 바탕으로 허동주의 입지가 더 굳건해졌겠죠.

선대 태사께서는 그런 일을 방지하려고 허동주의 기반인 산동에 총독으로 박아두신 것 같습니다. 산동 총독은 상당히 높은 자리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보면 유배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아니면…… 총독은 태사부 직속이니, 백부님께서는 허동주와 신수덕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셨는지도 모르지.”

안세규는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태사의 가정이 맞다면 신수덕이 어떻게 다른 경쟁자들보다 앞서 허동주의 후계자로 올라갈 수 있었는지 설명이 되는군요.”

“신수덕은 허동주에게서 독립한 게 아니라, 그 어떤 위치에 올라가도 허동주의 충견으로 남았겠죠. 그게 허동주와 그 부하들이 신수덕을 더욱 믿는 계기가 되었을 테고.

……악랄하지만 동시에 조직 내에선 인망이 높은 인물이라. 재미있네요.”

리안의 번뜩이는 미소를 보며 안세규는 그녀의 사고를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권력을 위협하는 자는 동시에 권력 강화의 좋은 제물이 된다.

이 여자는 어떻게 신수덕을 죽이고 자신의 권력을 더욱 넓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웃는 게 틀림없다.

“자, 신수덕과 남부전선 문제는 그렇다 치고, 서부와 북부 전선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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